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 green-eyed - 질투하는 (5)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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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은 난해하기만 하고 재미가 없다는 뿌리 깊은 편견을 바꾸기 위해선 재미있는 작품들이 끊임없이 대중들 앞에 소개되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경직된 등단과 수상 제도는 바뀌어야만 하고요.”
한국 문학계의 고질적인 문제.
그것도 이십 대의 젊은 청년 작가의 입에서 날카로운 지적이 쏟아지고 있었다.
“세계 속에서 한국 문학의 위치가 올라가기 위해선 문단의 혁신이 필요합니다. 물론 작품의 질 역시 개선되어야 하고요.”
순문학을 둘러싼 최근의 담론.
개별적인 작품을 떠나 한국 문학계 전반을 향한 비평에 가까운 시선.
문예지와 출판사, 그리고 학계와 평단에 수십 년에 걸쳐 쌓인 권력화 등. 예민한 문제들이 권서준의 입을 통해 힘 있게 전달된다.
어느새 주인공은 박성규 교수가 아닌 권서준이 된 상황.
타닥타닥.
권서준의 칼춤을 보던 네 명의 기자들은 쉼 없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기자들이 빠르게 인터뷰 기사 초안을 작성하는 소리였다.
‘이거... 내가 당했어...’
저 능구렁이 같은 놈에게 완벽히 당하고 말았다.
평론을 가장한 인터뷰는 어느새 치열한 논쟁의 자리로 변해버렸고, 그 논쟁의 패배자는 다름 아닌 박 교수 자신이었다.
게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문제점투성이인 문단과 학계의 대표가 마치 자신이 된 것 같은 상황이었다.
‘이건 말이 안 돼...’
박 교수는 냉수 한 모금을 마시며 애써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눌렀다.
지금 이 상태에서 흥분하면 오히려 더 일을 그르칠 수 있었다. 이 사태를 막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끊임없이 떠올렸다.
그리고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이대로 인터뷰가 나가면 안 돼. 무조건 막아야 해.’
오늘 발언 중에 장르 문학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꽤나 많이 포함되었기에 평론가로서 불리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기자들의 표정을 보니 이미 권서준의 의견에 동조하는 분위기.
‘큰일 났다...’
어떻게든 무마시켜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세 명의 기자는 자신의 편이었기에 한 명만 막으면 되는 상황.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전적으로 권 작가의 생각에 동의하기도 힘들군요.”
박 교수는 태연한 척 말을 이었다.
“게다가 학계와 문단에 필요 없는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사안이라 더 이상의 인터뷰 진행은 힘들 거 같고요.”
“...네? 교수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인터뷰를 지켜보던 주상진 편집장이 놀라서 일어난다.
“말했듯이 난 더 못하겠으니까 이 인터뷰 취소해주게. 오늘의 인터뷰 역시 기사화되는 건 내가 허락할 수 없네.”
“아니 교수님 이건 다 사전에 얘기가 된 내용이잖아요?”
“아무튼 분명하게 말했으니까 내 변호사 만나고 싶으면 그렇게 해.”
박 교수는 한마디로 못을 박으면서 자연스럽게 기자들에게 눈치를 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세 살짜리 어린아이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
이내 윤석훈 기자를 제외한 세 사람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박 교수의 뜻대로 하겠다는 뜻이었다.
충분히 압박을 준 박 교수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불쾌한 자리를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기 위해 걸음을 서둘렀다.
그런데,
막 실내를 벗어나려는 그때, 한 사람이 박 교수의 앞을 막는다.
“뭐야, 당신?”
박 교수가 남자를 향해 언성을 높인다.
그런데 낯익은 얼굴에 박 교수의 표정이 굳는다.
“어? 저, 정영만 회장님...?”
문학계 거물인 정 회장을 모를 리 없었다.
“회, 회장님이 여긴 어떻게...”
아무리 박 교수라고 해도 예의를 갖출 수밖에 없는 상대였다.
“재미있는 인터뷰가 있다고 해서 왔지.”
순간 박 교수가 당황한다.
“어, 언제 오신 건가요?”
“아마 시작할 때부터?”
딱 떨어지는 정 회장의 말투.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들었다는 소리였다.
순간,
박 교수의 등줄기가 싸해진다.
“그런데, 사전에 합의된 내용인데 이렇게 나오다니 아쉽군.”
“하, 하지만 회장님...”
