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 unreal - 비현실적인 (2)
147.
***
출국 당일.
막 사무실을 떠나려는데 다급히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윤석훈 기자였다.
-작가님, 이번 작가님의 런던 북페어 일정을 동행 취재해도 될까요? 매일 연예 신문사 최초로 작가님에 대한 특집 기사를 준비하고 있거든요.
동행 취재하고 싶다는 간절한 윤 기자의 요청.
내 입장에선 알아서 홍보해주는 기자와 함께 일정을 참여하는 게 나쁠 리 없었다.
“좋습니다. 함께 하시죠.”
나는 기꺼이 허락해줬다.
이번 취재의 의미에 대해 길게 설명하던 윤 기자의 목소리가 이내 격앙된다.
-하아. 갑작스러우셨을 텐데, 정말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그럼 히드로 공항에서 뵙겠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고 장현웅과 함께 공항으로 향했다.
40분 뒤.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출국장을 지나 자연스럽게 퍼스트 클래스 전용 라운지로 향했다.
피어슨 출판사의 선물 덕에 처음 경험해보는 호사였다.
“환영합니다. 고객님.”
상주 직원이 반갑게 인사를 하며 우리를 맞이한다. 자연스럽게 우리의 여권을 건네받고는 체크인을 도와주고, 짐까지 부쳐줬다.
“와... 퍼스트 클래스를 괜히 타는 게 아니구나.”
처음 받아보는 서비스에 장현웅은 연신 감탄을 터트렸다.
나는 직원이 가져다준 웰컴 드링크를 가볍게 마시며 잠시 자리에 앉아 쉬웠다.
간단한 요깃거리와 함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은 다른 곳과 달리 사람이 거의 없어 조용한 분위기였다.
“식사하시겠습니까? 한식, 중식, 양식 원하는 모두 메뉴 가능하십니다.”
나는 배가 고프지 않아 와인 한 잔을 주문했다. 오랜 비행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적당한 알코올만큼 몸의 피로를 풀어줄 수 있는 것도 없으니까.
그 사이 신기한 듯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던 장현웅이 돌아온다. 두 손에는 하겐즈다 아이스크림 두 개가 들려있었다.
“야, 여기 하겐즈다가 무한이야. 대박이지?”
퍼스트클래스 항공권 가격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아이스크림 가격이지만 장현웅의 얼굴에선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오른다.
하긴, 행복이란 엄청 거대하고 큰 게 아니었다. 손안에 들어오는 이 작은 아이스크림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 질 수 있는 게 사람이었다.
나는 달달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런던 도서전 일정을 떠올렸다.
내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도서전 첫째 날 잡힌 ‘오늘의 작가’ 순서였다.
영미권에서는 무명이나 다름없는 동양 작가. 게다가 이번 소설 역시 북페어 일정에 맞춰 출판되는 탓에 내 작품을 접한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도 당당히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한 가지뿐이었다.
‘올리버 편집장님이 힘을 많이 써준 거야.’
어렵게 마련한 자리인 만큼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물론 내 작품과 앞으로의 내 계획을 위해서였다.
***
런던 올림피아 전시장.
도서전을 하루 앞둔 이곳은 막바지 행사 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그중에서 끝까지 분주한 곳은 다름 아닌 피어슨 출판사 부스였다.
“여기 판넬 좀 잘해봐. 저 폰트도 색깔 좀 바꾸고.”
매년 참가하는 피어슨 출판사지만 올해만큼은 특별했다. 모든 행사 일정을 실무자가 아닌 올리버 편집장이 직접 나서서 준비했다는 점이었다.
특히 이번엔 종합 부스 외에 별도로 부스 하나를 설치했는데, 이 부스의 정체가 다른 출판사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른바 권서준 작가 부스.
작가 한 명을 위해 따로 설치한 부스였다.
누군가는 과하다 말했지만 올리버 편집장은 강하게 어필했다.
‘이 정도로도 솔직히 부족합니다. 권서준 작가야말로 이번 도서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가 될 테니까요.’
확신에 찬 올리버 편집장의 주장에 결국 별도의 부스가 설치된 것이었다.
“어? 저 사진 속 남자가 오늘의 작가로 선정된 그 작가야?”
한참 마무리 작업을 진행하는데 지나가던 타 출판사 직원의 대화가 들린다.
“응. 그럴걸. 혹시 아는 얼굴이야?”
“아니, 완전 처음 보는데?”
출판 관계자의 입장에서 작가들의 프로필 관리는 무엇보다 중요했다. 다양한 수상 이력이 있는 작가일수록 관계자의 주목을 끌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수상 이력도 없고, 노벨 문학상도 받지 못한 나라의 무명 작가에 대한 관심은 빠르게 식었다.
