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 belongings - 재산, 소유물 (1)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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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란 무엇인가?
가장 흔하면서도, 정의하기 어려운 질문.
나는 말년에 쓴 희곡 「아테네의 타이먼」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사람들은 돈을 숭배하고,
돈을 소유한 사람도 숭배한다.
작품 속에서 갑부였던 주인공 타이먼은 의리와 우정을 위해 자신의 돈을 아끼지 않는다.
채무를 갚아주고, 하인의 결혼 자금을 대주고, 주변의 어려움도 결코 외면하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금고가 바닥나자, 그의 집을 가득 채우던 친구들은 썰물처럼 사라졌다. 아니, 그를 철저히 외면하기까지 한다.
그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돈을 둘러싼 인간의 추악함. 그것에 관한 이야기였다.
돈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돌변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본모습이니까.
나는 그것을 말년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그리고 그러한 내 회한은 고스란히 작품 「아테네의 타이먼」에 담겼다.
나는 타이먼의 입을 빌어 다음과 같이 외쳤다.
___________
오, 이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황금이여!
이것만 있으면,
검은 것도 희게,
추한 것도 아름답게,
틀린 것도 옳게,
비천한 것도 고귀하게,
늙은 것도 젊게,
겁쟁이도 사나이로 만들 수 있다네.
이것은 저주받은 자에게 축복을 내리고,
문둥병 환자마저도 사랑스러워 보이게끔 하고,
좀도둑까지도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힌다네.
그리고 원로원 회의에서 그 좀도둑에게, 작위와, 궤배와, 권세를 부여한다네.
.
.
.
눈에 보이는 신(神).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
건널 수 없고, 메울 수 없는 거리를 넘고, 메우며, 단번에 입을 맞추게 하지.
오, 황금이여!
___________
눈에 보이는 신(神).
욕망이 들어찬 인간에게 돈이란 그런 것이었다.
그 당시 공연조차 하지 않은 희곡 작품.
그런데도 내가 이 작품을 집필한 이유는 말년에 겪은 지독한 회의감 때문이었다.
‘성공을 쥐었으나, 그것은 결코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았으니까.’
그 뒤로 나는 ‘성공’이 아닌 ‘나의 삶’으로 시선을 돌렸다.
고향을 떠나 홀로 수십 년을 지낸 런던에서의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작가로서 얻은 명성.
극장주로서 얻게 된 돈까지.
나는 많은 것을 얻었지만 불행했다.
소원해진 가족.
커가는 것도 보지 못한 아이들.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하고 먼저 보낸 열한 살 아들까지.
많은 것들을 얻었지만 내 삶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결국 나는 은퇴를 결심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집을 산 것이었다.
가족들이 함께 머물 수 있는 공간.
벽돌과 목재로 지은 3층짜리 커다란 집.
다섯 개의 박공이 있고, 투박한 벽난로가 있는 열 개의 방, 그리고 주위를 둘러싼 정원과 과수원, 두 개의 외양간과 별채들을 거느린 집.
나는 그 집이 마음에 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집의 이름 때문이었다.
뉴 플레이스(New Place).
그래.
집은 산 건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한 다짐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에겐 그리 긴 시간이 남아있지 않았다.
“후우.”
깊게 숨을 고르며 전생의 아쉬움을 털어낸다.
통장에 꽂힌 거금을 보자 나도 모르게 떠올린 전생의 기억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통장 잔고를 확인했다.
이 나이에 얻기 힘든 거액.
그러나 아직은 부족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살 수 있겠지.’
나는 가만히 눈을 감아 미래의 집을 떠올린다.
푸른 숲이 둘러싸고, 아름다운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고즈넉한 시골집. 따스한 햇볕이 집을 감싸며, 고요한 바람이 반가운 친구처럼 찾아드는 곳.
그곳에서 웃고 있는 엄마와 누나의 모습을 떠올린다. 나도 모르게 한쪽 입꼬리가 느슨하게 올라간다.
아마 나는 그때도 다시 한번 집의 이름을 짓겠지. 물론 전생과는 조금 다른 이름이겠지만.
뉴 월드(New World).
새롭게 써 내려가는 나의 삶을 잊지 않기 위한 다짐이었다.
‘인생이 소설이라면 지금이라는 시간은 고작 추천사에 지나지 않으니까.’
자연을 몹시 사랑하며 전원생활을 즐기는 작가는 그렇게 한참 동안 상상 속 산책을 즐겼다.
***
늦은 오후.
