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이 셰익스피어였다-183화 (183/203)

183. informal - 비격식적인, 허물없는 (2)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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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립예술학회 최초 회원 거절 사례]

[왕립예술학회는 어떤 곳?]

[거절 사유에 대한 관심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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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영국 왕립예술학회의 초청 강연을 수락한 권서준 작가는 강연 후에 마크 부학회장의 적극적인 회원 추천에도 거절 의사를 밝혔다. 당시 강연에 참석했던 익명의 회원에 따르면 서구 중심적 사상을 가진 학회 임원들의 가치관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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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립예술학회는 SNS 발표를 통해 권서준 작가 측과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는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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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립예술학회.

기사를 확인한 조지 학회장이 마크 학회장을 불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툭 던진 신문에 마크 부학회장의 표정이 굳어진다.

“그게... 오해가 있었습니다.”

“오해라고요?”

되묻는 조지 학회장의 표정은 진지했다.

평소 술에 절어있는 그와 달리 더없이 냉철한 눈빛이었다.

마크 부학회장은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강연장에서 매튜 이사장이 건넨 질문이 오해의 소지가 있긴 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문제 삼을 만한 발언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마크 부학회장은 최대한 사건을 축소시키기 위해 진땀을 빼는 중이었다.

“현장에 있던 기자들의 생각은 다르던데요?”

“그, 그건...”

마크 부학회장의 넓은 이마에 식은땀이 맺힌다.

“알겠습니다. 일단 나가보세요.”

“...”

마크 부학회장은 제대로 변명도 못 한 채 쫓겨나듯이 사무실을 빠져나간다.

그가 나가고 홀로 남은 조지는 깍지를 낀 채 생각에 잠긴다.

얼마 전 읽은 권서준 작가의 소설 때문이었다.

‘정말 엄청난 작품이었어. 근데, 작품만 대단한 게 아니라는 건가?’

단순히 글을 잘 쓰는 작가가 아니라 생각과 행동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권서준 작가...’

열정조차 잃어버린 조지 학회장의 가슴에 묘한 호기심이 일기 시작한다.

똑똑똑.

그때, 노크와 함께 비서가 들어온다.

“학회장님 내일 스케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오전에 왕립예술학회 임원들과 조찬 모임이 있고, 오후엔 필하모니 공연 참석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특히 내일 오후 일정은 여왕님께서 직접 참석하시는 자리입니다.”

여왕이 참석하는 자리.

조지 학회장 역시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자리였지만 그의 관심은 다른 곳으로 흐른다.

“미안하지만 그건 참석이 어려울 것 같군.”

“...네? 혹시 다른 일정이 있으십니까?”

비서가 당황한 듯 되묻는다.

“네, 절대 빠질 수 없는 일정이 있어서요.”

태연하게 의자에 몸을 묻는 조지 학회장.

그의 눈이 향한 곳은 한 권의 책이었다.

제목 : 당신이 머물던 자리에.

권서준 작가의 책이었다.

***

다음 날.

런던 시내에 위치한 5성급 호텔.

나는 이른 아침부터 노트북을 펼쳤다.

“벌써 일어난 거야?”

“응. 넌 좀 더 자.”

나는 다시 작업을 진행했다.

내가 아침 일찍부터 이렇게 들뜬 이유는 바로 이틀 뒤로 다가온 낭독회 때문이었다.

부커 낭독회.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사람들이 소설의 한 구절을 읽어주며 대중들과 소통하는 자리였다.

수많은 질문을 받으며 작품 세계에 대해 털어놓는 시간.

꽤나 많은 심사위원들이 이 순간을 최종 선정을 위한 지표로 삼을 때가 많았다.

우연으로 나온 작품인지, 아니면 본인들이 생각한 의미들이 맞는지 꼼꼼하게 체크하는 시간이기도 하고.

그러나 나를 가장 설레는 건 내 작품을 위해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수많은 독자들을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날선 시선들이 즐비한 초청강연회장과 달리 내 작품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까.’

가슴이 설렌다.

자연스럽게 그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내 작품을 보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극장을 찾던 관객들의 얼굴.

그래.

그 시절의 연극은 가난에, 억압에, 전염병에 지친 영혼들이 유일하게 위안받을 수 있는 안식처나 다름없었다.

‘그게 연극이, 문학이 필요한 이유였지.’

따지고 보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삶은 윤택해졌지만 여전히 고통받고 좌절하고, 안식을 취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시대였다.

그리고 그들은 짧은 위안을 위해서 기꺼이 내 낭독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을 실망 시킬 순 없어.’

나는 고심 끝에 한 단락을 골랐다.

이번 작품 중 내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문단이었다.

***

늦은 오후.

나는 낭독회가 진행될 사우스뱅크 지역을 방문했다.

