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 uncomfortable - 불편한 (7)
181.
***
다음 날.
우리는 늦은 점심을 여유롭게 먹은 뒤 초청 강연장으로 향했다.
장소는 런던에서 북쪽에 위치한 케임브리지 대학이었다.
기차가 가장 흔한 교통수단이지만 우리는 올리버 편집장이 준비해준 차량 덕에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정확히 1시간 30분 뒤.
우리는 케임브리지 대학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입구부터 수많은 관광객들로 몰려있었다.
해외 유학생, 부모의 손을 잡고 놀러 온 아이들, 문화, 역사 체험을 위해 찾은 관광객들이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우리의 시선을 끈 건 엄청난 수의 관광객이 아닌 다양한 크기와 모양을 가진 건물들이었다.
“우와, 저거 봐. 스케일이 미쳤다.”
피츠윌리엄 박물관 앞을 지나면서 장현웅은 감탄사를 터트린다.
그리스 신전처럼 거대한 기둥에 하얀 대리석이 고풍스러운 느낌을 풍긴다.
돌담에 켜켜이 쌓인 흔적은 오히려 오랜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는 듯 당당해 보인다.
그뿐만 아니었다.
서른 개가 넘는 칼리지는 하나같이 독특한 매력을 뽐내며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었다.
케임브리지 대학.
옥스퍼드 대학과 함께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특히 여러 명의 정부 관료와 국제기구 수장, 그리고 다수의 정치인들을 배출한 곳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이름도 모르는 그들보단 내겐 다른 의미에서 의미가 있는 곳이었다.
‘크리스토퍼 말로, 그 친구의 모교였지.’
어려운 형편에 대학은 꿈도 못 꾸던 내겐 그저 선망의 대상이었던 곳이었다.
‘이곳에 초청될 줄은 미처 몰랐는데.’
감회가 새로웠다.
짜릿한 쾌감이 몰려든다.
나는 다시 한번 건물을 올려다본다.
“느낌이 좋아.”
옆에 있던 장현웅이 입을 연다.
“왜?”
“여기가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명문 대학이거든.”
전날 늦게까지 안 자고 뭐하나 했더니 그것까지 알아본 모양이었다.
‘노벨상이라...’
아직은 먼 이야기.
물론 내 목표도 아닌 이야기였다.
그러나 기분이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때,
시간을 확인한 장현웅이 입을 연다.
“어? 거의 시간 됐다. 들어갈까?”
“그래.”
“준비는 됐지?”
“물론.”
나는 적갈색 문을 힘차게 열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걸음에선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이 넘친다.
***
런던에 위치한 부커 재단.
매튜 이사장은 3일 뒤에 있을 부커상 최종 후보자들의 낭독회 진행 상황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
“낭독회 진행은 잘 진행되고 있다고?”
“그렇습니다. 어제까지 후보 6명 모두 입국했고, 이상 없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던 매튜 이사장은 이내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에 있을 영국 왕립예술학회 특별 강연 행사 참여 때문이었다.
“그렇군. 참, 권서준 작가도 입국했나?”
“물론입니다.”
“만일을 대비해서 준비해둬야 할 거야. 아마 낭독회가 5명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비서가 조심스럽게 되묻는다.
그러자 매튜 이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연다.
“뭐, 자질이 안 되는 작가가 도중에 포기할 수도 있다는 거지.”
대수롭지 않게 툭 던지는 말.
그러나 이유를 알 수 없는 비서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설마요. 그 영광스러운 자리를 포기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뭐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지.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비서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외투를 챙기는 매튜 이사장의 묘한 미소만 확인할 뿐이었다.
***
왕립예술학회 초청 강연.
오십여 명이 모인 소강당엔 왕립예술학회 인사들과 함께 기자들이 모였다.
오늘의 주제는 각국의 고유문화 유산을 통해 다양한 문학적 의미를 찾자는 것.
그로 인해 세계 문학 통합이라는 거시적인 목표로 달려가자는 취지였다.
각국의 전통 생활상을 담은 영화나 음악을 감상하고 전통문화와 문학에 대해 얘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가장 먼저 강연을 시작한 건 가나에서 온 50대 여성 작가였다.
그녀는 아프리카 전통 가면을 주제로 한 짧은 영화를 본 뒤 강연을 이어갔다.
“아프리카 전통 부족에선 사춘기에 이르면 일정 기간 집을 떠나 시련과 교육을 받게 합니다. 그 기간을 버텨내면 성인으로 인정받고, 어른의 사회 입성하는 것이 허락되는 거죠. 그리고 그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이 가면이었습니다.”
가나 작가는 직접 가면을 들어 보인다.
“가면을 쓴 자는 이미 마을 사람이 아닌 신성한 존재로서 아이들에게 나타납니다. 따라서 가면은 타 문화에서 보여주는 화장이나 신체 장식과 비슷한 작용을 하게 됩니다.”
