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이 셰익스피어였다-155화 (155/203)

155. critic - 비평가, 평론가 (5)

155.

***

“대박이지? 어제 출판되고 딱 하루 지났는데 벌써 1위라고.”

장현웅은 들뜬 표정으로 순위를 캡처한다.

나는 일간 베스트셀러 순위를 넘겨서 종합 순위도 확인했다.

[보교 문교 종합 베스트셀러]

1. 화인 / 최수지

2. 슬롯머신 / 진도영

3. 부동산 기초 수업 / 정선생

4. 올해의 작가상 수상 작품집 / 공수용 등

5. 당신이 머물던 자리에 / 권서준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는 5위.

종합 베스트셀러의 경우 누적 판매량까지 포함되기 때문에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다.

뭐 기다리면 알아서 올라갈 일이라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나는 이 순간 이 사실을 본인보다 더 좋아할 한 사람이 떠올랐다.

“엄마가 좋아하겠네.”

이제 슬슬 한국으로 돌아갈 때였다.

***

와이즈 출판사 편집실.

쉼 없이 걸려 오는 전화에 권지연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네, 네. 인쇄소에서 최대한 일정을 맞춰주기로 했습니다. 다만 예정보다는 아마 일주일 정도 늦을 수도 있으니 이점 양해 부탁드릴게요.”

대형 서점의 유통 관계자들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었다. 그들이 하나같이 원하는 건 다름 아닌 「당신이 머물던 자리에」 추가 물량이었다.

지이잉.

전화기를 내려놓으면 곧바로 또다시 울린다.

“네, 아 물론 알죠. 풍영 문고 최 과장님이시잖아요. 네, 네. 아, 원활한 유통을 위해 현재 24시간 인쇄소를 가동하고 있는데도 시간이 좀 걸리네요. 죄송합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겠어요? 네, 네. 최대한 빨리 보내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으니 또다시 전화가 울린다.

숨 돌릴 여유조차 없는 상황.

그 모습이 보기 딱했는지 사수 한 명이 다가온다.

“지연 씨, 잠깐 쉬고 와.”

“네?”

“아침부터 잠시도 못 쉬었잖아. 내가 전화 받아줄 테니까 잠시 숨 좀 돌리고 와.”

친절한 사수의 도움 덕에 잠시나마 전화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후...”

권지연은 출판사 옥상에 올라 사수의 말대로 잠시 숨을 돌렸다.

“정말 엄청나구나...”

동생 권서준의 작품이 이 정도로 인기를 끌 정도는 몰랐다.

가족으로써 너무나 기쁜 소식.

권지연은 몇 시간 만에 휴대폰을 들었다. 이번엔 받기 위한 전화가 아닌 걸기 위한 전화였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가고 이내 상대방이 전화를 받는다.

“엄마, 뭐해?”

수신자는 엄마였다.

-뭐하긴 밑반찬 좀 하고 있었지. 근데 왜? 일할 시간 아니야?

“맞아. 정신없이 바빴는데 잠시 짬 나서 전화했어.”

-뭔 일 있는 건 아니고?

엄마는 전화만 하면 걱정하곤 한다.

“뭔 일이 있긴 하지.”

-왜? 일이 힘들어서 그래?

“어. 일도 힘들고 날 힘들게 하는 사람도 있고.”

-누군데? 누가 우리 딸 힘들게 하는데?

휴대폰 너머로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역시 자식 걱정하는 건 엄마밖에 없었다.

권지연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연다.

“서준이가 날 힘들게 하네?”

-뭐? 서준이가 왜?

“그 녀석이 너무 큰 사고를 쳤거든.”

-...뭐?

엄마는 순간 놀란 듯 되물었다.

이런, 엄마가 더 걱정하기 전에 설명이 필요했다.

“이번에 쓴 작품이 말 그대로 초대박을 쳤거든. 여기저기서 서준이 책을 빨리 보내달라고 난리도 아니야. 그래서 나도 엄청 바쁜 거고.”

-아...

엄마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눈을 꼭 감은 채 대상도 모를 누군가한테 감사함을 표현하고 있을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엄마, 얘 이젠 정말 큰 사람이 된 거 같아.”

출판계 관계자인 자신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동생의 성공.

엄마도, 권지연의 얼굴에도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

‘런던 북페어’가 끝나고 다음 날.

나는 피어슨 출판사에서 마련한 축하연 자리에 초대되었다.

“권 작가님, 이쪽은 저희 피어슨 출판사 대표님이십니다.”

