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이 셰익스피어였다-104화 (104/203)

104. cheap - 싸다, 저렴하다 (1)

104.

***

나와 장현웅의 이야기를 담은 웹툰.

제목은 최종적으로 「새벽을 건너」로 정했다.

하루 중 가장 어두운 새벽이 가지는 의미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청년의 삶에 빗댄 제목.

실화를 바탕으로 하되 익명성을 위해 등장인물과 지명, 상호들은 다 바꾼 상태였다.

“후우.”

공항 대기실.

벌써 30분째 장현웅의 한숨이 이어진다.

이미 파일을 첨부하고 업로드 버튼만 누르면 되는데 장현웅은 좀처럼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하아, 미치겠네. 막상 올리려고 하니까 너무 떨린다.”

지금 장현웅이 웹툰을 올리려는 사이트는 네버이라는 포털 사이트의 챌린지리그였다.

하루에 최소 수백 편, 많게는 수천 편이 올라오는 무한 경쟁의 플랫폼. 지옥 같은 경쟁률을 빗대어 헬린지라 불리는 곳이었다.

장현웅이 고민하는 이유는 당연했다.

‘그동안 수없이 고배를 마신 곳이 바로 이곳이니까.’

문창과로 전과하기 전까지 헬린지리그에 올리기를 여러 차례. 그러나 선호작과 조회 수는 매번 처참하기만 했다.

“괜찮아?”

내가 조심히 묻자 장현웅이 고개를 젓는다.

“너무 떨린다. 그전에 썼던 작품들을 다시 보니까 더 떨리는 거 같아. 이것 좀 봐봐.”

녀석이 허탈한 웃음과 함께 비공개로 전환된 필명을 보여준다.

아이스파티.

월요맨.

.

.

.

대충 보여준 필명만 다섯 개.

각 필명으로 올린 작품만 따져도 총 이십여 편이 넘었다.

그러나 그 중 선작이 백 명을 넘는 건 손에 꼽을 정도였고, 1화 조회 수가 십 단위인 것도 수두룩했고. 그야말로 처참한 성적.

“너무 걱정하지 말고 한번 올려 봐. 날 믿고.”

나는 재촉하기보다는 녀석을 위로했다.

그러자 조금 용기가 생겼는지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사람이 한번 죽지 두 번 죽냐?”

장현웅이 눈을 질끈 감은 채 마우스를 클릭한다.

딸깍.

경쾌한 소리와 함께 업로드가 완료됐다는 메시지가 떠오른다.

“하아, 못 보겠다.”

장현웅은 바로 노트북을 덮어버린다.

바짝 긴장했는지 크게 숨을 고른다.

그렇게 장현웅과 나의 웹툰이 사이트에 올라갔다.

사실 장현웅의 걱정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그림과 스토리 모두 수작 이상의 퀄리티를 보여주는 작품이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굳이 장현웅을 억지로 위로하지 않았다. 창작자로 살아가기 위해선 이 정도의 부담감은 어쩌면 익숙해져야 하는 부분이었으니까.

“서울 인천으로 가시는 승객 여러분께 안내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이 타실 OZ521편 여객기는 잠시 뒤 11:50분에 탑승 수속이 완료됩니다.”

대기실에 울리는 안내 음성이 들린다.

이제 정말로 한국으로 돌아가는 시간.

그러나 출발 전 한 가지 더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뮤지컬 기사가 더 퍼지기 전에 이 소식을 전해야 할 사람이 떠올랐다.

바로 지금도 투자 문제로 고군분투 중일 서미연 감독, 아니 서미연 대표였다.

***

“후.”

강남대로에 위치한 투자사 앞.

주차를 마친 서미연 대표가 차 시동을 끄며 한숨을 내쉰다.

‘여길 또 오게 되다니...’

지난번 투자 유치 행사에서 모욕적인 발언을 했던 바로 그 담당자의 회사였다.

그런데도 이렇게 직접 찾아온 건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어제도 문전박대를 당했지만 오늘도 다시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투자, 무조건 따내야 해.’

서 대표는 입술을 질끈 깨문 채 엘리베이터에 올라섰다.

위이잉.

버튼을 누르고 잠시 기다리는데 문득 권서준 작가의 부탁이 떠오른다.

‘근데 권 작가님은 대체 왜 그런 부탁은 하신 걸까?’

며칠 전 권서준 작가는 뜬금없이 영문 버전 뮤지컬 투자 관련 제안서를 준비해둘 것을 부탁했다. 영국에서 투자 유치를 할 것도 아닌데 왜 영문인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님, 영문 버전이 맞나요?’

-네, 필요한 곳이 있으니까 주말까지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용도도 알 수 없는 투자 제안서.

그러나 권서준 작가의 말엔 거부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그래, 권 작가님 생각은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해결해보자.’

그 간절한 마음에 다시 한번 투자사를 찾았다.

