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이 셰익스피어였다-151화 (151/203)

151. critic - 비평가, 평론가 (1)

151.

***

런던 도서전 오늘의 작가 행사장.

5분 정도 일찍 도착한 로건 위원장은 팔짱을 낀 채 자연스럽게 손에 들린 책으로 시선을 옮긴다.

위원 한 명당 한 해 150여 권에 달하는 책을 읽고 선정하는 최종 후보.

그중에서 단연 압도적인 작품성을 보이는 작품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

인류 보편적 공감을 일으키는 소재였다.

그래서 뻔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뻔하지 않은 전개로 스토리를 이어갔다.

나이가 환갑을 바라보지만 자신 역시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누군가의 아버지였기에 두 주인공 모두에게 이입할 수 있었다.

‘단 한 글자도 허투루 쓴 게 없었어...’

단순히 경제적으로 썼다는 의미를 넘어서 또 다른 세계를 창조해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이건 너무 비현실적이야... 어떻게 이렇게 완벽한 작품이 존재할 수 있는 거지?’

이런 작품을 본 게 얼마 만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의 감동이었다.

재미와 감동.

서사와 구조, 그리고 상징성까지.

작품성과 관련된 모든 조건을 갖춘 유일한 작품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런 게 진짜 소설이었다.

‘하아, 권서준 작가가 대단한 걸까? 아니면 내 생각보다 한국 문학의 수준이 높은 걸까?’

행사 시간이 다가올수록 로건 위원장의 표정이 진지해진다.

“어, 위원장님이 여긴 어쩐 일이세요?”

로건 위원장을 알아본 한 관계자가 다가온다.

“내가 여기 올 일이야 하나지.”

“아, 후보 선정 작업 때문에 오셨구나. 아, 근데 혹시 저 작가도 후보가 되는 건 아니죠?”

부정적인 뉘앙스를 띄는 관계자의 말.

자연스럽게 로건 위원장의 시선이 향한다.

“그건 왜 묻는 거지?”

“오늘 판매량을 봤는데 계약도 거의 안 된 모양이에요. 올리버 편집장이 그렇게 고집 부려서 오늘의 작가 행사에 올리긴 했는데 이거 크게 낭패 보게 생겼거든요.”

입으로는 혀를 차지만 관계자의 얼굴엔 고소하다는 미소가 떠오른다. 지켜보던 로건 위원장이 다시 물었다.

“자네는 저 작가의 작품을 읽어봤나?”

“아, 그건 아니지만 한국 출신 작가가 번역가도 없이 쓴 작품이 제대로 나올 리가 없죠. 뭐 연극 대본은 좀 괜찮게 쓴 거 같은데 소설은 완전 다른 분야잖아요. 솔직히 무리수라고 봅니다.”

달리 말하면 저 동양 친구는 후보 자격이 없으니 신경 끄는 게 좋다는 소리였다.

‘과연 그럴까?’

로건 위원장은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정면을 바라본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한 동양 청년이 자리에 앉고 있었다.

스태프들의 도움으로 이어 마이크를 끼며 인터뷰를 준비하는 모습.

‘저 사람이 권서준 작가인가 보군.’

키가 크고, 뚜렷한 이목구비.

그러나 그보다 눈길을 끄는 건 그의 침착함이었다. 풍기는 기운 자체가 다른 작가들과는 달랐다.

지켜보던 관계자가 한쪽 입꼬리를 슬쩍 올린다.

“허허, 아무리 노련한 작가도 이런 자리에 서면 긴장하는 법인데, 젊은 친구라 그런지 겁이 없네요.”

“단순히 겁이 없는 걸까?”

“...네?”

되묻는 관계자를 보며 로건 위원장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감인지, 단순한 객기인지는 조금만 지나면 모두 알 수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

수많은 인파 속에서 행사가 진행된다.

인터뷰를 맡은 잭은 잠시 호흡을 고르며 권서준 작가를 바라봤다.

‘이 사람이 그 소설을 쓴 사람이라니 믿기지 않는군.’

많이 봐야 20대 중반쯤 됐을까 싶은 외모. 동양인이 특히 어려 보인다고는 하지만 프로필에 적힌 나이도 서른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여느 작가보다 깊고 시야가 넓었다.