“저러다가 피어슨 측에서 민망해지는 거 아닌가 몰라?”
“뭐 우리가 거기까지 신경 쓸 이유가 있어? 우리 작품이나 계약 잘하면 되지.”
지나가던 사람들은 무명작가에 집중하는 올리버 편집장의 선택을 이해 못하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신경 쓸 건 없었다.
모든 건 확실한 근거를 가진 계획이었으니까.
‘권 작가의 소설을 한 번이라도 읽어본다면 주목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니까.’
영국 내에서 크게 성공 중인 연극 「거장의 숨결」에 비해 권서준 작가는 아직 그 이름을 널리 알리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도 내일이면 달라질 테지만.’
천재 작가를 알아본 편집장.
그 일화의 주인공이 자신이 될 수 있었다.
‘내일 보자고. 그때도 지금처럼 얘기하는지.’
올리버 편집장은 오히려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벌써부터 내일이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
늦은 오후.
런던 히드로 공항.
우리는 열두시간이 넘는 비행을 마치고 드디어 영국 땅에 발을 디뎠다.
“이야, 내가 런던에 또 오게 되다니. 그것도 퍼스트 클래스를 타고. 다 네 덕분이다.”
장현웅은 여독도 잊은 채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그러다가 막 출국장을 나오자 두 어깨를 쓰다듬는다.
“어후, 근데 제법 쌀쌀하네?”
어깨를 움츠리는 장현웅의 말처럼 오랜만에 찾은 영국의 날씨는 제법 쌀쌀했다.
평균 기온 6도 내외.
게다가 추적추적 비까지 내려 한국보다 조금 더 추운 날씨에 우리는 외투를 걸친 채 입국 심사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작가님! 권서준 작가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니 윤 기자의 모습이 보인다.
“이렇게 동행 취재를 허락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첫 해외 출장이라 그런지 윤 기자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저야 윤 기자님께서 잘 써주실 테니까 오히려 도움이 되죠. 다만, 특종 거리가 있어야 할 텐데 그게 걱정이네요.”
내 말에 윤 기자가 손사래를 친다.
“아이고, 그런 염려는 하지 마십시오. 요즘 작가님에 대한 기사는 올리기만 해도 특종이 되니까요.”
물론 과장은 아니었다.
윤 기자가 첫 해외 출장을 올 수 있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고.
우리는 대화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공항을 빠져나왔다.
“도서전 일정은 내일부터 시작이죠?”
“네, 아침 일찍 출발할 예정입니다. 도서전 분위기도 좀 파악하면 좋을 거 같아서요.”
“그럼, 두 분은 바로 숙소로 들어가시는 건가요?”
윤 기자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전에 꼭 들를 곳이 있어서요.”
영국에 오자마자 하고 싶었던 일이 하나 있었다.
나조차 기대되는 일.
바로, 베네딕트의 연극 관람이었다.
***
포스 극단 전용 극장.
은은한 조명과 함께 커다란 무대 위에서 연극이 시작된다.
잠시 뒤, 주인공 베네딕트가 등장하자 가득 찬 객석은 동시에 숨을 참은 것처럼 고요해진다.
“허공에 맴도는 소리가 들리지 않소? 자유를 갈망하는, 이 멍청한 굴레를 끊어내라는 세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냔 말이오!”
답답함에 술잔으로 테이블을 내려치는 모습은 그 시절 크리스토퍼 말로의 모습과 꼭 같았다.
“시도 때도 없이 들리는 이 소리에 나는 지금 미쳐버릴 것 같단 말입니다!”
베네딕트는 그사이 살이 많이 빠져있었다. 대사의 양과 그의 혼신을 다한 연기를 보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물론 대사가 없을 때도, 숨소리, 눈빛, 작은 제스처만으로 공연 시간을 채운다.
그 모든 것이 살아있는 말로의 모습 그 자체였다.
‘흠잡을 데가 없군.’
포스 극단이 준비한 무대는 엄청났다.
물론 베네딕트의 연기는 그보다 더 완벽했고.
영국에서 흥행을 일으키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 대로면 연극도, 뮤지컬도 걱정할 필요가 없겠어.’
수준 높은 대본, 그에 걸맞은 연기, 게다가 완벽에 가까운 연출과 하이든 에이전시의 관리까지.
이제 이쪽은 열매 맺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될 뿐이었다.
***
“와...”
연극이 끝나고 나오는 길.
윤 기자는 연신 감탄을 터트렸다.
“정말 엄청나네요. 왜 그 시절 영국인들이 극문학에 목숨을 걸었는지 알 것 같아요...”
