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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도장 찍으세요-50화 (50/128)

<50화>

“어디부터 들를 거야?”

엘시어가 다리를 꼬고 마차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대장간 거리.”

“그래? 본론은 옷이라더니.”

엘시어가 의외라는 듯 놀라 묻자, 메이가 별것 아니라는 기색으로 툭 대답했다.

“그렇기는 한데, 들어올 때는 삯마차를 타야 하잖아. 대장간 거리는 외곽에 있으니 일찍 다녀오는 게 나아.”

“그건 그러네.”

엘시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점호 전까지 돌아올 수 있겠지?”

엘시어가 영 걱정이 된다는 듯 말하자 메이가 품속에서 시계를 꺼내어 보고는 말했다.

“빨리 가 봐야지. 조금만 빨리 부탁드릴게요!”

메이가 마부석을 향해 외쳤다.

그러자 바깥의 마부가 크게 소리쳤다.

“그러면 마차가 많이 흔들릴 겁니다!”

“괜찮습니다!”

그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마부가 말을 재촉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랴, 이랴!

말발굽이 땅을 박차는 소리가 더욱 거세어졌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아?”

등받이에 기대어 늘어져 있던 엘시어가 마차의 이곳저곳을 곁눈질했다.

“글쎄. 학교 마차는 처음이라.”

“뭔가 끼릭끼릭 소리가 나는 게 영 거슬리는데…….”

엘시어가 유심히 소리를 들으며 여기저기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뭔가 들려?”

“아니……. 잠시만.”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녔지만, 영 원인을 찾지 못하겠는지 엘시어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 몰라. 못 찾겠어.”

“마부가 아직까지 별말을 하지 않으니 괜찮은 거겠지. 본인이 매일 관리하는 마차잖아.”

메이가 시큰둥한 기색으로 말하자, 엘시어도 어깨를 으쓱였다.

“그것도 그렇지.”

결국 엘시어는 더 이상 찾기를 포기하고 의자 등받이에 드러누웠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학교에서부터 이어지는 직로를 지나 커브 길에 들어섰을 때였다.

우직!

엘시어와 메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들었어?”

“방금 뭐지? 뭐 부서지는 소리 아니야?”

우지직!

“어, 잠깐!”

바깥에서 마부의 새된 목소리가 들렸다.

“왜 그러시죠?”

“모르겠습니다! 멈춰, 이 녀석들아!”

마부가 다급한 손짓으로 고삐를 움켜쥐었다.

하지만 이미 흔들리기 시작한 마차는 말들을 놀라게 한 뒤였고, 말들은 제멋대로 날뛰기 시작했다.

쿵! 쿠쿵!

“뭐야!”

당황해서 소리치는 메이를 엘시어가 감싸 안으며 외쳤다.

“일단 뭐든 꽉 잡아!”

“꺅!”

바깥에서 들리는 마부의 비명 소리와 함께 마부의 통제를 벗어난 마차가 위로 튕겼다.

쿵!

우지끈!

마차가 땅으로 내려오자마자 충격이 일면서 바퀴가 빠져나갔다.

쿵! 쿵!

“으아악!”

차체가 내려앉는 충격으로 마차가 뒤집어지며 커다란 소리가 이어졌다.

콰아앙!

* * *

“AK013. 맞아?”

“응. 신청 장부도 확인했다고.”

“킥킥. 고생 좀 하겠지?”

“더럽게 하겠지.”

한 무리의 남학생들이 낄낄 웃으며 복도를 걸어갔다.

“……그런데 사고가 크게 나면 어떻게 하지?”

그들의 맨 뒤를 따라가던 소년이 중얼거리자, 앞서가던 한 남학생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 이 자식은 꼭 초를 친다니까.”

“내버려둬, 테라. 올리버가 원래 소심하잖아.”

일전 대련 수업에서 엉덩방아를 거하게 찧은 테라는, 울컥 화가 치미는지 얼굴을 팍 구기며 말했다.

“괜히 찜찜하게 저딴 소리나 해 대니까 그러는 것 아니야.”

“그래, 올리버. 크게 나 봤자 뭐 있겠어? 마차 안에서 굴러 봤자지.”

둘 사이를 중재하던 잭 호르세가 그들 사이로 파고들며 말했다.

“하지만 뒤집어진다든가…….”

“여기가 산길도 아닌데. 괜찮아.”

“하지만…….”

“바퀴가 빠지면 그대로 가라앉는 정도지, 크게 사고가 나려야 날 수가 없다고. 응? 올리버.”

잭이 재차 이야기하며 뒤쪽으로 눈치를 슬쩍 주었다.

그들의 뒤에서 걸어오던 소년의 이름은 밀러 페리윙클.

현재 아카데미 내 재학 중인 이들 중 손꼽히는 권력가의 자제였다.

“그래. 정 걱정이 된다면 가서 조심하라 일러 주면 될 일이지.”

밀러 페리윙클이 넌지시 한마디를 남겼다.

그러자 하는 수 없이 입을 다문 올리버 오스틴은 하던 생각을 조용히 혼자 갈무리했다.

‘이게 정말로 작은 골탕 정도로 끝날 수 있을까?’

아예 신경을 끄면 좋겠지만 계속 머릿속 한구석에서 걸리는 것은 정말 어쩔 수가 없었다.

어딘지 모르게 서늘한 불안감이, 계속해서 그의 목덜미를 타고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 * *

“메이. 정신 차려, 메이!”

엘시어가 다급한 목소리로 메이를 불렀다.

‘큰일이다. 난 마차에 깔려서 움직일 수가 없고, 메이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고…….’

게다가 바닥에는 핏자국이 보였다. 메이가 떨어지면서 머리를 바닥에 부딪친 모양이었다.