“뭐 정 싫다면 알겠네. 자네 체면이라는 것도 있으니까.”
생각보다 쉽게 정 회장은 이해했다.
어차피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학계를 대표하는 원로 작가다운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박 교수는 냉큼 빠져나가려 했다.
그런데 정 회장의 팔이 막는다.
“...”
영문을 모른 박 교수가 쳐다보자 정 회장이 천천히 입을 연다.
“그냥 가면 안 되지.”
“...네?”
“연락처를 주게.”
“무슨 연락처 말씀이신지...”
“자네 변호사 연락처 말일세.”
“...”
말뜻을 이해 못한 박 교수가 눈을 깜빡인다. 그러자 정 회장이 다시 입을 뗀다.
“기사 쓸 거면 직접 만나보라며? 무슨 말을 하는지 내가 한번 직접 들어보겠네.”
“...”
순간 박 교수의 눈빛이 세차게 흔들린다.
뒤이어 쿵 하고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박 교수의 심장이 내려앉는 소리.
그리고 잠시 뒤.
고요한 실내를 또 다른 소리가 채우기 시작한다.
타닥타닥타닥.
기자들이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
방해자가 힘을 잃자 기자들의 손가락은 더욱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
인터뷰가 끝나고 윤석훈 기자가 나를 찾아왔다.
“인상 깊은 발언이었습니다.”
“동시에 위험한 발언이기도 했죠.”
내 말에 윤 기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맞습니다. 만일 다른 젊은 작가가 했다면 문단에서 묻힐 수도 있는 높은 수위의 발언이었죠. 그래서 지난번에 하신 말씀이 이해되네요. 왜 더 높은 곳으로 가야 한다고 하셨는지.”
역시나 윤 기자는 눈치가 빨랐다.
나는 불필요한 다른 말 대신 인사를 건넨다.
“아무쪼록 이번 기사도 잘 부탁드립니다.”
“네, 언제나 그렇듯 팩트만 전해드리죠.”
슬쩍 미소를 짓던 윤 기자가 이내 인터뷰 장소를 빠져나간다.
언제 봐도 든든한 사람이었다.
모든 기자들이 떠난 자리.
나는 기다리고 있던 정 회장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박 교수와의 평론을 허락했다기에 무슨 꿍꿍이가 있나 싶어서 왔지. 그런데 이 정도로 치밀하게 준비했는지는 몰랐는걸?”
역시나 정 회장은 내 의도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정 회장의 얼굴에 이내 흐뭇한 미소가 떠오른다. 그러나 내 입장에선 마냥 기쁜 티를 낼 순 없었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선을 넘은 부분이 없지 않았습니다.”
내 말에 정 회장은 오히려 고개를 젓는다.
“아니야. 정말이지 필요한 지적이었어.”
정 회장은 얕은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사실 서준이 네 말대로 대중작가들은 국내 문학비평의 대상에서 소외되고 있어. 당연히 작품에 걸맞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고, 관심도 못 받고 있지. 그 때문에 점점 외국 작품들도 국내 출판계가 잠식되는 상황이고. 어쩌면 그러한 환경이 오히려 한국에서 셰익스피어 같은 작가가 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족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
정 회장은 변명하지 않았다.
오히려 젊은 후배의 의견에 경청하고, 그 안에서 배울 점을 찾아냈다.
“폭넓은 독자층은 우리 문학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해. 순수성도 수많은 독자와의 상호 보완적인 작용을 위해 필요한 거고. 네 말대로 지금이야 말로 혁신이 필요한 시기야.”
문학계 거목이 반성하고 변화를 생각한다.
말이 쉽지 행동하고 실천하기는 더없이 어려운 변화였다.
‘어쩌면 내 예상보다 빠른 시일 내에 기대해볼 수도...’
한국 문학을 향한 일말의 희망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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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4대 문예지엔 권서준 작가의 작품에 대한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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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서준 작가, 장르문학의 가치에 관하여...]
우리나라에선 유독 장르문학에 대한 평가가 박하다. 마치 순문학의 하위문화 정도로 취급받으며 대다수의 독자조차 본인들이 즐기는 장르문학의 장르를 밝히려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문학 평론가들 역시 지나칠 정도로 장르문학에 대한 언급을 꺼린다. 빈약한 문장, 전형적인 플롯, 깊이 없는 주제를 꼬집지만 정작 그 어디에도 장르 문학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러한 논란에 과감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작가가 나타났다.
