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fashionable - 유행하는 (2)
116.
***
매일 연예 편집실.
윤석훈 기자는 여느 때처럼 헤드라인 기사를 쭉 훑어 읽어 내려간다.
전날의 화젯거리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일종의 루틴과도 같은 행동.
그런데 며칠 전부터 연예 기사란은 온통 권서준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바로 드라마 「이옥」의 한국 드라마 어워즈 수상 가능성 때문이었다.
-권서준 작가의 첫 뮤지컬. 「거장의 숨결」 연습실 영상 공개.
-천재 작가가 선사하는 사극의 묘미. 드라마 「이옥」의 권서준 작가에 대하여.
-드라마 「이옥」 한국 드라마 어워즈 수상 유력.
벌써 2년 가까이 지켜보고 있지만 말이 안 되는 행보였다. 여태껏 그 어느 작가로 이토록 대중적인 인지도와 함께 작품성을 인정받은 경우는 없었으니까.
기사를 쭉 훑어보던 윤석훈 기자는 문득 궁금함이 일었다.
‘무슨 일일까?’
오전에 권서준 작가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 때문이었다.
연극, 드라마, 소설을 넘나들며 종횡무진 활약하는 천재 작가. 일거수일투족에 대중의 관심이 쏠리지만 그 어떤 대외 활동도 하지 않는 작가.
오로지 작품으로만 승부를 보는 진정한 작가. 그런 그가 윤 기자와의 인터뷰를 자청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건 특종의 냄새가 풍긴다는 점이었다.
‘일단 만나보면 알게 되겠지.’
권서준이 직접 만나자고 한 만큼 알맹이 없는 미팅은 아닐 터.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헤드라인 기사를 살피던 윤 기자의 마우스 커서가 자연스럽게 네버이 웹툰으로 향한다.
권서준 작가처럼 베일에 싸인 또 다른 작가 때문이었다.
바로 금요 웹툰의 신흥 강자로 떠오른 「새벽을 건너」의 두 작가였다.
셜록과 왓슨이라는 필명만 밝힌 작가들.
작화부터 스토리까지.
무엇하나 흠을 잡을 데가 없었다.
게다가 작품성까지 탄탄해서 벌써부터 2차 저작물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을 정도.
그때, 후배 한 명이 어깨너머로 다가온다.
“어? 선배님도 이거 보시는구나.”
“너도 이거 보냐?”
“물론이죠. 요즘 난리잖아요.”
그래.
그야말로 난리인 웹툰이었다.
바쁜 일상에 쫓기는 윤 기자도 챙겨 볼 정도로 재미있었다.
“벌써 인터넷엔 드라마 가상 캐스팅 올라오고 난리도 아니에요.”
쭉쭉 스크롤 내리면서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다. 등장인물들의 표정과 행동, 작은 대사 하나하나에 깊은 의미가 있었다. 때문에 마치 소설을 읽듯 정독하면서 그 의미를 찾는 재미가 있었다.
‘웹툰계에 이런 작품이 나타나다니 믿기지가 않는다니까.’
처음엔 한 편만 봐 볼까 하는 마음에 시작했는데 어느새 최신화를 따라잡았고, 이제는 매주 연재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지이잉.
그런데 그때, 휴대폰이 울린다.
[권서준 작가 미팅 30분 전.]
알람이 아니었다면 약속도 잊어버릴 뻔할 정도로 몰입도 있는 작품.
‘처음으로 궁금해지네. 이 작가들의 정체가...’
호기심을 애써 밀어내며 서둘러 일어났다.
약속 장소까지 가려면 지금부터 서둘러야 했다.
***
늦은 오후.
나는 을지로입구역 근처에서 오랜만에 윤석훈 기자를 만났다.
“작가님! 여기입니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윤 기자가 반가운 듯 손을 흔든다.
“오랜만에 뵙네요.”
“네, 그래도 작가님 기사를 워낙 자주 접해서 낯선 느낌은 없는데요?”
윤 기자식의 농담이 듣기 좋게 들린다.
“윤 기자님도 잘 지내셨죠?”
“저야 잘 지냈죠. 참, 그러고 보니 이번에 대상 후보가 되셨는데 수상 가능성은 어떻게 보십니까?”
“이거 벌써 인터뷰 시작인가요?”
“아, 죄송합니다. 직업병이 도져서.”
윤 기자가 뒤통수를 긁으며 멋쩍게 웃는다. 어쩔 수 없었다. 습관이라는 게 그렇게 무서운 법이니까.
“괜찮습니다. 오늘 인터뷰를 요청한 건 제 쪽이니까요.”
피식 웃던 윤 기자가 말을 잇는다.
“요즘 많이 바쁘시죠?”
“네, 차기작을 집필 중이거든요.”
“벌써요? 혹시 힌트라도 줄 수 있을까요?”
“장르 정도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혹시, 영화인가요?”
기자답게 촉이 좋았다.
“네, 맞습니다.”
“하, 역시. 뮤지컬과 소설을 집필하셨으니 이번엔 좀 더 자유로운 장르에 도전하실 거 같았거든요.”
