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 green-eyed - 질투하는 (1)
156.
***
대학교 연구실.
박성규 교수는 전날 자신에게 온 메일 한 통을 바라본다.
서준이 녀석의 작품을 인터뷰와 함께 평론해달라는 요청.
와이즈 출판사에서 보내온 정식 제안이었다.
평론가의 인터뷰.
책 홍보를 위한 흔한 마케팅 중 하나였다.
메일을 처음 본 순간, 박 교수는 고민도 없이 메일을 삭제했다.
‘안 그래도 눈엣가시 같은 녀석인데 내가 이 자식 작품 홍보까지 해줘야 해?’
철저하게 망한 자신의 뮤지컬과 달리 녀석은 여전히 승승장구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마치 신의 축복을 독점한 것처럼 잘나가는 녀석을 보면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하아. 제대로 한번 넘어질 때가 됐는데...’
인간인 이상 완벽할 수 없었다.
잘나가는 작가들도 한 번쯤은 바닥을 치는 게 바로 이쪽 세계였으니까.
‘가만...’
그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의 고민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낸 것.
‘애초에 완벽한 문학이란 있을 수 없잖아?’
어쩌면 이건 기회일 수도 있었다.
녀석의 발을 제대로 걸어버릴 수 있는 하늘이 준 기회.
분명 녀석의 작품은 대단했다.
그러나 비평이란 게 흠집을 내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세계 유명 작가들 중 수상 한 번 못한 작가들이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고.
특히 자신쯤 되는 문학계 인사가 지적하면 문제가 아닌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었다.
‘그게 문학이 가진 장점이자 단점이지.’
그래서 유명 평론가들이 가지는 힘은 거대했다.
게다가 애초에 평론가의 존재 목적이 바로 작품을 까 내리는 것이었다.
왜냐고?
좋은 걸 다 같이 좋다고 말하면 과연 존재 의미가 있을까?
‘좋아도 문제인 부분을 찾아내는 게 바로 평론가의 능력이지.’
물론 그럴듯하게, 모두가 수긍하게 문제점을 찾아내야 했다. 아니, 만들어 내야 했다.
뭐 딱히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십년 가까이해온 일이 그거니까.
‘내 별명이 괜히 뱀의 혀가 아니거든.’
박 교수의 얼굴에 오랜만에 미소가 떠오른다.
***
와이즈 출판사 편집실.
주상진 편집장은 인터넷에 올라온 권서준 작가에 대한 여러 기사를 확인했다.
[권서준 작가, 유럽의 마음을 훔치다...]
[한국 문학의 희망, 권서준 작가.]
[세계가 먼저 알아본 한국 문학의 가치]
호평 일색인 기사들.
게다가 몇몇 발 빠른 국내 평론가들은 벌써부터 권서준 작가의 작품에 대한 해석과 평가를 쏟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뭔가 어설퍼...’
권서준 작가의 작품은 흔히 말하는 순수 문학과는 그 흐름이 조금 달랐다. 그렇다고 장르 문학의 범주에 넣기엔 그 흐름과 메시지가 묵직한 편이었고.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이 부분을 정확히 분석하지 못해 어설픈 칭찬만 이어가고 있었다.
단순히 런던 북페어의 성공에 편승하는 칭찬 일색의 기사.
단기간 좋을 순 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 있었다.
‘모두가 만족할 만한 냉철한 평론과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야.’
작품이 지니고 있는 놀라운 가치를 대중들에게 제대로 드러내기 위한 계기가 필요했다.
주 편집장은 고민 끝에 유명 평론가와의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하니까.’
그러나 평소 공개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는 권서준 작가의 성향을 알기에 걱정이 앞서는 상황.
지이잉.
그런데 그때, 휴대폰이 울린다.
발신자는 놀랍게도 권서준 작가였다.
“네, 작가님. 저 주 편집장입니다.”
-안녕하세요. 말씀하신 인터뷰 때문에 탑승 전에 잠깐 연락드렸습니다.
올 것이 온 상황.
주 편집장은 천천히 호흡을 골랐다.
‘후우... 거절하셔도 할 수 없지.’
실무자 입장에서 제안을 할 수 있지만 강요는 할 수 없었다.
특히 권서준 작가처럼 유명한 작가에게는 더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하겠습니다.
“아, 역시 힘드시겠... 네?”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묻고 말았다.
그러나 뒤이어 들려온 대답도 마찬가지였다.
-인터뷰하겠다고요. 재미있을 거 같네요.
주 편집장의 눈이 커진다.
***
런던에 위치한 영국 문화원 본부.