솔직한 감상이었다.
이 정도의 퀄리티라면 매일 보고 싶을 정도였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갈수록 연극산업이 어려워지고 있어서 안타깝기도 하네요.”
가만히 듣고 있던 권서준이 입을 연다.
“연극뿐만이 아니죠. 한국문학의 미래 자체가 어두우니까요.”
안타깝지만 윤 기자 역시 동의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엄청난 기술의 발전 속에서 상대적으로 그 쓰임새가 적은 한국어는 도태될 가능성이 커요. 읽고 쓰는 이가 없는 언어는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냉혹한 약육강식의 논리가 언어에도 적용될 수밖에 없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영어를 배우는 이유도 영어가 훌륭해서가 아닌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언어가 영어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래서 우리 문학이 살아남으려면 한글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늘어야 해요. 그야말로 폭발적인 확산을 이끌어야 하죠. 물론 그러기 위해선 키 플레이어가 필요하죠. 제가 책과 함께 영상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이유도 그 때문이고요.”
“...”
대화를 듣던 윤 기자는 속으로 감탄을 터트리고 말았다.
지금 권서준 작가는 단순히 작품 성공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게 아니었다. 그보다는 훨씬 큰 개념, 그러니까 한국 문학의 세계화라는 거대 담론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다.
‘하아. 이 사람은... 그릇이 다르구나.’
자신보다 한참 어린 젊은 작가였다.
그러나 그가 바라보는 미래는 윤 기자가 바라보는 세상보다 훨씬 더 크고 선명하기만 했다.
그래서 더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천재 작가가 이번 도서전에서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윤 기자의 두 어깨에 소름이 돋는다.
특종 냄새를 맡았을 때마다 나오는 일종의 기시감이었다.
***
늦은 밤.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부커 재단의 불은 꺼질 줄을 몰랐다.
스무 명이 넘는 직원과 10인의 심사위원이 7월에 발표할 부커상 후보자 선정을 위해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창 명단을 작품과 명단을 정리하던 한 직원이 동료 한 명을 나직이 부른다.
“이봐 잭, 위원장님은 뭐하셔?”
붉은 머리의 질문에 부커 재단 소속 직원인 잭이 고개를 든다.
“나야 모르지...”
한숨 섞인 잭의 말투.
모두 로건 위원장의 이해 못할 행동 때문이었다.
가끔 괴짜 같은 부분이 있지만 이번 경우는 특히 심했다.
“베네딕트 공연을 보고 오신 뒤로 저 대본만 붙잡고 계시거든.”
가장 바쁜 시기에 로건 위원장은 예비 후보 명단에도 없는 작가의 연극 대본에 빠져있었다.
“그러니까 나도 그게 궁금한 거야. 왜 난데없이 동양인 작가에게 관심을 가지시는 거냐고? 어차피 수상 가능성도 없는 사람인데.”
잭 역시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애초에 부커 인터내셔널상과 부커상은 그 근본부터가 달랐다.
인터내셔널의 경우 문학의 보편성을 추구하기 위해 해외 문학을 선정하는 반면 부커상은 영국, 아일랜드와 같이 영연방 내에서 출간한 작가만 해당하는 상이었다.
‘그것도 시상 초기에는 영연방 국가 출신 작가들이 영어로 쓴 소설만 후보로 정했다고.’
국제적인 문학상으로써의 품격을 지키기 위해 대상의 폭을 넓히긴 했지만, 실제로는 영연방 출신의 작가가 선정되는 게 암묵적인 룰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잭은 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잘 쓴다 한들 선정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게다가 권서준 작가의 책은 아직 출판조차 되지 않았다. 소문에 의하면 북페어에 맞춰서 당일 판매를 시작한다는 소문만 있을 뿐이었다.
‘어차피 후보에도 못 오를 작가한테 왜 관심을 두시는 건지...’
그런데 그때,
로건 위원장이 들고 있던 대본을 내려놓는다.
탁.
거친 소리에 순간 움찔한 잭이 자신도 모르게 로건 위원장을 바라본다.
허공에서 눈이 마주치는 두 사람.
로건 위원장은 더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잭, 내일 오전에 차를 준비하게.”
“...차를요? 어디 가십니까?”
로건 위원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직접 도서전에 가서 그 친구를 만나봐야겠네.”
“...”
잭은 믿기지 않는 듯 눈을 깜빡이고 말았다. 그만큼 로건 위원장의 말이 담고 있는 의미가 큰 탓이었다.
부커 위원장이 출판도 안 된 책의 저자를 보기 위해 런던 도서전을 직접 방문하는 일은 그만큼 희귀한 일이었으니까.
아니, 60년이 넘는 부커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