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이 셰익스피어였다-120화 (120/203)

120. fashionable - 유행하는 (6)

120.

***

유행.

사전적 의미로는 특정한 행동 양식이나 사상 따위가 일시적으로 많은 사람의 추종을 받아서 널리 퍼지는 현상이나 경향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웹툰계는 한 작품으로 인해 거대한 유행이 퍼지고 있었다.

바로 두 달 전 시작한 웹툰「새벽을 건너」.

권서준 작가의 작품으로 더 큰 주목을 받게 된 작품이었다.

특색 있으면서 아름다운 작화.

게다가 잔잔하면서도 따뜻한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합평회 에피소드에서 주인공 준서가 오성만을 누르고 내뱉는 시원한 한 마디는 그야말로 장안의 화제.

[이게 너와 나의 차이 아닐까?]

부들대는 오성만의 모습과 함께 속이 뻥 뚫리는 사이다 대사였다.

-연출 미쳤다. 속이 다 시원하네.

˪솔직히 저런 사람들 은근히 주변에 많음.

˪난 이 짤 휴대폰에 저장해둠. 은근 써먹을 일 많을 듯.

해당 회차 장면은 각종 유뷰트와 커뮤니티에서 짤로 활용되며 유행처럼 퍼져나갔다.

준서의 명대사는 하루가 멀다고 SNS에 올라왔고, 아름다운 작화를 프로필로 정하거나 컴퓨터 배경화면으로 꾸미는 일도 부지기수.

그뿐만이 아니었다.

등장인물의 모습은 벌써부터 네버이 웹툰 사업부의 지휘로 각종 굿즈 상품으로 출시되고 있었다.

-나 준서 마우스 패드 삼.

-난 희진이 인형 구매 완료.

인증 사례가 올라오고, 몇몇 연예인도 그 유행에 동참했다.

특히 침대 머리맡에 캐릭터 인형 모음을 올려놓은 신하율의 SNS는 그야말로 좋아요 폭탄을 맞은 상태.

급격히 늘어가는 웹툰 관련 매출에 추광현 팀장의 입꼬리는 좀처럼 내려올 줄을 몰랐다.

-작가님! 놀라지 마세요. 유료화 수익이 엄청 올랐습니다. 게다가 굿즈 판매량도 엄청나요. 벌써 이렇게 매출이 나오다니, 정말 믿기지가 않네요.

그러나 놀라운 소식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어진 추 팀장의 말은 더욱 내 기대감을 높였다.

-그리고 작가님, 방금 전 그룹 일성 전자 디자인팀에서 연락이 왔는데, 작가님 작품과 콜라보를 하고 싶다는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들뜬 추 팀장의 목소리만큼이나 아주 기쁜 소식이었다.

“코, 콜라보라고?”

함께 통화를 듣고 있던 장현웅의 눈이 커진다.

그래, 분명 콜라보 제안이었다.

그것도 상대는 대한민국 재계 서열 5위, 일성 그룹이었다.

***

이틀 뒤.

우리는 콜라보 작업과 관련된 미팅을 위해 일성 전자 사옥으로 향했다.

추 팀장은 일성 전자와의 사전 협의 내용에 대한 내용을 메일로 보내줬다.

일성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일성 전자.

그 기업의 가장 중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스마트폰 신규 모델 출시에 맞춘 웹툰 작품과의 콜라보.

전자 분야.

그것도 특히 고지식한 재벌 기업에서 이런 아이디를 내기란 어려웠다.

나는 자연스럽게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일성 그룹에서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한 사람.

잠시 뒤,

문이 열리며 한 여자가 안으로 들어온다.

여느 연예인 못지않은 포스를 풍기는 여자.

역시 조예슬이었다.

“두 사람 다 오랜만이네.”

자연스럽게 다가오며 인사를 건네는 조예슬. 뒤늦게 알아본 장현웅의 눈이 커진다.

“어? 예, 예슬이? 네가 여기 왜...”

“나 여기서 일하거든. 마케팅팀장으로 일하고 있어.”

미처 몰랐던 장현웅은 놀란 듯 말까지 더듬는다.

하긴 친한 친구의 전 여친 정도로 생각했던 사람이 일성 그룹의, 그것도 핵심부서의 팀장이라니 충분히 놀랄 만했다. 게다가 확 달라진 조예슬의 분위기도 낯설어 보이는데 은근히 한몫했다.

‘나중에 조예슬이 조태강 회장의 손녀라는 건까지 알면 기절하겠네.’

안 봐도 훤했다.

자리에 앉은 조예슬이 자연스럽게 말을 건다.

“어떻게 할까? 공식적인 자리니까 존댓말을 쓰는 게 편하려나?”

“편하게 하자. 그게 서로 생각 전하기도 편할 테니까.”

“그래. 갑자기 존칭 쓰는 것도 어색하겠다.”

우리는 곧이어 회의를 진행했다.