“이번 런던 도서전의 주제는 디지털 세상과 책입니다. 혹시 이 주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잠시 둘러봤는데 특별히 책과 디지털의 결합 요소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과거에는 단순히 책을 읽는 행위를 독서라고 지칭했다면 이제는 다양한 디바이스를 통해 접근 방식이 달라졌죠. 기술의 발전과 함께 당연한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책을 넘어서 다양한 형태로 독자들을 만나려는 시도는 작가 입장에서 오히려 환영할만한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유창한 영국식 발음이었다.

발음뿐만 아니라 선택하는 어휘와 문장 구조까지 훌륭했다.

“다만 디지털 문명이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는 하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럴수록 사람에 대한 그리움, 실제로 만져지는 감각에 대한 욕구 역시 강해지는 게 사실입니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결국 아날로그적인 감성의 소중함은 창작가의 입장에서 놓칠 수 없는 가치이기도 하고요.”

단순히 영국식 영어를 구사하는 게 아닌 영국인들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면 할 수 없는 단어를 사용했다.

속으로 감탄하던 잭은 이내 다음 작품으로 질문을 이어간다.

“그럼 조금 개인적인 질문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최근 크리스토퍼 말로의 일대기를 담은 작가님의 연극이 연일 화제입니다. 그 안에 담겨있는 지극히 영국적인 정서에 모두 감탄하고 말았는데요. 특별한 노하우가 있었을까요?”

“문학적 정서는 결국 문화 배경 속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익숙한 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 민족과 국가만이 이해할 수 있는 관용적인 정서들에 의해 형성되니까요. 하지만 그 문화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군요. 그럼 혹시 영국의 문화를 깊이 이해하는 데 특별히 도움이 된 부분이 있을까요?”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큰 영향을 끼쳤죠. 물론 단순히 작품을 본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작품을 토대로 다양한 배경과 영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사실 크리스토퍼 말로에 대한 작품도 그러한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고요.”

옆에서 듣던 잭은 고개를 끄덕였다.

「거장의 숨결」도, 이번 작품도 그저 우연히 나온 결과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답변이었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군.’

감탄이 절로 나오는 대답.

그러나 모두 잭처럼 호의적인 시선은 아니었다.

한 출판 관계자가 질문을 위해 손을 들었다.

“네, 저분께 마이크를 주시죠.”

잭이 자연스럽게 진행했다.

잠시 뒤, 마이크를 받은 독일 신문사 기자가 입을 연다.

“빌헬름 신문사의 칼 기자입니다. 작가님의 따끈따끈한 신작 소설에 대해서 묻겠습니다. 이번 소설은 번역가도 없이 본인이 집필한 작품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느 영국 출신의 작가보다 풍미가 넘치는 문체를 사용하셨는데요.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질문을 들은 잭의 미간이 순간 찌푸려진다.

‘저런...’

언뜻 보면 예의 있어 보이는 질문.

그러나 동양인은 영국인만큼 영어를 잘할 리 없다는 바탕에서 나온 질문이었다.

“흠, 흠.”

그 저의를 알아차린 몇몇 사람들이 불편한 속내를 드러낸다.

런던 북페어.

양대 북페어 중 하나라고 하지만 은연중에 풍기는 동양 작가에 대한 배척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더없이 난처한 질문.

그러나 권서준은 태연한 얼굴로 입을 연다.

“좀 전에 말씀드린 타국의 정서를 이해하는 방법처럼 영문으로 작품을 쓰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언어 역시 문화적인 배경을 이해한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습득할 수 있으니까요. 다만 질문하신 저의가 궁금하네요.”

권서준의 말에 칼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답한다.

“아, 뭐 별 뜻은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아시아 쪽 작품은 번역 단계에서부터 엉망이라 독자들의 외면을 받는 게 사실이거든요. 당연히 아시아 문학에 대한 평가도 낮은 편이고요. 그런 의미에서 드린 말씀입니다.”

배타적이면서 동양 문학에 대해 낮춰보는 무의식적인 평가가 담긴 발언.

권서준이 천천히 입을 연다.

“번역이 아쉬워서 아시아 문학이 무시를 받는다는 말씀이신 거 같은데, 제가 정확히 이해했나요?”