“으윽…….”

“메이, 정신이 들어?”

“아…….”

메이가 부스스 눈을 떴다.

엘시어는 그녀가 깨어난 것을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뭐가 어떻게…….”

“다행이다. 머리를 크게 다친 건가 걱정했는데.”

메이는 제 위에 올라타서 저를 내려다보고 있는 엘시어를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어어, 움직이지 마.”

“윽……!”

그녀가 눈을 질끈 감자 엘시어가 쯧쯧 혀를 차며 타박했다.

“움직이지 말라니까. 어디 부딪치면서 찢어진 모양인데, 내가 확인해 줄 수가 없어.”

하지만 메이는 통증을 꾹 참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발견한 그녀가 놀라 소리쳤다.

“잠깐, 너 다리가……!”

“난 괜찮아. 스스로 나올 수가 없을 뿐이지.”

엘시어가 눈짓으로 제 위를 짓누르고 있는 마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마차가 뒤집어지며 문밖으로 튕겨 나온 두 사람은, 그나마 정신이 있던 엘시어가 몸으로 공간을 만들어 내어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다.

“움직일 수 있겠어?”

엘시어의 물음에 메이는 몸을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상태를 확인해 보았다.

“아윽…….”

왼팔에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괜찮아? 무리하지는 마.”

엘시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괜찮아.”

왼팔의 통증은 상당했지만, 다행히 왼팔을 사용하지 않고도 이 자리를 빠져나가는 것은 가능할 것 같았다.

“괜찮은 게 아닌 것 같은데.”

엘시어는 메이의 대답에 영 탐탁잖은 낯을 해 보였지만, 그녀가 움직여 주지 않으면 꽤나 곤란해지는 상황이었기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하긴. 괜찮지 않아도 어쩔 수 없지. 그렇다면 나가서 사람을 좀 불러와 줘.”

“잠깐, 마부는?”

“몰라. 마부가 있었다면 아마 내가 사람을 데려와 두 사람이서 이 마차부터 들어 올려 달라고 했겠지.”

“……그건 그렇지.”

엘시어의 자포자기식 대답에 메이도 할 말 없다는 듯 긍정했다.

“일단 좀 나가서 봐야겠어.”

엘시어의 밑에서 꾸물꾸물 빠져나온 메이는 곧장 통증이 있던 왼팔을 살짝 움직여 보았다.

욱신.

제법 통증이 심했다. 게다가 통증 때문에 팔을 움직이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제기랄. 손목이 부러진 것 같아.”

“이런. 못 움직이겠어?”

“움직였다간 여기서 황천길 가겠는걸.”

“큰일이네. 어느 손이지?”

“왼손.”

그녀의 말을 들은 엘시어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가 실소를 뱉었다.

“하. 이런 말 하기는 웃기지만, 그래도 왼손이라 천만다행이네.”

“그거 확실히 웃긴 말이네.”

킥킥. 메이도 실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주변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옆에는 목이 꺾인 채 널브러져 있는 남자가 하나 있었다.

“오, 이런.”

“왜. 설마 다리도 부러졌다는 소리는 아니겠지?”

“아니.”

그녀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목에 손을 갖다 대어 맥을 확인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손끝에 느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쯧, 마부가 죽었네.”

“아……. 그건 확실히 비보로군.”

마차가 뒤집어지면서 튕겨 나갔을 때 즉사한 모양이었다.

“이렇게 되면 정말 영락없이 내가 가야겠는데.”

“너라도 갈 수 있다는 게 다행이지.”

엘시어가 픽 웃으며 말하자, 메이는 고개를 뒤로 넘기며 하늘을 향해 한숨을 쉬었다.

“하……. 오늘 불안하다던 네 말을 들었어야 했나 봐. 일진이 사납네.”

“됐어.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이 일이 어떤 형태로 돌아오게 될지는 지나 봐야 알 일이지.”

엘시어는 엘렌이 간혹 하곤 하던 말을 중얼거렸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 말을 이었다.

“어쨌든 지금은 사람을 불러와야 해. 시내가 더 가까우니 가서 치안대를 불러와 줘. 부탁할게.”

“꺼내 줄 수 없어서 미안해. 바로 달려갔다 올 테니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메이는 마차 밑에 깔려 있는 엘시어를 보고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래. 부탁한다.”

엘시어가 그래도 멀쩡히 있는 손을 흔들자, 메이는 그 손을 잠깐 보고는 곧장 달려 나갔다.

* * *

“전하.”

일전 길리언 크렘벨에 관한 조사 보고서를 읽고 있던 케이든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아. 갈까마귀. 무슨 일이지?”

“크라이언트에 관한 소식입니다.”

일전 크라이언트에 대한 정보는 잡히는 대로 최대한 자신에게 보고하라 말해 놓았던 그는, 읽고 있던 보고서를 덮으며 말했다.

“그럼 지금 이야기하지.”

“예. 마차 사고가 났는데, 그 피해자가 크라이언트 영식이라고 합니다.”

“마차 사고?”

“예. 동급생인 소르본 영애와 함께 사고를 당했다고 합니다. 자세한 경위는 아직 조사 중입니다만, 일단 마차 바퀴가 빠지면서 마차가 뒤집어진 것 같습니다.”

“뒤집어졌다고?”

케이든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서서 외투를 집어 들었다.

“영식이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던가?”

“스스로 거동이 어려운 듯했다고 합니다.”

“이런.”

그는 빠른 걸음으로 집무실을 나섰다.

“어디에 입원해 있지?”

“중앙 병원 113호입니다. 직접 가 보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지금 바로 갈 거다.”

케이든은 곧장 문을 박차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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