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 vulnerable - 연약한 (1)
161.
***
오전 7시.
띡띡띡.
바코드를 찍은 택배 상자가 롤러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황태규에게 전해진다.
“읏차.”
황태규는 짧은 추임새와 함께 마지막 택배 상자를 탑차 안에 실었다.
“하아, 하아.”
전날 오후 8시부터 시작한 택배 상차 작업은 탑차 다섯 대를 채우고 나서야 끝이 났다.
장갑 낀 손으로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아내자 기다리고 있던 작업반장이 느른하게 하품을 내뱉으며 다가온다.
“하암. 작업 끝. 다들 고생했다.”
작업반장의 말에 일하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옷에 묻은 먼지를 털며 밖으로 나온다.
어느새 환하게 밝은 아침 풍경.
무거운 짐을 쉼 없이 옮기느라 허리가 욱신거렸다.
타는 듯한 갈증에 생수통 하나를 급히 드는데 손이 저려 제대로 쥐지 못할 정도였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작업반장이 묻는다.
“태규야, 너 그림 그린다고 하지 않았냐?”
“네.”
“근데 손 그렇게 막 써도 되는 거야?”
안쓰러운 듯 묻는 질문.
“...”
황태규는 가만히 내 손을 바라봤다.
작업반장의 말대로 목장갑은 어느새 넝마가 되어 있었다.
당연히 조심하는 게 좋았다.
그러나 다 사정이라는 게 있었다.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죠.”
황태규는 씁쓸한 한마디를 남기고는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물로는 채울 수 없는 갈증이었지만 그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에휴, 그래. 여기 있는 사람 중에 사정없는 사람이 있겠냐. 그나저나 오늘 저녁에도 나올 수 있는 거지?”
평소대로라면 당연히 예스였다.
그러나 오늘은 조금 고민이 됐다.
“죄송한데, 이따 낮에 연락드려도 될까요?”
“그래? 그럼 최대한 빨리 연락 줘. 요즘은 상하차 알바도 구하기 힘든 거 알지?”
그럴 리 없다는 걸 알지만 굳이 따져 묻지 않았다.
그러기엔 몸이 너무나 피곤했으니까.
대충 물품을 정리한 뒤에 주차장에서 대기 중인 전세버스에 몸을 실었다.
좌석에 앉자 짐 옮기느라 레일에 자꾸 부딪힌 정강이가 욱신거린다.
잠시 뒤, 인력 사무소 직원이 최종적으로 인원을 체크하고 사인을 보내자 버스가 출발한다.
월세 집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보낸 물류센터가 천천히 멀어진다.
“하아...”
창밖을 바라보던 황태규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온다.
고된 하루의 끝.
누군가에겐 희망을 가득 품은 하늘이었지만 황태규에겐 더없이 공허하고, 막막해지는 하늘이었다.
사실 작업반장에게 나중에 연락드려도 되냐고 물은 건 장현웅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내가 부담 준 건 아닐까...?’
정작 장현웅 쪽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오자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착한 현웅이 형한테 부담을 준 거 같아 그날 이후로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마치 자신의 불행을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키는 기분이었다.
‘하아, 그래, 괜찮다고 말하자...’
결심을 굳힌 황태규가 이내 휴대폰을 든다.
[형, 저 일자리 구해서 당분간 괜찮을 거 같아요. 괜히 신경 쓰게 해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한참 고민하다가 힘겹게 전송 버튼을 누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맞는 거야...’
화면을 바라보던 황태규가 힘겹게 창밖으로 시선을 옮긴다.
무기력함과 피곤함이 동시에 몰려든다.
눈꺼풀도 이내 점점 무거워지고.
견딜 수 없이 졸음이 쏟아진다.
‘사는 거... 참 힘들다...’
그렇게 지친 황태규의 눈이 천천히 감기기 시작한다.
***
주말 아침.
나는 며칠 사이에 올라온 기사를 한 번에 쭉 읽었다.
[투데이 인터뷰, “장르별 우열보다는 문학이 가지는 본연의 의미에 집중해야 할 때...” 권서준 작가...]
[권서준이 만드는 한국 문학의 미래는?]
인터뷰 기사는 대체로 호의적인 내용이었다.
물론 박성규 교수는 나와 달리 혹독한 질타를 받고 있었다.
어느새 박 교수는 구습에 찌들고, 허례허식에 취해 잇속만 챙기는 문학계의 대표 인물로 거론될 정도였다.
게다가 내부에서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와이즈 출판사 정영만 회장, ‘이제는 문학계가 먼저 변해야 할 때...’]
[문학계 거장이 말하는 한국 문학의 문제점.]