올리버 편집장의 소개에 한 백인 남자가 다가온다.

“하하하. 이제야 직접 만나 뵙게 되네요. 피어슨 출판사 대표 존입니다.”

존과 함께 실무자인 해리도 함께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해리라고 합니다.”

올리버 편집장을 비롯해 피어슨 출판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반갑습니다. 권서준이라고 합니다.”

“아이고, 작가님이 누구신지는 다 알고 있습니다. 오늘 모인 것도 작가님 덕분이니까요.”

존 대표가 인상 좋은 미소를 지으며 와인을 건넨다.

“출판사 대표가 아니라 한 명의 독자로서 의미가 깊은 작품이었습니다. 특히 부자 관계에 대해 돌아볼 수 있었어요. 덕분에 아버지와의 관계도 좀 좋아졌고요.”

존 대표가 솔직한 감상을 털어놓는다.

세상에서 가장 가깝지만 가장 먼 관계가 부자 사이. 그 어색한 사이가 내 작품으로 인해 나아졌다니 반가운 소리였다.

“맞습니다. 저 역시 지난주에 아버지랑 낚시 여행도 다녀왔거든요.”

해리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한다.

“십 년 넘게 어색한 사이였는데, 작가님 작품 덕에 후회하기 전에 다시 한번 노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단순히 감동적인 걸 넘어서 내 인생에 아버지가 어떤 존재인지, 나는 어떤 존재인지 고민해볼 수 있었거든요.”

존 대표, 그리고 해리.

피어슨 출판사의 관계자인 두 사람은 내 작품의 상업적인 성공이 아닌 독자로서의 감동을 나누고 있었다.

“이제 와서 고백하지만 사실 작가님의 작품 출판을 가장 강하게 반대했던 게 저였습니다. 여러 가지 위험 요소도 있었고, 동양 작가의 작품이 영국 내에서 성공을 이룰지도 미지수였으니까요. 하지만 만일 그랬다면 땅을 치고 후회할 뻔했네요.”

독자의 솔직한 감상.

작가로서 가장 뿌듯해지는 순간이었다.

“다시 한번 이런 좋은 책을 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진심을 담은 인사가 마음은 푸근하게 만든다.

하긴, 내가 창조한 세계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만큼 짜릿한 쾌감은 없었다.

‘이래서 글을 쓰는 거지.’

원래 글이라는 게 그랬다.

애초에 누군가 읽고 반응해 주지 않는다면 글을 쓰는 이유 자체가 희석되는 법이니까.

그 어느 때보다 큰 행복감이 물밀듯이 밀려오고 있었다.

***

엔플릭스 미국 본사.

크리스토퍼 올란 감독은 오전 내내 촬영팀과 촬영 일정을 의논했다.

이쪽에서는 이쪽대로 일정을 준비하고, 타이거 스튜디오 측에선 나름의 일정을 조율해 가장 나은 선택지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정 피디라는 사람, 생각보다 꼼꼼하군.’

일정 관리뿐만 아니라 올란 감독의 의도를 캐치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덕분에 굳이 한국에 가지 않아도 자잘한 일정들을 만족스럽게 정할 수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주에 뵙죠.”

정 피디와의 통화를 끝으로 모든 촬영 일정 조율이 끝이 났다.

‘이제 진짜 시작이군.’

올란 감독은 들뜬 마음을 음미하며 루카스 대표를 찾았다.

“어, 자네 왔나?”

루카스 감독이 손을 들어 환영한다.

“그래, 촬영 일정은 다 정해진 거야?”

“네, 계획대로만 진행되면 문제없을 거 같습니다.”

총 3개월에 걸친 촬영 일정이 빈틈없이 채워졌다.

“하아. 그래. 이번 작품 내가 얼마나 기대하는지 알지?”

루카스 대표는 평소보다 긴장한 얼굴이었다.

하긴, 이번 작품의 성공 여부가 엔플릭스의 주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믿어주세요. 느낌이 아주 좋습니다.”

올란 감독은 솔직한 생각을 드러냈다.

이전 작품들과 달리 불안하기보단 오히려 기대가 된다.

‘나도 모르게 들뜨게 되는군.’

모두 권서준 작가의 대본 때문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이 세계를 자기 손으로 실체화 시켜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권 작가님 소설이 출판됐다고 하던데...’

올란 감독은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꺼냈다.

“근데 자네 뭐 하는 거야?”

