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 green-eyed - 질투하는 (4)
159.
***
“태규한테는 이번 주 중으로 한번 연락해 봐.”
내가 말하자 장현웅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알았어. 약속은 언제로 잡는 게 좋을까?”
“아무래도 다음 주가 좋겠지?”
일정만 생각하면 오늘 당장 만나는 게 제일 베스트였다.
그러나 그 전에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다.
바로 박성규 교수와의 인터뷰.
평론과 함께 진행되는 보기 드문 형식의 인터뷰였다.
사실 최근 가장 주목 받는 작가의 작품을 평론한다면 평론가 입장에서도 얻는 게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박 교수의 성격을 봤을 때 고작 그 정도의 결과를 위해 이번 제안을 승낙했을 리가 없었다.
‘구린 속내가 있는 거지.’
그리고 오늘, 난 그 구린 속내를 만천하에 까발릴 생각이었다.
***
이른 아침.
박성규 교수의 연구실.
“후우...”
박 교수는 진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밤샘의 피로를 달랜다.
모두 오늘 있을 권서준의 인터뷰 때문이었다.
며칠에 걸쳐 권서준의 작품을 철저히 분석했다. 자신의 알고 있는 모든 문학론을 가지고 다양한 각도로 분해하고, 분석했다.
그런데...
구조, 캐릭터, 상징성, 문학성까지.
어느 하나 흠잡을 데가 없이 훌륭했다.
‘그래서 더 못마땅하다니까.’
대놓고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좋으련만 이렇다 할 약점은 찾지 못했다.
그러나 포기할 박 교수가 아니었다.
3일에 걸친 준비를 통해 간신히 논란거리 하나를 만들어냈다.
‘작품적으로는 완벽할지 모르지만 장르적으로는 애매할 수 있거든.’
흔히 말하는 순수 문학으로 불리기엔 그 순수성이 약했고, 장르 문학으로 보기엔 장르적 특징이나 재미가 덜했다.
순문학, 그리고 장르 문학이 엄격히 구분되어 있는 국내 출판 시장 특성상 권서준의 작품은 회색분자와 같은 포지션이었다.
‘난 이 부분을 정확히 문제 삼을 거야.’
모든 포지션에 완벽한 선수가 없듯 문학 역시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부족함이 보일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 과정을 업으로 삼는 게 평론가였고, 그걸 가장 잘하는 사람이 박 교수 자신이었다.
‘내가 왜 한국에서 유명한 평론가인지 한번 맛보라고.’
박 교수의 눈이 가늘어진다.
“그동안 너무 설쳤지.”
천재?
대한민국 문학계를 이끌 젊은 작가?
유럽에서도 주목하는 신예 작가?
고작 서른도 안 된 작가가 누리기엔 과분한 찬사와 관심이었다.
질투?
솔직히 질투라고도 할 수 있었다.
자신은 평생 노력해도 얻지 못한 결과를 고작 저 어린 나이에 모두 이뤄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오늘이야말로 너의 허황된 이미지를 박살 날 차례야.’
게다가 준비 작업마저 완벽했다.
자료, 평론, 그리고 인터뷰에 참석하는 기자들까지 모두 자신이 익히 아는 사람들이었다.
한방만 먹이면 그대로 게임 셋.
어깨춤이 절로 나는 상황이었다.
‘나한테 까분 대가를 제대로 치르게 해주지.’
어느새 박 교수의 입에선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퉁, 퉁, 퉁, 퉁.
흥겨운 리듬은 바로 마이클 잭슨의 빌리진.
리듬을 타던 박 교수가 흥을 이기지 못해 허리춤까지 흔들기 시작했다.
아주 경박하기 이를 데 없는 춤사위였다.
***
늦은 오후.
나는 홍대로 향했다.
와이즈 스테이지.
와이즈 출판사에서 만든 서점형 카페였다.
3층엔 유명 작가들의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도록 별도의 공간이 마련되어있었다.
“어서 오세요. 권 작가님.”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기다리고 있던 주상진 편집장이 나를 반갑게 맞이한다.
“소식은 들으셨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결과가 더 대박이에요.”
들뜬 그의 표정은 자연스럽게 일주일 넘게 이어진 내 책의 판매량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다 주 편집장님이 직접 마케팅까지 신경 써주신 덕분이죠.”
“아이고, 제가 뭐 한 게 있나요. 그리고 솔직히 편집장이 아무리 나서봐야 작품이 별로면 이런 결과는 절대 나올 수가 없죠.”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덕담 속에서 뿌듯함이 떠오른다. 주 편집장이 이내 나를 보며 다시 말을 잇는다.
