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 barefaced - 뻔뻔스러운, 낯짝이 두꺼운 (2)
195.
***
자정 무렵.
모니터를 보던 송진호가 깊은 한숨을 내쉰다.
며칠 전 출간된 본인의 차기작 결과 때문이었다.
제목 : 뻔뻔한 거짓말.
2년 넘게 집필한 작품으로 수정만 6개월을 넘게 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는커녕 흔한 기사 하나조차 없네.’
출판사에서 홍보하는 SNS 광고 몇 개만 가끔 보일 뿐이었다.
그나마 몇 개 올라오는 독자 리뷰는 더 처참했다.
[학생 땐 꽤 주목받았던 작가로 알고 있는데, 갈수록 퇴보한 느낌이 드는 작품입니다.]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는 거 같은데 끝까지 다 읽어도 그게 뭔지 모르겠으니까 답답한 느낌이네요. 아마 작가 본인도 모르는 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전체 9개밖에 되지 않는 독자 리뷰.
9명의 독자 평점은 간신히 3점대를 넘었을 뿐이었다.
완벽하게 망한 상황.
그에 비해 같은 날 판매를 시작한 권서준의 작품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고 있었다.
출시 하루 만에 베스트셀러 최상단에 위치하더니 연일 매진 기록을 세우며 벌써부터 내년 최고 흥행작으로 거론되고 있었다.
“하아...”
송진호는 긴 한숨을 내쉬며 책상에 놓인 권서준의 책으로 시선을 옮긴다.
고작 그림 동화.
그러나 그 안에 담긴 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신비로운 그림체와 함께 권서준이 창조한 세상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돈다.
‘...넌 정말 천재인 거냐?’
최선을 다한 자신의 글이 못나 보일 정도였다.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발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한 느낌.
‘뭐가 문제인 걸까...’
무언가 가로막는 기분이지만 그게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아버지 송영도 교수에게 당당히 내밀 수 있는 작품을 쓰고 싶었지만 이번에도 실패하고 말았다.
답답하고, 우울한 기분.
모두가 행복해야 할 크리스마스였지만 송진호에겐 더없이 외로운 크리스마스였다.
***
다음 날 아침.
눈을 떠보니 장문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작가님 깜짝 선물 감사합니다. 정말 잘 읽었어요.]
신하율이 보낸 메시지.
어젯밤 내가 보낸 선물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짧은 감사 인사 뒤에 긴 감상평이 보인다.
거의 서른 줄이 넘는 세밀한 감상평.
“얘, 거의 잠도 못 잤겠는데?”
작가 입장에선 이토록 내 작품 세계를 깊고 세밀하게 봐준다는 것 자체가 고마운 일이었다.
물론 누군가에게 내 작품이 의미 깊다는 것도 고마운 일이고.
아침부터 기분 좋은 메시지에 하루의 시작이 기대됐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하루야.’
물론 내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었다.
***
하이든 에이전시 한국 지부.
고용수 부장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하루가 멀다고 쏟아지는 자료를 보면서 출판계 흐름을 파악해야 했고, 매일 수십 개의 해외 에이전시와 접촉하면서 계약할 만한 작가나 콘텐츠가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덕분에 사이트를 검색하는 게 하루의 일과지.’
게다가 봄에 시작될 국제 도서전 준비로 업무량은 배나 늘었다.
1년에 두 번 있는 국제 도서전.
계약할 만한 콘텐츠가 있는지 촉각을 곤두세워야 도서전 전에 양질의 콘텐츠를 확보할 수 있었다.
시차로 인해 새벽부터 이어진 업무가 오전 10시가 되어서야 슬슬 마무리된다.
“후. 다했다...”
고 부장은 뻐근한 목을 풀며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열정을 다한 하루가 마무리된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가만, 그러고 보니 이제 슬슬 권 작가님의 차기작과 관련된 연락이 올 때쯤 됐는데...’
대부분의 나라에서 크리스마스 연휴가 끝날 때쯤이었다.
한국과 영국에서 동시에 흥행에 시작했기에 이제 입질이 올 타이밍.
‘설마... 벌써 왔으려나?’
고 부장이 조심스럽게 메일함을 연다.
그런데,
이미 수십 개의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모두 권서준 작가의 그림 동화의 판권 문의 요청이었다.
“허, 헐... 여기도 연락이 왔다고?”
하나같이 이름만 대면 알 정도의 거대 플랫폼과 대형 출판사, 거대 에이전시까지 다양했다.
“하, 하, 하...”
어이없는 웃음이 고 부장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이제 좀 쉬나 했는데... 망했네.”
