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money's worth - 쓴 돈만큼 값어치가 있는 것 (1)
131.
***
“으하하! 이거지, 이거야!”
매일 연예 편집실.
편집장이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리며 들어온다.
“뭐,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후배 기자가 묻자 편집장이 책상 위에 털썩 앉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이지. 이번 달 우리 매출이 지난해에 비해 3배나 늘었거든.”
“아, 그거 윤 선배 기사 덕분이죠?”
“그래. 그 녀석이 연거푸 특종을 물어 와서 광고 수익이 엄청 늘었어. 요즘엔 배너가 부족해서 일주일 넘게 기다리는 업체도 있다니까?”
광고 수익과 구독료, 그리고 후원금이 매출의 대부분인 인터넷 신문사의 경우 트래픽과 광고 수익은 목숨 줄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갈수록 치열해지는 인터넷 신문사들의 경쟁으로 인해 레드오션이 된 지 오래.
그런 상황 속에서 얻어낸 결과였기에 더 의미가 있었다.
“덕분에 우리 급여도 다음 달부터 인상될 거야.”
“어? 정말요?”
“그래. 대표님께서 조금 전에 약속하셨어.”
“대박...”
월급쟁이 입장에서 이보다 더 좋은 열매는 없었다.
“이거 우리가 윤 선배한테 술 한 잔 사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안 그래도 내가 한 잔 사려고. 근데 우리 주인공은 어디 갔어?”
“아, 오늘 외근 있다고 아까 나가셨어요.”
“외근? 이렇게 기분 좋은 날 무슨 또 일이야?”
편집장이 휴대폰을 꺼내 윤석훈 기자에게 전화를 건다.
신호가 몇 번 가고 윤 기자가 전화를 받는다.
“야, 하던 일 스톱하고 당장 들어와.”
-왜요? 또 무슨 일인데요?
“인마, 상사가 오라면 와야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내가 거하게 한 잔 살 테니까 잔말 말고 들어와.”
기부 좋게 툴툴대는 편집장의 말.
그러나 윤 기자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저 못 들어가요. 뮤지컬 리허설 끝나고 작가님이랑 한 잔 하기로 했어요.
“뮤지컬 리허설? 니가 그런데도 가냐?”
-당연하죠. 권 작가님 작품인데.
순간 편집장의 눈이 커진다.
“뭐? 권서준 작가 작품이라고?”
-네. 근데 뭐 편집장님이 급하다고 하시면 작가님한테 못 간다고 말씀드려볼게요.
당황한 편집장이 갑자기 손사래를 친다.
앞에 있는 것도 아닌데 손사래를 칠 만큼 당황했다는 뜻이었다.
“무, 무슨 소리야? 권 작가님 술자리면 당연히 가야지.”
최근의 호재는 사실상 권서준 작가 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 편집장의 마음이 다급해진다.
“너 정말로 권 작가님이랑 술 한 잔 하기로 한 거지?”
-그렇다니까요.
“그럼 오늘 먹는 건 네가 계산해.”
-제 카드로요?
“무슨 소리야? 당연히 법카로 해야지. 내가 어떻게 해서든 결재받아줄 테니까 걱정 말고. 아니, 대표님이 허락 안 하면 내 사비로 내줄 테니까 잘 대접해. 알았지?”
편집장은 신신당부를 하며 전화를 끊었다. 짠돌이 대표가 딴죽을 걸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래, 그깟 술값이 대수냐?’
이번 달에 한 일 중 가장 뿌듯한 선택이었다.
***
공연이 끝나고 나는 윤 기자와 함께 근처 호프집을 찾았다.
“공연은 재미있게 보셨나요?”
나는 윤 기자의 잔을 채우며 물었다.
“재미있다는 말로 부족하죠. 마지막 엔딩에서 느낀 감동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니까요?”
윤 기자는 아직도 공연에 대한 여운이 짙게 남은 모양이었다.
“솔직히 작가님 작품 다 봤지만, 이번 공연은 특히 마음에 남네요.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하는 느낌이랄까요?”
역시 기자답게 촉이 좋았다.
실제로 내 경험이 고이 담긴 작품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셰익스피어에 대해 관심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크리스토퍼 말로에 대한 마음도 남 같지 않아서 그런가 봐요.”
“아, 그렇군요. 어쩐지 서사가 더 깊이 와닿는 느낌이더라고요.”
윤 기자의 진솔한 반응.
창작자 입장에선 이보다 기쁜 순간은 없었다.
