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이 셰익스피어였다-154화 (154/203)

154. critic - 비평가, 평론가 (4)

154.

***

이른 아침.

잠실에 위치한 보교 문고.

“어후,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맞나?”

매대를 정리하던 보교 문교 직원 서 씨가 잠시 숨을 돌리며 투덜거렸다.

제목 : 당신이 머물던 자리에

출판사 : 와이즈

지은이 : 권서준

상사의 지시로 별도로 마련된 매대였다.

뭐 인기 작가의 작품은 따로 매대를 두어 판매를 유도하는 건 자주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양이었다.

무려 이백 권이 넘는 책을 한 곳에 쌓아둔 채 진열하라는 지시.

‘아무리 권서준 작가가 인기 있어도 이건 아니지 않나?’

국내 최고 인기 작가인 송영도 작가의 책도 이렇게 큰 자리를 차지한 적이 없었다. 그만큼 최근 출판시장은 차갑게 얼어붙은 상태였다.

그러나 까라면 까야 하는 게 직원의 숙명. 며칠 뒤에 다시 세팅할 게 예상되지만 어쩔 수 없이 매대 정리를 완료했다.

‘나도 모르겠다.’

정리를 마친 서 씨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창고로 향했다. 아직도 그의 정리를 기다리는 재고가 한가득 쌓여있기 때문이었다.

‘후. 여긴 봐도 봐도 엄청나네.’

창고엔 수천 권에 달하는 책들에 먼지가 쌓이고 있었다.

책 종류는 늘어 가는 데 갈수록 책 읽는 사람이 줄어들고, 판매량 역시 줄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다가 서점도 사라지는 건 아니겠지?’

서 씨는 10년 넘게 근무한 평생직장이 사라질까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서 씨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묵묵히 재고를 정리하고, 예쁘게 책을 진열하는 일뿐이었다.

서 씨는 점심 무렵이 되어서야 창고 정리를 마치고 다시 서점 안으로 돌아왔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바로 오전에 정리한 권서준 작가의 매대였다.

‘좀 팔렸으려나?’

걱정하는 마음을 품은 채 걸음을 옮기는데 서점 안의 분위기가 어딘가 낯설었다.

주말 낮.

사람들이 어느 정도 있을 시간이긴 했지만 오늘은 유독 많았다.

‘뭐지? 오늘 사인회라도 있나?’

그러나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떠오르는 일정이 없었다.

더 특이한 건 서점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한결같이 한 매대로 모인다는 점이었다.

그곳에 어떤 책이 있는지는 모를 수 없었다. 그 매대의 담당자가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서 씨는 바쁘게 이동하는 사람들에 밀리면서도 힘겹게 앞으로 나아갔다.

“잠시만요. 잠시만요.”

이렇게 사람이 모였다면 책 정리가 엉망이 될 게 분명했다.

상사에게 한 소리 듣기 전에 재빨리 정리해야 하는 게 서 씨의 일이었고.

잠시 뒤,

간신히 사람들을 헤집고 매대 앞에 섰다.

그런데,

서 씨의 눈앞엔 그의 예상과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새벽 내내 꾸몄던 매대는 텅 비어 있었다.

“...어?”

재고만 무려 200권이었던 책이 모두 팔리고 없었다.

그 사이 고객들의 대화가 어깨너머로 들린다.

“야, 여기 없대. 딴 서점 가봐야 할 거 같은데?”

“그래? 빨리 가자.”

품절 소식에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는 손님들의 모습이 보인다.

“...”

텅 비어버린 매대.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서 씨는 눈만 깜빡일 뿐이었다.

***

연이은 절판 사례.

비단 보교 문교의 풍경만은 아니었다.

권서준 작가의 책이 판매되는 전국 서점에서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인터넷 판매 역시 모두 품절된 상태.

사람들은 벌써부터 웃돈을 주며 중고 거래 요청을 하는 사례까지 있었다.

<피망 마켓>

[삽니다] 책 : 「당신이 머물던 자리에」

-빨리 읽고 싶어 미치겠습니다. 정가의 두 배 드릴 테니 꼭 연락 주세요.

[삽니다] 책 : 「당신이 머물던 자리에」

-오늘 동탄에서 직거래 가능하실 경우 추가금 드립니다. 연락 주세요.