나는 충무로 근처에서 서미연 감독을 만났다.
“작가님, 누적 관객이 벌써 12만 명을 넘었어요!”
물론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내 통장에 꽂힌 러닝개런티가 어느새 2억을 넘어가고 있었으니까.
“축하드려요. 계약 한 번이 정말 중요하네요.”
“다 서 감독님 덕분이죠.”
“저야 작가님이 주신 대본대로 한 거죠.”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아시잖아요.”
“물론 저도 노력하긴 했지만, 그래도 작가님의 대본 지분은 무시할 수가 없잖아요. 정말 대단하세요.”
자연스럽게 덕담이 오가는 자리.
우리의 만남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아마 이대로라면 계약 끝날 때까지 매진일 거 같아요.”
계약이 끝나는 시점은 정확히 2달 뒤였다.
나는 애초에 계약서에 서명할 때 1년 단위로 계약을 했다.
왜 일 년만 계약했냐고?
같은 내용의 공연을 1년 이상 지속하는 여러모로 위험부담이 컸다. 나는 내 작품이 닳고 닳은 물건 취급받는 걸 원하지 않았다.
‘가장 좋은 인상을 남기고 다음을 기약하는 거지.’
그 시절 런던에서 우리 극단이 가장 많은 관객을 끌어 모을 수 있었던 것도 그 시점을 정확히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오늘 극단의 대표인 김재용에 대한 불신도 한몫했다.
‘오래 같이 일할 사람은 아니니까.’
이번 작품은 나의 가치를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러게요. 이제 두 달만 지나면 계약 만료겠네요?”
“맞아요. 안 그래도 그 문제 때문에 이렇게 찾아왔어요.”
“혹시, 재계약 때문인가요?”
내 질문에 서 감독이 고개를 끄덕인다.
“네, 김 대표님이 보내셨어요. 솔직히 이렇게 대박 난 작품을 단기로 끝내고 싶지 않을 테니까요.”
여기까지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어느 극단이 일 년 내내 매진한 작품을 포기하고 싶을까.
아마 그때 돈을 더 줘서라도 판권을 사들이지 못한 걸 후회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근데, 서 감독의 표정이 어딘가 이상했다. 김 대표뿐만 아니라 실무자인 서 감독 역시 당연히 계약 연장을 원해야 하는데 표정이 어두워 보였다.
“혹시, 다른 문제가 있는 건가요?”
내 질문에 서 감독이 입술을 지그시 문다.
“...역시 작가님은 못 속이겠네요.”
서 감독은 차가운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마 대표님은 리메이크를 요청할 거 같아요.”
리메이크라.
이건 좀 예상 못 한 요구 사항이었다.
“김 대표님은 좀 더 자극적으로 가고 싶은 가 봐요. 공연장도 대도시 쪽으로 6개 이상 더 오픈할 생각인 거 같고요.”
달리 말하면 사업 확장을 위해 작품의 매운맛을 더하겠다는 뜻이었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김 대표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대표님과 몇 번 얘기해보긴 했는데... 제가 생각하기엔 원래 작품이 추구하던 방향성과 안 맞는 거 같아서요. 대표님이 말씀대로 너무 자극적으로 가면 원래 캐릭터가 많이 가벼워지고, 밸런스가 무너지는 느낌이라...”
서 감독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꺼내 놨다. 김 대표의 노림수는 뻔했다.
작품에 대한 입소문은 이미 탄 상태니까 리메이크를 통해 이전에 연극을 본 관객까지 노리려는 심산이었다.
물론 나는 그런 얕은수에 내 새끼를 내 줄 생각이 없었다.
“죄송하지만 리메이크는 없을 겁니다.”
나는 일말의 여지도 없이 딱 잘라 말했다.
“물론 재계약도 없을 거고요. 거장의 숨결은 애초에 딱 1년만 대중들에게 오픈할 생각이었으니까요.”
“...”
아쉬움과 이해가 공존하는 서 감독의 표정. 그러나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어쩐지 작가님을 그러실 거 같았어요...”
한숨을 깊게 내쉰 서 감독이 이내 말을 잇는다.
“사실 제 생각에도 그게 맞는 거 같아요. 작가님의 뜻, 제가 대표님한테 잘 전달하겠습니다.”
역시나 첫인상은 틀리는 법이 없었다.
김재용 대표는 지나치게 욕심을 부렸다.
‘눈에 보이는 신(神)에게 잡아 먹혔군.’