영국 정부에 의해 설립된 국제 문화 교류 기관으로서 전 세계 100여 개국에 사무실과 문화원을 두고 활동하는 비영리 단체였다.
최근 런던 북페어를 성공적으로 마친 영국 문화원은 실무진들을 대상으로 조찬 모임을 마련했다.
“이번 런던 북페어가 역대 최고 계약 기록을 갱신했다면서요?”
“네, 피어슨 출판사의 작품이 아주 인기가 대단했죠.”
단연 화제가 된 건 오늘의 작가(Author of the Day)의 주인공이었던 권서준 작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연스럽게 작품 담당자인 올리버 편집장에게도 관심이 흐른다.
“하하하. 이거 대단하네요.”
“역시 올리버 편집장님의 안목이 대단하셨습니다.”
사람들이 한껏 올리버 편집장의 안목을 칭찬하는 사이.
단 두 사람은 화기애애한 조찬 모임의 분위기에 녹아들지 못했다.
한 명은 영국 문학원 문학출판 책임자 이자벨라, 그리고 또 한 명은 런던 북페어 프로그램 총책임자 소피아였다.
올리버 편집장이 권서준 작가를 추천했을 때 반대하던 두 사람이었다.
‘아마 얼굴 보기가 민망하겠지.’
올리버 편집장은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이네요.”
먼저 인사를 하자 두 사람이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아, 네... 축하드립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두 사람이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한다.
살짝 눈치를 보던 이자벨라가 먼저 입을 연다.
“좀 늦었지만 올리버 편집장님의 생각이 맞았네요. 권서준 작가의 작품,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놀라긴 아직 이릅니다. 이제 시작이니까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엔플릭스와의 계약이 진행 중이거든요.”
“네? 벌써 작품 판권이 논의되고 있다는 건가요?”
“그렇다고 할 수 있죠.”
두 사람의 눈이 동시에 커진다.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올리버 편집장은 두 사람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통쾌했다.
“기대해보세요. 런던 북페어에서 권서준 작가를 선택한 건 두고두고 좋은 선택이었다고 회자될 테니까.”
이번 역시 확신할 수 있었다.
***
15시간에 가까운 비행시간.
잠들기 직전에 마신 와인 덕에 숙면을 취한 채 도착할 수 있었다.
“하아, 아무리 생각해도 퍼스트 클래스는 다르다. 피곤한 게 하나도 없네.”
장현웅은 공항을 나오자마자 신이 나서 말한다.
오랜 비행에 여독이 없을 리 없겠지만 그만큼 만족스러운 퍼스트 클래스의 경험이었다.
‘모두 성공했기 때문에 가능한 거지.’
성공이란 열매는 언제나 달콤했다.
물론 성공만 추구하다가는 많은 것들을 잃는다는 걸 알기에 나는 행복과 성공 모두를 취할 생각이었다.
짐을 챙겨서 밖으로 나오자 익숙한 얼굴이 손을 흔든다.
“서준아!”
엄마와 누나였다.
“뭐야, 회사는 어떻게 하고 나온 거야?”
“권 작가님 귀국하신다고 회사에서 보내주시더라. 귀한 작가님 잘 모시라고.”
주 편집장이 배려해준 모양이었다.
“자, 여기.”
누나는 차에 올라타자마자 한국어 버전으로 출판된 책을 내밀었다.
영문판과 표지도, 디자인도 달랐다.
각 나라에 맞게 다르게 표현된 것.
영문 버전이 철학적인 사상을 부각했다면 국내 버전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더욱 부각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부자 관계에 힘을 싣는 게 훨씬 더 몰입감을 높일 수 있기에 좋은 선택이었다.
“어때? 마음에 들어?”
듣기로는 누나가 편집과 디자인에 꽤 많은 부분을 참여했다고 들었다.
“괜찮네. 표지도 마음에 들고, 이미지도 좋고.”
“다행이다. 참, 소식은 들었지?”
“베스트셀러 된 거?”
“그래. 아주 난리가 났다. 인쇄소가 거의 쉬지 않고 돌아가는데도 물량이 딸려.”
누나는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들뜬 표정으로 국내 출판 소식을 쏟아냈다.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엄마가 만류한다.
“일 얘긴 나중에 하고. 어디 봐봐. 우리 아들, 얼굴이 왜 이렇게 상했어? 어?”
엄마가 내 얼굴을 보며 안타까워한다.
정확히 말하면 살이 조금 더 붙었지만 엄마 눈에는 그저 고생한 아들의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겠지.
“하아, 그러니까. 타지에서 고생했더니 입맛이 없더라고.”
엄마를 보자 나도 모르게 어리광을 부리게 된다. 그러자 기가 막히다는 듯 장현웅이 끼어든다.