기록에 가까운 품절 대란 사태.

발 빠른 기자들도 앞다퉈 이 내용을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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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서준 작가의 소설 「당신이 머물던 자리에」출판과 동시에 품절 대란]

드라마 이옥의 작가이자 연극 거장의 숨결로 유명한 권서준 작가의 차기작이 출판되자마자 품절 대란을 겪고 있다.

활황인 웹소설과 달리 최근 종이책 소설은 초판 인쇄 부수가 2,000부 내외로 위축된 상태고 이마저도 절판되는 경우가 드문 상태다. 그러나 현재 초반 인쇄 분량인 5,000부가 당일 매진됐으며 벌써부터 2쇄에 들어간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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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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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즈 출판사는 “권서준 작가의 작품에 대한 전화 문의가 하루에 많게는 2,000건 가까이 오고 있다”면서 “추가 인쇄 부분에 대해서는 빠른 시일 내에 공지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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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하하.”

오랜만에 와이즈 출판사 회장실에서 큰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거지, 이거야!”

정 회장이 들고 있던 신문을 내리며 또다시 호탕한 웃음을 터트린다.

권서준 작가의 계획은 정확히 맞아떨어졌고, 사람들의 관심이 치솟아 출판 첫날 초판 인쇄 매진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지금 추가 인쇄 요청하는 전화가 쇄도하고 있습니다.”

고무적인 기록에 보고하는 주상진 편집장의 목소리도 상기되었다.

이 대로면 2쇄, 3쇄, 쭉쭉 이어 나갈 수 있는 상황.

“오랜만에 기쁜 소식이군.”

“신바람이 절로 나네요. 역대 최단기, 최대 매출을 기록할 거 같습니다.”

떨리는 주 편집장의 목소리.

그만큼 부정적인 분석만 즐비한 출판 시장에 뜻하지 않은 호재였다.

“이러다가 덜컥 상이라도 수상하면 어떻게 될지 가늠이 안 되는군. 문학상 자체를 목표로 할 필요는 없겠지만 수상 작가가 나온다면 분명 판매량이 엄청나게 늘 테니까 말이야.”

“맞습니다. 더불어서 한국 문학을 알리는 계기가 될 건 분명하죠. 따지고 보면 터키와 일본 문학이 유럽의 관심을 끈 것도 그 나라에서 여러 문학상이 나왔기 때문이니까요.”

주 편집장의 말에 정 회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점점 힘을 잃고 있는 문학계에서 권서준 작가의 선전은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자연스럽게 뒤따른 매출의 증가.

출판사 회장으로써 기뻐할 일이었다.

그러나 정 회장이 이토록 즐거워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내가 제일 기쁜 건 사람들이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거야. 그것도 종이책을 말이지.’

한국 문학의 부흥.

정 회장이 말년까지 포기 못하는 유일한 꿈이 바로 그거 하나였다.

‘물론 바람은 벌써부터 일기 시작했지.’

지금은 산들바람에 불과하지만 정 회장은 느낄 수 있었다.

이 바람이 언젠가 전 세계를 휩쓸 거대한 폭풍이 될 것이라는 걸.

대한민국의 문학계를 지키는 거목의 가슴에 오랜만에 기대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

오늘 극단 사무실.

박성규 교수는 오랜만에 이곳을 찾았다.

“교수님 오셨어요?”

한 직원이 박 교수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넨다.

박 교수는 눈으로 인사를 받고는 사무실 안을 둘러봤다.

사무실을 지키던 직원들도 상당수 그만둔 상태.

사람과 희망으로 가득 찼던 사무실은 무거운 침묵만이 가득했다.

‘불과 몇 주 전과 완전 다른 분위기군.’

2, 3차 티케팅 오픈 결과에 따른 당연한 결과였다.

박 교수는 한숨을 내쉬며 대표실 문을 열었다.

“음.”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술 냄새와 담배냄새가 진동한다.

건너편엔 넋이 반쯤 나간 김 대표가 한 손에 담배를 든 채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봐 김 대표...”

박 교수가 부르자 그제야 김 대표가 고개를 든다.

“어? 오셨어요?”

덥수룩하게 자란 턱수염.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김 대표의 상태를 보여주는 듯했다.

