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이 셰익스피어였다-179화 (179/203)

179. uncomfortable - 불편한 (5)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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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출국 준비를 마친 나는 전날 마무리된 뮤지컬 공연 관련 기사를 확인했다.

내 예상대로 뮤지컬 「거장의 숨결」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조현성, 뮤지컬 「거장의 숨결」 피날레... 연기력 또 한 번 성장]

[방수찬, 특급 배우 기근인 뮤지컬계의 떠오르는 신성으로 자리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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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창조 극단은 뮤지컬 「거장의 숨결」 마지막 공연을 끝마쳤다고 전했다.

반년 넘게 이어진 작품 속에서 비운의 천재 작가 크리스토퍼 말로 역할을 맡았던 조현성은 역경 속에서 고뇌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섬세하게 보여줬다.

특히 탄탄한 보컬과 한층 다채로워진 모습을 통해 관객들의 호평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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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숨결」의 경우 뮤지컬 흥행의 필수 요소였던 스타 마케팅이 아닌 대본과 연출, 그리고 조연들의 짜임새 있는 연기력이 더 각광을 받아 이후의 흥행이 주목된다.

[뮤지컬 「거장의 숨결」, 또 한 번의 한류 흥행을 이루나?]

한류 콘텐츠가 국제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상황에서 뮤지컬 역시 아시아를 넘어 뮤지컬의 본토 진출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이미 외국인 관객이 현장 티켓 구매를 위해 매표소 앞에 길게 줄이 늘어선 진풍경이 벌어져 이슈가 된 적이 있는 「거장의 숨결」은 내년 상반기에 브로드웨이를 시작으로 순회공연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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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거둔 흥행에 대한 의미.

그리고 이후 해외 진출 계획까지 꽤나 심도 있게 다룬 기사들이 눈에 띄었다.

기사란 자고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내용을 다룰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뮤지컬 「거장의 숨결」과 관련된 기사가 이토록 많은 건 한 가지뿐이었다.

‘그만큼 우리 작품을 향한 대중들의 기대와 관심이 높다는 방증이지.’

물론 이렇게 주목하고 있을 때 보다 긍정적인 결과를 안겨줘야 했다.

‘기대감만 높이고 그에 따른 결과를 보여주지 못하면 오히려 더 큰 실망감만 돌아올 테니까.’

성공을 향한 대중들의 기대감.

그로 인해 예술가가 받게 되는 엄청난 부담감과 중압감.

그래서 수많은 예술가들이 지독한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적인 문제까지 겪게 되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그 시절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햄릿을 필두로 연이은 작품의 성공.

페스트로 인해 암흑기에 접어든 공연 시장 속에서도 내 대본과 작품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늘어갔다.

‘여왕님과 후원자들의 기대 역시 나날이 커져갔지.’

그로 인해 나는 고향 집에 돌아갈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작품을 붙잡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실패는 곧 끝이었으니까.’

성공에 대한 지독한 집착.

아니, 두려움에 잠식된 나는 그 부담감이 내 삶을 갉아먹은 것조차 모른 채 작품에 올인했다.

그리고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한 명의 아들을 잃고, 온몸은 병든 뒤.

모든 걸 잃었던 전생의 기억이 떠오른다.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한 후회의 기억들.

물론 이번 생엔 반복할 생각이 없었다.

‘이번엔 다르니까.’

그 시절과 달리 성공에 대한 압박감에서 자유로웠다.

왜냐고?

그거야 실패할 자신이 없으니까.

이번 영국 일정도 마찬가지였다.

‘매튜 이사장, 당신이 아무리 훼방을 놓아도 뜻대로 되진 않을 거야.’

고상한 척하는 그들의 머릿속은 이미 내 눈앞에 훤히 보인다.

아무리 고상한 척해도 그들이 생각해 내는 방법은 유치하기 짝이 없으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참 바뀌지 않는 인간의 습성이라는 게 있었다.

***

늦은 오후, 부커 재단.

매튜 이사장은 강연회 일정을 확인했다.

정확히 이틀 뒤.

영국 왕립예술학회에서 열리는 초청 강연회.

AALA(Afro Asian and Latin America).

일명 아알라로 불리는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지역의 작가를 초청하는 강연회였다.

이번 초청 강연의 목적은 세계 문학의 통합을 위해 세계 각국의 지역 문학과 예술에 대한 정보 교류를 나누자는 취지였다.

겉으로는 뜻깊은 행사였지만 그 속내는 달랐다.

‘애초에 문학 변방인 나라에서 배울 건 없으니까.’

슬로건과 달리 통합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구색을 갖추기 위한 명분을 내세웠을 뿐이었다.

“권서준 작가도 온다고 했지?”

“네, 흔쾌히 참석하겠다고 했습니다.”

초청 강연회는 유럽 각국의 석학들과 거장들이 참여하는 자리로 발표 이후에 수많은 질의질문 시간이 이어진다.

