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 useless - 쓸모 없는 (2)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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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
일명 사이언스 픽션으로 과학적 사실이나 가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허구의 세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과학소설 또는 SF로 불리지만 1세기가 넘는 역사를 통해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어려운 장르이기도 했다.
수많은 마니아가 존재하고, 영화계와 게임계에선 환영받는 소재.
그러나 문학계에서의 반응은 달랐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지만 마이너한 장르로 취급하는 게 실상이었다.
‘마치 싸구려 하위 문학 취급을 하는 거지.’
그리고 이 사실을 장현웅이 모를 리 없었다.
“왜 갑자기 SF 소설이야?”
술이 조금 더 들어가자 장현웅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사실 갑자기는 아니야.”
나는 대답 대신 신문 칼럼 하나를 보여줬다.
“어? 이건...”
얼마 전 신문에 기고한 박성규 교수의 칼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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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에 위치한 한 호텔의 연회장.
이곳에선 한창 시상식이 진행 중이었다.
대한 평론가상.
한국 문학평론가협회가 1990년부터 매해 활발한 비평 활동을 펼친 중진 평론가 한 명을 선정하는 문학상이었다.
초대 수상자는 문학계의 거성인 정영만 회장으로 국내에선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 중 하나였다.
특히 평론가 입장에선 그 공로가 지대한 사람만이 받을 수 있기에 가장 명예로운 상이기도 했다.
내로라하는 문학계 인사들이 모인 자리.
짧은 축하 행사와 유명 인사들의 축하 연설이 진행되고 이내 시상식의 마지막 순서만 남아있었다.
발표를 맡은 사회자가 최종 시상 발표를 시작한다.
“예술을 통역하고 독자가 맛보지 못한 의미를 보여주는 평론이 인상적인 분이시죠. 올해의 대한 평론가상, 수상자는 바로 장한명 교수님입니다.”
시상자가 호명되고 우레와 같은 박수가 울려 퍼진다.
모두가 축하하는 자리.
그러나 유독 날선 시선으로 무대를 바라보는 한 남자가 있었다.
바로 박성규 교수.
손뼉을 치는 박 교수의 표정은 싸늘하기만 했다.
‘원래 내 차례였는데...’
순서대로라면 박 교수가 받을 차례였다. 인지도로 보나, 그동안의 공로로 보나 박 교수의 수상이 확실했으니까.
그러나 어이없게도 막판에 엄한 놈에게 밀리고 말았다.
‘다 그 자식 때문이야...’
결정적인 이유는 지난 권서준과의 인터뷰 여파 때문이었다.
순문학의 구태를 대변하는 상징으로 매도되었고, 협회에서도 이번 연도 시상을 부담스러워했기 때문.
‘내년이 있잖아. 내년엔 박 교수가 무조건이지.’
협회 관계자가 뒤에서 설득했지만 내년 역시 쉽지 않을 수 있었다.
‘무능하면서도, 상은 받고 싶어 하는 욕심 많은 선배들이 아직도 널려 있으니까.’
견디기 힘든 치욕과 분노에 박 교수의 표정이 표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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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식이 끝나고,
자연스럽게 진행된 식사 자리.
축하 분위기가 한창인 자리에서 박성규 교수는 말없이 휴대폰을 바라봤다.
박 교수의 눈길을 붙잡은 건 다름 아닌 제자 권서준의 부커상 수상 기사였다.
[권서준, 부커상 수상. 전 세계에 한국 문학을 조명하는 계기 만들어...]
칭찬 일색인 기사에 박 교수가 이를 악문다.
재빨리 뒤로 가기를 눌러보지만 권서준의 연관검색어가 또다시 눈길을 붙잡는다.
베네딕트, 「거장의 숨결」과 함께 자리 잡은 연관 검색어에 자기 이름이 보인다.
고민 끝에 클릭하자 자연스럽게 식물위키가 상단에 떠오른다.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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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규 교수]
대한민국의 평론가.
별명 : 평론가의 스페셜리스트.
-대학생 시절 신춘문예로 등단에 성공한 각종 문예지에서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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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과 다름없는 내용.
그러나 정작 박 교수의 눈길을 끈 건 새롭게 추가된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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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논란-
권서준 작가와의 인터뷰 내용이 기사화되면서 문학계에서 비판받던 구태의 상징이 되었다. 장르 문학에 대한 비하, 순문학에 대한 근거 없는 추종이 대중들의 지탄을 받아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은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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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박 교수가 한숨을 내쉬며 휴대폰을 덮는다.
‘권서준, 이 개새끼...’
한번 솟구친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그러나 이내 찬물을 마시며 속을 진정시킨다.
‘내가 이렇게 당할 사람이 아니거든.’