“그나저나 인터뷰 허락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원래 인터뷰는 거의 거절하시는 편이라 이번에도 거절하실 줄 알았거든요.”
“뭐 이번엔 좀 특별하니까요.”
“...네?”
영문을 모르는 주 편집장이 되묻는다.
나는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뭐, 직접 보면 알 테니까.’
잠시 뒤,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익숙한 사람이 들어온다.
면바지에 재킷.
반소매 폴로 티를 입은 박 교수였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나는 먼저 인사를 건넨다.
“아이고, 이게 누구야? 천재 작가 서준이 아니야?”
박 교수는 과장된 미소와 손짓을 하며 내 어깨를 두드린다.
“이렇게 유명한 작가를 직접 인터뷰 한다니 영광이야. 이런 기회를 줘서 정말 고맙네, 주 편집장.”
“별말씀을요. 귀한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주 편집장의 인사를 받던 박 교수가 이내 나를 다시 바라본다.
“오늘 잘 부탁해.”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건네는 악수.
그러나 온기를 머금어야 할 손아귀에 감도는 건 지독한 냉기였다.
“사제 간을 떠나 뜻깊은 시간을 만들어보자고.”
‘사제 간을 떠나’라는 말이 은근히 강조되어 귀에 박힌다.
본인도 모르게 속내가 드러나는 모양.
뭐, 걱정되기보다는 재미있었다.
‘평론가라는 족속들의 생각은 이미 잘 알고 있었으니까.’
오히려 기대되는 심정으로 기다린 인터뷰.
잠시 뒤,
본격적으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
삼십 분 뒤.
인터뷰는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작품에 대한 일반적인 분석과 함께 칭찬이 곁들여지면서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
영국에서 거둔 작품의 성과와 한국에서 보이는 판매 성적에 대해서도 나눴다.
“스승과 제자라 그런지 오늘 분위기가 좋네요.”
지켜보던 주 편집장 역시 만족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박 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수박 겉핥기식의 대화는 이쯤 했으면 됐고, 본격적으로 시작해볼까?’
이제 슬슬 시작할 타이밍이었다.
박 교수는 슬쩍 주변을 살폈다.
오늘 인터뷰를 기사화하기 위해 모인 사람은 총 네 사람.
매일 연예의 윤석훈 기자야 잘 모르지만 나머지 세 명은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한 명은 각종 칼럼 때문에 자신과 자주 연락하는 기자였고, 나머지 두 명도 박 교수의 대학 후배뻘 되는 사람이었으니까.
게다가 하나같이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문예지 출신들로 자신의 의견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동조해줄 인간들이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상황.
박 교수는 숨겼던 이빨을 천천히 드러냈다.
“작가님의 작품은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다만 작가님의 작품 세계는 다소 상업적인 면모를 보이더군요.”
다분히 의도가 담긴 질문이었다.
순간 분위기가 얼어붙는다.
“순문학의 범주에 들어가기엔 도드라지는 상업성이 걸립니다. 게다가 장르문학으로 취급하기엔 꾸밈과 상징성이 과하고요.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질문한 박 교수는 흡족한 얼굴이었다.
그만큼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상업성의 가치에 대해 부정하면 장르문학 쪽에서 난리가 날 테고, 작품성에 대해 가볍게 여기면 순문학 쪽에서 들고일어날 테니까.’
게다가 만일 대답을 피하거나 제대로 답변을 못 한다면 작가 자신의 정체성을 갖지 못한 거로 간주해 작품 자체에 대한 폄훼가 이뤄질 수도 있었다.
말 그대로 진퇴양난인 질문.
박 교수가 며칠 동안 고심한 회심의 공격이었다.
그런데 정작 권서준의 표정은 태연했다.
‘애써 덤덤한 척하는 건가?’
박 교수는 가소로운 듯 쳐다봤다.
그때,
권서준이 입을 뗀다.
“그 말씀은 상업성을 띠는지의 여부가 순문학과 장르 문학을 구분 짓는 기준이라는 말씀 같은데,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을까요?”
권서준은 당돌하게도 질문을 했다.
그러나 박 교수도 만만치 않은 인물이었다.
“맞습니다. 상업성을 배제한 예술의 가치를 추구하는 게 바로 순문학이니까요. 그걸 인정하는 기준이 바로 등단이라는 시스템이고요.”
“그렇군요.”
잠시 고개를 끄덕이던 권서준이 이내 입을 연다.