콘크리트처럼 굳어있던 문학계의 구습에 서서히 균열이 가고 있었다.
여러모로 좋은 징조.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했다.
‘뭐 한 번의 자극으로 이 바닥이 바뀔 리는 없으니까.’
거대한 파도 한 번 보다는 수없는 내려치는 무두질이 필요한 시기였다.
급할 것도 없었고, 급한 생각도 없었다.
나는 그저 내가 가고 싶을 길을 갈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차기작 구상이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며칠 전 떠올린 이야기에 집중했다.
인간의 근원적 두려움인 죽음.
그 죽음에 대한 수수께끼 같은 질문과 에피소드.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치유되는 위로에 대한 이야기였다.
다소 추상적일 수 있는 스토리.
그 이야기를 보완할 이미지가 필요했다.
‘내가 창조한 세계를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 그만큼 내 작품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그리고 그런 사람은 극히 일부의 사람에 불과했다.
나는 커피 한 잔과 함께 출력한 그림을 살폈다.
며칠 전 황태규가 보낸 이미지였다.
총 8개의 이미지.
솔직히 말해서 웹툰에 어울리지 않는 톤이었다.
선과 채색이 독특한 인물 그림 역시 최근 트렌드와는 완벽히 다른 그림체였고.
그러나 정작 내가 주목한 건 가장 웹툰스럽지 못한 그림이었다.
푸른 들판에 백로 한 마리가 텅 빈 하늘을 쓸쓸히 올려다보는 모습.
그 풍경을 수채화처럼 채색한 이미지였다.
‘이 그림이 자꾸 내 마음을 끌어당긴단 말이야.’
나는 그림을 통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련함을 느꼈다.
적막한 배경 위.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건 고작 백로 한 마리였다.
그러나 그 백로의 이미지가 내 시선을 자꾸만 붙잡는다.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하는 건지, 아니면 놓쳐버린 무리를 그리워하는 건지 모르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건 쓸쓸함이었다.
그리고 그 쓸쓸함은 우리가 잃어버린 무언가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하얗게 비워둔 여백.
그 안엔 그림으로 채울 수 없는 여러 심상이 잔잔하게 담겨 있었다.
‘이게 여백의 미(美)라는 거지.’
나는 그 하늘을 보며 수많은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리운 얼굴을 떠올리기도 하고, 돌아가고 싶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각자의 그리움을 채울 수 있는 그림.
그게 바로 황태규가 가진 그림의 장점이었다.
그리고 내가 창조할 동화 속 이야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그림체이기도 했고.
‘이제 만나볼 차례야.’
나는 생각을 정리하며 얼마 남지 않은 커피를 마저 들이켰다.
***
점심 무렵.
장현웅이 작업실에 들렀다.
“왔어?”
“어? 아, 어...”
장현웅은 평소와 달리 조금 어두운 얼굴이었다.
“표정이 왜 그래?”
“그게 생각 좀 하느라고...”
“생각? 왜? 무슨 일 있어?”
“그게... 하아...”
장현웅이 한숨을 내쉬더니 문자 하나를 보여준다.
[형, 저 일자리 구해서 당분간 괜찮을 거 같아요. 괜히 신경 쓰게 해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황태규가 보낸 문자였다.
“오늘 보기로 했잖아... 근데 아침에 연락이 왔더라고. 아마 나한테 부담 준 거 같아서 미안한 모양이야. 후...”
장현웅의 말대로였다.
애초에 어시를 부탁한다는 것조차 쉽지 않은 성격이 바로 황태규였으니까.
“많이 힘들 텐데...”
마음이 편치 않은 녀석의 표정.
장현웅은 한숨을 내쉬며 책 한 권을 매만진다.
내 눈은 자연스럽게 장현웅이 들고 있는 책으로 향했다.
그림동화.
안데르센 상을 받은 작가의 작품으로 영문으로 된 동화책이었다.
“너 그거 런던 도서전에서 산 거 아냐?”
내 말에 장현웅이 고개를 끄덕인다.
“응. 원래는 태규 선물로 산 거야. 그 녀석, 어렸을 때부터 동화 작가가 꿈이었거든.
동화 작가가 꿈이라고?
이거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는 기분이었다.
“근데 왜 지난번 만났을 때 안 준 거야?”
“그게... 막상 주려고 보니까 너무 힘들어 보이더라고. 괜히 희망 고문하는 걸까 봐 못 줬어. 너도 알다시피 현실이 팍팍할 땐 꿈마저 나를 힘들게 만들 때가 있잖아...”
경험에서 비롯한 배려였다.
