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이 셰익스피어였다-105화 (105/203)

105. cheap - 싸다, 저렴하다 (2)

105.

***

5시간 전.

네버이 웹툰 사업부 5팀.

“하아.”

팀장인 추광현 과장은 입술을 곱씹으며 마우스를 신경질적으로 내렸다.

그의 심기가 좋지 못한 건 모두 얼마 전에 일어난 한 사건 때문이었다.

목요 웹툰의 최고 인기 작품의 작가가 불륜을 저지르다가 들킨 사건.

작품만 말아먹었으면 상관없는데 그동안 작품 사이사이에 몰래 불륜을 암시하는 내용을 삽입한 것이 더 큰 논란이 되었다.

그 때문에 현재 해당 웹툰은 연중 상태.

그러나 그 아래로 하루에도 수천 개의 댓글이 달리고 있었다.

-와, 자기들끼리 시그널 보내면서 얼마나 행복해했을까?

-그것도 모르고 배우자는 매번 응원 댓글 달아줬잖아.

-이런 쓰레기 새끼. 다시는 복귀 못 하게 만들어야 해.

시끌시끌한 댓글과 언론.

그렇게 고조되던 대중의 분노는 어이없게도 엉뚱한 곳으로 흘렀다.

-담당자는 이런 것도 검수 안 하고 대체 뭐한 거냐?

└내 말이. 자기들은 돈만 벌면 땡이다 이 마인드인가?

└어쩌면 담당자도 알고 있는데 눈 감아 준 거 아냐?

└헐, 킹리적갓심.

결국 좀처럼 식지 않는 논란에 위에서는 특단의 결정을 내렸다.

바로 담당자였던 추 과장에게 총대를 메라는 것.

억울했지만 회사에서 까라고 하면 까야 하는 게 직장생활이었다.

결국 그렇게 목요 웹툰 최고의 작품을 관리하던 추 과장은 좌천되어 챌린지리그를 담당하는 팀장이 되고 말았다.

“엿 같은 세상. 그 작가가 그렇게 할 줄 난들 알았냐고!”

어떻게 올라간 자리인데, 추락하는 건 며칠도 걸리지 않았다.

그동안의 추 과장의 성공을 질투하던 사내 동기들은 뒤에서 연신 쑥덕거렸다.

‘아주 꼬시다.’

‘그러게 말이야. 혼자 치고 가더니 내 언젠가는 저렇게 될 줄 알았다니까.’

‘추락한 추 과장. 라임도 좋네.’

누구에게 피해 준 적도 없건만 동기들은 추 과장의 좌천을 아주 기뻐했다.

“확 그만두고 싶네, 진짜...”

그러나 그만두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자신에겐 토끼 같은 마누라와 자신만 바라보는 자식이 셋이나 있었으니까.

“하아...”

한숨만 내쉬며 마우스 스크롤을 쭉쭉 내린다.

“저, 팀장님 퇴근 안 하세요?”

어김없이 야근하는 추 과장을 위해 후배 한 놈이 커피를 가져다준다.

“일이 끝나야 가지. 추천 만화를 고르라는데 도무지 추천할 만화가 없잖아.”

“에이, 솔직히 챌린지리그 추천 만화는 영향도 별로 없잖아요? 대충 고르고 퇴근하시면 되지 않아요?”

선배를 생각한 후배의 말.

그러나 추 과장의 생각은 달랐다.

“인마, 너 그동안 일 그렇게 한 거야? 그럼 안 되지. 제대로 된 작품을 추천해야 독자들도 우리 선택에 신뢰를 가질 거 아냐?”

“아, 죄송합니다...”

“적어도 내가 있을 땐 똑바로 하도록 해. 알았어?”

“알겠습니다...”

후배가 눈치를 보며 자리에 앉는다.

그 모습을 보던 추 과장의 미간이 살짝 모인다.

‘하아, 또 괜한 소리를 했나?’

뒤늦게 후회가 밀려온다.

생각해보면 어디를 가나 이 완벽주의가 문제였다.

대충 타협하고 살면 되는데 추 과장은 좀처럼 그게 되지 않았다. 물론 그 덕에 가장 빠른 진급을 할 수 있었지만.

‘근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 결국 추락해서 똑같아졌는걸...’

한숨을 내쉬면서도 손은 어느새 마우스 스크롤을 내린다. 아직 자신이 해야 할 업무가 남은 탓이었다.

‘하루에 한 번, 무조건 추천 만화를 선택해야 하는데 추천하고 싶은 만화가 없는데 어쩌라는 거야?’

그의 눈이 빠르게 모니터를 훑는다.

일명 챌린지리그.

웹툰 좀 해보고 싶다는 사람이 한 번씩 거쳐 가는 곳이었다. 그러나 좀처럼 괜찮은 작품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이건 뭐 금광에서 사금 채취하는 거나 다름없지.’