‘대부분은 이때 바닥이 다 드러나지.’

문학인들의 소통 자리로 알고 있지만 꽤나 날선 질문이 오가는 시간이었다.

‘기대되는 군.’

매튜 이사장은 한쪽 입꼬리를 올린 채 시가 한 대를 맛있게 피운다.

기가 막힌 맛이었다.

***

영국으로 떠나는 당일.

이른 아침부터 정영만 회장의 전화가 걸려 온다.

-브로드웨이에서 한국 작품을 보게 될 날이 오다니, 믿기지 않구나.

뮤지컬과 관련해서 쏟아진 기사를 정 회장 역시 확인한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내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높은 정 회장이었기에 모를 리가 없었다.

“이제 시작일 뿐이죠.”

-녀석, 한결같구나. 그래. 기대하고 있으마. 영국도 잘 다녀오고.

정 회장이 툭하고 짧은 안부 인사를 덧붙인다.

아마 오늘 통화의 이유도 저 안부 인사 때문이겠지.

투박하지만 정감 가는 정 회장의 배려에 자연스럽게 미소가 떠오른다.

물론 좋은 소식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서준아, 손 선생님 곡 도착했어.”

몇 번의 수정 작업을 거쳐 드디어 마무리된 손주환 작곡가의 곡.

편곡까지 잘 끝나서 그야말로 완벽 그 자체였다.

윤서원의 테마곡을 제외한 나머지 곡은 제프리 감독이 선정한 곡으로 채워졌고, 모든 준비는 끝난 상태였다.

내가 곡을 듣는 사이 엄마가 방 안으로 들어온다.

“서준아, 여기 마른반찬.”

엄마는 며칠 전부터 정성스럽게 만든 밑반찬은 캐리어에 담아줬다. 어찌나 많은지 캐리어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였다.

“엄마, 나 한 달 있다 오는 거 아니야. 고작 일주일이라고.”

“일주일이라도 먹는 건 잘 챙겨 먹어야지. 한국인은 밥심이라고.”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빈자리를 만들어 반찬을 채워 넣었다.

“몸 조심히 잘 다녀와. 알았지?”

“이젠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어?”

“익숙은 무슨. 먼 길 가는 자식 보면 언제나 노심초사하는 게 엄마 마음이지.”

“아이고,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 잘 다녀올 테니까.”

나는 엄마를 가볍게 안았다.

그제야 안심이 되는지 엄마가 미소를 짓는다.

“근데 이 노래는 뭐니?”

내가 틀어놓은 음악을 들은 엄마가 관심을 보인다.

“이번 영화 OST야. 어때?”

엄마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리듬을 타더니 이내 눈빛이 반짝인다.

“좋은데?”

활짝 웃는 얼굴.

엄마는 그 자리에 앉아서 OST 전곡을 다 들었다.

“이 앨범은 구할 수 있는 거야?”

표정을 보니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

“이거 들어. 유출만 안 시키면 되니까.”

“내가 어디 유출 시키겠니? 집에서만 듣는데.”

앨범을 받은 엄마의 표정이 밝아진다.

문득 지난번 뮤지컬 앨범을 즐겨 듣던 엄마가 떠오른다.

‘또 온종일 이 노래들만 듣겠네.’

자연스럽게 영화에 대한 기대감도 상승한다.

왜냐고?

엄마는 철저히 일반인 수준에서 노래를 감상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엄마가 이렇게 좋아할 정도면 다른 사람들의 반응은 안 봐도 알 수 있으니까.

‘이번엔 또 어떤 사람들이 내가 많든 세상을 보며 즐길까?’

상상만으로도 짜릿한 행복이 엄습한다.

그러나 그 전에 내가 얻어야 할 당연한 결과를 받아야 했다.

나는 반찬이 가득 찬 캐리어를 들고 집을 나섰다.

이젠 부지런히 출발해야 할 시간이었다.

***

햇살이 나른하게 비치는 오후.

영국 런던 근교에 위치한 노천카페.

약속을 기다리던 베네딕트는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신기하군.’

그가 보고 있는 페이지는 바로 부커재단 홈페이지.

그것도 최종후보에 오른 6명의 작품과 작가에 대한 정보였다.

그중에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건 권서준 작가의 작품이었다.

-당신이 머물던 자리에, 권서준 작가.

“부커상 최종 후보라니...”

영국에서 엄청난 흥행에 성공한 연극 「거장의 숨결」 작가가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자 그의 귀국 일정을 연일 보도하고 있었다.

한국 작가의 방문이 이토록 회자된 적은 처음.

지켜보는 베네딕트의 마음이 더욱 들뜬다.

‘하긴, 권 작가님의 작품이면 자격은 충분하지.’

읽을수록 우러나오는 작품의 깊이.

벌써 네 번을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다른 감동이 베네딕트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하아...”

명치 깊은 곳에서부터 감탄 섞인 한숨이 흘러나온다.