누구보다 희망 고문에 대한 힘듦을 잘 아는 사람이 바로 장현웅이었으니까.
그러나 모든 건 꿈을 이룰 수 없을 때 힘든 법이었다.
기회가 찾아온다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었다.
“내가 한 번 만나볼게.”
“어? 네가 직접?”
“응. 그것도 내가 전달해줄게.”
“정말?”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순간 장현웅의 얼굴이 환해진다.
말 그대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황태규의 마음을 돌리는 데 가장 필요한 물건일지 모르고.
***
늦은 오후.
황태규는 해가 중천이 되어서야 힘겹게 눈을 떴다.
“후...”
양팔과 두 다리가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온몸이 욱신거린다.
언제나 그렇듯 일어나자마자 하는 일은 통장 잔고 조회였다.
휴대폰 앱을 켜고, 비밀번호를 누르자 잔액이 보인다.
계좌엔 정확히 칠만 원이 꽂혀 있었다.
밤새 상차 작업을 한 끝에 받은 일당.
황태규는 곧바로 할머니 통장으로 오만 원을 송금했다. 동생 성환이의 방과 후 활동비 때문이었다.
이제 남은 돈은 이만 원.
그중 만 원은 교통카드를 충전해야 하니까 만 원으로 이틀을 버텨야 했다.
황태규는 삼각김밥 하나를 사서 주린 배를 애써 달랜다.
꼬르륵.
분명 삼각김밥을 먹었지만 배는 더 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좀만 참자. 좀 있으면 표지 비용이 들어올 테니까.’
얼마 전 의뢰받은 웹소설 표지 작업.
상반신 나오는 이미지를 보내고 오만 원을 받기로 한 게 바로 오늘이었다.
그런데 약속된 시간이 지났지만 표지 대금은 오후가 되도록 입금되지 않았다.
‘이 사람은 왜 아직도 입금을 안 해주는 거야?’
넉넉하면 상관없지만 없이 사는 인생에게 늦은 입금은 여러모로 타격인 큰 법이었다.
[죄송한데요, 입금이 되지 않아서 연락드립니다. 빠른 처리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정중하게 메시지를 보내자 잠시 뒤 답장이 온다.
[그림체가 너무 별로라 돈을 드릴 수가 없네요.]
전혀 예상 못한 답장에 황태규의 마음이 다급해진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약속하신 금액이잖아요.]
[이건 너무 심하잖아요. 요즘 이런 그림체 누가 쓰나요? 아무튼 전 돈 못 보내니까 그렇게 아세요.]
순간 화가 솟구친다.
“아니 이런 쓰레기 같은 놈이...”
당장 욕지거리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속사포처럼 자판을 두들기던 손이 이내 멈춘다.
“...”
주류 표지 이미지와 맞지 않다는 건 누구보다 황태규 자신이 인정하는 바였으니까.
“하아...”
두 어깨가 힘없이 툭 떨어진다.
애써 눌러왔던 울분이 울컥거린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남들 다 있는 부모도 없고, 불행한 일들은 하루가 멀다고 손을 흔들며 찾아온다.
마음이 무겁고, 불안감이 엄습한다.
‘대체 인생은 뭐지?’
대상도 알 수 없는 원망까지 솟구친다.
황태규는 이를 악문 채 종이에 펜을 움직였다.
감정이 이끄는 대로, 손이 가는 대로 그림을 쏟아낸다.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 폭의 그림이 완성되어 있었다.
선과 여백으로 구성된 단순한 구조.
음울한 마음을 수묵화처럼 먹먹한 분위기.
그렇게 상처와 아련함이 남은 그림체.
아쉽게도 아무도 원하지 않는 그림이었다.
웹툰도, 표지도, 그렇다고 단순히 일러스트라고 말하기에도 애매한 그림체.
‘이건 또 못 쓰겠네...’
본능적으로 그리는 그림.
그러나 아무도 사주지 않는 그림.
괴로움에 펜을 떨어뜨린다.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지만 자괴감은 조금도 감해지지 않는다.
지이잉.
그런데 그 순간 휴대폰이 울린다.
‘누구지?’
연락 할 사람이 없었다.
힘없이 휴대폰을 들어 올리던 황태규의 눈이 순간 커진다.
‘...서준이 형?’
아마 장현웅과의 일 때문에 연락한 게 분명했다.
“...”
받아야 할까, 말아야 할까.
황태규는 한참을 고민하다고 마지못해 전화를 받았다.
“네, 네. 형. 오랜만이네요...”
어색하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런데 잠시 뒤,
휴대폰 너머에선 전혀 뜻밖의 말이 들려왔다.
“네? 지금 당장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