또 어떤 수모를 당할지 모르는 상황.

서 대표는 자리에 앉아 바짝 굳은 표정으로 담당자를 기다린다.

잠시 뒤 문이 열리며 담당자가 안으로 들어온다.

“하, 대체 왜 이렇게 귀찮게 구는 겁니까? 권서준 작가 대본 말고는 관심 없다니까요?”

어제와 마찬가지로 담당자의 표정과 말투엔 냉기가 흘렀다. 그러나 서 대표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으며 설득을 이어간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번 저희 뮤지컬은 권 작가님의 대본뿐만 아니라 캐스팅에 있어서도 강점이 있습니다. 대본을 보고 관심을 보이는 배우들도 많고요. 투자만 해주시면, 최고의 라인업으로 공연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대본보고 관심을 보이는 배우가 많다고요? 그럼 굳이 왜 우리가 그 작품을 서 대표한테 맡깁니까? 그 대본만 사서 더 큰 극단에 맡기지.”

투자사 입장에선 또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 정도로 포기할 생각이면 애초에 다시 찾지도 않았다.

“맞습니다. 하지만 권 작가님의 작품 세계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게 저희 극단의 장점이기도 합니다. 이미 연극을 통해서 그 결과물을 만들어낸 경험도 있고요.”

“하아, 진짜 말이 안 통하시네.”

담당자는 혀를 내두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직원 한 명이 다가온다.

“저, 부장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무슨 일인데? 미팅 중인 거 안 보여?”

“그게, 급한 일이라서요.”

“하아, 뭔데?”

직원이 조심스럽게 담당자에게 귓속말을 한다.

“뭐, 뭐? 그게 정말이라고?”

무슨 내용이기에 저렇게 놀라는 걸까.

뒤이어 직원은 당황한 담당자에게 태블릿 PC로 뭔가를 보여준다. 언뜻 보기엔 기사로 보였지만 맞은편이라 제대로 보이진 않았다.

그런데 정확히 그 순간부터였다.

담당자의 표정이 달라지기 시작한 게.

“흠, 흠.”

헛기침을 두 차례 내뱉은 담당자는 직원이 나가자마자 얼굴에 환한 미소를 떠올린다.

“서 대표님. 사실 저희도 고민이 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열정 넘치는 대표님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네요.”

“...”

서 대표는 갑자기 살가워진 담당자의 말투에 순간 벙찐다.

‘왜 이러는 거지? 조금 전까진 그렇게 무시하더니...’

그런데 담당자의 수상한 행동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저희가 긴급회의를 해봤는데, 서 대표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습니다.”

갑작스럽게 달라진 태도에 서 감독의 표정이 얼떨떨해진다.

“자, 그럼 바로 투자 계약 진행할까요?”

조금 전까지 큰소리치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달라진 태도였다.

그러나 서 대표 입장에선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정확한 이유야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투자만 받을 수 있다면 상관없었다.

“가, 감사합니다. 잠시만요.”

서 대표는 챙겨온 제안서를 꺼내려 했다.

지이잉.

그런데, 그 순간 휴대폰이 울린다.

뜻밖에도 런던에 있는 권서준 작가였다.

“아, 죄송합니다. 저 잠시 전화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순간 담당자의 표정이 난처해진다.

“저희가 시간이 없어서요. 빠르게 진행하시죠.”

“...”

서 대표는 순간 갈등했다.

권서준 작가의 전화냐, 아니면 투자냐.

사실 일반적이라면 투자 계약이 먼저였다.

그러나,

서 대표는 권서준의 전화를 택했다.

권서준 작가가 쓸데없이 전화할 사람은 결코 아니었으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급한 전화 같아서요.”

서 대표는 담당자를 두고 급히 회의실을 나왔다.

“네, 작가님. 무슨 일이시죠?”

서 대표가 묻자 권서준 작가는 인사도 생략한 채 질문을 해온다.

-혹시 투자 계약 진행하셨나요?

“아니요. 아직이요. 그런데 다행히 저희 작품에 투자하겠다는 투자사를 찾았습니다.

서 대표가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말했다. 그러나 되돌아온 건 전혀 뜻밖의 대답이었다.

-지금 즉시 투자 계약 중지하세요.

“네?”

-뮤지컬 제작에 필요한 투자금 전부를 지원받기로 했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투자 때문에 고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게 지금 무슨 소리지?

분명 들었지만 믿기지 않았다.

투자라는 게 말이 쉽지 쉬운 게 아니니까.

그동안 내내 발품 팔아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였고.

“정말요? 진짜인가요?”

놀란 서 대표의 마음을 아는지 권서준 작가는 곧바로 인터넷 링크 하나를 보내왔다.

클릭하자 떠오르는 ‘The Sun’지의 기사.

내용은 간단했다.

하이든 에이전시에서 「거장의 숨결」 뮤지컬에 무려 130억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는 기사였다.

