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이 셰익스피어였다-140화 (140/203)

140. shooting star - 별똥별 (5)

140.

***

“대, 대표님! 저쪽 예매율이 급감했는데요?”

직원의 외침에 서미연 대표가 급히 모니터를 확인한다.

「가시리 가시리잇고」 예매 현황.

직원의 말대로 마치 듬성듬성 빠진 이처럼 객석이 비어있었다. 주말만 간신히 70% 정도의 예매율을 보이는 상황.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작품 자체는 호평이 많았기에 서 대표 역시 놀란 눈으로 다시 새로 고침 버튼을 누른다.

그러나 모니터에 보이는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예상 이상의 심각하게 결과를 보던 서 대표가 이내 권서준 작가를 바라본다.

“작가님, 이게 혹시 그때 말씀하신 엔딩 때문인가요?”

권서준은 마치 모든 걸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네, 김 대표는 흥행을 위해 의도적으로 해피엔딩을 냈어요. 시원한 결과가 관객의 기분을 순간은 좋게 만들겠지만 그만큼 여운도 잡아먹은 거죠.”

권서준의 말 대로였다.

스낵컬처와 달리 뮤지컬은 기회비용이 상당했다. 당연히 작품에 여운이 없다면 다시 관객을 끌어들이기 어려운 구조.

서 대표 역시 비슷한 느낌을 받긴 했었다.

‘볼 땐 즐거웠지만 끝나고 뒤돌아서니 그다지 남는 감동이 없었으니까. 절대 지지 않을 거 같았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고.’

그러나 이토록 서 대표가 놀라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바로 최종 리허설 마지막에 갑작스럽게 진행됐던 수정이었다.

원래의 대본은 수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이미 완벽한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권서준은 수정을 감행했다. 그때는 단순히 더 나은 퀄리티를 위한 노력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아니었다.

‘「가시리 가시리잇고」 때문이었어...’

관객의 풀이 넓지 못한 뮤지컬 시장.

두 작품의 관람객을 필수적으로 겹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두 작품이 더 비교되게 일부러 엔딩을 바꾼 거야...’

일종의 대비효과를 노린 수정이었다.

여운이 긴 작품과 그렇지 못한 작품.

순서와 상관없이 두 작품을 연이어 보게 된다면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작품을 먼저 볼 경우 상대적으로 저쪽 작품이 별로 같을 테고, 반대일 경우에는 우리 작품을 통해서 더 큰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로 인한 효과는 지금 서 대표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티켓 오픈 1분 만에 매진된 작품과 주말 객석도 다 못 채운 작품의 차이.

순간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다.

‘이 사람, 무섭다...’

생각의 깊이가 너무 깊어 가늠조차 되지 않는 사람. 너무 완벽해서 두렵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같은 편이면 이보다 더 든든한 사람이 없지.’

권서준을 바라보는 서 대표의 얼굴에 어느새 미소가 떠오른다.

***

오늘 극단 대표실.

“...”

참담한 예매 결과에 김재용 대표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호평 일색이었던 뮤지컬은 주말 공연을 제외하면 예매율이 극히 저조했다.

1차 티켓 오픈 때와는 너무 다른 분위기.

안 그래도 머리가 아픈데 벌컥 대표실 문이 열린다.

“인마,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했지!”

직원이라고 생각한 김 대표가 날 선 목소리를 날린다.

그런데 돌아온 목소리는 김 대표의 예상과 달랐다.

“김 대표님이 저한테 하실 말씀은 아닌 거 같은데요?”

고개를 들자 키가 훤칠한 남자가 서 있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이번 작품의 주연인 황준수 배우였다.

“어떡합니까? 제 커리어는 어떡하실 거냐고요!”

황준수 역시 예매 결과에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대표님만 믿으라면서요? 이번 작품 무조건 대박이라면서요?”

“...”

“제 연기가 부족했어요? 하라는 대로 다 하고, 스케줄까지 다 맞춰줬잖아요. 근데 결과가 이러면 저 보러 어쩌라는 겁니까!”

입술을 곱씹던 김 대표가 마지못해 입을 연다.

“네 연기는 문제없었어. 아니, 다른 작품에 비해서 훨씬 좋았지. 이건 우리가 부족해서가 아니야...”

“네? 그럼 대체 문제가 뭔데요?”

“...”

김 대표는 어금니를 문 채 입을 열지 않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었다.

잠시 대답을 기다리던 황준수가 답답한 듯 벌떡 일어난다.

“하아, 아무튼 난 최선을 다했어요. 이 책임, 대표님이 꼭 지세요. 아시겠어요?”

쿵.

거칠게 문이 닫히고 멀어지는 발소리가 들린다.

“후...”

김 대표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참았던 한숨을 길게 내쉰다.

‘...문제가 뭐냐고?’

문제가 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말하고 싶지 않았다.

마치 패배를 인정하는 것만 같아서.

‘상대방이 너무 뛰어나서지...’

흔히 말하는 대진운이 안 좋았다랄까.

