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이 셰익스피어였다-117화 (117/203)

117. fashionable - 유행하는 (3)

117.

***

강원준의 팬클럽 온니주니.

레드카펫 일정에 맞춰 기자석 바로 근처에서 카메라를 든 채 대기 중이었다.

렌즈가 워낙 크고 두꺼워 일명 대포라 불리는 카메라를 들고 있는 수십 명의 팬.

그 중 가장 큰 렌즈를 꺼낸 한 회원을 향해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이 어이진다.

“이야. 미쳤다. 이거 얼마 주고 산 거야?”

“이거? 319만 원.”

자랑스럽게 어깨를 으쓱댄다.

“대박... 너 이제야 원준 오빠한테 진심이구나?”

“그럼. 온니주니에서 대포 한 대 없으면 친구도 안 해준다면서? 이제 나도 오빠 얼굴 생생하게 담을 수 있다고.”

카메라를 두 손에 든 채 턱 하니 레드카펫을 겨눈다.

그런데 그때,

회원의 눈이 순간 커진다.

“어? 신하율이다!”

“어디, 어디?”

강원준을 찍으러 왔지만 같은 작품에 출연한 신하율에 대한 관심도 대단했다.

“대박, 저 비율에, 저 몸매에, 저 얼굴에... 진짜 너무 부럽다.”

“하아. 그뿐이냐? 연기도 잘하잖아.”

“그래도 우리 원준 오빠랑 아무 스캔들도 없어서 너무 다행이지 뭐야.”

“소속사에서 친한 선후배 사이래.”

“둘 다 잘 됐으면 좋겠다. 이번에 여우조연상 후보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던 팬클럽 회원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옆으로 흐른다.

“근데 옆에 서 있는 배우는 누구야?”

“누구? 저 남자?”

“어. 못 보던 얼굴인데?”

그때,

한 회원이 알아보고 입을 연다.

“저분은 배우 아냐.”

“그럼 누군데?”

“넌 원준 오빠 팬이라는 사람이 그것도 모르냐? 드라마 「이옥」 작가님이잖아.”

“뭐, 뭐? 작가님이라고?”

원피스의 말에 노란 머리가 눈을 크게 뜬다.

“뭐야, 저렇게 잘생긴 사람이었어?”

“실물이 몇 배는 더 나은데?”

“왜? 대체 얼마나 잘생겼기에?”

나머지 회원들도 서둘러 준비해온 카메라를 꺼내 권서준 작가를 겨눈다.

“대박... 완전 잘생겼는데?”

“얼굴보다 저 분위기 뭐야? 핏은 또 뭐고?”

“더 놀라운 건 뭔지 알아? 이렇게 땡겼는데 저 말도 안 되는 피부 좀 봐.”

“이건 말이 안 되잖아...”

수많은 배우들이 꿈꾸는 무대.

그중에 가장 주목받는 시상식의 하이라이트인 레드카펫.

그 황홀한 무대의 주인공은 어느새 권서준이었다.

***

국내 드라마 시상식 중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한국 드라마 어워즈.

방송사 구분 없이 한 해 방영된 드라마 중 장르를 불문하고 가장 의미 있는 작품에 시상하는 시상식이었다.

‘역사에 걸맞게 규모가 엄청나군.’

대기 중인 기자들도 많고, 내로라하는 배우들과 감독, 그리고 연출진들이 연이어 눈앞에 지나간다.

“안녕하세요. 권서준 작가님 되시죠? 단번에 알아봤습니다.”

반갑게 먼저 인사를 해주는 사람은 국민배우 송성기 씨였다.

뒤이어 투박한 얼굴의 중년 배우가 다가온다.

“아이고, 권서준 작가님! 드라마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다음에 꼭 한 번 같이 작품 해요.”

이번엔 다양한 연기 폭으로 연기의 신이라 불리는 오민식 배우였다.

TV에서만 보던 배우들이 먼저 다가와 인사를 하자 조금 얼떨떨한 기분.

악수하고,

인사를 나누고,

기자들은 그 모습을 찍고.

정신없이 걸음을 옮기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나를 부른다.

“작가님! 권서준 작가님!”

고개를 돌리자 정은미 피디가 신나서 달려온다.

시상식이라 한껏 꾸민 모습.

화장한 얼굴은 처음 보는데 나름 나쁘지 않았다.

“저희 자리는 이쪽이에요. 제가 미리 와서 다 파악해뒀죠.”

정 피디의 배려 덕분에 나와 신하율은 자연스럽게 시상식장 안으로 향했다.

가장 안쪽자리.

그러니까 무대 가장 앞쪽에 배치된 자리였다.

“이거, 자리 보니까 느낌이 좋은데요?”

“왜요?”

정 피디의 말에 신하율이 묻는다.

“위치가 뭔가 무대로 나가기 편해 보이지 않아?”

정 피디의 말 대로였다.

슬쩍 보니 좌우 어느 쪽으로든 무대까지 편하게 갈 수 있는 자리였다.

