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investment - 투자 (5)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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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저희 제안입니다.”
나는 스티브 대표에게 미리 준비해둔 영문 투자 제안서를 내밀었다. 이미 법률 검토까지 마친 제안서로 투자 규모는 총 100억 원대에 이르렀다.
해외 판권과 관련된 수익은 하이든 에이전시와 7:3으로 하고, 진행 역시 하이든에게 맡기는 투자 계약.
“좋습니다. 그러나 이왕 투자하는 거 조금 더 금액을 올려보죠.”
제안서를 살펴본 스티브 대표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추가로 30억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그로 인해 130억 규모의 거대 뮤지컬 투자 계약이 성사되었다.
“투자와 관련된 모든 진행은 한국지사 고용수 부장이 지원해줄 겁니다.”
“알겠습니다. 이후 진행도 잘 부탁드립니다.”
이로써 모든 투자 계약이 마무리된 상태. 그러나 스티브 대표의 용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작가님, 이번엔 저희 쪽에서 제안을 하나 드리죠.
진지한 표정의 스티브 대표가 내게 제안서를 내민다.
“저희가 드릴 제안은 바로 작가님과의 정식 에이전시 계약입니다.”
미리 준비해둔 계약서를 보니 아마 미국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이럴 계획이었던 모양이었다.
“저희는 작가님을 묶어두지 않겠습니다. 제반적인 모든 사항을 지원하고, 작가님의 작품이 최고의 조건으로 계약할 수 있게 도울 뿐입니다. 특히 이번 해외 계약처럼 작가님께서 신경 쓰셔야 하는 부분이 많은 계약들도 저희가 도맡아 진행해 드릴 거고요.”
스티브 대표의 말은 정확했다.
국내 계약은 몰라도 국제적인 계약을 직접 진행할 때엔 시간상으로 많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 내 니즈를 파악한 뒤에 내민 제안. 역시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에이전시 조건 역시 계약금과 매출과 관련해 나에게 훨씬 더 유리한 상황.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좋습니다.”
그렇게 나는 정식으로 하이든 에이전시와의 에이전시 계약까지 체결했다.
나는 투자를 따내고, 스티브 대표는 나와 에이전시 계약을 체결하고, 그야말로 윈윈인 미팅이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저 역시 많은 도움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모두 만족한 얼굴로 악수했다.
“아, 그리고 이건 제 개인 연락처입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도움이 필요할 상황이라면, 전화할 일이 없는 게 좋겠군요.”
내 농담에 스티브 대표가 웃음을 터트린다.
“하하하, 제가 말을 잘못했군요. 언제든 편하게 연락 주십시오. 우리는 이제 파트너니까요.”
짧은 대화와 함께 대표의 개인 연락처를 알려주는 모습. 그 디테일은 한번 인연을 맺은 작가와는 끝까지 간다는 에이전시에 대한 신뢰를 심어줬다.
‘하이든 에이전시의 저력이 느껴지는 꼼꼼함이야.’
왜 그동안 하이든 에이전시가 독보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하이든 에이전시의 첫 국내 작가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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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안.
계약을 마친 뒤, 우리는 히드로 공항으로 향했다.
“믿기지가 않는다. 100억이라니...”
모든 걸 지켜봤지만 장현웅은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뮤지컬은 기본적으로 투자 단위가 커서 그래. 하이든 에이전시도 확신을 갖고 투자한 거고.”
“그래도 100억, 아니 130억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지.”
한 번도 만져본 적 없는 거금.
그 큰 금액이 오가는 현장을 지켜본 장현웅은 여전히 떨리는 심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리고 잠시 뒤,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던 장현웅은 한 기사를 내게 내밀었다.
“헐, 벌써 올라왔네? 서준아, 이것 좀 봐.”
[K-뮤지컬 투자 결정한 하이든 에이전시]
[하이든 에이전시 소속 첫 한국 작가. 권서준]
영국에서 최대 부수를 자랑하는 대중지 ‘The Sun’의 보도 자료였다.
단순히 계약한 것으로 영국 3대 신문사에 실을 수 있다니 하이든 에이전시의 마케팅 힘은 그야말로 엄청났다.
