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이 셰익스피어였다-152화 (152/203)

152. critic - 비평가, 평론가 (2)

152.

***

올리버 편집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제야 끝이 났군.”

가장 중요했던 행사가 무사히 끝나자 긴장감이 풀리면서 나른함이 밀려온다.

‘오늘의 작가’ 행사로 인한 효과는 곧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벌써부터 책을 구매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편집장으로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바로 지금이었다.

올리버 편집장은 자연스럽게 숨을 고르며 부스 앞에 선다.

지금도 행사장 안에선 전 세계에서 온 수많은 에이전트들이 작품에 대한 국제 권리를 구매하기 위해 정신없이 미팅하는 중이었다.

모두 옥석을 가리기 위해 작품을 읽고, 분석하고, 회의를 진행하느라 정신이 없는 모습.

그러나 그들을 지켜보는 올리버 편집장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진짜 알짜배기는 그곳에 있지 않았으니까.’

올리버 편집장은 고개를 돌려 부스를 채운 권서준 작가의 책을 바라본다.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를 다룬 비현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인 이야기가 저 책 한 권에 담겨있었다.

“올리버 편집장님 오랜만입니다.”

말쑥한 외모의 한 남자가 반갑게 인사를 하며 다가온다.

스웨덴 출판사의 에릭 대표였다.

“오랜만이네요, 에릭 대표님. 올해도 어김없이 이곳에서 만나 뵙는군요.”

“물론이죠. 유럽에서 출판업을 한다는 사람이 런던 북페어를 참석하지 않는다는 건 상상할 수조차 없으니까요.”

오랜만에 만나는 에릭 대표와 인사를 나누며 근황을 나눴다.

“참, 지난번 추천해주신 작품 아주 좋았습니다. 덕분에 유의미한 매출 상승도 이뤄냈고요.”

스웨덴 쪽에서 꽤 성공을 거둔 웨일즈 출신 작가의 작품 얘기였다.

“아마, 이번에는 더 좋은 작품을 추천해 드릴 수 있을 거 같네요.”

“그게 정말인가요?”

“물론입니다. 이 작품입니다.”

올리버 편집장이 진열된 권서준 작가의 책을 두드리며 답한다.

“이 작품이요?”

“네.”

자신만만한 올리버 편집장의 대답에 에릭 대표의 얼굴에도 기대감이 떠오른다.

그 순간 행사 종료와 함께 이쪽으로 몰려드는 에이전트들이 보인다.

‘이제 시작이군.’

올리버 편집장이 미소를 짓는다.

잠시 뒤, 권서준 작가의 작품 「당신이 머물던 자리에」의 유통 계약이 시작됐다.

***

행사가 끝난 뒤, 나는 다양한 해외 신문사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대부분 런던 도서전 이전에 책을 출간하는데 오늘 하신 이유는 뭔가요?”

“그전에 책을 출간했다면 아마 당신들이 몰랐을 테니까요.”

동양 작가에 대한 무관심을 지적하는 농담에 기자들이 웃음을 터트린다.

서너 개의 질문을 더 받은 뒤 나는 자연스럽게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고생하셨습니다.”

기다리고 있던 윤석훈 기자가 미소를 지은 채 다가온다.

“감사합니다. 참, 반응은 어땠어?”

내가 묻자 장현웅이 엄지를 치켜세운다.

“좋았지. 내가 영어를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표정하고 분위기만 봐도 알겠더라.”

역시 눈치 빠른 녀석이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첫날 행사가 모두 마무리되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피어슨 출판사 부스로 향했다.

주변을 구경하며 걸음을 옮기는데 유독 많은 사람들이 모인 부스가 눈에 들어온다.

일명 권서준 부스.

피어슨 출판사에서 특별히 만든 부스였다.

장현웅이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어? 서, 서준아, 저것 좀 봐.”

전 세계의 책들이 모인 도서전.

적어도 오늘만큼은 내 작품이 바로 주인공이었다.

“엄청나네요.”

옆에 있던 윤 기자도 감탄을 더 한다.

감탄사를 터트리기 전에 이미 카메라를 꺼내 찍고 있는 걸 보니 베테랑 기자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놀라긴 이르죠.”

두 사람이 감탄하는 사이 올리버 편집장이 다가왔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더 놀랄 일이 있다는 뜻인가요?”

장현웅이 더듬거리며 영어로 묻자 올리버 편집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보세요. 이게 오늘 작가님의 작품을 계약한 나라입니다.”

올리버 편집장의 손에 오늘 하루 동안 계약한 출판사 목록이 보인다.

영국은 당연하고, 독일, 스페인, 프랑스까지 유럽 여러 나라의 출판사들이 내 책을 계약했다.

“헐. 이대로라면 이미 성공한 거나 다름없네요.”

“성공이라는 말로 부족하죠. 남은 이틀은 더 기대되는 상황이고요.”