바로 천재 작가로 유명한 권서준 작가가 그 주인공. 그는 대중문화 평론가로 유명한 박성규 교수와의 평론 및 인터뷰에서 순문학과 장르 문학에 대한 분류 자체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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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이야말로 문학의 순수성을 지킬 수 있는 숭고한 장치’라는 박성규 교수의 주장에 권서준 작가는 ‘두 장르를 나누는 기준은 분석과 평론하기 좋아하는 허영심 많은 사람이 만든 개념’이라고 날선 대립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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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문예지에선 두 사람의 대화를 있는 그대로 담아 인터뷰 당시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했다.
자연스럽게 각종 커뮤니티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문학계 신구세대의 대결인가?
-꼰대들의 선민사상이 빚어낸 참극 아닐까?
˪그래서 출판시장이 엉망이잖아. 베스트셀러만 봐도 외국 작가 비중이 절반이 넘는다고. 외국 작가로 줄 세우기를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려나? 쯧쯧.
˪인정. 솔직히 순문학과 장르문학을 나누는 기준이 뭔지 모르겠음. 더 솔직히 말하면 재미없는 문학을 왜 읽어야 하는지 모르겠고. 유익성이나 교육성을 따지면 차라리 백과사전을 읽는 게 나으니까.
-박성규 저 사람이 왜 전문가임? 맨날 딴죽만 걸고 제대로 된 평론 하는 걸 본 적이 없는데?
˪가끔 공동 집필 저자로 출판하기는 함.
˪듣기로는 그것도 제자 작품에 이름 얻는 정도라던데?
˪헐, 대박. 쓰레기네.
권서준이 지핀 불은 산불처럼 거대하게 타올랐다.
천재 작가의 소신.
그에 맞서는 구태의 정석은 바로 박 교수의 몫이었다.
마치 영웅을 위한 악당이 된 상황.
으득.
기사를 보던 박 교수는 어금니를 악문다.
모든 게 이렇게 딱딱 맞아떨어질 수 없었다.
마치 잘 짜인 소설 한 편을 보는 기분.
그리고 그 구성을 만든 사람은 다름 아닌 권서준일 테고.
“권서준, 너 이 새끼...”
핏발 선 박 교수의 눈은 분노로 이글거렸다.
이대로 물러설 순 없었다.
그러나 제대로 갚아주려고 해도 방법이 없는 상황.
“으아아아!”
화를 참지 못한 박 교수는 결국 벽에 주먹을 꽂았다.
잠시 뒤,
쿵쿵쿵.
박 교수의 연구실에선 애꿎은 벽 치는 소리만 울려 퍼진다.
***
이른 아침.
나는 모닝커피와 함께 기사를 읽었다.
‘결국 박 교수는 자기가 파놓은 함정에 본인이 빠진 격이야.’
가만히 있으면 그 허영심과 독선을 감출 수 있었겠지만 애꿎게 나섰다가 바닥을 다 보이고 말았다.
마지막에 인터뷰 장소를 떠나는 박 교수의 원망 어린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아마 지금도 내 탓을 하고 있겠지?’
불을 보듯 빤히 보이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실상 그를 불태운 건 내가 아닌 박 교수 자신의 질투의 눈 때문이었다.
일명 녹색 눈(green-eyed).
내가 작품 오셀로에 질투라는 의미로 사용한 아주 오래된 표현이었다.
Oh, beware, my lord, of jealousy; It is the green-eyed monster which doth mock
오 각하, 질투의 눈을 조심하십시오! 그놈은 희생자를 잡아먹으면서 조롱하는 녹색 눈을 가진 괴물입니다.
그래. 녹색 눈.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자신들의 기준에 맞추는 평론가와 학계 원로들의 눈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녹색 눈을 가진 것조차 알지 못하지.’
물론 박 교수 역시 알 리 없었다.
녹색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언제나 녹색일 수밖에 없으니까.
그 눈알을 뽑아내는 고통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달라지는 건 있을 수 없으니까.
‘아마 평생 달라지지 않을 거야.’
정 회장과 달리 영영 변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그들까지 내가 신경 쓸 생각은 없었다.
나는 그저 내가 얻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면 될 뿐이니까.
인터뷰 문제까지 해결된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한 동화 창작에 대한 열망을 실현하는 것.
‘이제 슬슬 황태규를 만나 볼 차례군.’
나는 휴대폰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