“아, 권 작가 차기작이 출판됐다기에 한 번 보고 있었습니다.”

“차기작? 그 사이에 소설을 썼다고?”

“언제 집필했는지는 모르지만 출판된 건 사실입니다.”

“하아, 정말 부지런한 사람인가 보군. 그래서 반응은 좀 괜찮은 거야?”

루카스 대표가 슬쩍 관심을 보인다.

“괜찮은 정도가 아니죠. 벌써부터 엄청나게 잘 된 거 같은데요?”

“...뭐?”

똑똑똑.

다급한 노크와 함께 대표실 문이 열린다.

“대, 대표님...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콘텐츠 책임자인 제프였다.

“왜? 무슨 일이야? 지금 미팅 중인 거 안 보여?”

“그게 너무 급한 일이라서요.”

평소와 다른 제프의 반응에 루카스 대표가 묻는다.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런던 북페어에서 엄청난 이슈를 끈 작품이 있는데 이건 꼭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2차 계약이 몰려서 빨리 계약하지 않으면 늦을 거 같아서요.”

“런던 북페어? 어떤 작품인데? 작가는 누구고?”

“그게, 「당신이 머물던 자리에」라고 권서준 작가님의 원작입니다.”

“...뭐?”

익숙한 이름에 루카스 대표가 순간 눈을 깜빡인다.

자연스럽게 루카스 대표의 눈이 올란 감독을 향한다.

“자네가 말한 권서준 작가의 소설이 설마...”

루카스 대표의 질문에 올란 감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네, 「당신이 머물던 자리에」 바로 그 작품입니다.”

“...”

루카스 대표의 눈이 순간 커진다.

***

늦은 오후.

나는 출국 전 호텔 로비에서 올리버 편집장과 고용수 부장을 만나 짧은 미팅을 가졌다.

엔플릭스 측에서 내 작품에 관심을 보인다는 소식.

“이거 반응이 엄청나네요.”

“그러게요. 엔플릭스에서 이렇게 빨리 연락이 올 줄은 몰랐는데...”

올리버 편집장도, 고 부장도 놀란 모양이었다.

연이은 2차 저작물 계약의 성사는 여러모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가장 큰 건 그동안 창작에 대한 타는 듯한 목마름이 해갈되는 기분이었다.

‘특히 글로벌 OTT 플랫폼인 엔플릭스와의 연이은 계약이 내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고.’

다만 지금 당장 계약할 생각은 없었다.

아직은 내 가치가 더 올라가야 할 필요가 있었다.

“당분간 2차 계약과 관련된 내용은 보류해주세요. 우선은 이번 소설 작품이 얼마나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지가 중요하니까요.”

고 부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고 부장은 역시 눈치가 빨랐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일이 착착 진행되는 상황.

에이전시가 있다는 건 여러모로 편한 부분이 있었다.

그때, 장현웅이 입을 연다.

“어? 주상진 편집장님이 메일을 보내셨는데?”

메일을 확인하던 장현웅이 눈을 크게 뜬다.

“너 귀국 언제 할 건지 물으신다.”

“그건 왜?”

“아마 와이즈 출판사에서 평론가와의 인터뷰를 기획한 모양인데?”

내가 평소 인터뷰를 하지 않는 건 주 편집장 역시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주 편집장의 생각도 이해할 수 있었다.

‘실무자 입장에선 이번 기회를 더 살리고 싶은 거겠지.’

한국과 유럽.

두 곳에서 이슈를 끌고 있는 작품의 가치를 더 끌어올리려는 계획이었다.

“어떻게 할까? 거절하는 게 낫겠지?”

장현웅이 묻는다.

평소라면 거절하는 게 맞았다.

그런데...

주 편집장이 보낸 평론가 이름이 어딘가 익숙하다.

‘박성규 교수?’

주 편집장이 나와 박 교수 사이를 알 리 없었다.

아마 평론가 중에 이름 있는 사람을 고른 거겠지.

“헐. 박 교수님이네?”

평론가 이름을 뒤늦게 확인한 장현웅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 사실이 내 구미를 끌었다.

‘한 번쯤 참교육이 필요하니까.’

갑자기 머리가 빠르게 돌아간다.

결론을 내기까지 몇 초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하자.”

“어? 정말? 인터뷰하시는 분이 박 교수님인데?”

예상하지 못한 대답인 듯 장현웅이 되묻는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 재미있을 거 같아.”

벌써부터 기대되는 박 교수의 반응.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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