“허, 헐...”

깜짝 놀란 서 대표는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지만 믿기 힘든 사실.

“이게 말이 되나요? 작가님은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을...”

말문이 막혀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만큼 믿기지 않으면서도 기쁜 소식이었다.

-인사는 한국 가서 듣는 거로 하죠. 일단 기사 보셔서 아시겠지만 이제 다른 투자사를 만날 필요 없습니다. 이제부터 작품에만 집중해 주세요.

권서준은 마치 서 대표의 행동을 지켜보는 것처럼 말했다.

“아, 네. 알겠습니다. 후우.”

서 대표는 숨을 고르며 생각을 정리했다.

기사 내용을 보고 나서야 갑자기 바뀐 담당자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역시, 그 인간이 갑자기 호의적일 이유가 없지.’

서 대표는 입술을 곱씹으며 다시 회의실로 돌아왔다. 그러자 담당자가 계약을 재촉하기 시작한다.

“자, 그럼 계약 진행하시죠.”

다급한 담당자의 표정.

그러나 이미 승기는 이쪽으로 넘어온 상태였다.

“죄송합니다. 그건 힘들겠네요.”

서 대표가 천천히 고개를 젓는다.

“네?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기사 보셨잖아요? 아닌가요?”

“...”

그 한 마디에 담당자의 눈빛에 당황한 기색이 떠오른다.

“이미 하이든 에이전시에서 투자하기로 해서 다른 투자는 필요 없는 상황이 되었거든요.”

부인할 수 없는 상황.

그러나 담당자도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상체를 슬쩍 숙이며 서비스 미소를 짓는다.

“자고로 투자라는 게 다다익선이잖아요? 안 그렇습니까?”

“뭐, 그 말도 맞지만 한정된 밥그릇에 숟가락이 너무 많은 것도 좋은 사업 형태는 아니죠.”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저희가 지금 그쪽에 숟가락 얹으려는 거라는 겁니까?”

“그럼, 아닌가요?”

“...”

순간 담당자의 말문이 막힌다.

투자사가 극단에 애원하고 있었다.

이 상황만으로도 충분히 통쾌했지만 아직 되돌려 줄 한 방이 남아있었다.

“참, 그때 행사장에서 저한테 그러셨죠? 투자를 원하시는 분이 이렇게 현실을 못 보시면 어떡하냐고. 근본도 없는 소극단에 수십억을 투자할 투자사가 대한민국에 있을 거 같냐고.”

“아, 그거야...”

당황한 담당자가 서둘러 변명을 늘어놓으려 한다. 그러자 서 대표가 상큼하게 말허리를 자른다.

“투자하신다는 분이 미래를 보고 결정하셔야죠. 이렇게 현재만 보면 어떻게 성공하시려고 합니까?”

서 감독은 따끔한 일침.

어느새 담당자의 얼굴이 흙빛이 된다.

상대가 그러거나 말거나, 서 감독은 그대로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어느새 떠오르는 미소.

“후아...”

처음 이 건물에 들어설 때와 똑같은 심호흡이었다.

그러나 내면에서 올라오는 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청량감이었다.

***

늦은 저녁.

10시간에 걸친 비행을 마치고 드디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음. 런던도 좋았지만 역시 내 고향이 제일 좋네.”

장현웅은 한국의 공기를 만끽하며 수화물을 기다렸다. 눈은 수화물을 보고 있지만 마음은 딴 곳에 가 있었다.

‘조회 수가 좀 나왔을까? 첫 화니까 아직 아무도 안 봤겠지?’

10시간 넘는 비행 내내 같은 생각 때문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왜? 걱정돼?”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린 권서준이 슬쩍 묻는다.

“응. 솔직히 무섭네. 어떻게 됐을까?”

“정 걱정되면 한 번 들어가 보던지.”

“...못 보겠어.”

“기껏 잘 그려놓고 왜 걱정하는 거야?”

“그거야 당연하지. 난 너처럼 재능이 없으니까.... 그래서 계속 노력만 할 뿐이고.”

부끄럽지만 솔직한 마음이었다.

태양처럼 빛나는 권서준에 비하면 자신의 재능은 보잘것없어 보였다.

그런데,

가만히 쳐다보던 권서준이 툭 한 마디를 내뱉는다.

“그게 무슨 소리야? 노력만큼 큰 재능이 어디 있다고.”

쿵.

가슴을 울리는 한 마디였다.

‘노력이 재능이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도망치고, 넘어지고, 좌절한 적은 많았지만 한 번도 포기한 적은 없었다.

곱씹을수록 권서준의 말속에서 힘이 솟구친다.

‘그래, 나도 재능 있다고...’

장현웅은 이를 악문 채 용기를 내서 클릭했다.

딸깍.

클릭과 동시에 자신의 작품 「새벽을 건너」가 떠오른다.

그런데...

“...어?”

상상 못 할 결과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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