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shooting star - 별똥별 (3)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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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걸친 공연은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특히 방수찬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전날 보여준 조현성의 완벽한 연기.
방수찬의 연기는 다른 의미에서 완벽했다.
‘조현성의 연기가 생각이 안 날 정도야.’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아니 우열을 가릴 필요가 없을 정도로 다른 맛의 연기였다.
기사도 호평이었다. 광고가 아닌 기사임에도 칼럼들과 반응들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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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작가의 창작 작품으로 화제를 모았던 뮤지컬 「거장의 숨결」(창조 극단 서미연 대표 연출, 권서준 작가 극본)이 지난 금요일 처음으로 선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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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숨결」은 시대와 사회의 모순에 맞서 고뇌하는 천재 작가 크리스토퍼 말로의 삶을 담아낸 작품으로 연극 무대에서부터 꾸준히 사랑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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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한 작품에 출연하는 베네딕트의 인터뷰로 화제를 모은 「거장의 숨결」은 조현성 등 이목을 집중시키는 막강한 캐스팅 라인업으로 상반기 최고의 기대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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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연의 경우 더블 캐스팅된 두 주연 배우의 화려한 연기로 관람객들에게 색다른 감동과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호의적인 기사도 재미있었지만 기사에 달린 댓글이 훨씬 더 인상적이었다.
-이 작품 개 꿀잼임. 시간 순삭.
-회전문 고민 중인데 방수찬 연기도 괜찮음?
˪둘 다 본 사람 입장에서 말하자면 완전히 다른 느낌. 조현성이 명품 연기라면 방수찬은 살아있는 연기랄까? 아무튼 보면 무슨 말인지 알 듯.
˪나는 간신히 티켓 얻어서 방수찬 버전부터 봤는데 연기 미쳤음. 이런 배우가 왜 그동안 무명이었는지 모를 정도로 노래도, 연기도 잘함.
˪오호. 2차 티켓 오픈 땐 방수찬 버전으로 예약해야겠네요. 답변 감사합니다!
상반되는 두 사람의 연기 결.
그 차이가 결국 재관람률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모든 건 내 예상대로였다.
‘이제 남은 건 2차 티켓 오픈 결과뿐이군.’
2차 티켓까지만 흥행이 이어지면 장기 흥행은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열매나 다름없었다.
나는 기분 좋게 거실로 나왔다.
문을 열고 나오자 익숙한 노래가 들린다.
「거장의 숨결」 넘버 7.
손주환 작곡가의 곡이었다.
누나가 틀었나 싶어 고개를 돌리니 흥얼거리며 다리미질을 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뭐야? 이거 엄마가 틀었어?”
내가 묻자 엄마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노래가 너무 좋아서. 이틀 내내 들었는데도 질리지가 않네.”
빨래를 개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엄마.
TV에 나오는 트로트나 라디오에서 흐를 법한 노래만 좋아하던 엄마가 뮤지컬 넘버를 찾아서 듣고 있었다.
엄마가 이 정도면 남은 공연 결과는 볼 것도 없었다.
‘이건 대박이 안 날 수가 없지.’
내기해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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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
이른 시간부터 연습실을 찾은 신하율이 한숨을 길게 내뱉는다.
“후우. 다시 생각해도 엄청나네...”
어제 본 뮤지컬에 대한 후유증 때문이었다.
눈을 뗄 수 없는 서사.
음악까지 더 해져 감정까지 뒤흔드는 분위기.
‘엄청나... 대체 작가님은 어떻게 매번 그런 작품을 쓰시는 거지?’
울림이 없는 작품이 없었다.
보고 나면 생각에 잠기고, 그 여운이 그림자처럼 들러붙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번엔 배우의 연기도 머릿속에 남는다.
크리스토퍼 말로를 맡은 방수찬 배우의 살아있는 연기가 자꾸만 신하율을 자극했다.
똑똑.
그때, 연습실 노크와 함께 성도윤 실장이 들어온다.
“아, 오셨어요?”
“어, 이것 좀 먹으라고.”
성 실장이 가져온 샐러드와 과즙 음료를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후...”
고맙다고 건네는 인사 끝에 자연스럽게 한숨이 들러붙는다.
평소와 다른 모습에 슬쩍 쳐다보는 성 실장.