“뭐, 비슷합니다.”

칼은 조소를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 순간,

권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난다.

“혹시 그 반대의 경우는 생각해보신 적 없습니까?”

“네?”

“영어가 타 언어의 깊은 감성을 다 담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

질문한 칼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다 놀라서 쳐다본다.

“대체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영어는 인류의 생각을 가장 완벽하게 전달하는 언어가 아닙니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언어일 뿐이죠. 그런데도 여전히 언어의 차이를 문학 수준의 차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더군요.”

예의를 갖췄지만 강한 표현이었다.

“그, 그건...”

말문이 막힌 칼의 얼굴이 순간 붉어진다.

그러나 권서준의 말을 끝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번역이 중요하다는 건 저 역시 동의합니다. 활자 문학은 기본적으로 함축과 은유, 사상과 해학을 담게 되니까요. 이게 바로 문학의 본연의 가치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언어의 차이로 인해 그 뜻이 다 전달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영어라는 틀이 타 언어의 깊은 뜻을 다 담을 수 없을 때가 있기 때문이죠. 그러니 부디 단순히 언어적 차이에서 오는 한계를 문학적 우월감으로 착각하시는 우를 범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예의를 지키는 선에서 건네는 딱 부러지는 권고였다.

“...”

할 말을 잃은 칼은 얼굴을 잔뜩 붉힌 채 슬그머니 자리에 앉는다.

‘하, 정말이지 고급스러운 디스군.’

지켜보던 잭은 혀를 내두른다.

그러나 아직 권서준의 말을 끝나지 않았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작품에 제가 담고자 했던 표현을 절반도 담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언어 차이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표현의 손실 때문이죠. 한글을 아시는 분이 계신다면 좀 더 풍미 넘치는 작품을 전해드릴 수 있었을 텐데, 그게 못내 아쉽군요.”

작품과 모국어에 대한 강한 확신.

사람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그의 작품으로 이어진다.

‘저 작가는 대체 얼마나 자신 있기에 저런 말을 하는 걸까?’

행사장의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천천히 움직인다.

아주 자연스럽게 부스에 진열된 그의 책으로 향하고 있었다.

***

잠시 뒤,

인터뷰는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모든 과정을 지켜본 로건 위원장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동양 작가에 대한 차별적 발언.

그에 대한 권서준 작가의 대처는 호기로웠고, 또 깔끔했다.

‘보통 사람이 아니군. 게다가 발언 하나하나에 다 의도가 있었어.’

그 결과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권서준 작가의 부스 앞엔 어느새 그의 책을 사려는 사람들도 긴 줄을 이루고 있었다.

“아까랑 완전 다른 분위기네요.”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온 잭이 다가와 말한다.

“그러게 말이네.”

로건 위원장은 책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생각할수록 놀라운 작품 아닌가요?”

로건 위원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더 놀라운 건 이게 언어적 한계로 인해 그 깊은 뜻이 다 담기지 않았다는 점이지.”

“이거 우리가 한국어를 배워야 하는 건가요?”

“그러게. 궁금하긴 하군. 권 작가가 표현한 작품 세계를 온전히 음미한다는 게 어떤 느낌일지...”

로건 위원장 역시 맛보고 싶은 부분이었다.

지금도 거대한 바다에 빠진 것처럼 젖어 들게 만드는 심상인데, 그보다 더 깊고, 세밀한 심상이 있다니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 한글 공부를 시작해도 어렵겠지?”

“한글 속담에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 있답니다.”

잭의 말에 로건 위원장이 피식 웃는다.

그러다가 이내 숨을 길게 내쉰다.

“천 리 길을 떠나기 전에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일부터 처리하는 게 좋겠군.”

로건 위원장이 슬쩍 잭을 보며 말을 잇는다.

“아무래도 마지막 후보는 변경되어야 할 거 같은데?”

주어도 없는 문장.

그러나 잭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며칠 만에 잭이 미소를 짓는다.

드디어 두 사람의 의견이 하나가 되는 순간.

그날 오후.

부커 1차 후보 명단에 새로운 작가의 이름이 한 명 추가되었다.

그리고 이 후보 명단은 최종적으로 부커 재단 이사장에게 다이렉트로 보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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