올리버 편집장 얼굴에서 숨길 수 없는 자신감이 느껴진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오늘의 작가 추천과 무명 작가의 별도 부스 설치 등등 힘을 많이 써 준 올리버 편집장의 도움이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성과였다.

그간의 고생을 알기에 나는 진심을 담아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런 말씀 마세요. 말씀드렸지만 저희 역시 이득을 보기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제 안목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가장 행복하기도 하고요.”

뿌듯해하는 올리버 편집장의 기분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참, 성공적으로 행사도 마쳤겠다, 오늘 저녁에 저희 집에서 작은 파티를 열까 하는데 작가님 스케줄 괜찮으시겠어요?”

내가 주인공인 파티에 불참할 순 없었다.

“물론입니다. 당연히 참석해야죠.”

“고맙습니다. 그러면 정성껏 준비하겠습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모든 사람은 책의 판매, 그리고 계약 건수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 가장 기억 남는 건 한 사람이었다.

바로 부커 재단의 심사위원장인 로건.

부커상은 영어권 출판업자들의 추천을 받은 소설을 대상으로 평론가와 소설가, 학자로 구성된 선정위원회가 선정한다.

그리고 그 위원회의 핵심적인 인물이 바로 로건 위원장이었다.

그가 내 인터뷰를 듣기 위해 이번 행사에 직접 찾아왔다.

‘이거 어쩌면 좋을 기회가 될지도.’

그렇게 기분 좋은 기대감을 남긴 채 런던 도서전의 첫날 공식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

런던에 위치한 고급 주택.

첫날 일정을 마친 우리는 올리버 편집장이 마련한 축하 파티를 즐겼다.

“부족하지만 마음껏 즐겨 주십시오.”

말과 달리 긴 테이블 위에 영국식 요리가 가득 차 있었다.

“와, 부인의 요리 솜씨가 엄청나네요.”

“정말 맛있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우리는 와인과 함께 올리버 편집장의 아내가 준비한 만찬을 기분 좋게 즐겼다.

맛있는 음식.

그리고 적당히 오르는 취기까지.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작가님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때 그 창조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구성도 그렇고, 이야기의 전개까지 워낙 창의적이라 놀라움의 연속이었거든요.”

“맞아요. 저도 감탄만 나오더군요.”

올리버 편집장의 말에 맞장구를 치던 윤 기자가 자연스럽게 질문을 이어간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님도 여러 작품을 쓰셨잖아요? 창조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나는 와인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창조라는 건 결핍이 있을 때 인간의 사유 과정을 통해 무언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달리 말하면 결핍이 있는 존재여야 창조 행위를 한다는 거죠. 배가 고파야 글이 나온다는 말도 결국 맥락이 비슷한 거고요. 결핍과 아픔이 없다면 인간은 아마 아무런 창조 활동도 하지 않을지도 모르죠.”

윤 기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결핍이 창조의 원동력이었다... 그러면 혹시 작가님의 경우 그 원동력이 된 결핍은 무엇이었나요?”

자연스럽게 질문을 이어가는 윤 기자.

베테랑 기자답게 질문이 예리했다.

“저 역시 수없는 결핍을 토대로 창조 행위를 이어가고 있죠. 어린 시절 겪은 아버지의 부재와 그 밖에 상처들은 제 작품 세계에 중요한 근간이 되었고요. 물론 아직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결핍들은 수많은 작품을 통해 차차 발산하게 될 겁니다.”

자연스럽게 전생과 현생을 살면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결핍의 기억이 떠오른다.

특히 그 시절, 가족의 생계를 이을 수 없는 절박함에 런던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떠돌이의 삶.

그리고 런던에 도착해서는 고작 동전 몇 닢에 원고를 팔며 무대에 서고 연기를 했던 삶은 내가 창작 활동을 해야만 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삶을 즐기고, 만끽할 여유 따윈 없었지. 그저 살아가기 위해 내 삶의 결핍을 채워나가기 위해 쓰고, 또 썼을 뿐이니까.’

그래.

생계 수단으로써(living) 나는 창조를 했다.

그러나 살아가기 위한 창조는 결국 또 다른 것의 결핍을 만들어 냈다.

생계(living)를 위한 삶(life)이 아니라,

보다 온전한 삶(life)을 위한 수단을 고민해야 했지만 그걸 말년에서야 깨달았다.

‘내 생명의 부재를 목도하는 그 순간에야 깨달은 거지.’

결국 아들의 죽음, 가족의 붕괴조차 막지 못한 채 나는 그렇게 서서히 무너져 내렸으니까.

이번 삶을 달라야 했다.

어리석은 선민의식을 버리고,

시장 논리에 국한된 예술의 허울도 벗어버리고,

오직 인간의 삶을 위한 작품을 쓰고 싶었다.

‘그래야 세상을 바꿀 수 있어.’