[일성전자 디자인 사업부와 웹툰 새벽을 건너 마케팅 전략 제안]

다소 긴 제목의 기획안엔 최근 출시될 예정인 스마트폰과의 마케팅 전략이 담겨 있었다.

전자 제품과 힐링 웹툰의 콜라보라 조금 의아할 수도 있었지만 마케팅 전략의 목적을 파악하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전략이었다.

‘단순히 성능으로 차별화 두는 마케팅은 더 이상 의미 없다는 걸 정확히 알고 있어. 그래서 제품에 스토리를 심으려는 거고.’

특히 이야기의 콘셉트가 명확해서 어떤 콜라보를 원하는지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스마트폰을 포함한 모바일 제품은 직접 보고 경험해야 판매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어. 그런데 이번엔 간접 체험 경험을 통해서 우리 제품에 대한 매력을 어필하는 게 포인트야. 그리고 유일한 방법이 바로 스토리고.”

조예슬의 전략은 간단하면서도 명확했다.

웹툰이 지니고 있는 공감대를 활용해 제품 자체에 스토리를 입히자는 계획.

‘일을 아주 잘하네.’

문창과 출신으로서 이야기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전략적인 포인트도 정확했고, 딱 보자마자 그림이 그려진다.

“시간은 얼마나 주면 될까?”

지금까지와는 달리 조심스러운 질문.

아마 시간이 많이 없는 게 분명했다.

“일주일이면 충분해.”

“...뭐?”

조예슬이 조금 놀란 듯 쳐다보나.

물론 장현웅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

“지킬 수 있는 거야?”

“물론.”

나는 담담히 말했다.

쳐다보던 조예슬이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럼 잘 부탁할게.”

원하는 바가 명확했던 회의.

굳이 길게 끌 이유가 없었다.

잠시 뒤,

우리는 일성 전자 사옥을 나왔다.

“흠. 예슬가 말한 아이디어는 좋은데,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이 가능할까?”

장현웅은 조금 부담스러운 눈치였다.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일성 전자와의 콜라보.

잘 되면 좋은 기회가 되겠지만 그만큼 실패했을 경우 몰아닥칠 후폭풍 역시 고려해야 했으니까.

“쉽진 않겠지. 하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야. 우리 작품을 봐. 이미 전 연령층에게 통하고 있잖아.”

10대부터 60대에 이르기까지 독자의 분포도가 고른 유일한 작품. 그게 바로 우리 작품이었다.

“그건 맞지만 마케팅 콜라보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모두에게 매력적인 마케팅을 하려다가 오히려 모두에게 매력 없는 마케팅이 될 수도 있잖아.”

“그것도 맞아.”

녀석도 이번 콜라보의 위험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럴 때 가장 중요한 게 바로 감동적인 스토리지.”

물론 내겐 다 생각이 있었다.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일주일 뒤.

권서준이 약속한 날이 되었다.

‘정말 일주일 안에 가능한 건가...’

연락을 기다리던 조예슬을 초조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10년 동안 일성 전자의 효자 상품이었던 스마트폰 T-Z.

그러나 두 자릿수 영업이익을 보이던 작년과 달리 이번 연도는 30% 정도의 이익이 급감한 상태였다. 세간에선 모바일 황금기가 막을 내렸다는 말이 나올 정도.

‘이대로 내년 잠정 이익까지 줄어들면 그야말로 어닝 쇼크지.’

자연스럽게 그룹 내부에서도 위기라는 목소리가 많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위기는 곧 기회였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가치를 보여준다면 그것만큼 할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을 기회도 드물었다.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내야 해.’

이번 마케팅에 자신의 미래가 달려있었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오른다. 이번 마케팅 전략에 핵심인 권서준 작가였다.

‘...이미지가 정말 많이 달라졌어.’

지난번 연극 공연장에서도 느꼈지만 지금은 더욱 완숙한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은근히 드러나는 자신감.

특히 은연중에 풍기는 아우라는 다른 그룹의 고위 인사를 만날 때도 느껴보지 못한 무게감이었다.

그래서 결과물을 기다리는 조예슬의 마음은 걱정보다는 오히려 기대감이 들고 있었다.

‘어떤 결과물이 나올까...’

다만 그녀와 달리 아직까지도 내부 임원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조 회장님의 눈치 때문에 대놓고 반기를 들지는 못하지만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평가.

이대로 뭔가 보여주지 않으면 영영 할아버지의 눈 밖에 날 수도 있었다.

“팀장님, 제안서 도착했습니다.”

그때,

직원 한 명이 프린트해 온 자료를 내민다. 기다리고 있던 콜라보 제안서였다.

그런데,

제안서를 펼쳐 보자마자 미소가 떠오른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디테일하고 세부적인 스토리.

직접 작성한 콘티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고개까지 끄덕여지게 만들었다.

“역시... 대단하네.”

자신의 요청사항을 정확히 반영한 결과물.

아니, 그보다 훨씬 훌륭한 결과물에 안심이 든다.

‘그래, 이거면 충분히 설득할 수 있어.’

그날 오후.

