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이 셰익스피어였다-82화 (82/203)

82. employment - 고용 (3)

82.

***

드라마 「이옥」의 성공.

작가 권서준에 대한 기사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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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서준 작가의 특징은 작품 속에서 고질적인 권선징악의 틀을 해체했다는 점이다.

밤을 새우며 고심하는 정조는 나라를 이끄는 군주의 입장을,

이옥은 그 가운데서 자신의 소신과 삶을 지켜내려는 민초의 입장을,

그리고 그런 이옥을 바라보며 연모의 마음을 키우는 연화는 그 끔찍하고 절박한 상황 속에서 피어나는 인류애를 담아냈다.

선과 악으로 대변되는 것이 아닌 그 안에 각자의 위치와 삶을 최우선시 하는 인간의 본성을 끌어온 것이 주요 포인트...

이는 자연스럽게 극적 긴장감을 불러일으켰고, 권 작가의 팬 카페까지 생겨나게 만드는 결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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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 카페는 개뿔!”

오늘 극단 대표실.

권서준의 승승장구 기사를 읽어 내려가던 박성규 교수가 신문을 구겨버린다.

“배은망덕한 놈. 감히 나를 우롱해?”

박 교수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이를 갈았다.

“왜 이렇게 화가 나셨어요?”

때마침 돌아온 김재용 대표가 묻는다.

“권서준, 그놈 때문이지.”

“아, 그 일이요? 이제 그만 진정하세요.”

“자넨 화도 안 나나? 능구렁이 같은 놈이 작품 계약도 영악하게 해서 판권도 넘어갔다면서?”

“...”

순간 김 대표의 인상이 구겨진다.

“어차피 돈은 벌 만큼 벌었으니까요.”

솔직히 속이 쓰리지만 애써 웃는다.

여우 같은 박 교수가 그 속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러지 말고, 이번에 우리 한 번 제대로 터트려 보는 건 어때?”

“네?”

“요즘 소문 난 거 알지? 김 대표가 대본하나 잘 받아서 운 좋게 돈 벌었다는 소문 말이야.”

“아니, 어떤 놈이 그런 소리를...”

“그러니까, 대체 어떤 놈이 그런 소리를 하고 다니는 거냐고? 나야 자네 능력을 아니까 아니라고 말했지만 주변 반응이 그렇더라니까? 그래서 다 권서준 그놈한테 대본 받으려고 난리가 났잖아.”

갑자기 멀쩡하던 배알이 꼴리는 기분이었다. 김 대표는 최대한 화를 억누른 채 다시 입을 연다.

“그래서, 좀 전에 하신 말씀은 뭐예요?”

“아, 작품 하나 나랑 같이하자고.”

“뭐, 아이템만 좋다면 못할 것도 없죠.”

“그래? 내가 지금 민준이하고 뮤지컬 하나를 준비하고 있거든. 어때?”

“뮤지컬이요?”

살짝 당황스러웠다.

연극보다 규모도 크고 당연히 들어가야 할 투자금도 만만찮았으니까.

그런 마음을 읽었는지 갑자기 박 교수가 상체를 숙인다.

“그래, 뮤지컬. 요즘 같은 시기에 연극이 돈이 되기나 해? 차라리 힘을 합쳐서 작품 하나 만들어보는 거야. 권서준 같은 놈 없이도 잘 된다는 걸 보여줘야지.”

“...”

“솔직히 뮤지컬이 대본이 중요한가? 연출이 중요하지. 그리고 연출하면 우리 김 대표가 또 일가견이 있잖아. 안 그래?”

김재용 대표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대본이 최민준이라면 나쁘지 않아.’

권서준처럼 대박 작품은 없었지만 이쪽 계통에서 나름 알아주는 작가였다.

게다가 일정 부분 박 교수의 말이 맞았다.

‘연극과 달리 뮤지컬은 대본보다 연출이 더 중요하거든.’

프로듀서의 역량이 중요한 장르.

만일 박 교수의 말대로 자신이 직접 연출을 맡아서 성공한다면 돈도 벌고, 명예도 차지할 수 있었다.

물론 뮤지컬의 성공은 연극의 성공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금액을 벌 수도 있었고.

순간 마음이 동한다.

“그거, 좋은 생각 같은데요?’

“그래, 그렇다니까. 이번에 우리가 제대로 보여주자고. 왕년에 김재용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말이야.”

두 사람의 의기투합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어느새 김 대표의 가슴 속에선 불끈하고 열정까지 솟구친다.

그리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한 명이 눈엣가시처럼 걸린다.

***

늦은 밤.

서미연 감독은 퇴근을 준비했다.

「거장의 숨결」이 막을 내리면 곧 다시 시작해야 할 차기작 준비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슬쩍 고개를 들어보니 벌써 열 시가 넘은 시간.

“후... 시간이 언제 이렇게 됐지?”

서 감독이 가방을 챙겨 들며 일어나려고 할 때, 때마침 김 대표가 안으로 들어온다.

“이제 퇴근하는 거야?”

“네, 일이 좀 남아서요. 퇴근 안 하셨어요?”

“나야 박 교수와 약속이 있어서.”