그 사이, 사람들의 대화는 최근 출판계 동향으로 이어진다.
“그러고 보니 권서준 그 친구가 부커상 수상을 했다며?”
오늘 시상한 장 교수가 묻는다.
그러자 옆자리에 앉은 주상진 편집장이 만면의 미소를 띠며 입을 연다.
“네, 시상식 끝나고 얼마 전에 귀국했습니다.”
“하아, 그것참 좋은 소식이군. 가만, 그 친구가 누구 제자였지?”
“박 교수님 제자 아닌가요?”
한 작가의 말에 테이블의 시선이 박 교수를 향한다.
박 교수는 금시초문이라는 듯 고개를 젓는다.
“오해입니다.”
대답을 들은 한 작가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래요? 예전에는 분명... 본인 제자라고 하신 거 같은데...”
저 인간은 언제나 쓸데없는 걸 기억해서 문제였다.
가만히 쳐다보던 박 교수는 무표정한 얼굴로 차분히 대답을 잇는다.
“뭐 제가 가르친 적은 있지만 엄연히 말하면 송 교수의 직계라고 보는 게 맞죠.”
권서준과 차갑게 선을 긋는 모습.
그 이유를 여기 있는 사람이 모를 리 없었다.
“그렇군요. 참, 판매는 좀 어때요?”
분위기를 읽은 장 교수가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린다.
주 편집장도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드라마틱하죠. 아마 앞으로도 계속 신기록을 세워나갈 것으로 보입니다. 지방 주문도 엄청나게 늘고 있거든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박 교수는 모를 수 없었다.
‘베스트셀러가 장기화된다는 뜻이지...’
속이 뒤틀린다.
명치에서부터 쓴물이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생각 없는 한 작가가 추임새까지 넣는다.
“하긴, 요즘 권 작가에 대한 관심이 가히 폭발적이라 할 수 있죠. 인기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를 능가하는 인기가 문학계에도 일어나기 시작했으니까요. 그야말로 권서준 작가의 신드롬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죠.”
한 작가.
역시나 눈치라고는 밥 말아 먹은 작가였다.
“맞습니다. 요즘은 웬만한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죠. 매일매일 수십 개의 팬레터와 선물이 출판사로 도착하니까요.”
듣기 싫은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결국 참다못한 박 교수가 천천히 입을 연다.
“그런데, 그걸 과연 좋은 소식으로만 봐야 할까요?”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한 작가가 되물었다.
박 교수는 물 한 모금을 여유 있게 마시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권서준 작가의 작품이 송 교수의 작품보다 많이 팔리는 게 과연 바람직한 현상이냐는 말입니다.”
박 교수의 한마디에 테이블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는다. 그 말이 담고 있는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권 작가의 부커상 수상, 엄청난 판매고... 물론 좋은 소식이죠. 하지만 따지고 보면 내실 없는 잔치나 다름없어요. 왜냐고요? 보세요. 권서준 작가 외에 순문학은 거의 무너진 거나 다름없잖아요. 아니, 애초에 권 작가를 순문학 작가라고 말할 수도 없죠. 이건 뭐 작가 본인이 부정했으니까 이견이 있을 수 없고요. 게다가 독자들은 오로지 권서준 작가 한 명에게만 매달리고 있는 상황이라고요. 이게 출판계에 좋은 영향이 될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가만히 듣고 있던 문학계 원로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진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원로 중 한 명이 입을 연다.
“하긴 그건 그렇습니다. 권 작가의 작품에 몰리는 현상으로 인해 다른 순문학 작가들이 빛을 보지 못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게다가 요즘엔 별의별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작품성을 논한다니까요? 따지고 보면 이런 기현상의 배후는 권 작가 있다고 할 수 있겠군요.”
권 작가에게 호평 일색이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뀐다.
“...”
난처해하는 주 편집장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박 교수는 오히려 목소리를 높인다.
“제 말이 그 말입니다. 그럴싸해 보이지만 권 작가의 작품은 결국 돈을 좇는 상업 소설과 다를 바가 없단 말입니다. 물론 상업 소설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예술에 대해, 인간의 근원적 질문에 대해 일말의 관심도 없는 소설만 흥하는 건 명백한 문학적 퇴보를 불러일으킬 테니까요.”
돌려 말했지만 결국 권서준 작가 혼자 영광을 독차지하고 있는 현 상황을 지적한 것.
그리고 그 문제는 또 다른 문제와 직결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원로들의 밥그릇 싸움이지.’
왜냐고?
자신들의 힘이 지속해서 유지되려면 본인들의 제자가 두각을 드러내야 했다.