워딩과 달리 고 부장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오른다.
소속 작가의 성공은 담당 에이전시 입장에서도 보람될 수밖에 없으니까.
‘우리나라 작가라면 그 보람은 두 배가 되는 거고.’
피식 웃던 고 부장은 이내 메일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하나씩, 꼼꼼하게.
그 어느 때보다 열정적인 모습이었다.
***
와이즈 출판사 편집실.
권서준 작가의 차기작 반응은 엄청났다.
주상진 편집장도 엄청난 판매고에 놀란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게 말이 돼? 초판 5만 부가 벌써 다 나가다니?”
분기 정도는 버틸 줄 알았던 재고가 이미 바닥난 상황이었다.
“연말에 신년 휴가까지 이어져서 인쇄소도 쉴 텐데... 이거 큰일이네.”
주 편집장이 아쉬운 듯 말끝을 흐린다.
그러자 듣고 있던 권지연이 입을 연다.
“인쇄소 일정은 괜찮을 거 같습니다.”
“어? 그게 무슨 소리야?”
주 편집장의 질문에 권지연이 얼른 일어나 대답한다.
“연말 연휴까지 반납하고 일정 맞춰주신다고 했거든요.”
“정말? 어떻게?”
“아무래도 추가 인쇄가 들어가야 할 거 같아서 미리 연락을 드려 놨었습니다.”
“뭐어?”
권지연의 말에 주 편집장이 놀란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이내 안도의 미소가 떠오른다.
“그래, 일은 이렇게 하는 거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생각을 하면서 일하는 거라고. 다들 명심해, 알겠어?”
“네, 알겠습니다.”
주 편집장의 말에 나머지 직원들이 대답한다.
“자, 기분도 좋은데 오늘은 특별히 내가 쏜다!”
“와우! 회식이다!”
“감사합니다. 편집장님!”
직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치자 주 편집장이 손을 내젓는다.
“나한테 고마워할 거 없어. 오늘 주인공은 권지연 대리니까.”
“...네? 대리요?”
낯선 호칭에 권지연이 놀라 되묻는다.
“당신 승진했어. 오늘부로.”
권지연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다.
“...펴, 편집장님...”
“어허. 나한테 고마워할 거 없어. 권 대리가 잘한 거니까. 아, 뭐 굳이 인사할 사람을 찾는다면 집에 가서 하면 되지 않을까?”
윙크를 날리는 주 편집장의 말.
누구를 말하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어느새 권지연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오른다.
***
승진.
직장인에게 이보다 더한 보람이 있을까.
회식을 마치고 돌아온 누나는 탭댄스까지 추며 승진의 기쁨을 만끽했다.
“서준아, 다 네 덕분이야. 이렇게 빨리 승진할 줄 몰랐는데...”
“내 작품과 별개로 누나가 잘한 거지.”
누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뭘... 네 책이 잘 되니까 나한테 이런 결과도 온 거지.”
이번엔 내가 고개를 저었다.
“이미 주 편집장한테 연락받았어. 마케팅도 잘했고, 인쇄소 일정도 미리 조율했다고 엄청 칭찬하시던데?”
“아, 그거야 뭐...”
누나가 멋쩍은 미소를 짓는다.
“잘했어. 모두가 잘해서 얻은 결과야. 그러니 마음껏 즐기자고.”
그제야 누나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누려야지. 그리고 더 잘해야지. 승진한 만큼 보여줘야 하니까.”
“오호. 믿음직스러운데? 앞으로도 믿고 맡길 수 있겠는 걸?”
자연스럽게 누나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더 이상 자신 없는 신입의 표정이 아니었다.
문득 올 한 해 거둔 열매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소설 「당신이 머물던 자리에」로 부커상을 수상하고, 그림동화 「도둑고양이 네로」는 연일 판매 기록을 경신하고 있었다.
영화 「레이디 햄릿」도 올란 감독과 정 피디가 잘 준비하고 있고.
한평생 노력해도 얻기 힘든 성과가 이미 내 손에 쥐어졌다.
당연히 성공에 대한 열매 역시 주변 사람들과 함께 맛보고 있었다.
더없이 행복한 시간.
이제 슬슬 차기작을 준비할 타이밍이었다.
‘글쓰기 딱 좋은 계절이잖아.’
공기마저 차분하게 가라앉는 겨울.
나는 창밖을 보며 생각을 정리한다.
오랜 기간 숙성시킨 차기작에 대한 감성이 이내 충만해지기 시작한다.