가나 작가는 수단은 다르지만 같은 작용을 하는 가면을 통해 표현은 다르지만 같은 감성을 담은 문학적 기능에 대해 설명했다.
다음은 라틴 아메리카 작가 차례였다.
페루 출신의 작가는 전통 악기인 타르카 연주를 감상한 뒤 발표를 시작한다.
타르카(tarka).
남부 페루의 안데스산맥 지역에서 종교의식과 축제 때 주로 사용되는 나무 피리였다.
“타르는 ‘거친 음성’을 뜻하는 타르에서 유래되었죠. 실제로 낮은 음역에서 거친 소리를 내곤 합니다.”
작가는 실제로 피리를 보여주고는 설명을 이어간다.
종교의식에서 사용되는 남미 전통 음악을, 3시간에 이르는 바흐의 마태 수난곡과 대비하며 죽음과 사후 세계에 대한 개념을 서양의 종교와 연결시켜 설명했다.
두 사람 모두 자국의 문화를 기반으로 타 문화권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엿보이는 강연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내 차례가 돌아왔다.
나는 한국에서 유명한 이동창 감독의 단편 영화 ‘장독’을 감상 자료로 제출했다.
장독.
사전적 의미로는 물건을 담아 저장하는 데 쓰는 질그릇을 뜻하는 단어.
영화는 4세기 무렵의 황해도 안악 고분 벽화에서 등장한 장독을 통해 매우 오래된 장독의 역사를 보여줬다.
더불어 우리 식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장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전통적인 장독대의 모습과 의미를 보여줬다.
잠시 뒤,
짧은 영화가 끝이 나고 내 강연이 시작되었다.
“장독은 한국인에게는 친숙한 물건입니다. 크기를 고려해 큰 항아리는 뒤쪽에, 앞쪽에는 장을 담은 작은 단지를 놓아서 햇볕을 고루 받게 하죠. 이 과정에서 장은 오랫동안 숙성되면서 전혀 다른 존재로 탈바꿈합니다. 마치 새로운 생명력을 탄생시키는 마술 항아리처럼 말입니다.”
그때,
가만히 듣던 매튜 이사장이 손을 든다.
“무슨 일이시죠?”
내가 묻자 매튜 이사장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질문이 생겨서요.”
사람들의 이목이 동시에 그를 향해 쏠린다.
‘강연 도중에 질문이라... 이제 시작이군.’
다분히 그의 의도가 읽힌다.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나는 태연하게 그를 바라봤다.
“말씀하시죠.”
내가 허락하자 매튜 이사장이 입을 연다.
“앞선 두 작가분의 강연은 세계 문학 통합이라는 측면에서 이번 강연 주제에 잘 맞는 내용이었습니다. 두 분의 설명대로 미개 사회에서 보이는 특징이 바로 성인식과 사후 세계에 대한 관념적 고찰이니까요.”
칭찬처럼 들리지만 매튜 이사장은 은연중에 두 나라의 전통문화를 미개 사회와 연결시켰다.
그러나 매튜 이사장의 위치를 알기에 아무도 딴죽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불편한 기색을 속으로 삼킬 뿐이었다.
“그런데 권 작가님의 주제는 다소 이해가 되지 않네요. 자...장독이요?”
매튜 이사장은 안 되는 발음으로 간신히 대답하고는 고개를 젓는다.
“그저 소스를 담는 장독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할까요? 아무리 한국 음식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지만 세계 문학 통합과 연결 짓기엔 과도한 해석 아닌가요? 제가 듣기엔 작년에 처음 맛본 김치만큼이나 어색한데,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매튜 이사장의 말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진다.
매튜 이사장은 더욱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간다.
“한국 문화를 전하려는 작가님 마음은 잘 알겠지만 주제와 관련짓기는 어렵군요. 장독이라는 게 저희에겐 너무 생소하기도 하고요.”
나는 단번에 매튜 이사장의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주제도 모르는 작가로 만들 셈이군.’
작가의 자질을 문제 삼으려는 속셈이었다.
부커상 후보에 오른 내 작품에 대해선 깔 게 없으니 목표를 나로 잡은 게 분명했다.
마치 작품에 담긴 의도가 사실은 작가 안에 없고, 오히려 심사위원들의 과도한 해석처럼 보이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미 예상한 수준의 공격이었다.
“음.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네요...”
나는 일부러 난처한 듯 표정을 지으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매튜 이사장의 한쪽 입꼬리가 스르륵 올라간다.
자연스럽게 편안한 얼굴로 의자에 몸을 기댄다.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하겠지?’
그러나 긴장이 풀리고, 끝났다고 생각할 그때가 가장 위험한 때였다.
“그런데 말입니다.”
나는 매튜 이사장의 긴장이 풀리는 그 순간 칼을 빼 들었다.