한때는 진심으로 연극을 사랑한 연극배우였지만, 이젠 돈 앞에선 계산기만 두드리는 장사꾼일 뿐이었다.
물론 난 그런 얕은 상술에 휘둘릴 사람이 아니었다.
***
며칠 뒤.
서 감독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작가님, 김 대표님한테 확실히 작가님의 의사를 전달했어요. 재계약 없이 판권 역시 원작자인 작가님한테 있으니까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똑 떨어지는 답변을 보니 일 처리를 제대로 한 모양이었다.
다만 서 감독에게 뒤탈이 없을까 신경이 쓰였다. 경험해본 바로는 김 대표는 뒤끝이 꽤 긴 사람 중 한 명이었으니까.
일단 지켜봐야 할 일이었다.
지금은 사극 이옥의 결과가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이었다.
물론 대본 외에 내가 특별히 신경 쓸 건 없었다.
제작사에선 메이킹 필름을 비롯해 배우들의 인터뷰를 활용해 본격적으로 홍보에 힘을 쏟고 있었다.
새로운 사극에 대한 관심 때문일까.
인터넷엔 드라마 「이옥」 관련 기사들이 길게 이어졌다.
[이옥, 주민준부터 태민호까지, 명품 신스틸러 총출동.]
[정통사극 ‘이옥’ 강원준 출연 확정.]
[당신이 몰랐던 조선의 이야기. 이옥.]
[‘이옥’, 오랜만에 사극의 흥행을 이끌어 갈 수 있을까?]
기사뿐만 아니라 댓글 관심도 뜨거웠다.
-와 대박. 강원준에, 신하율이라고?
└신하율은 그렇다 치고 강원준이 사극에 나오다니 의왼데? 원래 당분간 사극 안 찍는다고 하지 않았었나?
└그러게. 대본이 잘 빠졌나?
-한복 입은 신하율이라니 벌써부터 기대되는데?
└사극에 어울릴까 싶긴 한데 잘했으면 좋겠다.
강원준과 신하율의 캐스팅 기사.
연기력을 갖춘 주연 배우와 최근 인기를 달리는 신인 배우의 조합이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그건 작가인 내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완벽한 조합이지. 아마, 더할 나위가 없이 좋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거겠지?’
그리고 누군가는 이 완벽한 캐스팅을 미치도록 배 아파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
늦은 밤.
썬샤인 제작사.
타이거 스튜디오의 홍보 기사를 읽어 내려가던 공민욱 대표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자신 있다며? 애초에 이 작품도 강원준 생각하면서 기획한 거라며? 근데 정작 주연 배우를 뺏기면 어쩔 거냐고!”
공 대표의 외침에 대표실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는다. 당장 태블릿을 던져버릴 것 무서운 기세에 실무진들은 좀처럼 고개를 들지 못했다.
“대답 안 해?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진정할 줄 모르는 공 대표의 화에 결국 실무진 한 명이 조심스럽게 나선다.
“그, 그게 그러니까 저희도 노력했지만, 강원준이 갑자기 마음을 바꿔서...”
공 대표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실무진에게 향한다.
“이유가 뭐라는데? 그쪽에 가서는 오히려 출연료도 깎았다면서?”
“그게... 대본이 좋았답니다.”
“대본? 그게 말이 돼? 우리는 김연숙 작가라고! 그쪽 작가가 대체 누군데? 임성춘이야? 아니면 송자매라도 돼?”
눈치를 보던 실무진이 눈을 질끈 감은 채 대답한다.
“그게... 권서준이라고..”
“뭐? 누구?”
“권서준이라고, 이번에 입봉하는 작가입니다.”
“하, 입봉 작가한테 밀렸다고?”
이젠 화도 안 난다.
오히려 헛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후.”
숨을 고르며 간신히 마음을 다독인다.
“그래서, 우리 쪽 대안은 뭐야?”
공 대표의 질문에 실무진이 다급히 대답한다.
“조, 조한웅으로 세팅했습니다. 인지도나, 최근 작품을 볼 때 강원준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진 않으니까요.”
“...”
공 대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강원준과 조한웅.
인기만 따지면 박빙의 승부가 예측됐다.
하필 드라마도 비슷하게 방영될 예정인 상황.
“할 수 없지. 이렇게 된 거 정면 승부로 부딪혀 보자고.”
150억을 갈아 넣었는데 피할 수는 없었다. 대본도, 배우도, 투자금액도 썬샤인 측이 앞서는 상황이었다.
‘뭐. 누가 부서지나 한번 보자고.’
공민욱 대표는 이를 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