조예슬은 입사 이래 처음으로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

일성 전자 회의실.

급히 소집된 임원들의 표정은 평소보다 훨씬 더 좋지 못했다.

조예슬 마케팅팀장의 브랜드 마케팅 전략 때문이었다.

“흠. 그러니까 조 팀장 말은 일개 웹툰과 콜라보를 하자고요?”

한 임원의 질문에 조예슬이 고개를 끄덕인다.

“많은 과정을 생략하신 말씀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습니다.”

“흠.”

듣고 있던 상무가 턱을 쓸어내린다.

딱 봐도 내키지 않는 표정.

이미 예상한 반응이었다.

조예슬을 차분히 자신이 준비해온 이야기를 꺼낸다.

“걱정하시는 부분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충분히 가능성 있습니다.”

그때,

듣고 있던 한 임원이 입을 연다.

“솔직히 말도 안 됩니다. 세계적인 예술가도 아닌 애들이나 보는 웹툰과 콜라보를 하다니요? 오히려 우리 제품의 브랜드 가치를 훼손시킬 수 있습니다.”

임원의 발언과 동시에 회의실이 웅성거린다.

여러모로 동조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생각보다 강한 반대.

그러나 조예슬은 굴하지 않았다.

“브랜드의 가치를 결정하는 건 결국 스토리입니다. 우리가 강조해야 할 부분은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호불호 없는 제품에 대한 콘셉트고요. 그런 의미에서 이 웹툰만큼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콜라보도 드뭅니다.”

굽히지 않는 조예슬의 주장에 회의실 분위기가 냉랭해진다. 그러자 상무가 주변을 다독이며 분위기를 다잡는다.

“흠. 일단 들어나 봅시다.”

상무를 통해 어렵게 얻어낸 발표 기회.

어떻게든 결과를 내야만 했다.

잠시 뒤,

조예슬의 피피티 발표가 시작된다.

“이번 마케팅 전략의 핵심 키워드는 감성입니다. 스마트폰이라는 현대적인 기기 안에 우리가 잊고 있던 감성의 가치를 담고자 했습니다.”

발표와 함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웹툰 「새벽을 건너」 콜라보 온라인 마케팅 전략.

우리의 삶 속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좌절의 순간. 아무도 없다 여겨지는 그 외로운 순간에 뜻밖의 연결고리가 나타난다.

오랜만에 걸려온 따뜻한 전화 한 통.

무심한 듯 챙기는 문자 메시지와 이모티콘, 그리고 음성 편지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담긴 사진까지.

모바일의 기본 기능을 통해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그리고 그 감동적인 모든 순간에 연결고리가 되어주는 건 바로 T-Z 모델.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순간들.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추억의 기능과 함께 10년을 함께 해온 T-Z 모델의 친숙함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최첨단 기능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마트폰으로 얻어지는 행복한 일상에 집중한 콘셉트였다.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 본연의 욕구. 그걸 이야기 속에 녹여 모두가 갖고 싶어 하는 이미지를 구축했습니다.”

뒤이어 제품에 맞춘 스토리가 이어진다.

주인공과 주변인물을 통해 전 연령층의 공감대를 일으킬 수 있는 제안이었다.

마치 ‘저 스마트폰을 쓰면 내 삶도 이렇게 따뜻해질까’하는 생각으로 젖게 만드는 이야기.

그래, 그건 판타지였다.

지극히 현실적인, 그러나 모두가 꿈꾸는 판타지.

이 회의장에 모인 임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만히 발표를 듣던 임원들의 표정에도 서서히 변화가 일어난다.

“이거... 생각보다 괜찮은데요?”

“그러게요. 이대로만 어필 된다면 꽤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낼 수 있을 것 같네요.”

대부분 공감대를 이해한 반응이었다.

냉랭하기만 했던 공기도 어느새 한껏 온도가 올라간 느낌.

그리고,

“흠. 이 콘셉트라면... 한 번 해볼 만하겠네요.”

마지막으로 발언한 사람은 바로 회의 전까지 격렬하게 반대하던 바로 그 임원이었다.

조금 멋쩍은 표정.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동시에 임원 회의의 전체 분위기가 조예슬의 바람대로 흐르기 시작했다.

‘됐어...’

결과를 확인한 조예슬이 입술을 야무지게 깨문다.

잠시 뒤,

조예슬에 마케팅 기획은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

다음 날.

일사천리로 정리된 마케팅 전략회의의 결과는 최종적으로 조태강 회장에게 보고되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기획안을 올린 지 반나절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마케팅팀에 뜻밖의 소식이 도착한다.

-이번 기획안, 회장님께서 아주 흡족해하셨습니다.

조 회장의 최종 결재가 떨어졌다는 소식.

신중하기로 유명한 조 회장의 성격을 봤을 때 아주 보기 드문 결과였다.

그리고 추가로 들려온 소식.

-특히 이번 콜라보를 진행하게 된 웹툰 작가님이 드라마 「이옥」의 작가님이라는 사실에 큰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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