“자, 그럼 이제 일 얘긴 그만하고 술 한 잔 할까요?”
윤 기자가 미소를 지으며 잔을 든다.
“좋죠. 오늘은 제가 대접할 테니 마음껏 드십시오.”
그러자 윤 기자가 세차게 고개를 젓는다.
“아니요. 오늘은 무조건 제가 사야겠습니다.”
내가 쳐다보자 윤 기자가 품에서 법인카드를 꺼낸다.
“권 작가님하고 한 잔 한다고 했더니 편집장님이 무조건 사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편집장님께서요?”
“네, 이거 거절하시면 저 큰 일 납니다. 아시죠? 직장생활.”
엄살을 떨던 윤 기자는 조금 진지해진 얼굴로 다시 말을 잇는다.
“사실 몇 달 전부터 저희 신문사에 광고가 줄을 잇고 있는데, 그게 다 권 작가님 덕분이거든요.”
아마 내가 준 특종 덕분에 매출이 오른 모양이었다.
윤 기자는 시원하게 술잔을 비우고는 말을 잇는다.
“작가님, 혹시 그거 아세요? 국내 전체 신문사 중 절반이 1억 매출 이하라는 거?”
“그래요? 그건 좀 의외네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기자직 초임은 솔직히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죠. 인터넷 신문사 중엔 참여 수수료도 미납해서 제명되는 사례도 엄청 많고요.”
한숨 섞인 업계 관계자의 독백.
인터넷 신문사의 상황이 얼마나 열악한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못 참고 때려치우는 후배들도 많아요. 근데 말릴 수가 없어요. 왜냐, 솔직히 최저 임금도 안 되는 월급 받으면서 버티라고 말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렇게 버틴다고 대단한 영광이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윤 기자는 처음으로 허심탄회하게 속 얘기를 꺼낸다.
“그런데, 작가님 덕분에 잘 넘어갔습니다. 애들 기본급도 꽤 많이 올랐고요.”
몇 번에 걸친 특종.
덕분에 신문사 브랜드가 올라갔고, 트래픽이 오르고 자연스럽게 광고가 줄을 이은 것.
“고맙습니다.”
“저야말로 고맙죠. 언제나 좋게 써 주시니까요.”
“아이고, 저야 있는 그대로 쓸 뿐이죠. 아시다시피 제가 좀 고지식한 편이잖아요.”
“원래 있는 그대로 쓰기가 힘들잖아요. 덧붙이거나, 덜어내거나, 입맛대로 사실을 왜곡하는 기사가 넘쳐나니까요.”
듣고 있던 윤 기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것도 맞긴 하죠. 워낙 기레기들이 많으니까요.”
“그래서 언제나 윤 기자님께 신세를 지는 거죠. 아무쪼록 이번에도 기사 잘 부탁드립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언제나 그렇듯 팩트에 기반을 두어서 최대한 솔직하게 쓸 테니까.”
자신만만한 윤 기자의 표정.
언제 들어도 신뢰가 가는 스탠스였다.
“그런 의미에서 조만간 재미있는 기삿거리 하나 더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요?”
순간 윤 기자의 눈이 커진다.
“네, 때가 되면 말씀드리죠.”
“하아,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데요?”
내 의도를 알아차린 윤 기자는 귀찮게 묻지 않았다. 그저 기분이 좋아진 얼굴로 잔을 높이 들었다.
“저도 기대가 되네요.”
나 역시 자연스럽게 잔을 들었다.
사실 내가 윤 기자에게 줄 소식은 뮤지컬과 관련된 특급 기사였다.
‘아마 이번에도 큰 이슈가 되겠지.’
벌써부터 사람들의 반응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잠시 뒤,
띠링.
두 사람의 잔이 부딪친다.
언제 들어도 경쾌한 소리.
오늘 술은 유독 맛이 좋았다.
***
다음 날.
인터넷엔 윤 기자가 기사가 올라왔다.
__________
[거장의 숨결, 벗어날 수 없는 그 깊이에 대하여...]
...그동안 뮤지컬을 연출의 예술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작품 「거장의 숨결」은 조금 다른 평가를 내리고 싶다. 모든 내러티브, 가사, 그 모든 걸 직접 창조한 작가의 힘. 스토리의 힘이 작품 전체를 이끌어나간다. 공연 내내 이어지는 스토리의 힘은 관객의 시선을 한시도 자유롭게 놓아주지 않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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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없이 호의적인 기사.