그런데 그 모든 영광이 권서준을 향한다는 건 결국 자신들의 힘이 약해진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원로들에게도 근본 없는 권서준 혼자 독차지 하는 건 불편할 수밖에 없지. 가장 중요한 건 제 밥그릇이니까.’
여기 있는 사람 중 박 교수의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은 없었다.
자연스럽게 순문학 원로들의 생각이 깊어진다.
“흠, 흠.”
헛기침이 들린다.
어느새 불편해진 원로들의 속마음.
모든 건 박 교수의 노림수대로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박 교수의 한쪽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부커상은 어떻게 탔다만, 그것으로 뭔가 달라질 거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애송아.’
천천히 물을 마시는 박 교수의 눈빛에 복수의 빛이 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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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거 너무 충격적인데?”
꼼꼼하게 박 교수의 칼럼을 읽은 장현웅이 혼잣말처럼 내뱉는다.
장현우의 말대로였다.
박 교수의 칼럼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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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시장의 풍요. 과연 반길 수만 있는가?]
문학 시장은 엄청나게 풍요로워졌지만 실상은 더 척박해진 게 사실이다. 치열한 작가정신은 사라지고 그럴싸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이야기꾼만 늘어가는 세태. 한국 문학은 새로운 위기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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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은 다수의 욕망과 의식을 대변하는 영어권 문학과 달리 단순 소비 지향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바로 지금 베스트셀러 순위만 보더라도 문제의 심각성을 체감할 수 있다. 순문학을 제외한 다양한 층위의 장르들의 선전은 분명 반길만한 일. 그러나 가장 최상단에 올린 작품들의 내실을 생각해보면 지금은 풍요의 시기가 아닌 위기의 상황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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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최상단에 올린 작품들’이라고 했지만 분명하게 나를 저격하는 글이었다.
“하아. 이분 정말 대단하시네...”
칼럼을 읽은 장현웅이 한숨을 내쉰다.
박성규 교수는 다시금 문학계의 여론을 모아 자기 기준이 맞다고 부르짖고 있었다.
그토록 처절하게 핀치에 내몰렸건만 여전히 나를 향해 송곳니를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더 재미있는 건 그 내용을 언론은 마치 존귀한 보배처럼 여기며 퍼 나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마치 신의 뜻을 전하는 사제의 말처럼 열심히 퍼 나르고 있지.’
어쩔 수 없는 문학계의 현실.
단 한 명의 천재 작가로 변화시킬 수 없는 썩고 고인 이 바닥의 현주소였다.
“현재 대한민국은 유례없는 출판부흥 시기를 겪고 있어. 장르 문학을 통한 독자층의 다변화가 가장 큰 이유지.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여전히 순문학에 비해 장르 문학의 평가는 지나치게 낮다는 거야.”
순문학을 향해 전폭적인 찬사를 보내는 평단. 그러나 장르 문학을 향해선 거의 침묵으로 일관하는 수준이었다.
장르 문학이 누리는 인기에 비하면 박하다 싶을 정도의 평가.
“사실 작품의 인기와 평론의 평가가 일치하지 않는 건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고정관념 때문이야. 각각의 장르로 보지 않고 비교우위론적 시각에서 나온 편협한 판단 때문이지. 그로 인해 순문학 장르에 넣을 수 없는 내 작품에 대해선 평단이 침묵하고 있는 거고. 계속해서 작품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이들 작품에 매우 신랄한 검증을 요구하고 있잖아.”
듣고 있던 장현웅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대중들이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난해한 평론으로 교묘하게 폄훼하고 있긴 해.”
몇몇 저명한 평론가들의 경우 부커상 수상 이후에도 나의 작품 세계에 대해 지속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게 사실이었다.
“그래. 아마 앞으로도 나에 대한 시선은 바뀌지 않을 거야. 왜냐면 어느 한쪽에 편향되지 않은 내 존재 자체가 그들에겐 불편하니까. 적도, 아군도 아닌 사람은 그들의 이분법적인 논리에 맞지 않으니까.”
“그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럴 때 필요한 게 바로 기존의 기준을 뒤흔드는 시도야.”
썩은 기준을 도려내야 했다.
그리고 가장 좋은 자극은 바로 SF소설이었다.
‘그들이 발작할 만한 장르로 그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어야 해. 그래야 악에 받쳐 기어 나올 테니까.’
반드시 필요한 과정.
당연히 이 과정에서 그 변화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마치 오랜 볏짚을 치우려 할 때 뛰쳐나오는 벌레들처럼.
그러나 문제 될 건 없었다.
‘벌레는 태워버리면 그만이니까.’
영화 편집은 착착 진행되고 있고, 그림 동화 출판과 웹툰도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썩어빠진 볏짚을 치우고, 벌레를 한 번에 태워버릴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타이밍.
바로 지금이 적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