“아직 시놉 외에 구체적인 건 없습니다. 그저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참지 못하고 다시 시작하게 됐고요.”
“곧 영화판이 떠들썩해지겠네요. 권 작가님이 집필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제작사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요.”
“그래서 당분간은 비밀로 부탁드릴게요.”
“아, 물론이죠. 그런 부분에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신 있게 대답한 윤 기자가 커피 한 모금을 마신 뒤 다시 입을 연다.
“벌써부터 기대되네요. 또 어떤 작품으로 대중을 놀라게 하실지. 참, 뮤지컬은 잘 진행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다행히 조현성 씨가 합류해주신 덕에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곡도 잘 나와서 기대가 되는 상황이고요.”
“하긴, 며칠 전에 조현성 씨를 만나서 인터뷰를 했는데 작가님 대본을 보고 거절할 수 없었다고 하더군요.”
벌써 조현성과 인터뷰까지?
베테랑답게 발 빠른 윤 기자였다.
“하긴, 작가님 대본을 보고 거절할 배우는 거의 없을 겁니다. 그게 조현성이라고 할지라도요.”
“칭찬 감사합니다.”
“칭찬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팩트에 기반한 추론이죠.”
확신에 가까운 윤 기자의 말.
우리는 그렇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30분쯤 이어진 인터뷰.
영국에서 있었던 이야기. 그리고 하이든 에이전시와의 계약 관련 비하인드 스토리 등등.
“하, 정말 대단하시네요. 130억 투자에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니... 스티브 대표에게 그런 제안을 할 작가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걸요?”
감탄과 호기심이 이어진 대화들.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자연스럽게 내 차기작과 근황에 대한 내용이 이어진다.
“역시, 작가님과의 대화는 언제 나눠도 유익하네요. 오늘 들은 얘기 중 몇 개만 올려도 트래픽 장난 아니겠는데요?”
윤 기자의 얼굴엔 벌써부터 기대감이 비친다.
천천히 마무리되는 인터뷰.
윤 기자가 슬슬 마무리 질문을 이어간다.
“요즘 많이 바쁘실 텐데 평소 리프레쉬는 어떻게 하십니까? 혹시 평소 즐기시는 취미가 있으신가요?”
“음. 산책도 하고, 음악도 듣고, 가끔 웹툰도 보고 그럽니다.”
“웹툰이요? 작가님도 웹툰을 보시나요?”
“물론이죠.”
윤 기자의 얼굴에 반가운 기색이 보인다.
“저도 엄청 좋아하거든요. 틈틈이 머리 식힐 때 보는 편인데 최근엔 또 엄청 재미있는 웹툰 하나가 생겨서 기다리느라 애가 탄다니까요.”
관심사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지 윤 기자의 표정이 평소와 달리 들뜬다.
“「새벽을 건너」라고, 이게 문창과 학생들 얘기인데, 점점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자연스럽게 내 용건과 이어지는 대화의 흐름. 이제 슬슬 인터뷰의 진짜 목적을 밝힐 차례였다.
“저도 그 작품 알고 있습니다. 재미있더라고요.”
“정말요? 작가님도 그 웹툰 보셨군요?”
동지를 만난 듯 반가워하는 윤 기자.
그러나 나는 그의 기대와는 조금 다른 대답을 꺼냈다.
“본다기보다는 쓰고 있죠.”
“...네?”
순간 이해하지 못한 윤 기자가 눈을 깜빡인다. 그러나 이내 그 의미를 파악한 듯 눈을 크게 뜬다.
“서, 설마... 그 작품...”
나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보는 윤 기자의 눈빛.
직접 말하지 않았지만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똑똑히 들린다.
또 너냐?
***
‘인터뷰 기사는 내일 저녁, 시상식 이후에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인터뷰 기사 일정을 조율하고 작업실로 돌아왔다.
문득 윤 기자와의 대화가 떠오른다.
‘그 웹툰의 스토리 작가가 작가님이셨다니...’
놀란 윤 기자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익숙한 반응들. 그러나 그런 시선을 받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일찍 왔네?”
장현웅이 인사를 하며 벽걸이형 TV에 USB를 연결한다.
“이것 좀 봐. 서 대표님이 영상 보내셨어.”
짧은 영상 속엔 메인 테마곡을 부르는 조현성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커다란 TV 화면을 통해 무대의 열기가 느껴진다. 특별 제작된 스피커를 통해 조현성의 시원한 목소리가 작업실에 울려 퍼진다.
표정, 제스처, 감정 표현, 대사전달까지 완벽했다.
‘역시 조현성 캐스팅은 탁월했어.’
뮤지컬 음악에서 감동을 넘어서 전율을 이끌어내기 위해선 선곡, 배우들의 가창력, 탄탄한 스토리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의 조건이 더 필요했다.
바로 배우의 싱크로율.
배우의 모습이 배역과 하나가 되었을 때 관객들은 비로소 감동을 넘어서 전율을 느낀다.
연기를 잘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될 수 있는 싱크로율. 그건 모든 사람에게 허락된 재능은 아니었다.
노력의 경지를 넘어선 영역.