“아, 그러셨구나. 참, 저 다음 주 월요일엔 오후 출근 할 거 같아요. 오전에 권서준 작가를 만나기로 했거든요.”

“권서준 작가는 왜? 재계약도 안 하는 작가를 만나서 뭐 하게?”

“그래도 권 작가 덕분에 저희 극단이 신기록을 세웠잖아요.”

순간 김 대표의 표정이 굳어진다.

“그게 어디 권 작가 덕분이야? 우리가 잘 연출하고, 적절하게 지원한 덕이지.”

평소보다 각을 세우는 말투.

김 대표의 표정이 어딘가 심상찮았다.

“무슨 일 있으셨어요?”

“하아...”

김 대표는 허리에 양손을 올린 채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는 전혀 뜻밖의 말을 내뱉었다.

“자네 있잖아. 오늘부로 그만둬.”

“...네?”

서 감독은 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다. 급여를 올려주고, 성과급까지 챙겨 줘도 모자랄 판에 권고사직이라는 흐름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서 감독이 우리 극단에 끼친 피해가 지대하거든.”

“제가, 피해를 줬다고요?”

김 대표는 슬쩍 책상에 기댄 채 말을 이어간다.

“곰곰이 생각해봐. 서 감독 지난번 「거장의 숨결」 판권 얘기 때도 권 작가 편이었잖아?”

“그거야 작품이 망가질 게 뻔하니까 그런 거잖아요.”

“그래, 자네는 그게 문제야. 극단의 이윤과 성과보다 일개 작가의 입장에서 생각하잖아. 그게 맞는 거야? 그렇게 권 작가가 좋으면 이참에 나가서 권 작가랑 작업하라고.”

이제 돈도 벌 만큼 벌었고, 미운털이 박힌 자신을 내쫓으려는 계략이었다.

그래, 토사구팽(兎死狗烹).

그 사자성어 속 사냥개가 바로 자신이 된 상황이었다.

이미 단물 빨아먹고, 성공은 자기 덕이라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김 대표의 생각이 뻔히 그려진다. 물론 그 생각이 결코 바뀌지 않으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하, 좋습니다. 그만두죠.”

서 감독은 거칠게 가방을 챙겨 사무실을 뛰쳐나왔다. 도저히 듣고 있을 수가 없어서 사실상 피한 거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어차피 등 떠밀려 쫓겨날 바엔 제 발로 나가는 게 나았다.

그런데,

회사를 나오자마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안 그래도 어려운 연극계.

그나마 규모가 큰 곳이 오늘 극단이었다.

‘이제야 좀 제대로 된 공연을 할 수 있나 싶었는데...’

눈을 뜨고 있지만 눈앞이 캄캄한 상황.

그게 바로 서 감독의 처지였다.

***

다음 날, 늦은 오후.

나는 장현웅과 함께 영국 출장과 관련된 준비를 서둘렀다.

“일단 항공편과 숙소는 오 대리님이랑 얘기해서 정했어.”

“숙소는 어디야?”

“네가 말한 대로 런던 브릿지 근처 호텔로 정했어. 걸어서 5분 거리야.”

장현웅은 내가 요구했던 사항을 하나도 잊지 않고 꼼꼼하게 처리했다.

“참, 난 내일 서미연 감독을 만날 거야.”

“서미연 감독님이면 「거장의 숨결」 총괄 디렉터 말하는 거야?”

“응.”

“오케이. 그럼 난 저녁쯤에 오면 되겠다.”

“좋아.”

장현웅과의 이야기는 조금 더 깊어졌다.

“그리고 우리 웹툰 말이야. 스토리는 기본적으로 너의 이야기를 팔로우하면 되겠지?”

장현웅은 매니저 업무뿐만 아니라 자기 작품에 대한 열정도 보통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쯤에서 한번 짚어주는 게 필요했다.

“내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지.”

“어?”

“생각해봐. 셜록 홈즈 소설에 셜록 얘기만 나온다면 재미있었을까?”

장현웅이 고개를 젓는다.

“그건 아니지. 왓슨이 있기에 셜록의 성격이 극대화되고, 감초 같은 재미가 살아나는 거잖아. 리메이크된 셜록도 그런 부분을 강조한 거 아닌가?”

“그래, 바로 그거야. 그래서 내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여야 하는 거야.”

“아...”

내 말을 이해한 장현웅이 고개를 끄덕인다.

“맞네. 상반되는 성향을 부각시켜서 오히려 캐릭터 성을 살리는 거구나? 게다가 넌 SNS도 하지 않으니까 앞으로 우리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 테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권서준 작가의 삶과 이야기를 전하는 또 다른 작가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거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가 함께 살아야 입체적이면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 거야. 그래서 더 관심을 끄는 스토리가 나오는 거고”

“오케이, 백 퍼센트 이해했다.”

내 의도를 깨달은 장현웅이 이내 환한 얼굴과 함께 폭풍 메모를 한다. 언뜻 봤는데 스토리 콘셉트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고맙다. 나 민폐가 되지 않게 열심히 해볼게.”

모처럼 활기를 되찾은 녀석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여기서 누군가는 그렇게 물을 수 있다.