모든 사람이 사는 이야기.

그게 내가 꿈꾸는 세상이었다.

물론 지금 당장 세상을 바꾸기란 어려웠다.

그러나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는 사람.

그저 평생토록 써 내려가는 작품을 통해 설명하고 설득해야 했다.

‘그게 작가의 삶이니까.’

나는 와인을 삼켰다.

풍미 가득한 와인의 맛이 내 기분을 조금 더 안락하게 만들었다.

***

뜨거웠던 런던 도서전 첫째 날.

단연코 주목받은 작품은 권서준 작가의 「당신이 머물던 자리에」였다.

그 모든 과정을 직접 목도한 윤 기자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권서준 작가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국내에서도 유명하지만 해외, 그것도 영미 문학의 본토라 할 수 있는 영국에서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문학계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 이거야말로 국위선양이었다.

게다가 지금 즐기는 이 파티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나같이 영국 문학계에서 유명 인사들이 모여 권서준 작가의 출판을 축하해주고 있었다.

‘정말 대단하군.’

특히 감탄했던 부분은 바로 오늘 있었던 ‘오늘의 작가’ 인터뷰 순간이었다.

엄청나게 사람들이 모인 자리.

득이 될 수도 있고, 실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권서준 작가는 긴장하는 기색이 없었다.

게다가 빌헬름 기자의 날카로운 질문 역시 현명하게 받아치며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어냈다.

‘어제 말한 한국 문학을 위한 키 플레이어가 바로 자신이었던 거야.’

지켜볼수록 감탄만 나오는 사람이었다.

윤 기자는 파티 중간중간 휴대폰으로 권서준 작가의 인터뷰 기사 초안을 정리했다.

타다닥 타다닥.

열심히 기사를 쓰고 있는데 권서준이 슬쩍 다가온다.

“영국까지 오셨는데 특별한 기삿거리가 없어서 아쉽네요.”

“아이고 작가님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국위 선양하는 작가님의 모습 자체가 엄청난 특종인데...”

솔직한 마음이었다.

내용도 좋고, 성적도 좋고, 한마디 한마디에서 마치 거장의 품격이 느껴지는 인터뷰였다.

다만 아쉬운 점도 하나 있었다.

‘어그로가 없는 건 좀 아쉽긴 해.’

결정적인 한 방이 없는 게 기자로서 좀 아쉽기는 했다.

찌이잉.

그런데 그때, 현관 벨 소리가 들린다.

“아, 이제 마지막 손님이 오셨나 보네요.”

올리버 편집장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현관 쪽으로 향한다.

“오늘 작가님의 출판을 축하하기 위해 꼭 참석하고 싶다는 분이 계셨거든요.”

잠시 뒤,

키가 훤칠하고 고수머리를 가진 남자가 안으로 들어온다.

“이거 죄송합니다. 라디오 녹화가 있어서 좀 늦었습니다.”

순간 윤 기자의 눈이 순간 커진다.

‘저, 저 사람은...’

테이블을 둘러싼 사람들 역시 놀란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베네딕트. C

헐리웃 스타의 등장이었다.

“벤, 요즘 공연 때문에 바쁜 거 아니었어요?”

“그래도 친구를 위한 파티에 제가 빠질 수 없죠.”

“...”

베네딕트와 권서준 작가의 대화를 듣고 있던 윤 기자의 눈이 또 한 번 커진다.

‘치, 친구라고?’

윤 기자는 믿기지 않았다.

헐리웃 스타가 친구라고 서슴없이 말하며 찾아오는 사람.

그게 바로 권서준이었다.

새삼 권서준이라는 작가의 모습이 커 보인다.

“윤 기자님, 이 정도면 특종이 될까요?”

옆에서 지켜보던 장현웅이 넌지시 묻는다.

굳이 대답할 필요도 없었다.

이건 단순히 기사로써의 특종뿐만 아니라 윤 기자 인생의 특종이었으니까.

‘내가 한 테이블에서 베네딕트와 식사를 한다니...’

윤 기자는 벅찬 감동을 애써 누르며 서둘러 카메라를 꺼냈다. 이 순간을 담는 게 바로 기자의 본분이기 때문이었다.

“실례가 아니라면 단체 사진 한 장 찍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좋은 추억이 되겠네요.”

출판사 관계자를 포함해 파티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한쪽 벽에 나란히 선다.

찰칵.

사진을 찍은 윤 기자가 다시 한번 이미지를 확인한다.

베네딕트, 올리버 편집장, 출판계의 유명 인사들.

그리고 그 중심엔 권서준 작가가 있었다.

‘하아, 이거야말로 특종이군.’

윤 기자는 신들린 듯 타이핑을 친다.

바로 오늘 특종이 될 기사의 초고였다.

[문학 한류의 시작, 그 서막이 오르다.]

느끼는 감동의 크기에 비하면 더없이 짧은 제목.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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