가끔 외국 방송 보면 체 들고 물속에서 온종일 사금 채취하는 거랑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물론 예전보다 퀄리티가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웹툰 분야는 이미 상향평준화 된 상태. 그 때문에 눈에 맞는 작품을 찾기가 더 어려웠다.

장르도 어느새 획일적으로 바뀌어서 죄다 일진물, 학원 폭력물이었다.

“후우, 오늘도 꽝인가?”

그런데 그때,

한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응?”

단 1화만 업로드된 웹툰.

그런데 작화가 눈에 띄었다.

슬쩍 봐도 오늘 본 작품, 아니 이번 주 동안 본 작품 중에 가장 좋았다.

“이거, 실력이 수준급인데?”

추 과장의 색다른 반응에 후배가 얼른 와서 모니터를 바라본다.

“어? 그러게요. 이 정도 실력이면 기성 작가 아닐까요?”

후배의 말대로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그림 작가라고 해서 모든 그림을 잘 그리는 건 아니었다. 대부분은 어느 하나가 약한 부분이 있었다. 배경, 여자 캐릭터, 남자 캐릭터, 괴수, 물건 등등 전문 분야가 있었다. 모두 잘 그리긴 어려웠다.

그런데 이 작품, 모든 면에서 퀄리티가 좋았다.

“게다가 작화만 훌륭한 게 아니야...”

스토리까지 훌륭했다.

잔잔한 이야기가 오히려 자극적인 작품들 사이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

솔솔 풍기는 대작의 기운.

순간 추 과장의 눈빛이 반짝인다.

“야, 찾았다.”

“네?”

“이거라고. 내가 추천할만한 만화가...”

진심으로 추천할만한 작품이었다.

게다가 어쩌면 추락한 자신을 다시 한번 끌어올려 줄 동아줄이 될지도 몰랐다.

***

“...”

장현웅의 놀란 눈.

나는 고개를 내밀어 넌지시 결과를 확인했다.

선작이 엄청난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조회 수가 엄청난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 작품은 당당히 상단에 노출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추천만화라는 네버이 웹툰의 시스템 때문이었다.

추천 만화.

가로 3칸, 세로 8칸.

매일 총 24개 작품이 추천되는 시스템.

그 24칸 자리 중 한 곳에 우리 작품이 당당히 자리 잡고 있었다.

“서, 서준아, 이게 말이 돼? 고작 한 화 올렸는데?”

장현웅은 믿기지 않는 듯 말을 더듬는다.

인기 순위에 못 드는 작품이어도 예술적이고 작품성이 인정될 경우 추천 만화에 올려주는 경우가 있었다. 담당자의 취향이 어느 정도 반영되는 부분이기 때문.

‘누군지 모르지만 작품 보는 눈이 있군.’

어차피 성장할 작품이었지만 이런 식의 초반 버프는 좀 더 효과적인 원동력이 될 수 있었다. 실패에 익숙해져 버린 장현웅에게 조금 더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고.

“말이 되지. 작품성 좋고, 작화까지 좋잖아. 낭중지추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고.”

고개를 끄덕이던 장현웅이 감격에 젖는다.

“하아, 나 이런 경우 처음이야...”

눈은 웃고 있는데 눈동자는 촉촉해진다.

늘 실패했던 곳에서 처음으로 받는 인정에 마음이 싱숭생숭한 모양.

나는 진짜 친구답게 위로보다는 놀리는 쪽을 택했다.

“야, 이 정도로 울 생각이면 우리 웹툰 포기하자. 나중에 베스트리그라도 올라가면 심장 마비 걸릴 거 아냐?”

농담 섞인 내 말에 녀석이 재빨리 눈물을 삼킨다.

“우, 울긴 무슨. 그냥 너무 좋아서 그렇지. 믿기지가 않으니까...”

나는 어깨를 두드리며 들뜬 녀석의 마음을 적당히 다잡아줬다.

“아직 마음 놔서는 안 돼. 추천 만화는 담당자의 취향이 반영된 거지 독자들한테 인정받은 건 아니니까. 아무리 노출이 된다고 할지라도 주 독자층에 외면당하면 어차피 의미 없어. 그래서 이럴 때 꾸준히 올려서 독자를 모아야 해.”

내 조언에 장현웅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응, 알았어. 오늘 바로 2화까지 올리고 추가 비축분도 빨리 쌓아야겠다.”

막연했던 목표가 조금 더 선명해진 탓일까. 어느새 녀석의 얼굴에 열정이 떠오른다. 여러모로 좋은 징조였다.

“그리고 이번엔 아버지께 한번 말씀드려봐. 아마 누구보다 네 소식을 기다리실 테니까.”

“...”

고민하던 장현웅이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니 말이 맞아. 아들이 뭐 하는지는 아셔야지.”

