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이 셰익스피어였다-191화 (191/203)

191. useless - 쓸모 없는 (4)

191.

***

강남에 위치한 5성급 호텔 연회장.

평소 세미나가 펼쳐지는 이곳에 나를 위한 축하 파티가 준비되었다.

입구에서부터 주상진 편집장이 얼마나 신경 써서 준비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축 부커상 수상, 권서준 작가]

커다란 현수막과 축하 화환들.

TV 예능에 출연하는 유명 셰프가 직접 조리한 고급 요리.

게다가 내 책 표지로 만들어진 포토월까지.

사람들은 마치 축제에 온 것처럼 포토월 앞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화려하면서도 정제된 연회장의 데코레이션은 고급스러움을 연출했다.

참석한 사람들의 면면도 훌륭했다.

출판계 유명 인사부터, 각종 문학상을 받은 저명한 작가들이 참석해 축하 파티의 격을 높였다.

게다가 내게 익숙한 지인까지 참석해 수십 명의 사람이 부커상 수상을 축하했다.

뺄 수 없는 스케줄에 조현성과 이경민 배우는 화환을 보냈고, 방수찬 배우는 환하게 웃으며 내게 꽃다발을 건네며 축하를 해줬다.

뒤이어 타이거 스튜디오의 진영민 CP와 하 본부장이 다가온다.

“아이고 작가님. 축하드립니다.”

하 본부장의 사람 좋은 미소는 여전했다.

“감사합니다. 잘 지내시죠?”

“저희야 작가님 작품 덕에 아주 잘 지내죠. 참, 정 피디는 현재 미국에 있어서 따로 연락드린다고 했습니다.”

“안 그래도 오기 전에 연락받았습니다. 편집이 아주 잘 되고 있다고 하던데요?”

내 말에 하 본부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니까 말이에요. 분위기가 아주 좋아 보이더라고요. 이러다가 큰일 한 번 내는 거 아닐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 본부장의 얼굴에 기대감이 떠오른다.

하 본부장이 말하는 큰일이라는 단순한 흥행이 아니었다.

설레발일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작품 진행이 원활하다는 뜻.

작품의 성공.

나 역시 기대하는 바였다.

그러나 나의 관심사는 작품보다는 사람을 향해 있었다.

정확히는 공동 연출을 맡은 정 피디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아마 엄청나게 성장하고 오겠지?’

효율을 중시하는 헐리웃 시스템과 올란 감독의 연출력을 바로 옆에서 보고 배울 기회였다.

안 그래도 영상 콘텐츠에 대해서 감을 찾은 정 피디가 얼마나 더 성장해서 돌아올지 기대가 됐다.

‘그땐, 내 상상 속 세계를 마음껏 보여줄 수 있겠지...’

묘한 설렘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래.

내가 꿈꾸는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정 피디는 반드시 필요한 초석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런 존재였다.

정 피디도, 타이거 스튜디오 인맥도, 누나도 모두 내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들이었다.

연회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을 보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진다.

“어? 저를 안 불러주시면 서운하죠!”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리자 또 한 명의 초석이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꽃다발을 든 채 다가오는 사람.

다름 아닌 신하율이었다.

“용케 왔네? 스케줄 있으면 못 올 줄 알았는데.”

“무조건 와야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작가님 축하 파티인데요.”

진심을 담은 축하에 내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고마워.”

“정말 축하드려요. 독자로서 너무 자랑스러워요.

그때,

하 본부장이 잔을 들며 소리친다.

“자자, 대세 배우님도 오셨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축하 파티를 시작하죠?”

“본격적으로요?”

“술이 들어가야 흥이 오르죠. 자, 다 같이 잔을 들죠.”

주 편집장의 말에 연회장에 모인 사람들이 다 같이 잔을 든다.

지켜보며 기다리던 하 본부장이 미소를 지으며 외친다.

“자, 우리 천재 작가를 위하여!”

“위하여!”

동시에 함성처럼 터지는 외침.

그 소리가 마치 환호처럼 나를 짜릿하게 만든다.

처음 갖는 축하 파티는 아니었지만 내겐 그 어느 때보다 가장 뜻깊은 자리였다.

왜냐고?

그야 내가 가장 아끼고 신뢰하는 사람들과 기쁨을 나누는 자리였으니까.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

권서준 작가의 부커상 축하 파티.

안정적으로 진행되는 행사를 보며 주상진 편집장이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좋아, 분위기가 아주 좋군.’

하 본부장의 건배 제의 후 분위기도 점차 무르익어간다.

그때,

오늘의 주인공인 권서준이 다가온다.

권서준을 본 주 편집장이 먼저 인사를 건넨다.

“작가님,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자연스럽게 나누는 악수.

권서준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연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화려한 파티가 준비될 줄은 몰랐네요.”