그래서 상위 0.1%의 연기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완벽한 싱크로율을 이루고 있는 게 이번 작품 「거장의 숨결」과 조현성이었다.
결과는 보나 마나 장담할 수 있었다.
이제는 가만히 그 결과를 기다리면 될 뿐.
물론 그 전에 내가 추수해야 할 또 다른 결과가 하나 남아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일이 시상식이군.’
한 해 방영된 드라마 중 최고의 상을 시상하는 한국 드라마 어워즈. 한 해 지은 농사의 결실을 확인할 수 있는 날이었다.
***
다음 날, 늦은 오후.
우리는 시상식 참가 준비를 마친 채 차량을 기다렸다.
오랜만에 정장을 입은 장현웅은 어색한 듯 자꾸만 자신의 모습을 쇼윈도에 비춰본다.
“나, 괜찮냐?”
“어. 잘 어울려.”
“그래? 근데 나 왜 이렇게 떨리지?”
“넌 수상자도 아닌데 왜 이렇게 떠냐?”
“내 말이. 근데 떨리는 걸 어떡해.”
난 장현웅이 왜 떨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만큼 이번 시상식이 남의 일이 아닌 자기 일처럼 여기는 것.
잠시 뒤,
밴 두 대가 우리 앞에 멈춰 선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신하율이 신나서 차에서 내린다.
은빛 드레스로 곱게 차려입은 신하율의 모습이었다. 평소와 달리 상체가 살짝 파인 스타일.
흔히 말하는 베이글의 표본이 될 정도로 신하율의 매력을 돋보이게 만드는 디자인이었다.
역시 연예인은 연예인이었다.
“...이상해요?”
나도 모르게 쳐다보자 신하율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아니, 예쁘네. 잘 어울린다.”
그 말에 신하율의 얼굴에 보기 좋은 홍조가 떠오른다.
나와 신하율은 레드카펫 순서를 맞추기 위해 같은 차에 올랐고, 매니저와 장현웅은 다른 차에 올라 이동했다.
20분쯤 이동하자 드디어 시상식장에 도착했다.
유서 깊은 시상식이라 그런지 기자들도 엄청났고, 지켜보는 사람들의 모습도 엄청났다.
레드 카펫 입장 순서를 위해 우리는 잠시 밴에 앉은 채 기다렸다.
“후...”
신하율은 조금 긴장되는 듯 호흡을 고른다.
“떨려?”
“네, 작가님은 안 떨리세요?”
“괜찮아. 견딜 만해.”
“하아. 누가 연예인인지 모르겠네요.”
신하율이 귀엽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 그때,
행사 관계자로부터 사인이 전달된다.
이제, 우리가 입장할 차례였다.
“자, 갈까?”
“...네.”
신하율이 야무지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 팔에 살포시 손을 얹는다.
좌우에서 쏟아지는 플래시에 눈을 뜨기 힘들 정도.
순간 걸음을 옮기던 신하율이 휘청거린다.
“조심해.”
나는 넘어질 뻔한 신하율을 재빨리 붙잡았다.
“죄, 죄송해요.”
“괜찮아. 이제부터 차분하게 걷는 거야. 알았지?”
내 말에 안심이 되는지 신하율이 야무지게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는 그렇게 천천히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여기 좀 봐주세요!”
“여기도요!”
“손 흔들어주세요!”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기자들의 요청.
나는 마치 준비된 듯 자연스럽게 응했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신하율이 묻는다.
“작가님은 왜 연예인보다 더 자연스러워요?”
“그런가?”
“지금도 봐요. 마치 몇 번이나 레드 카펫 밟아본 사람 같은 여유로움이잖아요.”
레드 카펫은 처음이었다.
물론 비슷한 경험은 몇 번 있긴 했지만.
우리는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찰칵찰칵.
물론 그 순간에도 수많은 기자들이 우리의 모습을 찍고 있었다.
***
매일 연예 편집실.
시상식 취재를 나간 후배 기자가 보낸 기사가 속속 도착한다.
그중 방금 전 올라온 포토존 이미지.
권서준 작가와 신하율의 모습이었다.
‘잘 어울리는데?’
사진을 보던 윤 기자가 미소를 짓는다.
아마 오늘 드라마 「이옥」이 대상을 수상한다면 이 사진이 엄청나게 퍼져나갈 게 분명했다.
그러나 윤 기자는 그와 별개로 또 다른 특종 기사 하나를 작성하고 있었다.
바로 인기 웹툰 「새벽을 건너」 작가의 정체와 관련된 기사였다.
‘내가 기사를 쓰고 있지만 이건 정말 말이 안 된다니까.’
드라마, 뮤지컬, 연극, 소설을 쓰던 천재 작가가 이제 가장 화제성을 가진 웹툰의 스토리 작가까지 하고 있다니.
직접 인터뷰를 한 본인도 믿기 어려운 사실.
당연히 이 소식을 접한 대중들이 받을 충격은 자신보다 더할 게 분명했다.
‘하긴, 그런 걸 우린 특종이라고 부르지.’
깊어가는 저녁.
윤 기자는 신이 난 피아니스트처럼 기사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