“뭐? 너 어제도 스테이크 두 개나 먹었잖아?”
“야, 그거 세 개 먹어도 우리 엄마 집밥 대신이 되겠냐? 그지, 엄마?”
내 말에 엄마가 환하게 웃는다.
“그럼. 집밥이 최고지.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만 해. 엄마가 다 해 줄 테니까.”
“당연히 김치찌개지. 돼지고기 팍팍 넣어서.”
“그래. 얼른 가자. 엄마가 맛있게 해줄게.”
보글보글 끓는 국물.
적절히 씹히는 고기와 함께 익숙한 맛이 혀끝에 감도는 느낌.
벌써부터 군침이 돈다.
최고급 레스토랑의 스테이크도 좋고, 퍼스트 클래스 기내식도 좋았지만, 내 입맛엔 엄마 김치찌개만 한 게 없었다.
***
다음 날.
나는 오랜만에 숙면을 취한 뒤 늦은 오후에 작업실을 찾았다.
“어? 왔어?”
안으로 들어가자 이미 도착한 장현웅이 스토리 작업 중이었다.
“뭐야, 언제 왔어?”
내가 묻자 장현웅이 웃는다.
“연재 스토리 짜야지. 이번엔 메모할 것도 많고, 그릴 것도 많아서.”
말을 하면서도 배경 작업을 하던 장현웅이 나를 바라본다.
“참, 너 근데 괜찮겠어?”
“뭐가?”
“모레 있을 인터뷰 말이야. 박 교수님이 너 벼르고 있는 건 알고 있잖아.”
당연히 모를 리 없었다.
좋아하는 건 잘 못 느껴도 싫어하는 건 기가 막히게 알아보는 게 사람의 직감이니까.
“걱정할 거 없어. 어차피 박 교수님이 할 질문들을 이미 다 파악하고 있으니까.”
“정말? 어떻게?”
“어려울 것도 없지. 대학 내내 박 교수님 수업을 들었잖아.”
선민의식에 찌든 교수.
비평이 대단한 거라고 착각하는 평론가.
자신의 욕망과 허영심을 예술이라는 포장지로 보기 좋게 꾸며 이득을 얻어내는 부류.
‘그게 바로 박 교수지.’
물론 내가 제일 싫어하는 부류 중 하나였다.
생각해보면 그 시절, 런던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수많은 예술작품과 놀라운 창조성이 넘치던 그 시절.
지적 허영심과 어쭙잖은 선민의식으로 문학의 진정한 가치를 훼손시켰던 사람들.
‘마치 성경을 독점했던 그 옛날의 성직자들처럼 썩고, 고인 인간들이었지.’
문학을 자신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작은 세계로 가두려 했던 인간들이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는 인간 군상들.
이쯤에서 대한민국 문학계에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었다.
‘이대로 더 지나버리면 손 쓸 수 없을 테니까.’
도려낼 수 없을 만큼 썩어버리기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
지이잉.
이른 저녁.
박성규 교수의 휴대폰이 울린다.
발신자는 와이즈 출판사 주 편집장이었다.
“네, 박성규입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저 주상진입니다. 권 작가님께서 3일 뒤에 인터뷰가 가능할 거라고 하시네요.
박 교수의 눈썹이 살짝 올라간다.
당연히 거절할 거로 생각했기 때문에 나온 반응이었다.
-시간은 3일 뒤가 괜찮다고 하시는데, 교수님 스케줄은 어떠신가요?
“3일 뒤라면 수요일이군요. 네, 저도 좋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그럼 일정과 장소 포함해서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뒤 박 교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평론하는 건데 괜찮다고? 그만큼 자신 있다는 건가?’
안 그래도 권서준을 벼르고 있던 박 교수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떠오른다.
‘아무리 잘 써도 너의 작품이 완벽한 건 아닐 텐데. 어디서 나온 자신감일까.’
물론 작품은 좋았다.
그러나 그 분류가 애매했다.
순문학이라고 보기엔 순수성이 부족했고, 그렇다고 상업 소설이라고 보기엔 애매했으니까.
생각해 보면 아무리 잘났다 한들 이제 20대의 초짜 작가였다.
애초에 글을 잘 쓰는 것과 능구렁이 같은 평론가를 상대하는 건 천지 차이.
게다가 영국에서 히트한 작품을 적절하게 비판할 수 있다면 오히려 자신의 이름을 높일 수 있었다.
‘서준아, 뮤지컬은 망했지만 여긴 내 전문 분야라고.’
박 교수는 기분 좋게 자료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날만큼은 자신이 승자가 될 것을 확신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