***
시간이 흘러 어느덧 해가 바뀌었다.
찬바람이 더욱 매서워지고 창백한 하늘이 성큼 깊어진 겨울의 깊이를 말해주었다.
나는 그사이 차기작에 대한 구성을 완성했다. 작품 속 세계관과 상징성을 치밀하게 구성한 상태.
‘이제 본격적인 집필만 남았지.’
열정을 불태운 시간.
문득 정신을 차리고 나니 어느새 일주일이 지나있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지났네.’
거실로 나오자 엄마가 걱정스러운 듯 묻는다.
“너 괜찮아?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사람이 바깥바람도 쐬고 그래야지. 그러다 몸 상해.”
그러고 보니 일주일 넘게 거의 두문불출한 거나 다름없었다.
그만큼 작품에 집중했고, 내가 창조한 세계에 대한 재미가 충만했다.
그래도 엄마 말대로 가끔은 바람 쐴 필요는 있었다.
건강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행복의 요소니까.
“엄마, 오랜만에 드라이브 갈까?”
“드라이브?”
“응.”
잠시 나를 보던 엄마의 얼굴이 이내 미소로 바뀐다.
“좋지.”
***
나는 오랜만에 작업실을 벗어나 엄마와 함께 드라이브를 갔다.
어디를 가고 싶냐고 묻자 엄마는 고향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젊었을 땐 홀로 아이 키우느라 자주 찾아오지 못한 엄마의 고향 예천.
이제는 아는 사람도 몇 남지 않은 시골이지만 고향을 찾은 엄마의 표정은 더없이 평안해 보였다.
“좋네.”
엄마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주변 경치를 즐겼다.
꽁꽁 언 강과 눈 덮인 풍경이 제법 잘 어우러져 아름다웠다.
“아쉽다...”
“왜?”
“여긴 봄 되면 더 예쁘거든.”
엄마는 눈으로는 얼어붙은 계절을 보면서 다른 계절을 떠올리고 있었다.
“봄에도 올까?”
“정말? 엄마야 좋지.”
엄마는 미소를 지으며 내 팔을 잡는다.
우리는 따스한 체온을 느끼며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맛있는 점심도 먹고, 차도 즐기고.
모처럼 엄마와 데이트를 즐기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이제 슬슬 올라가야 할 거 같은데?”
어느새 해가 지고 어둑해지는 시간.
엄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노을 지는 강변을 바라본다.
“그래, 이제 가야지.”
여운이 남는 엄마의 말끝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며 물었다.
“엄마, 저기에 집 짓고 살면 어떨까?”
“저기?”
엄마는 가만히 바라본다.
“좋지. 햇볕도 잘 들고, 바람도 적당하고, 봄꽃이 가득 피면 엄청 예쁠 테니까...”
엄마의 머릿속엔 이미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그림의 모습.
“그러면 여기로 하자.”
엄마가 나를 쳐다본다.
“뭘?”
“우리 집 말이야. 여기에 멋지게 한번 지어보자고.”
“집을?”
엄마가 놀란 듯 나를 쳐다본다.
“어,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이런 데 집 짓고 살면 좋잖아.”
“그거야 그렇지만...”
엄마의 걱정은 알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나 돈 많아. 집 짓고도 훨씬 남는다고.”
그동안 작품에 집중하느라 수익의 대부분은 고스란히 통장에 쌓여 있었다.
이제 슬슬 모인 돈을 쓸 차례였다.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는 가치 있게 쓰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이전 생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긋지긋한 반지하 월세로 시작해서 그동안 고생 많았잖아. 이젠 행복해야지.”
나 자신과 평생 고생만 엄마를 위한 작은 보상이기도 했고.
다만 엄마는 미안한 듯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왜 그렇게 봐?”
“네가 번 돈인데 너를 위해서 좀 쓰라고. 우리 생각 그만하고.”
엄마는 자식의 효도조차 미안한 표정이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걱정이라면 할 필요 없어. 이게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니까.”
엄마 마음 편해지라고 한 말이 아니었다.
내가 직접 겪고 깨달은 경험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돈과 명예를 얻었지만 후회만 남았던 전생의 삶.
‘이번에도 같은 실패를 경험할 순 없지.’
사실 집이 가지는 가치는 내게 있어 매우 중요했다.
단순히 안정적인 주거 형태를 떠나 내 마음이 머물고, 가족의 행복이 머무는 공간이라는 개념.
내 머릿속엔 이미 그 집이 지어지고 있었다.
말 그대로 그림 같은 집이.
그리고 두 달 뒤.
내 첫 SF 소설이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