정면승부의 결과는 예상보다 참담했다.

이대로라면 인건비와 대관료도 빠듯한 수준이었다. 자연스럽게 한 단어가 떠오른다.

‘망했군...’

뻔히 보이는 미래.

김 대표는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

2차 티켓팅 예매 결과.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이미 예견된 일이니까.’

그리고 모든 상황은 정확히 내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관련 기사 역시 「거장의 숨결」 예매 매진 소식을 다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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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거장의 숨결>은 오늘 오전 11시에 진행된 2차 티켓 오픈에서 총 30회차, 약 4만여 석이 오픈과 동시에 전체 매진되었다. 전 예매처에서 폭발적인 반응과 함께 단숨에 각 예매처 랭킹 1위를 석권했다.

특히 앞서 진행된 프리뷰와 1차 티켓 오픈에서도 전 회차, 전석 매진으로 심상치 않은 흥행을 예고했기에 2차 티켓 오픈에 더욱 큰 관심이 쏟아졌으며 다시 한번 전석 매진으로 ‘티켓 대란’을 이어가며 최고의 화제작으로서 뜨거운 열기를 실감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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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거장의 숨결>은 천재 작가 크리스토퍼 말로가 작품을 통해 그 시절 런던을 뒤흔드는 내용으로 자신의 철학과 정의를 위해 세상과 맞서 싸우는 그의 삶을 긴장감 넘치게 그려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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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뿐만이 아니라 커뮤니티에 올라온 반응들도 마찬가지였다.

커튼콜에 담기는 짧은 영상엔 벌써 수천 개의 댓글이 달리고 있었다.

-스토리를 단단히 잡아주는 권서준 작가의 대본, 마치 자신의 이야기처럼 노래하는 조현성의 연기와 음색, 이래서 회전문이 되는구나...

˪시작부터 끝까지 객석을 압도하는 노래는 조현성의 전매특허죠.

˪이번 작품에선 특히 임팩트가 컸음. 진짜 충격먹음.

국내 관람객뿐만 아니라 외국인의 반응도 있었다.

-나는 미국인입니다. 공연을 봤고 감동했습니다. 나의 생각이 잘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번역기를 사용 중입니다. 배우의 연기는 내 마음에 닿았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방문하겠습니다. 최고!

살아있는 댓글 반응은 작품에 참여한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러나 기쁜 소식은 연이어 들려왔다.

“대표님! 뮤지컬 OST 판매량이 미쳤습니다!”

CD를 거의 듣지 않는 요즘 같은 시대에 보기 힘든 결과. 그만큼 곡의 완성도가 높다는 방증이었다.

그리고 이 소식을 가장 기뻐할 사람은 따로 있었다.

‘손주환 작곡가지.’

나는 휴대폰을 들었다.

***

늦은 오후.

손주환은 연남동으로 향했다.

권서준 작가와의 약속 때문이었다.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직접 만나서 말씀드리고 싶네요.’

무슨 소식이기에 직접 만나자고 하는 걸까?

누구보다 바쁜 권서준 작가의 스케줄을 알기에 궁금증이 일었다.

약속 시각보다 20분 먼저 도착한 상태.

손주환은 무료함을 달랠 생각에 인터넷 카페에 들어갔다.

[음표를 심는 사람들]

작곡가 지망생과 예전에 같이 작업실을 쓰던 동기들 몇몇이 모여 만든 카페였다.

‘오랜만이네.’

고생하던 시절 다른 지망생들과 서로를 위로하던 추억이 담긴 공간이었다. 최근엔 곡 작업을 바빠 자주 찾지는 못했다.

‘누가 있으려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카페 채팅에 들어갔더니 네댓 명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야, 너희 손주환 소식 들었냐?

-무슨 소식?

-걔가 「거장의 숨결」 곡 작업했대.

-뭐? 진짜? 그 곡이 손주환 곡이었다고?

동기들이 나누는 대화의 주제는 바로 자신이었다. 최근 잘되고 있는 자신의 소식을 이미 접한 모양이었다.

손주환은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입력하려고 했다.

그러나 뒤이어 올라온 채팅 하나에 갑자기 손이 멈춘다.

-내 말이. 운도 좋지. 어떤 인맥이 있기에 거길 들어갔대?

-걔 인맥 없잖아? 돈도 없고.

-그러니까 더 이해가 안 된다는 거야. 대체 권서준 작가처럼 잘나가는 작가가 왜 걔랑 작업하냐고.

-근데 뭐 신경 쓸 거 있나? 인맥빨로 잘 된 거는 금방 묻힐 텐데

-하긴, 그런 작곡가가 한둘도 아니고.

할 말이 없었다.

그 말이 사실이니까.

‘하긴, 언제 또 다시 잊힐지 모르지...’

이번엔 권서준 작가 덕에 잘 됐지만 그 행운이 계속 이어지리라는 법은 없었다.

순간 입안에 쓴맛이 짙게 돈다.

-어? 저거 손주환 아이디 아니야?