누가 봐도 작품에 대한 기대감이 들게 만드는 기사였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매체에서도 연이어 「거장의 숨결」 최종 리허설과 관련된 기사를 쏟아냈다.
자연스럽게 기사를 읽던 김재용 대표의 얼굴이 구겨진다.
“뭐야? 이것들... 돈이라도 받은 거야?”
언짢은 마음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돈을 찔러준 기자들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진다.
“아니, 정작 돈 처먹은 놈들은 대충 써 갈기고, 기사 수준이 이렇게 차이 나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괜스레 불안한 마음이 솟구친다.
애써 마음을 다잡으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이번만큼은 절대 밀리면 안 돼.’
모든 걸 끌어 모아 시작한 뮤지컬이었다.
실패란 있을 수 없었다.
‘실패는 곧 끝이니까...’
자신 역시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상황.
김 대표의 얼굴이 굳어진다.
여러모로 「거장의 숨결」과는 정면 승부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첫 공연뿐만 아니라 1차 티켓 오픈 날짜까지 겹친 상태. 게다가 티켓 오픈 시간까지 같았다.
‘그쪽도 1시라고 했지?’
그런데 그 순간, 김 대표의 머릿속에 한 가지 아이디어가 솟구친다.
‘가만... 티켓 오픈을 조금 앞당기면 어떨까?’
티켓을 선점하는 계획.
최근 뮤지컬 시장이 커지긴 했지만 연이어 몇 작품이 매진될 정도로 관객 풀이 넓어진 건 아니었기에 효과적일 수 있었다.
‘그래, 그거야...’
결심을 굳힌 김 대표가 서둘러 사무직원에게 지시를 한다.
“야, 지금 당장 예매처에 연락해서 티켓 오픈 날짜를 이틀만 당기라고 해.”
“네? 지금이요?”
“그래. 지금 당장.”
다행히 국내 4대 예매처 담당 부서 관계자와 막역한 사이였기에 가능한 계획이었다. 오랜 시간 극단을 운영한 게 이럴 땐 큰 도움이 되었다.
결국 인맥을 통한 이득 챙기기.
‘뭐, 더럽다고 말해도 할 수 없어. 이기기 위해선 뭐든 해야 하니까.’
결국 살아남아야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는 법. 그게 냉혹한 시장경제의 논리였다.
투자금도, 주연 배우의 인지도까지 비슷한 규모의 창작 뮤지컬. 승부는 어쩔 수 없이 선점에서 갈리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답변이 돌아온다.
“대표님, 일정 조정해주겠답니다.”
평소에 뿌린 걸 생각하면 당연한 대답이었다.
김 대표는 그제야 두 발을 쭉 뻗는다.
“음, 음, 음.”
어느새 그의 입에선 낮은 콧노래까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며칠 뒤.
1차 티켓 오픈을 4일 앞둔 상황.
창조 극단 사무실에 예상치 못한 소식이 날아들었다.
“뭐라고? 오늘 극단 쪽에서 티켓 오픈 날짜를 앞당겼다고?”
충격적인 소식에 서미연 대표의 표정이 굳어진다.
“네, 방금 전에 확인했는데 확실하답니다.”
“하아...”
서 대표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한숨이 흘러나온다.
‘김 대표가 머리를 잘 썼군.’
나는 단번에 김 대표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어느 분야든 선점효과라는 게 가장 중요했으니까. 김 대표 역시 그 부분을 정확히 노린 계획이었다.
“저희도 날짜를 당길까요?”
직원 중 한 명이 불안한 듯 말한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가는 불필요한 잡음이 생길 수 있겠죠. 홍보 일정도 다 틀어지고,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으니까요.”
서 대표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요. 이렇게 된 거 그대로 가보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우리 작품도 절대 밀리지 않으니까요.”
서 대표는 작품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물론 모든 직원이 그 확신을 가지는 건 아니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물론 나는 이럴 때를 대비해서 한 가지 준비해둔 게 있었다.
나는 잠시 사무실을 나와 휴대폰을 들었다.
수신자는 런던 포스 극단 총괄 디렉터 아서였다.
-아, 권 작가님.
휴대폰 너머로 아서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랜만이네요. 다름이 아니라 제가 지난번에 말씀드린 건 준비됐나요?
-아, 물론이죠. 드디어 시작인가요?
역시 일처리가 깔끔한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네, 부탁드린 기사 올려주시죠.”
포스 극단과 계약 때부터 준비했던 뮤지컬 마케팅 계획.
이제 그 계획을 실행할 타이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