“그렇다면 전 아마도 문단 밖 작가가 되겠네요.”
“...네?”
문단 밖 작가?
생소한 개념에 박 교수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다.
“좀 더 설명이 필요할 거 같은데요?”
박 교수가 차분히 묻자 권서준이 다시 말을 잇는다.
“등단 제도라는 유일한 절차를 둔 한국문학의 기준에서 벗어난 작가라는 뜻입니다.”
뭔 개똥 같은 소리일까.
순간 박 교수의 미간이 모인다.
그러나 권서준은 당황하는 기색 하나 없이 발언을 이어간다.
“한국에서 인기 있는 외국 작가들의 공통점은 바로 장르 문학의 요소를 차용해 쉽게 읽히면서도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작품들을 쓴다는 점입니다. 기욤 무소, 히가시노 게고가 그 대표적인 예가 되겠죠. 재미있는 건 그들의 작품은 선생님이 말씀하신 순문학과 장르문학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점이죠. 오히려 그 두 경계선의 어딘가에 존재하기 때문에 중간문학으로 불리기도 하고요.”
가만히 듣던 박 교수가 나선다.
“갑자기 왜 외국 작가에 대한 사례를 말하는 거죠? 전 지금 권 작가의 작품 세계에 대해서 물었는데요.”
다시 원래 질문으로 돌리려는 박 교수의 노력이었다.
“게다가 그들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순문학의 존재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시장 논리에 따라 상업화된 문학은 결국 통속적인 읽을거리로 전락하고 말았죠. 그로 인해 오히려 더 순수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흘렀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자정작용을 할 수 있는 숭고한 장치가 바로 등단이라는 시스템이고요.”
문학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것이 옳다는 논리. 그러나 권서준은 당황한 기색 없이 입을 연다.
“선생님의 말씀도 맞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순수성만 강조해서 어떤 결과를 초래했죠? 결국 외면받고, 각종 시청각 미디어에 그 자리를 내주게 되지 않았나요?”
부인할 수 없는 문학계의 현실이었다.
순간 당황한 박 교수의 말꼬리가 흔들린다.
“그게 무슨... 궤변입니까? 이 모든 게 순문학의 잘못이라는 뜻입니까?”
그러나 한 번 공격을 시작한 권서준은 멈출 줄을 몰랐다.
“궤변이 아니라 팩트입니다. 지나치게 현학적인 세계, 삶과 동떨어진 순수성은 매일의 채움이 필요한 독자들에게 외면당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쿵.
한국 문학의 고질적인 문제에 대한 지적이었다.
“장르문학이냐, 순문학이냐는 기준을 가르는 데 혈안이 되어서 새로운 소재의 발굴이나 글쓰기 방법에 있어서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내지 못했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외국 문학으로 대체된 거 아닌가요?”
“...”
박 교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권서준은 최근 해외 유명 작가들에게 잠식당하는 출판계의 현실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저는 순문학의 존재를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지나친 분류를 통해 오히려 순문학의 가치를 가진 작품들조차 장르 문학으로 매도되고, 순문학을 표방하는 작품은 대중들에게 외면 받는 출판계의 현실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순문학과 장르문학을 어쭙잖은 기준으로 구분하는 것보다는 문학의 기본 뜻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어느새 권서준의 답변은 박 교수가 아닌 참석한 기자들을 향한다.
그리고 듣고 있던 기자들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고 있다.
부글부글.
자신의 의도와 전혀 다른 인터뷰 진행에 박 교수는 재빨리 입을 뗀다.
“그래서 대체 당신은 순문학 작가입니까? 아니면 장르 작가입니까?”
다시 한번 원론으로 돌리려는 질문.
그런데 들려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둘 다 아닙니다.”
“...뭐라고?”
황당한 박 교수가 자신도 모르게 반말이 나온다.
가만히 지켜보던 권서준이 천천히 입을 연다.
“저는 어느 쪽도 아닌 그저 한 명의 작가입니다. 그 안에 순문학, 장르문학, 그 중간에 어중간한 대중작가 역시 제가 원하는 분류가 아닙니다. 그 기준은 모두 분석과 평론하기 좋아하는 허영심 많은 사람이 만든 개념이니까요.”
권서준의 시선이 정확히 박 교수를 향한다.
마지막에 말한 허영심을 가진 자가 누구인지 가리키는 듯한 시선.
그리고,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시선은 비단 권서준 뿐만이 아니었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자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표정이 모두 같았다.
“...”
순간 박 교수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야심차게 준비한 인터뷰.
그러나 박살 난 쪽은 박 교수 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