그 사소한 결심에서 한층 더 성장한 녀석의 모습이 엿보였다.

“잠깐만.”

장현웅은 서둘러 추천 만화에 오른 작품을 캡처한다. 행여 신기루처럼 사라질까 손길이 다급했다.

그리고 잠시 뒤,

찰칵.

작은 소리와 함께 증거가 남는다.

금요 웹툰을 씹어 먹을 대작의 탄생.

그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우리는 잠시 뒤 인천공항을 빠져나왔다.

런던에서 머무른 게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은데 한국의 날씨는 어느새 한 계절 지나간 느낌이었다.

***

늦은 밤.

현웅 부친은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아들을 반겼다.

“고생했다.”

반가운 마음과 달리 표정과 행동에선 여전히 무뚝뚝함이 흘렀다. 조금 더 다정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말이 나오지 않는다.

고작 내뱉은 말이라고는...

“피곤할 텐데 얼른 쉬어라.”

어색하게 몸을 돌리려는데, 아들이 부른다.

“아버지.”

“...”

멈칫거린 현웅 부친이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이거요. 필요하실 거 같아서요.”

아들 녀석이 내민 건 구두였다.

닳고 닳은 아버지 구두가 신경 쓰였던 걸까.

“...뭐 이런 걸 사 왔어? 아직 멀쩡한데.”

그냥 고맙다는 말하면 됐다.

그런데 왜 그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 걸까. 왜 오히려 훈계하는 말이 나오는 걸까.

내뱉고 후회가 밀려든다.

그런데 아들 녀석의 표정이 평소와 달랐다.

“뒤축이 다 닳았던데요, 뭘. 싸게 샀어요. 편하게 신으시면 돼요.”

“...”

조금 더 당당해진 아들의 말투와 표정.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이건 엄마 선물.”

“어이구, 우리 아들 이제 다 컸네. 엄마아빠 선물도 다 챙기고.”

아내의 말대로였다. 아들은 한국을 떠날 때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그런데 이어진 말은 더욱더 놀라웠다.

“참, 그리고 저 오늘 웹툰 올렸어요.”

“어머, 어디에?”

놀란 아내가 묻는다.

“네버이 웹툰. 아직 시작이라 챌린지리그에 올렸어요.”

지난번 권서준과 함께한다던 그 작품인 듯했다.

“그래, 이번에도 실패하면 그땐 취업하기로 한 약속 잊지 마라.”

또 마음과 상관없이 뾰족한 말이 튀어나온다. 그 마음을 아는 아내가 슬쩍 팔을 꼬집는다.

‘또 괜한 소리를 했어...’

뒤늦은 후회가 밀려든다.

평소라면 아들은 한껏 주눅 든 얼굴로 방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런데,

오늘은 뭔가 달랐다.

“네, 그럴게요. 근데 이번엔 잘 될 거 같아요. 걱정하지 말고 주무세요.”

아들은 오히려 웃고 있었다.

자신감 넘치는 아들의 모습에 당황한 쪽은 오히려 현웅 부친 쪽이었다.

‘대체 어떤 작품이기에 저러는 거지?’

현웅 부친은 처음으로 아들 작품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

다음 날 아침.

모처럼 잠을 깊이 잔 나는 개운함을 만끽하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역시 잠은 집에서 자는 게 최고군.’

최고급 호텔도 집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나는 기지개를 켜며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들고 웹툰 반응을 살폈다.

추천 만화에 선정된 덕분에 선호작은 500명 정도 늘었고, 조회 수도 꽤 오른 상태였다.

‘2화까지 올리길 잘했군.’

폭발적인 반응까진 아니었지만 잔잔한 힐링물답게 꾸준한 성장을 보이고 있었다. 이제 차분히 분량만 쌓아간다면 충분히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나는 차분히 남은 일정을 정리했다.

‘웹툰은 이 정도로 진행하면 될 거 같고, 남은 건 뮤지컬인가?’

초고가 나온 차기작에 대한 수정은 천천히 진행하면 되고, 당장 급한 일은 뮤지컬이었다.

물론 대본은 이미 완성된 상태.

그러나 그동안 투자를 받지 못해 진행하지 못했던 두 가지 과업이 있었다.

바로 곡 선정과 캐스팅.

돈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지이잉.

그런데 그 순간, 휴대폰이 울린다.

서미연 대표의 문자 메시지였다.

[작가님! 1차 투자금 30억이 지금 막 입금됐습니다!]

더없이 간단한 내용.

그러나 가장 기다리고 있던 소식이기도 했다.

나는 두발의 반동으로 몸을 일으켰다.

이제부터 신나게 돈을 쓸 차례였다.

‘내 인생의 가장 큰 플렉스가 되겠군.’

무려 30억 원어치의 플렉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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