“너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은요. 집, 연습실, 촬영장만 오가는데...”
“근데 표정이 왜 그래?”
성 실장이 맞은편에 앉아 묻는다.
그러자 신하율이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하아. 어제 그 뮤지컬 때문에요. 좀처럼 여운이 가시지 않아서요.”
“아, 맞아. 진짜 엄청났지?”
성 실장도 허공을 보며 공연의 기억을 더듬는다.
“근데 권 작가님 작품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고, 얼굴이 왜 이렇게 심각해?”
되묻는 성 실장의 물음.
신하율이 이내 솔직하게 속내를 꺼낸다.
“사실 어제 주연 맡으신 방수찬 배우님 때문에 그래요. 알고 보니까 그동안 거의 무명이었더라고요. 어떻게 그런 연기를 하시는지 자극이 돼서요.”
입술을 야무지게 무든 표정에서 연기에 대한 열정이 느껴진다.
그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짓던 성 실장이 들고 있던 도시락을 내려놓으며 말을 잇는다.
“더 놀라운 거 말해줄까? 그런 연기력을 가진 배우가 하마터면 중간에 교체될 뻔했대.”
“정말요?”
“그래. 최종 리허설까지 슬럼프가 길었나 봐. 근데 그걸 권 작가님이 해결하셨다고 하더라고. 뭐 나도 전해 들은 얘기라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
신하율은 순간 자신의 무명 시절을 떠올렸다.
권서준 작가의 전화를 처음 받았을 그때의 기억.
편의점 알바생에 불과했던 자신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지금의 자신을 있게 만든 그 작은 연결점이 떠오른다.
아무것도 아닌 자신을 가능성 하나 보고 선택했던 권서준.
게다가 촬영장까지 직접 와서 위로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그 따뜻함.
아마 그 따스함이 방수찬에게도 흐른 거겠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신하율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오른다.
“그나저나 권 작가님 너무 한 거 아니냐? 드라마 잘 써, 소설 잘 써, 뮤지컬 대본까지 잘 써. 근데 배우들 알아보는 안목까지... 하아, 대체 권 작가님한테 부족한 건 뭔지...”
“그러게요. 너무 완벽해서 탈이죠.”
“그래 너무 완벽해서... 뭐?”
되묻는 성 실장을 보며 미소로 답하는 신하율.
이내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도, 더 열심히 해야겠어.’
굳은 결심과 함께 다시 시작하는 연기 연습.
표정부터, 발성, 그리고 감정 표현까지.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시 해야 했다.
권서준 작가의 차기작.
그 기회만큼은 놓치지 말아야 하니까.
***
주말이 지나고 상대적으로 한가한 월요일 오후.
나는 창조 극단 사무실 근처에서 서미연 대표를 만났다.
“작가님!”
보자마자 서 대표가 손을 흔들며 나를 반긴다. 표정과 간단한 제스처에서부터 신이 난 서 대표의 기분이 느껴진다.
우리는 서 대표가 잘 안다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영국 음식 좋아하시는 거 같아서 잉글랜드 가정식으로 준비해봤어요.”
서 대표는 런던 출장 때 있었던 일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여러모로 영업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우리는 가벼운 날씨 얘기를 하며 요리를 기다렸다.
“작가님, 우리가 해냈어요. 반응이 진짜 장난이 아니에요.”
기사, 댓글, 커뮤니티 반응까지.
한없이 호의적인 여론에 서 대표는 감동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게요. 하지만 이제 시작이죠.”
“맞아요. 이제 시작이죠. 연기야 배우들이 하는 거지만 홍보와 마케팅은 제가 전담해야 할 일이니까요.”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 보기 좋았다.
대표로 각성한 서 대표는 노련한 경영자처럼 작품의 파이를 키우고 있었다.
“이제 2차 티켓팅 결과만 남았네요?”
내가 묻자 서 대표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진다.
“네, 근데 이번엔 자신 있습니다.”
결의에 찬 자신감.
물론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잠시 뒤,
직원이 요리를 가져온다.
쇠고기 등심을 토마토소스에 익힌 셰퍼드파이와 와인 반죽에 튀긴 대구와 감자를 곁들인 피쉬 앤 칩스까지.