“최고급으로 준비하라는 회장님의 명이 있었거든요. 어때요, 마음에 드십니까?”

“마음에 들다마다요. 정말 감사합니다.”

인사 후 대화는 자연스럽게 최근 권서준 작가의 근황으로 이어진다.

“어때요? 인기를 좀 체감하시나요? 안 그래도 여기저기서 작가님에 대한 이야기로 난리인데.”

주 편집장의 말에 권서준이 고개를 끄덕인다.

“조금 체감하고 있습니다. 부커상이 큰 상이긴 한 가 봐요.”

대답과 달리 크게 연연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주 편집장은 새삼 놀란다.

‘그 큰 상을 받고도 어떻게 저렇게 담담할 수 있을까.’

참 신기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정작 주 편집장의 시선은 당장의 축하보다 곧 다가올 고난에 맞춰져 있었다.

바로 권서준 작가를 향한 문학계 원로들의 고까운 시선이었다.

‘얘기해주는 게 맞을까...’

축하 분위기를 깰 수 있기에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잠시 고민하던 주 편집장은 애써 입을 열었다.

그래도 당사자가 알아두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작가님의 부커상 수상은 정말 대단한 일이죠. 다만, 그로 인해 최근 심상찮은 분위기가 있어요.”

“그게 뭐죠?”

권서준이 되묻자 주 편집장이 조심스럽게 말을 잇는다.

“작가님의 수상 결과 때문에 문학계 원로들이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고 있거든요.”

힘겹게 꺼낸 말.

그러나 권서준의 반응은 의외였다.

“아마 제가 어느 쪽에도 속해있지 않기 때문이겠죠?”

생각보다 담담한 반응에 오히려 주 편집장이 놀란다.

“아, 네. 뒷배가 되어줘야 할 후배가 아니기에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게 배 아픈 거죠. 그 선봉장에 박성규 교수가 있고요.”

권서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쯤 되자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한다.

‘권 작가님은 이미 알고 계셨던 건가?’

그게 아니면 이렇게 태연하게 반응할 수 없었다.

“작가님을 어떻게든 끌어내리려고 할 겁니다. 평론, 칼럼, 문학계 인맥 등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요.”

처음 있는 일이 아니기에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권서준의 표정은 평온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하향평준화니까요. 후배들의 작품이, 본인들이 마음껏 재단하고 요리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길 바라는 거죠.”

역시나 권서준은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결되는 건 없었다.

‘고민이 될 거야. 문학계에 몸담은 작가로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니까...’

그런데,

권서준 작가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일단은 즐기죠.”

“...네?”

놀란 주 편집장이 자신도 모르게 되물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면 즐겨야죠. 안 그런가요?”

“아, 그렇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전 저만의 방식으로 싸울 거고, 헤쳐 나갈 테니까요. 물론 주 편집장님의 도움이 필요하고요.”

권서준은 대범했고, 거침이 없었다.

얼굴에선 오히려 미소까지 엿보인다.

게다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은 했지만 그건 예의상 하는 말이었다.

이미 모든 계획이 머릿속에 있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자신감이었다.

“...”

주 편집장은 대답도 잊은 채 가만히 권서준 작가를 바라봤다.

어떻게 저 어린 나이에 저런 배포를 가질 수 있을까 신기하기도 했다.

‘어떨 때 보면 나보다 훨씬 위 연배와 대화하는 기분이란 말이야...’

그때,

권서준이 와인 잔을 내민다.

“한잔할까요?”

말없이 지켜보던 주 편집장이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걱정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니까.’

부커상 수상.

권서준의 말대로 축하할 일이었다.

앞으로 다가올 고난이 어떨지는 알 수 없지만 오늘 만큼은 이 기쁨을 만끽하는 게 맞았다.

자신감 넘치는 권서준의 표정에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염려가 서서히 기대감으로 바뀐다.

‘이런 기분 참 오랜만이군...’

그제야 비로소 주 편집장도 마음껏 파티를 즐길 수 있었다.

술이 익어가고,

분위기가 무르익고,

사람들의 대화마저 익어가는 시간.

모처럼 걱정 없이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

‘작가님의 수상 결과 때문에 문학계 원로들이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고 있거든요.’

주 편집장이 전한 말.

이미 예상하고 있던 반응이었다.

‘내가 애초에 SF를 선택한 것도 그 때문이니까.’

고상한 척하는 그들을 발작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럴수록 가면 뒤에 숨은 그들의 날 것 같은 찌질함이 만천하에 드러날 테니까.

물론 그것만이 목표는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나는 와이즈 출판사 정영만 회장의 집을 찾았다.

“삼촌!”

나를 알아보는 재민이가 저 멀리서 나를 알아보고 달려온다.

나는 두 손을 뻗어 녀석을 번쩍 안아 들었다.

“뭐야, 재민이 그새 살찐 거야?”