왜 내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려는 걸까?

단순히 위인전처럼 누군가에게 자랑하거나 관심을 끌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랬다면 벌써 SNS를 하고, 각종 인터뷰와 TV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테니까.

‘난 그저 내 삶을 제대로 평가받고 싶을 뿐이야.’

사실 내가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건 다 전생의 경험 때문이었다.

작년.

도서관에서 나의 전생 자료를 봤을 때 그 충격은 지금도 잊히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나를 매점매석이나 하는 곡물 투기꾼, 악덕 지주, 고리대금업자라고 몰아가던 자료들.

하다못해 실존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의 발단은 일명 ‘셰익스피어의 잃어버린 7년’이라 불리는 시기 때문이었다.

1585년부터 런던 글로브 극장 활동이 시작된 1592년까지의 시간.

최고의 작가가 되기 위해 고향을 떠나 런던에 도착하기까지, 그 7년의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수많은 셰익스피어 연구자들은 잃어버린 세월로 지칭하는 시기.

텅 비어버린 시간을 사람들은 제멋대로 채워 넣기 시작했다.

그래, 공신력을 가진 자료가 없는 탓이었다.

그래서 헛된 루머가 퍼진 거고.

‘이번 생에도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순 없지.’

나는 이번 일로 많은 것을 노리고 있었다.

든든한 친구를 통해 업무 지원을 받고, 웹툰으로 내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기록하고, 장현웅의 성공까지 거두는, 그야말로 일석삼조를 노린 극한의 이득.

그래. 이 정도의 이득은 계산할 줄 알아야 참다운 경영자라고 할 수 있겠지. 이래봬도 내가 한때 글로브 극장의 극장주였다고.

그때,

메모를 마친 장현웅이 고개를 든다.

“이참에 영국 갈 때 말이야. 내 영어 이름도 왓슨으로 해야겠다. 어때?”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잘 어울려.”

자연스럽게 전생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내가 죽을 때, 끝까지 내 옆을 지킨 벗의 이름도 왓슨이었지.

400여 년의 세월을 넘어 옛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것조차 운명인 걸까?

물론 이번엔 전생과 많이 다른 삶이 되겠지만.

***

월요일 오후.

나는 서 감독과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로 향했다.

“작가님! 여깁니다!”

나를 본 서 감독이 반갑게 손을 흔든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신이 나서 그동안의 성과를 늘어놓는다.

“무려 52주 연속 매진이에요. 누적 관객이 무려 20만 명을 넘었고요.”

유명 배우의 이름을 브랜드로 걸지 않고 성공한 유일한 사례였다.

“작가님, 정말 대단하세요. 소설에, 드라마에, 연극까지, 대체 못 하는 게 뭐예요?”

“운이 좋았죠.”

“어떻게 운만으로 그 많은 장르에서 다 성공을 해요? 다 작가님 실력인 거지. 정말 보고 있어도 믿기지가 않는다니까요? 마치 소설 속 주인공을 보는 기분이랄까?”

서 감독 입장에선 그럴 수 있었다.

나야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걸을 뿐이지만 주변에서 보기엔 그 걸음걸음이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으니까.

“참, 이제 작가님은 뭐하실 건가요?”

“영국에 다녀온 뒤에 소설에 집중하려고요. 연극 쪽은 당분간 생각이 없습니다.”

이미 연극 쪽에선 이룰 수 있는 걸 모두 이뤘다.

52주 연속 매진 기록을 깬다 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돈을 조금 더 더 번다는 것뿐.

게다가 연극계는 김재용 대표와 같은 사람, 박 교수 같은 사람이 너무나 많았다.

‘예술의 가치를 완성시킨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희생을 너무나 당연히 여겼거든.’

문득 김 대표의 근황이 궁금해진다.

“김 대표는 뭐 한다고 합니까?”

“아마 뮤지컬을 한다는 거 같아요.”

“뮤지컬이요?”

“네, 박성규 교수랑 뭉쳤더라고요.”

뮤지컬이라니 일이 재미있게 돌아간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저는 엊그제 극단 나왔어요. 김 대표랑 갈등이 좀 있었거든요.”

나는 굳이 이유를 묻지 않았다.

아마 내 작품과 관련된 일 때문일 테니까.

“전 일단 이쪽에서 계속 일을 찾을 생각이에요. 안 그래도 다른 극단과 얘기 나누고 있고요. 솔직히 창업도 고민하고 있긴 한데... 요즘 이쪽 상황이 워낙 좋지 않아서 쉽게 결정하긴 어렵네요.”

워낙 유능한 사람이라 취업 걱정은 없었다. 사업을 한다 해도 손해 보면서 망할 사람도 아니었고.

다만 나는 조금 먼 미래를 위해 씨앗을 하나 뿌려둘 생각이었다.

그래, 씨앗.

머지않아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 이상의 결실을 가져올 우량 품종이었다.

나는 천천히 상체를 숙여 입을 열었다.

“감독님, 혹시 뮤지컬은 관심 없으신가요?”

“뮤지... 컬이요?”

내 말에 순간 서 감독의 눈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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