한 녀석이 아이디를 알아보고 묻는다.

손주환은 마치 죄를 지은 사람처럼 서둘러 카페 채팅을 빠져나왔다.

“하아...”

한숨이 흘러나온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동기들의 말엔 틀린 말이 없었다.

‘아마 권 작가님이 없었으면 지금의 나도 없었겠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뭘 그렇게 심각하게 보고 계세요?”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시간에 맞춰 권서준이 도착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당황한 손주환은 서둘러 태블릿을 넣었다.

짧은 인사와 함께 급히 화제를 전환한다.

“오랜만이네요. 요즘 차기작 때문에 많이 바쁘시죠?”

“뭐 바쁘긴 하지만 손 선생님 만날 시간을 내야죠.”

권서준의 얼굴에서 여유로운 미소가 떠오른다. 볼 때마다 사람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미소였다.

“참, 2차 티켓 예매도 매진됐다면서요?”

“네, 아주 순조롭네요. 물론 그 소식 외에 전해드릴 좋은 소식이 하나 더 있고요.”

커피 한 모금을 마신 권서준이 이내 말을 잇는다.

“OST CD가 매 공연마다 매진되고 있어요. 판매량이 엄청 늘어서 다음 주 공연부터는 추가 제작한다고 하더라고요. 이게 다 손 선생님 덕분입니다.”

CD 매진이라니 정말 기쁜 소식이었다.

곡을 쓴 당사자 입장에서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은 없었으니까.

그러나 CD판매량이 늘었다 한들 2차 티켓 매진보다 큰 소식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직접 만나서 얘기해주는 이유는 한 가지였다.

‘내가 기죽지 않게 도와주시는 거구나...’

나이도 어린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잘 아는지 놀라울 정도였다.

“감사합니다. CD가 그렇게 많이 팔리다니... 작가님 덕분에 이런 경험도 해보네요.”

“손 선생님이 대단하신 거죠. 다시 생각해도 손 선생님과 함께 작업한 건 제게 행운이었네요.”

더없이 겸손한 말.

기분이 좋으면서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제가 행운이었죠. 그 자리는 저 말고도 잘 해낼 사람이 많았을 테니까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권서준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진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네? 그거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기들의 대화처럼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 테고.

“예전에도 한 번 물으셨죠? 왜 손 선생님의 곡을 선택했는지.”

“...”

기억이 난다.

선물처럼 찾아온 행운에 실감이 나지 않던 그때, 진지하게 물었던 질문이었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손 선생님의 곡을 선택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손 선생님의 곡은 제 작품을 보다 완벽하게 만들어줬으니까요.”

순간 손주환의 눈이 커진다.

“...제, 제 곡이요?”

“네. 무대에 다 담지 못할 중요한 메시지들을 손 선생님의 음악이 채워주셨잖아요.”

“...”

문득 예전 기억이 떠오른다.

대본이 전하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 주인공의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며칠 밤을 새우며 작곡하던 그때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권서준은 손주환의 노력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선생님의 곡엔 아련한 슬픔이 담겨 있습니다. 그 감동적인 선율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보면 저 역시 어느새 작가라는 사실을 잊고 관객이 되곤 했어요. 그게, 손 선생님이 만들어내신 기적이고요.”

“...”

“그리고 그 기적이 없었다면 우리 작품이 이렇게 잘 되길 어려웠겠죠?”

답이 필요 없는 질문이었다.

게다가 권서준은 이번 작품을 ‘우리 작품이’라고 말해줬다.

순간 목울대가 울컥거린다.

성공해서, 돈을 벌어서, 이제 먹고 살기를 바라서가 아니었다.

자신의 노력을 온전히 알아주는 한 사람.

그 한 사람의 인정이 남자의 가슴을 뜨겁게 울리고 일었다.

“감사...합니다...”

무명 작곡가에게 건네는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을 울린다.

자연스럽게 눈시울이 붉어진다.

나이도 많은데 추태를 부릴 순 없었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 격해진 감정을 다독인다.

순간 창밖으로 별똥별이 떨어진다.

재빨리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소원을 빌기도 했다.

찬란하게 빛나지만 이내 사라지는.

어두운 밤을 밝히기엔 한없이 미약한 빛줄기.

그러나 그 볼품없는 빛줄기가 만들어내는 효과는 대단했다.

별똥별 하나로 누군가에게 이 밤은 충분히 아름답고 특별해지고 있었다.

순간 목표가 생긴다.

‘그래. 오래 기억되지 못해도 좋아. 그저 잠깐이나마 세상을 아름답게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의미가 있겠지.’

자신의 곡이 보잘것없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곡을 듣는 누군가에겐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하고 싶었다.

마치 별똥별처럼.

그 순간,

운명처럼 별똥별 하나가 떨어진다.

이번엔 늦지 않게 소원을 빌었다.

‘제 곡이 부디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세요.’

어느 때보다 간절한 손주환의 기도.

그 결과는 정확히 두 달 뒤에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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