이번엔 내가 그를 불편하게 만들 차례였다.
***
매튜 이사장은 눈을 가늘 게 뜬 채 권서준을 바라봤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초청 강연회.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의 모습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눈빛도, 표정도, 자연스러운 제스처에도 은연중 자신감이 드러난다.
‘대체 무슨 꿍꿍이지?’
그리고 잠시 뒤,
이어진 권서준의 대답은 전혀 뜻밖이었다.
“이번 강연의 주제는 세계 문학 통합이었습니다. 앞서 발표하신 두 작가님 모두 이사장님 말씀대로 주제에 맞게 열띤 강연을 해주셨죠. 정말 뜻깊은 강연이었습니다.”
권서준은 갑자기 두 작가에게 인사를 하는 여유까지 보인다.
‘객기인가?’
오히려 그 모습이 우스웠다.
그런데,
“그러나 국적 변경, 이주, 망명, 그로 인해 늘어나는 혼혈 등의 변화는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벗어난 개념이 이미 보편적 현상이 되었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마찬가지로 세계문학론 측면에서 봐도 민족 문학이라는 말은 이제 의미 없는 용어가 되었죠. 지역과 장소를 초월한 세계문학의 시대가 이미 도래했으니까요.”
권서준은 차분하게 객석으로 시선을 옮긴다. 수많은 사람을 향해 묵직한 저음이 그들의 귀를 사로잡는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여전히 지역과 장소에 기반을 두고 서구적 가치관이 우수하다 평가하는 폐단이 있는 거 같습니다. 적어도 이 자리에서만큼은 그 폐단을 비판하고, 극복해야 하지 않을까요?”
객석을 바라보던 시선이 자연스럽게 매튜 이사장으로 향한다.
마치 그 폐단이 매튜 이사장이라는 듯한 무언의 암시.
사람들의 시선 역시 매튜 이사장을 향한다.
‘이 자식이...’
도발하는 젊은 작가를 보며 매튜 이사장이 이를 간다. 물론 겉으로는 태연한 표정을 유지했다.
“그게 장독이랑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이죠? 저는 들어도 모르겠는데요?”
속은 화로 들끓지만 매튜 이사장은 차분한 말투로 다시 한번 핵심을 짚었다.
그런데 권서준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오른다.
‘웃어?’
순간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엄습한다.
그리고 이내 권서준이 천천히 입을 연다.
“당연히 관계가 있죠. 전 그런 의미에서 장독의 개념을 가져온 거니까요.”
권서준은 천천히 객석으로 시선을 돌린다.
“장독은 매튜 이사장님이 아시는 그저 장을 담아두는 항아리에 불과한 존재가 아닙니다. 오랫동안 숙성되는 생명력을 뜻하며 새로운 존재로 재창조되는 한국의 정서를 담은 귀한 그릇이죠. 때론 그것이 김치이고, 된장이고, 간장이기 되기도 하고요.”
잠시 말을 멈춘 권서준이 무대 중심으로 서너 걸음을 옮긴다.
마치 연극 무대 위에 선 배우처럼 능숙한 모습.
자신을 향해 자연스럽게 시선을 모은 권서준이 다시금 입을 연다.
“세계엔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합니다. 각국의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선 보다 열린 자세가 필요하죠. 네, 물론 쉽지 않습니다. 나라와 민족, 인종과 가치관이 다른 타인의 목소리를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그때, 차분한 마음으로 외부의 목소리를 우리 안에 담아보면 어떨까요? 마치 오랜 시간을 거쳐 전혀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장독처럼 말입니다.”
젊은 청년 작가.
그는 단순히 한국의 문학을 들고 온 게 아니었다.
민족과 국가를 넘어선 문학의 통합을 논하고 있었다.
“우리가 다루는 문학이라는 틀이 적어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한국의 전통 그릇인 장독을 꺼내 봤습니다. 그 인고의 과정을 통해 어쩌면 이전에 없던 아주 새로운 작품이 탄생할지도 모르니까요.”
완벽하게 귀결되는 권서준 작가의 논리.
장독을 가진 자국의 문화로 세계 문학 통합이라는 주제를 기가 막히게 담아냈다.
‘이게 아닌데...’
권서준의 미흡한 작가 자질을 문제 삼으려고 했던 매튜 이사장 입장에선 오히려 권서준이 빛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준 격이었다.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매튜 이사장의 심기가 불편해진다.
아니 불편함을 넘어 속이 불타오른다.
그러나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인종과 국가를 넘어 참석자들 모두가 권서준 작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젠장...’
어느새 매튜 이사장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한다.
그 순간 매튜 이사장의 머릿속에 영국의 오랜 속담 하나가 떠오른다.
[it is no use crying over spil milk.]
엎질러진 우유를 놓고 울어도 소용없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