‘전폭적으로 작품을 지원하겠다는 스티브 대표의 자신감이 다 이유가 있었군.’
하이든 에이전시의 언론 홍보.
그 덕분에 투자 관련 기사는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물론 한국 언론도 예외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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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즈 출판사 회장실.
송영도 교수의 원고를 읽어 내려가던 정영만 회장이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역시, 자네 글은 깊이가 있구먼.”
“아직 도입부일 뿐입니다. 보여드리기도 민망한 수준이고요.”
“원래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나? 도입부에서 벌써 이 정도의 깊이를 보여준다면 뒷부분은 보나 마나지.”
칭찬을 이어가던 정 회장이 이내 시계를 확인한다.
뭔가 기다리는 게 있는 듯 표정이 사뭇 초조해 보인다.
“혹시, 기다리시는 연락이라도 있나요?”
송 교수가 넌지시 묻는다.
정 회장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인다.
“역시 자네 눈은 속일 수가 없군.”
피식 웃던 정 회장이 이내 다시 말을 잇는다.
“서준이 차기작 말이야. 피어슨 출판사하고 담판을 짓는다고 했거든. 근데 이틀째 소식이 없어서 기다리는 중이네.”
정 회장의 말에 송 교수가 피식 미소를 짓는다.
“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지 않을까요? 아마 좋은 소식이 들릴 테니까요.”
그러자 이번엔 정 회장이 미소를 짓는다.
“자네, 내가 지금 걱정하는 거로 보이나?”
송 교수가 고개를 들어 정 회장을 쳐다본다.
걱정이라고 하기보다는 기대에 찬 얼굴.
“난 대한민국 천재 작가가 세계에도 먹힌다는 그 객관적 사실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걸세. 이게 얼마나 두근거리는지 좀처럼 앉아 있을 수가 없는 거고.”
그제야 정 회장의 생각을 읽은 송 교수가 미소를 짓는다.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똑똑똑.
그런데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비서가 급히 들어온다.
“회장님, 주상진 편집장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 어떻게 됐대? 계약했대?”
“네, 계약했답니다.”
힘찬 비서의 대답에 정 회장이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성을 외친다.
“그래, 그거지! 이러니 내가 선물을 안 줄 수가 없지.”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정 회장의 얼굴엔 그저 행복한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니지, 내가 이럴 때가 아니야.”
정 회장은 서둘러 휴대폰을 들더니 곧바로 권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가 울리고 권서준이 전화를 받는다.
“그래, 소식 들었다. 정말 고생했구나. 근데 왜 이렇게 소식이 늦은 거야? 이틀 동안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그런데 순간 정 회장의 미간이 모인다.
“뭐?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았었다고? 그 일이 대체 뭔데?”
가만히 권서준의 얘기를 듣던 정 회장의 눈이 커진다.
“뭐, 뭐? 누구를 만났다고?”
놀란 정 회장의 눈이 커진다.
“너, 너는 대체...”
권서준의 계획을 들을 정 회장은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추스르며 입꼬리에 힘을 준다.
“아니다. 그래, 귀국하면 다시 연락해라.”
그리고 잠시 뒤,
들고 있던 휴대폰을 천천히 내려놓는다.
“서준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지켜보던 송 교수가 걱정스러운 듯 묻는다. 그러자 정 회장이 천천히 고개를 젓는다.
“이 녀석, 하이든 에이전시 대표를 만나서 뮤지컬 투자를 받았다는군.”
“네? 하이든 에이전시요?”
“그래, 그러니 내가 놀랄 수밖에.”
정 회장이 혀를 내두른다.
그러나 이내 얼굴에 떠오르는 건 흐뭇한 미소였다.
‘허허. 대체 그 녀석은 어디까지 생각하는 건지...’
그 나이대를 뛰어넘는 커다란 포부에 입에서 나오는 건 감탄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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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즈 출판사 편집실.
주상진 편집장은 들뜬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피어슨 출판사와 차기작을 계약하고, 뮤지컬 투자를 받고, 하, 진짜 이 작가는 뭐지?”
이 정도면 권서준 작가의 차기작은 나오자마자 엄청난 판매고를 올릴 게 분명했으니까.