“살찐 게 아니고 키가 큰 거거든요?”

“그래?”

다시 내려놓고 보니 어느새 훌쩍 자라있었다.

“이야, 요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나 보네?”

“네, 저도 삼촌처럼 키가 크고 멋진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그래?”

“네!”

나는 귀엽게 웃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한결 밝아진 모습에 마음도 편해진다.

“왔구나.”

그때,

뒤에서 정 회장이 다가왔다.

여느 때처럼 개량 한복을 입고 뒷짐을 진 채였다.

“부커상 수상자가 네 집을 찾아오다니, 이거 영광인걸?”

너스레를 떠는 정 회장의 농담.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오랜만에 인사드리네요. 잘 지내셨죠?”

“나야 잘 지냈지. 저 녀석도 잘 지냈고.”

정 회장은 어느새 정원 의자에 앉아 책 읽는 재민이를 보며 말했다.

“많이 밝아졌어요.”

“다 네 덕분이지. 고맙다.”

밝아진 손자 덕분일까.

정 회장의 얼굴도 몇 달 전에 비해 훨씬 편해져 있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안채로 이동해 가벼운 다과를 즐겼다.

“자, 한 잔 받아라. 내가 그때 말한 술이다.”

정 회장이 병에 담긴 명주를 따라준다.

맑고 고운 빛깔이 먼저 눈을 사로잡는다.

천천히 한 모금을 넘기자 지켜보던 정 회장이 묻는다.

“맛이 어떠냐?”

명장이 빚었다고 하더니 그 맛이 일품이었다.

“훌륭하네요. 깔끔하고, 고소하면서... 이게 술인가요?”

내 말에 정 회장이 크게 웃음을 짓는다.

“괜히 명장이 아니지. 내가 왜 그토록 기다렸는지 이제 알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이 좋아진 정 회장은 제 술잔을 비우고는 행복한 듯 미소를 짓는다.

“크으. 그래. 이 맛이지.”

다시 술 한 잔을 채워주고는 천천히 입을 연다.

“자, 부커상도 수상했고, 동화책은 곧 출판될 예정이고, 다음은 어떤 작품을 할 생각이냐?”

대화는 자연스럽게 내 차기작으로 흐른다.

나는 자연스럽게 내 생각을 꺼내려 했다.

“...”

그런데,

정작 질문한 정 회장의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는 듯싶었다.

게다가 눈에서는 말할 수 없는 고민까지 엿보인다.

내색하지 않으려 했겠지만 내 눈을 피해 갈 순 없었다.

“근데 그전에... 혹시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신가요?”

“...어? 나한테 고민이랄 게 있겠니? 이렇게 든든한 후배가 있는데.”

애써 웃는 얼굴.

그러나 가슴에 담은 깊은 고민을 다 숨길 순 없었다.

“저한테까지 비밀로 해야 할 고민이신가요?”

“...”

내가 되묻자 정 회장이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이내 대답보다 먼저 정 회장의 눈길이 한 권의 책으로 향한다.

내 시선도 자연스럽게 따라 이동한다.

“하아... 사실, 이 소설 때문에 내가 요즘 밤잠을 설치고 있거든.”

개화.

일본에서 화제가 된 소설로 나 역시 이미 알고 있는 작품이었다.

“이 소설을 수많은 외국인이 사실처럼 여기는 게 안타까울 뿐이지...”

정 회장이 한탄이 깊었다.

나는 다시금 책으로 시선을 돌린다.

소설 「개화」(開花, かいか).

작가는 일본에서 유명한 이토 히나타였다.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작가로 그동안 수많은 전쟁과 관련된 소설을 집필했다.

이번 작품 역시 마찬가지였다.

2차 세계 대전의 포화 속에서 살아남는 소시민의 모습을 담았다.

그러나 실상은 전쟁을 통해 겪는 일본인의 참상을 통해 일제 침략을 미화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오히려 전쟁을 통해 상처받은 쪽은 일본이라는 식의 교묘한 의도가 담겨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가스라이팅의 결정체라고 할까?

수려한 문체와 뛰어난 상징성 덕에 현재는 유럽에서도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었다.

“노벨상까지 거론되고 있다는데, 잠이 오질 않는구나. 진실이 통용되지 않는 세상이 참으로 원통할 뿐이지.”

정 회장은 쓴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기울인다.

나는 그 애통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전쟁 통에 모친을 잃은 정 회장의 입장에선 피를 토할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다행히도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와 닿아있었다.

나는 잔을 채우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 같네요.”

“...뭐?”

“소설은 소설로 잡아야죠. 진실은 승리하는 법이니까요.”

“...”

말없이 쳐다보던 정 회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너 설마... 차기작이...”

내 의도를 읽었는지 점점 눈이 커진다.

나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그래.

내 머릿속엔 이미 완벽한 카운터가 준비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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