오랜만에 맛보는 정통 영국 가정식 요리는 옛 향수를 자연스럽게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이어진 즐거운 식사.
한참 맛있는 요리를 음미하는데 즐거운 소식이 하나 더 도착한다.
지이잉.
하이든 에이전시 한국 지부장인 고용수 부장의 메시지였다.
[엔플릭스 측에서 작가님의 제안을 모두 받아들이겠답니다.]
결과는 승낙.
물론 내가 예상한 플롯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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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대로 사거리에 있는 2층 규모 카페.
나는 서 대표와 약속을 끝내고 고 부장과 만났다.
“엔플릭스 측에서 작가님의 의견을 모두 수용했습니다.”
예상대로였다.
덕분에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계약.
물론 예상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한 가지 요청 사항이 있는데 올란 감독이 연출 전에 작가님을 직접 만나고 싶다더군요.”
작가를 만나기 위해 한국까지 찾아온다는 올란 감독의 의지는 조금 의외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좋은 기회였다.
‘작품에 대해서 의논해보는 것도 필요하니까.’
언제나 예술가들과의 대화는 즐거운 법이었다. 특히 캐스팅과 더불어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한 번쯤 논의하는 것도 필요했다.
“알겠습니다. 날짜는 이쯤이 좋겠네요.”
나는 뮤지컬 「거장의 숨결」 2차 티켓팅 오픈 뒤로 미팅날짜를 정했다.
자연스럽게 2주 뒤로 잡힌 약속.
꼼꼼하게 일정을 체크하던 고 부장이 펜을 들으며 묻는다.
“그런데 작가님. 혹시 공동 연출자로 생각해두신 분은 있습니까?”
고 부장이 조심스럽게 내 의견을 묻는다.
“네, 물론입니다.”
올란 감독과 엔플릭스 측의 동의도 구한 상태.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공동 연출자에 대한 접촉을 시작해야 했다.
사실 하이든 에이전시에 맡겨도 되지만 직접 나서는 이유는 하나였다.
‘내 작품 세계를 가장 잘 이해하는 연출자가 필요하니까.’
이제 슬슬 그 계획을 진행할 차례였다.
마침 넉넉하게 경험치를 먹인 대상이 준비된 상태였고.
나는 휴대폰을 들었다.
수신자는 당연히 타이거 스튜디오 하 본부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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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타이거 스튜디오 본부장실.
“후...”
본부장실로 돌아온 하 본부장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온다. 오늘 아침, 조찬모임과 함께 진행한 회의 내용 때문이었다.
드라마 제작사로 유명한 타이거 스튜디오. 그러나 최근에 영화 쪽 투자를 계획하고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콘텐츠 투자에 적극적인 조태강 회장의 의지 때문.
덩달아 그룹 임원들도 영화 진출을 기획하라며 강하게 푸시하고 있었다.
‘영화 제작은 드라마보다 훨씬 좋은 수익구조를 갖추고 있어. 게다가 콘텐츠 사업영역 확대, IP 활용 극대화 등 긍정적 시너지를 위해 영화 쪽 진출은 필수라고 할 수 있지.’
물론 긍정적인 방향성이었다.
‘영화 제작이야말로 IP 활용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시장이니까.’
각종 드라마로 IP 라이브러리를 쌓은 타이거 스튜디오 입장에선 하나의 IP로 영화와 드라마 모두를 제작할 수 있는 전략을 펼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최근 영화와 드라마의 크로스오버(Cross Over) 제작이 확대되는 추세라 타이거 스튜디오에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었다.
누가 봐도 합리적인 사업 방향.
그러나 담당자 입장에선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걸 내가 모르냐고... 다만 그걸 해낼 인재가 없잖아.”
제일 간단한 건 영화 제작사 인수지만 기업 인수라는 게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애초에 본부장 선에서 결정할 수도 없는 일이었고.
“후...”
생각할수록 한숨만 느는 상황.
시원하게 냉수 한잔 들이키려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지이잉.
발신자는 조금 의외인 인물.
다만 언제 받아도 반가운 사람이었다.
“아이고, 권서준 작가님. 바쁘신 분께서 어인 일이십니까?”
친근하게 전화를 받는 본부장.
그러나 휴대폰을 통해 들려온 내용은 조금 놀라운 얘기였다.
“네? 고, 공동 연출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