성공적인 낭독회를 위해 행사장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음향시스템은 어느 정도 되는지, 목소리는 어느 정도로 해야 하는지 현장을 직접 답사해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나는 센트럴 런던을 지나 템즈강변으로 향했다.

잠시 뒤,

템스강 남동쪽 유역에 자리 잡은 사우스뱅크 지역이 눈에 들어온다.

런던의 랜드마크인 대관람차 런던아이(LONDON EYE)와 유람선 선착장 앞에 길게 선 관광객들이 보인다.

강을 배경으로 온갖 거리 공연이 펼쳐지고 어디선가 스테이크를 굽는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여행자의 기분을 들뜨게 만드는 다양한 볼거리들.

나는 한 사람의 관광객이 되어 템즈강의 정취를 즐겼다.

“권 작가님! 여깁니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야구 모자와 선글라스에 허름한 티셔츠를 입은 올리버 편집장의 모습이었다.

평소와 달리 일상복을 입은 모습은 친근한 영국 친구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얘기 들었습니다. 초청 강연회를 발칵 뒤집어 놓으셨다고요?”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평가가 그런가 보네요.”

“하하하. 왕립예술학회 회원을 거절하셨다니 그럴 만하죠.”

웃음을 짓던 올리버 편집장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진다.

“그런데, 부커상 선정 과정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진 않을까 걱정이 되긴 하네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마 힘들 겁니다. 그랬다가는 더 큰 구설에 휘말리게 될 테니까요. 어쩌면 부커상 자체의 위상이 떨어질지도 모르고요.”

“하긴, 그런 어리석은 일을 하진 않겠죠.”

매튜 이사장.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었다. 대놓고 자신과 자신이 속한 재단이 욕먹을 짓을 할 리는 없었다.

“그나저나 감사합니다. 쉬시는데 이렇게 나와 주시고요.”

“아닙니다. 당연히 제가 나와야죠. 그리고 이곳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기도 하거든요.”

올리버 편집장은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기며 주변에 대한 설명을 꺼낸다.

“여긴 제가 센트럴 런던을 지나갈 때면 꼭 거쳐 가게 되는 곳이에요. 템즈강을 두고 다양한 볼거리를 볼 수 있고, 국회의사당의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니까요.”

그의 말대로 가족 단위로 나온 수많은 런던 시민들이 나들이를 즐기고 있었다.

사랑을 속삭이는 아름다운 연인의 모습, 아버지가 태워준 목마에 행복해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

눈을 들어보니 강 건너에 위치한 국회의사당의 시계탑이 보인다. 그림 같은 런던의 스카이라인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사우스뱅크센터(South Bank Center)는 런던 최대 규모의 문화센터예요. 한국으로 치면 예술의 전당과 같은 곳이죠. 로열 페스티벌 홀과 퀸 엘리자베스 홀(Queen Elizabeth Hall), 헤이워드 갤러리를 아울러 사우스뱅크 센터라 부르고요. 바로 이곳에서는 1년 내내 크고 작은 행사가 개최되는데 그 수가 거의 2천 개가 넘어요.”

올리버 편집장의 얼굴에선 자부심이 느껴진다.

그의 말대로 고개를 돌리자마자 음악, 전시, 공연 관련 행사 안내로 가득 찬 홍보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이름만 대면 알 정도의 유명한 공연부터 생소한 예술가들의 이름까지 다양했다.

“정말이지 화려하네요.”

내 말에 올리버 편집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맞습니다. 화려하죠. 그런데 이 화려한 곳이 원래는 아픔이 가득한 곳이었어요.”

얕은 한숨과 함께 올리버 편집장의 표정이 진지해진다.

“제2차 세계대전에선 승리했지만 전쟁으로 지치고 파괴된 영국엔 활력소가 될 행사가 필요했죠. 그때 개최지로 선택된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올리버 편집장의 시선이 강변을 따라 흐른다.

“걸핏하면 강물이 범람하고, 폭격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던 곳이었죠. 그곳에 처음으로 로열 페스티벌 홀이 세워졌어요. 지금의 모습을 보면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아픈 과거죠.”

아이러니했다.

가장 큰 상흔이 남은 곳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문화센터가 세워지다니.

“하긴, 아픔 없는 영광은 없는 법이죠.”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올리버 편집장이 자연스럽게 텐션을 올린다.

“자, 그럼 공연장으로 들어가시죠.”

우리는 장소를 옮겨 퀸엘리자베스 홀 안으로 향했다.

위층에 올라서자 통유리로 전면부가 시원시원한 전경을 선사했다. 한가로이 오가는 유람선과 아름다운 시내 건물들이 마치 풍경화처럼 눈에 들어온다.

시대를 초월하는 단아함.