“정말요? 그럼 자리만 봐도 시상 결과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건가요?”

순진하게 묻는 신하율을 보며 정 피디가 피식 웃는다.

“그럴 리가 있겠어? 근거 없는 내 뇌피셜이지.”

“아, 뭐예요?”

“근데 이런 생각 하면 재미있잖아.”

평소와 달리 농담을 할 정도로 정 피디의 표정은 들 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신하율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정말 여기까지 왔네요. 처음 시작할 땐 상상도 못 했었는데...”

“그러게. 올해 방영된 드라마 중에 코미디 장르가 18%, 스릴러, 호러가 23%, 로맨스가 40%야. 그중 사극은 7%도 안 되고. 그런데 당당히 대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으니 그것만으로도 대단하긴 하지.”

정 피디는 잠시 눈을 감은 채 지금의 감격을 음미했다.

하긴, 피디로서 한 해에 가장 기억되는 작품을 만들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게다가 드라마 「이옥」은 대상 후보뿐만 아니라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작가상 총 4개 부분에서 후보에 오른 상태.

잠시 뒤,

시상식이 진행되었다.

***

유명 아이돌 가수와 아나운서의 능숙한 사회로 시상식 순서가 이어진다.

신인상엔 「고양이 카페」의 윤수근 배우가, 연출상엔 「소시민」의 고혜연 감독이 수상했다.

한층 더 뜨거워지는 반응.

뒤이어 대세 배우 신하율은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작가상은 역시 모두의 예상대로 드라마 「이옥」에서 차지, 나는 짧은 소감과 함께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이어진 순서는 바로 남우주연상 시상.

그러나 안타깝게도 가장 유력한 남우주연상 후보였던 강원준은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한 원로 배우의 목숨을 불태운 연기에 안타깝게 밀린 것.

그러나 강원준은 서운한 기색 하나 없이 시상하는 원로 배우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물론 이 모습은 카메라에 고스란히 잡혔다.

아마 강원준의 입장에선 남우주연상 수상보다 훨씬 더 좋은 이미지를 얻을 기회가 되겠지.

이제 시상식의 대미를 장식하는 대상 수상 발표만 남은 상태.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는 가장 의미 있고, 영광스러운 순서였다.

잠시 뒤, 시상을 위해 올라온 도현국 감독이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로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올 한 해 방영된 드라마들은 하나같이 미장센이 잘 표현되었고, 훌륭한 작품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선정하기가 어려웠다는 후문이 들리는데요. 그런 작품 중에 선정된 이 상을 제가 호명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짧은 인사와 함께 카드를 꺼내는 도현국 감독.

수상작을 확인한 그의 눈에 당연하다는 기색이 떠오르고, 이내 천천히 준비한 멘트를 내뱉는다.

“올해 여러 크리에이터들에게 귀중한 영감이 된 드라마. 이 작품이 있어서 올 하반기가 행복했죠. 올해의 한국 드라마 어워즈 대상! 「이옥」, 축하드립니다!”

우렁찬 외침과 함께 쏟아지는 플래시.

동시에 테이블에 앉은 모두가 벌떡 일어나 환호성을 내지른다.

“자, 작가님! 감독님!”

신하율도 감격을 주체 못 하고,

정 피디 역시 흥분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다.

“우리가, 해냈어요. 작가님...”

내내 괜찮은 척 하던 정 피디의 눈에 순간 물기가 고인다.

나는 그런 정 피디의 어깨를 부드럽게 다독였다.

“자, 이제 무대에 올라가셔야죠. 우리 작품의 수상자는 정 피디님이시잖아요.”

내 말에 마지못해 웃으며 정 피디가 무대로 향한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봐둔 그 루트를 따라 정확히 무대 위로 올랐다.

유명 연예인 트로피와 꽃다발을 건네받고 잠시 뒤 정 피디가 마이크 앞에 선다.

“자, 드라마 「이옥」의 주역, 정은미 피디님께서 소감 한 말씀해 주시죠.”

능숙한 진행에 카메라가 자연스럽게 정 피디를 잡는다.

“이렇게...”

말을 내뱉던 정 피디의 목이 순간 잠긴다. 입술을 안으로 말아 문 채 숨을 고르고는 이내 다시 입을 연다.

“이렇게 귀한 상을 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어느새 촉촉해진 눈시울.

그러나 애써 웃으며 소감을 이어간다.

“소감이 너무 길면 민폐가 될 거 같으니 짧고 굵게 하겠습니다. 부족한 저를 믿고 따라와 주신 우리 식구들, 그리고 밀어주신 본부장님, 진영민 CP님 모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끝으로...”

정 피디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이번 작품이 있을 수 있게 도와주신 우리 권서준 작가님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와 함께 카메라가 나를 비춘다.

마치 주인공을 비추는 카메라처럼 나에게 쏠린 시선들.

나는 그저 담담히 수고한 모두를 향해 박수를 돌렸다.

‘이 영광은 모두가 한마음이었기에 가능했으니까.’