“이 친구야, 이러고 있으면 어떡해? 이럴 때일수록 힘을 내야지.”

박 교수가 안타까운 듯 말했지만 김 대표는 비소를 지을 뿐이었다.

“제가 힘을 낸다고 망한 작품이 살아나면 몇 번이라도 힘을 내죠. 근데... 아시잖아요. 이미 끝났다는 거...”

자조적인 한숨과 함께 김 대표는 또다시 술잔을 기울인다.

그래.

작품 「가시리 가시리잇고」는 망했다.

그것도 아주 철저하게.

여기저기 끌어온 투자금이 컸던 만큼 실패에 따른 손실 역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후... 이대로라면 다음 달 공연은 힘들 거 같습니다.”

당장 다음 달 대관료도 지불하기 힘든 상태였다.

공연을 이어갈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라 하루빨리 접는 게 맞을 수도 있었다.

실패.

절대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 앞에 김 대표는 반폐인이 되고 말았다.

물론 박 교수가 더 이상 도와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하아... 적당히 마셔. 그러다 몸 상해.”

박 교수는 하나 마나 한 말을 하고는 이내 오늘 극단 건물을 빠져나왔다.

“어때요?”

박 교수를 기다리고 있던 제자 최민준이 묻는다.

“어떻긴, 말이 아니지. 하아.”

보조석에 탄 박 교수가 한숨을 내쉰다.

“아쉽네요. 우리 쪽 대본도 괜찮았는데...”

희곡 작가인 최민준 역시 아쉬움이 남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책으로 시선이 간다.

“근데, 넌 뭐 보고 있던 거야?”

“아, 서준이 소설이 나왔다고 해서요. 출판되자마자 절판되고 난리가 났는데, 다행히 출판사 쪽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구했거든요.”

소설도, 절판도 모두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그 자식은 그사이 소설까지 쓴 거야? 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지?”

“저도 놀라는 중이에요.

“뭐, 분명 엉망이겠지. 드라마 끝나고 거의 곧바로 뮤지컬에 들어갔어. 집필 시간이라고 해봐야 불과 한두 달 될까 말까라고. 그 시간에 소설 한 편이 가당키나 해?”

장르문학도 아니었다.

본인 역시 한때나마 글을 써봤기에 잘 알고 있었다.

“근데 잘 썼네요. 놀랍게도.”

최민준의 감탄.

그러나 박 교수는 인정할 수 없었다.

“한 번 직접 보시겠어요?”

최민준이 들고 있던 책을 건넨다.

“...”

박 교수는 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보나 마나 엉망일 게 분명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자신이 직접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요동쳤다.

“...”

결국 박 교수가 손을 뻗어 책을 움켜쥔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앉아 책을 펼쳤다.

한 장, 두 장, 세 장...

책장을 넘길수록 박 교수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서로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부자(父子)의 서사.

그 깊고, 애잔한 심상이 서서히 박 교수를 책 속으로 끌어당겼다.

“하아... 이, 이게...”

잠시 뒤,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온 박 교수의 감탄이 차 안에 흐르기 시작했다.

***

이틀 뒤.

나는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다양한 국적의 출판업 관계자들과 미팅을 가졌다.

쏟아지는 일정에 하룻저녁에만 세 곳 넘게 만나는 날도 있었다.

모두 내 작품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보여주는 방증.

하나같이 즐겁고 의미 있는 모임이었다.

“야, 서준아. 권서준!”

이른 아침부터 흔들어 깨우는 장현웅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전날 밤늦게까지 마신 와인 때문에 얕은 숙취가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들었다.

“아침부터 웬 호들갑이야?”

나는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

“이것 좀 봐.”

장현웅은 허겁지겁 휴대폰을 내밀었다.

작은 스마트폰 화면엔 보교 문교 베스트셀러 목록이 보이고 있었다.

내 차기작에 대한 객관적 성적표.

[보교문교 인터넷 일간 베스트셀러]

1. 당신이 머물던 자리에 / 권서준

2. 화인 / 최수지

3. 슬롯머신 / 진도영

4. 부동산 기초 수업 / 정선생

5. 올해의 작가상 수상 작품집 / 공수용 등

쟁쟁한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1위는 바로 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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