런던이라는 도시가 갖는 아름다움이었다.

“사우스뱅크 센터엔 매년 6백만 명이 찾아옵니다.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인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터전을 잡고 수많은 관람객들에게 아름다운 음악을 선물하고 있고요. 특히 현대 악기와 옛 악기를 적절히 결합한 독특한 콘셉트는 여러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죠.”

과거 악기와 현대 악기의 결합이라 상상만으로도 멋진 세계가 펼쳐진다.

나는 템즈강을 바라보며 잠시 그 음악을 상상해봤다.

투박하지만 울림이 깊은 악기와 세련되고 섬세한 현대 악기의 어울림.

그 조화가 가져오는 색다른 감동.

‘어쩌면 과거의 셰익스피어와 현대의 권서준의 결합과 같은 느낌이랄까?’

머릿속을 간질이는 영감.

온몸을 휘도는 핏줄기가 점점 온도를 높인다.

“아, 저기 작가님 포스터도 있네요.”

그때,

올리버 편집장이 벽면을 가리킨다.

그곳엔 며칠 뒤에 있을 부커 낭독회 포스터가 보인다.

‘그래. 일단 낭독회부터 잘 끝내보자고.’

나는 리듬을 높이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켰다.

그리고 두 시간 뒤.

나는 낭독회를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

이틀 뒤.

나는 장현웅과 함께 행사장으로 향했다.

“컨디션은 어때?”

“최상.”

내 대답에 장현웅이 피식 웃더니 이내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근데 정말 근사하다. 규모도 엄청나고.”

장현웅은 사우스뱅크센터의 규모에 압도된 듯 감탄을 터트린다.

그러나 내 관심은 사우스뱅크센터의 규모보다 내가 낭독회를 하게 될 건물의 이름에 시선이 간다.

퀸엘리자베스 홀.

여왕의 나라 영국답게 어디 가나 여왕의 존재감이 느껴진다.

물론 내 전생의 기억 속에서도 잊을 수 없는 이름이었다.

단순히 은인을 넘어 특별한 존재였으니까.

‘부디 이 자리를 통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기를...’

나는 옛 은인을 떠올리며 낭독회장으로 들어선다.

***

오후 두 시 십분.

부커 낭독회가 진행되고 입구엔 안전 바가 쳐진다.

“호세, 낭독회가 시작됐으니까 아무도 들이지 말아. 알았어?”

“넵. 알겠습니다. 개미 새끼 한 마리 못 지나가게 하겠습니다.”

단단히 강조하는 상사의 말에 보안직원이 힘차게 대답한다.

“좋아, 그런 자세야.”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상사가 몸을 돌리려 한다.

그런데 그때, 한 중년 남성이 헐레벌떡 입구로 들어온다.

“헉, 헉. 혹시 이곳이 권서준 작가의 낭독회가 진행되는 행사장 맞습니까?”

남자의 말에 보안 요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네, 맞습니다. 다만 낭독회가 이미 시작되어 입장은 불가합니다.”

“아, 이런...”

남자의 얼굴에 좌절감이 비친다.

그리고는 이내 다시 보안 요원을 바라본다.

“죄송하지만 들어갈 수 없을까요? 부탁드립니다.”

예의를 갖춘 남자의 부탁.

그러나 보안 요원은 상사가 보란 듯이 일부러 더 단호히 말한다.

“네, 죄송하지만 안 됩니다.”

“부탁드립니다. 정말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

남자의 부탁은 어느새 간절해진다.

그때,

옆에서 지켜보던 상사가 다급히 다가온다.

“저, 저기 괜찮습니다. 어서 들어가시죠.”

놀란 부하 보안직원이 바라본다.

“...네? 아니, 저한테는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상사는 갑자기 옆구리를 꾹 찌르고는 서둘러 안전 바를 치워준다.

“어서 들어가시죠.”

“아, 정말 감사합니다.”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는 중년 남자.

황당하게 지켜보던 보안직원이 쳐다본다.

“아니, 꼭 막으라고 하셨잖아요?”

“이 친구야, 사람에 따라 다르지.”

“...네? 대체 저분이 누구신데요?”

되묻는 호세를 보며 상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잘 생각해 봐. 영국인이라면 절대 모를 수 없는 분이니까.”

“...”

“수행원도 없이 오셔서 하마터면 나도 못 알아볼 뻔했네.”

수행원?

일반 사람에겐 필요 없는 존재.

“...”

낯선 단어에 보안직원이 다시금 남자의 얼굴을 되뇐다.

그 순간,

한 사람의 얼굴과 남자의 얼굴이 겹쳐진다.

“어? 어? 어... 설마?”

뒤늦게 남자의 정체를 깨달은 보안직원의 눈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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