더불어 편집실의 전화도 쉬지 않고 울렸다. 한참 기자들과 전화 응대를 하던 양 대리가 허겁지겁 달려온다.
“편집장님 이거 어떡하죠?”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
“그게, 작가 인터뷰 요청이 쇄도해서요.”
한국은 지금 그야말로 권서준 작가 신드롬이 한창이었다.
드라마 「이옥」의 성공, 베스트셀러 작품, 게다가 영국에 판매된 연극엔 베네딕트가 출연하기로 한 상태.
그리고 그 모든 기적을 이뤄낸 건 고작 20대의 청년 작가였다.
대중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혜성처럼 등장한 천재 작가를 향해 쏟아졌다.
거기에 이번 뮤지컬까지 유명 에이전시의 백억이 넘는 투자를 받은 기사까지 속보도 터지자 그야말로 권서준 작가에 대한 관심은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권 작가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이럴 때 한 작품 더 기획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양 대리의 말에 주 편집장이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잠시 뒤, 손가락을 튕기며 고개를 든다.
“자서전은 어떨까?”
“자서전이요? 그러기엔 너무 어린 나이 아닌가요?”
골똘히 생각하던 주 편집장이 고개를 젓는다.
“아니야. 요즘 같은 세상에서 나이는 크게 상관없어. 오히려 천재가 어떻게 천재가 되었는지 그 과정에 대중의 관심이 쏟아질 테니까.”
차기작 이후를 이어갈 수 있는 계획이었다. 게다가 만일 출판만 한다면 베스트셀러도 노려볼 수 있는 기획이었다.
“이럴 게 아니야. 양 대리, 권 작가 몇 시 비행기라고 했지?”
“아마 지금쯤 탑승 시작할 겁니다.”
“그래?”
주 편집장은 서둘러 휴대폰을 들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이 기획을 전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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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히드로 공항.
나와 장현웅은 비행기 탑승 시간을 기다렸다.
어두워진 창밖으로 공항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모처럼 찾아온 여유.
나는 잠시 숨을 고르며 그동안의 일정을 떠올렸다.
연극 대본은 포스 극단의 계약했고,
차기작은 피어슨 출판사와 계약했다.
에이전시 계약과 투자는 하이든 에이전시와 체결했다.
‘결국, 내가 노린 세 가지를 모두 손에 쥐었어.’
짜릿했다.
내 미래를 위한 든든한 발판이 이미 세 개나 쌓인 거나 다름없으니까.
나는 모처럼의 여유를 만끽하며 홀가분한 귀국길을 준비했다.
지이잉.
막 비행기 탑승을 시작하려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주상진 편집장이었다.
-하하하, 작가님, 저 주 편집장입니다!
한껏 들뜬 표정.
아마 내 기사를 읽은 모양이었다.
“네, 편집장님. 무슨 일이시죠?”
-작가님에 대한 관심으로 국내 분위기가 장난 아닙니다. 그래서 이 열기를 이어가자는 취지로 작가님 자서전을 한 번 기획해 볼까 하는데, 어떠십니까?
주상진 편집장도 역시 촉이 좋은 사람이었다. 가장 핫한 작가의 자서전, 대중의 이목이 끌렸을 때 그걸 극대화하는 시점도 좋았고.
다만 이런 식의 정식 자서전 출판은 위험부담도 따랐다.
‘건방져 보일 수 있으니까.’
고작 20대 후반이라는 나이가 걸릴 수 있었다. 생각보다 국내 예술계는 꽤나 고지식한 면이 있으니까.
“죄송하지만 정식 자서전을 낼 계획이 아직 없습니다.”
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혹시나 마음이 바뀌시면 언제든 말씀해주십시오.
주 편집장은 정중한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다만 아쉬움이 남는 목소리만큼은 다 숨기지 못했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이게 맞았다.
자서전의 형식은 내게 도움이 되는 방식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나에 대한 관심이 극대화됐을 때 내 이야기를 천천히 푸는 게 좋았다.
물론 난 내 이야기를 담은 작품 하나를 이미 기획하고 있었고.
나는 옆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장현웅을 툭 건드렸다.
“현웅아.”
“어?”
“웹툰 올릴 타이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