순간,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처음 햄릿이 무대에 올랐던 날.

왕과 왕비.

그리고 햄릿이 죽는다.

이내 무대 위에 서 있던 모든 인물이 죽고 찾아온 정적.

운명처럼 찾아온 안타까운 엔딩.

수많은 사람들이 참았던 탄식을 터트린다.

동시에 먹먹해지는 감정을 주체 못 하고 오열을 토해낸다.

그러나,

그 지독한 감정의 여운마저 연극의 한 부분이 되고, 이내 웅장한 음악 소리와 함께 천천히 막이 내려온다.

연극이 끝난 후.

자리를 뜨지 못한 사람들 앞에 다시 막이 오른다.

배우 한 명, 한 명이 다시 무대에 서서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자 박수가 쏟아진다.

그리고 잠시 뒤,

마지막으로 이 연극의 창조자인 내가 무대 위에 선다.

순간 거대한 파도처럼 사람들은 환호성이 밀려온다.

‘최고였다!’

‘역시 런던 최고의 극단!’

‘셰익스피어! 당신은 천재라고!’

사람들의 함성이 울려 퍼진다.

손끝까지 짜릿했던 그 기분.

그때의 그 짜릿함이 다시 한번 내 온몸을 엄습한다.

‘그래, 이 맛에 글 쓰지.’

지금 이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작가하길 참 잘했다.

***

매인 연예 편집실.

한창 기사를 수정하고 있는 윤석훈 기자를 향해 후배가 달려온다.

“서, 선배님! 「이옥」이 한국 드라마 어워즈에서 대상을 탔어요!”

윤 기자는 노트북에 시선을 둔 채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말과 달리 윤 기자는 여전히 노트북에 시선을 고정한 상태였다.

“안 놀라우세요? 그 쟁쟁한 작품들 다 제치고 대상을 탔는데요? 그것도 올해 입봉한 작가가?”

“그 입봉 작가가 권서준 작가잖아.”

당연하다는 윤 기자의 반응에 후배의 눈이 커진다.

“선배, 설마 시상식에 대해 뭐 들으신 거 있으세요? 저 모르는 내부 관계자라도 있는 거예요?”

“인마. 그런 정보통이 있으면 뭐 하러 취재 다니냐? 앉아서 기삿거리 받고 뚝딱뚝딱 쓰면 되지.”

“아니, 근데 선배가 너무 당연한 것처럼 말씀하시니까...”

한숨을 내쉬던 윤 기자가 쓰던 기사를 놓고 후배를 바라본다.

“인마, 생각을 해봐. 시청률로 보나 화제성으로 보나, 작품성으로 보나 「이옥」이 최고였는데 대상 받는 게 당연한 거지.”

“그건 맞지만, 그래도 시상이라는 게 변수가 워낙 많잖아요.”

“그 변수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선에서의 변수지. 권서준 작가한테는 안 통해.”

“...네?”

“이번 수상, 권서준이 권서준 한 거라고.”

윤 기자는 당연하다는 듯 내뱉고는 이내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린다.

놀랄 일은 앞으로도 많을 예정이었다.

지금 자신이 직접 쓰고 있는 기사도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내용이었고.

‘아마 대상 수상보다 이 기사가 조금 더 놀라울지도 몰라.’

사람들의 반응을 상상하니 벌써부터 묘한 설렘이 일기 시작한다.

‘대상 발표 뒤에 기사를 올려달라고 했었지?’

모든 걸 예상한 듯한 권서준 작가의 요청.

윤 기자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확히 한 시간 뒤,

연예 기사란엔 윤 기자가 작성한 두 개의 기사가 연이어 올라왔다.

하나는 당연하게 드라마 「이옥」의 대상 수상 기사.

이 기사의 경우 수많은 언론사에서 동시에 쏟아낸 기사라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잠시 뒤 올라온 기사는 조금 달랐다.

[베일에 싸여있던 웹툰 「새벽을 건너」 의 작가는 드라마 작가 권서준으로 밝혀져...]

간단명료한 기사 한 꼭지.

그러나 그 소식을 무서운 속도로 각종 커뮤니티로 퍼져나갔다.

-뭐라고? 권서준 작가가 새벽을 건너 작가라고?

˪대박... 어쩐지 스토리 퀄리티가 장난 아니더라.

-뭐야? 그럼 저 문창과 학생 얘기가 혹시 본인 이야기인 건가?

˪아마 그런 듯. 다시 정주행해야지.

-이게 말이 되냐? 소설, 연극, 드라마에 이어 이젠 웹툰까지?

˪현실판 먼치킨의 두두등장.

˪이게 실제 존재하는 이야기라 더 어이가 없다.

˪권 작가인 거 알고 보니 더 존잼. 정주행 강추.

윤 기자가 쏘아 올린 작은 불씨.

그 불씨는 이내 산불처럼 번져 각종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밤.

윤 기자는 자신의 인생 트래픽 수치를 또 한 번 갱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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