그때,

인기척이 느껴진다.

“자네, 뭐하나?”

친근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훤칠한 키의 조지가 있었다.

조지 아서 찰스.

엘리자베스 여왕의 왕손이자 베네딕트와는 오랜 벗이었다.

“아, 왔나?”

“뭘 하기에 사람이 이렇게 다가와도 모르는 거야?”

조지가 웃으며 맞은편에 앉는다.

그런데 그의 말과 함께 갑자기 술 냄새가 확 풍긴다.

지금 시간은 고작 1시였다.

“자네, 설마 또 술 마신 건가?”

“너무 타박하지 말게. 약이 아닌 게 어딘가.”

심각한 베네딕트의 표정과 달리 조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휘적거렸다.

“...”

베네딕트는 안쓰럽게 바라볼 뿐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고작 몇 마디 말로 그의 깊은 상처에 위로가 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참, 얼마 전에 자네 연극을 봤는데, 엄청나더군.”

조지가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린다.

술에 대해서 길게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그 마음을 알기에 베네딕트 역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그래? 왜 미리 말하지 않았어? 말해줬다면 좋은 자리를 마련해뒀을 텐데.”

“자네가 그럴까 봐 말 안 했지. 아주 좋았네. 조만간 한 번 더 보러 가야겠어. 자네 연기는 정말이지 언제 봐도 일품이더군.”

진심 어린 연기 칭찬.

그러자 베네딕트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뭐, 내 연기보다야 대본이 뛰어난 거지.”

“대본이?”

조지는 의외라는 듯 되물었다.

“대체 어떤 작가가 썼기에 우리 천재 배우께서 이런 후한 칭찬을 하시는 걸까?”

조지의 눈빛이 반짝인다.

베네딕트는 순간 조지의 눈빛에서 호기심을 엿본다.

‘이거 어쩌면...’

베네딕트의 머릿속에도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혹시, 자네 관심 있으면 이 책 한 번 읽어보겠나?”

“책?”

조지의 미간이 모인다.

그리고는 이내 고개를 젓는다.

“됐네. 술이라면 모를까, 책은 사양하겠네. 안 그래도 머리 아픈 일투성이거든.”

“술이야 얼마든지 살 수 있지. 자네가 이 책을 한 번만 읽는다면 말이야.”

“...자네가, 술은 산다고?”

조지가 조금 놀란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래. 사실 이게 이번 연극 대본을 쓴 작가님의 책이거든. 어때? 관심 가져볼만 하지 않은가?”

“...”

조지는 잠시 고민한다.

베네딕트는 재빨리 말을 덧붙인다.

“이걸 읽으면 내가 술을 사지. 어때?”

“흠...”

거듭된 베네딕트의 제안에 조지는 마지못해 책을 받아든다.

자신이 술 마시는 걸 그토록 말리는 베네딕트가 술을 산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뭐 자네한테 술을 얻어먹을 수야 있다면야 한 번은 읽어 볼 수 있지.”

조지는 기대감 없이 책을 받아든다.

그 모습을 지켜본 베네딕트는 천천히 주먹을 움켜쥔다.

‘그래. 지금은 이걸로 충분해.’

베네딕트의 머릿속엔 작은 희망이 떠오른다.

‘어쩌면 이 친구에게 가장 필요한 게 이 책일 수도 있거든...’

오랜 벗을 바라보는 베네딕트의 표정엔 아픈 마음이 담겨있었다.

***

반나절 뒤.

우리는 영국 히드로 공항에 내렸다.

지난번과 같이 퍼스트 클래스를 이용한 덕에 편하게 올 수 있었다.

“두 분 작가님, 편안한 여행 되세요.”

함께 내린 스튜어디스들이 우리들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넨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나오자 장현웅이 호들갑을 떤다.

“서준아, 서준아. 아까 봤어?”

“뭘?”

“아까 그 스튜어디스들이 날 알아봤다니까?”

비행기 안에서 자신을 찾아온 스튜어디스들에게 사인을 해준 장현웅은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야, 대한민국 1위 웹툰 작가인데 알아보는 게 당연하지.”

“하아, 너야 알아보는 게 당연하지만 난 인터뷰도 거의 안 해서 알아볼 줄 몰랐지. 내가 이 정도인 거 보면 우리 어쩌면 꽤 성공한지도 모르겠다.”

“꽤가 아니지. 엄청나게 성공했지.”

“그런가? 거의 돌아다닐 일이 없으니까 이게 아직 실감 나지는 않아서...”

“그래? 그럼 지금부터 체감해봐.”

“...어?”

“봐봐.”

나는 턱으로 정면을 가리켰다.

내 말에 장현웅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간다.

입국장 앞에 기다리고 있는 기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지난번과 다른 풍경.

“이, 이게...”

뉴스에서나 보던, 특급 해외 인사들이 올 때나 보일 법한 언론의 관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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