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 The game is afoot - 게임은 이미 시작됐다 (5)
62.
***
1792년(정조 16).
이옥은 과거 시험지에 소설문체를 썼다는 이유로 정조로부터 정거(과거를 보지 못함)를 당한다.
안타까운 이옥의 고초.
그러나 이건 고작 시작일 뿐이었다.
1796년(정도 20)엔 초시(初試)에서 1등을 차지했으나 역시 문체가 문제 되어 방말(榜末), 즉 합격자 중 꼴찌에 붙여진다. 그 뿐만 아니라 양반임에도 충군(充軍)을 당하여 군역에 복무하게 된다.
결국 이옥은 과거를 포기하고 본가가 있는 경기도 남양으로 내려와 전원생활을 하면서 글쓰기에 전념하게 된다.
이옥의 기구하기만 한 삶의 자취.
그 모든 불행은 바로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성균관.
대성전 주변으로 촬영 스태프들이 빼곡히 둘러쌌다.
유생 복장을 한 수 십 명의 엑스트라와 함께 유건(儒巾)을 쓴 강원준이 사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조연출이 슬레이트를 치는 소리와 함께 카메라가 돌기 시작한다.
“레디, 액션!”
정은미 피디의 큐 사인과 함께 배우들과 촬영팀이 합을 맞춘 듯 제 위치로 이동한다.
“성균관 유생 이옥은 나와서 어명을 받들라!”
사뭇 지엄한 관군의 엄포에 유생들이 웅성거린다. 그리고 그사이를 걸어 나오는 남자.
“내가 이옥이오만? 무슨 일들이시오?”
“네 죄를 네가 알렷다! 하찮은 소설문체를 써서 유생의 부끄러움을 답습하였고, 성균관과 나라의 기강을 우롱하였으니 이에 벌을 받아 마땅한바 충군에 처한다!”
과거에 뜻을 둔 유생에겐 참혹하리만큼 냉혹한 처벌이었다.
그러나 이옥은 좌절하지 않았다.
“자네, 괜찮은가?”
걱정하는 김려에게 이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힘없는 북인이라 어찌할 수가 없네. 권력이 있는 자는 죄가 없고, 권력이 없는 자는 죄가 있고, 유권무죄, 무권유죄로구나. 하하하하.”
호탕하나 애처로운,
담담해 보이나 울분을 삼킨 웃음.
절망 속에서도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
“하하하하.”
상반되는 감정들이 뒤섞여 만든 미묘한 웃음소리가 성균관 안에 울려 퍼진다.
그래.
강원준, 그는 어느새 완벽히 이옥이 되어 있었다.
***
‘역시 연기는 흠잡을 데가 없어.’
솔직한 감상이었다.
강원준은 이름값 이상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어? 작가님 오셨어요?”
내가 도착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정 피디가 다가온다.
“네, 좀 전에 왔는데 분위기가 좋네요.”
“분위기가 좋을 수밖에 없죠.”
정 피디가 미소를 지은 채 슬쩍 눈빛으로 강원준을 가리킨다.
“보세요. 톱스타들은 뒤에서 기다리다가 큐 돌기 직전에 오는 게 대부분인데, 강원준 씨는 최소 촬영 30분 전에 도착해서 동선이며, 카메라 이동 경로며, 조연들과의 합까지 미리 맞추거든요. 선배가 솔선수범하니까 후배들도 잘 따르고, 자연스럽게 스태프들도 의욕이 생기고, 다들 아주 열정이 장난 아니라니까요.”
내 눈에도 그 열정이 보였다.
잠시 쉬는 시간인 지금도 강원준은 상대 배역과 끊임없이 연기와 관련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잠깐만 계세요. 제가 강원준 씨한테 작가님 오셨다고 전달해 드릴게요.”
정 피디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한창 연기에 몰입하고 있는데 방해가 되면 안 되죠.”
“그래도 작가님 오셨다고 하면 좋아할 텐데...”
아쉬워하는 정 피디와 달리 나는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전체적인 촬영장의 분위기를 살피러 온 거지 친목을 다지러 온 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그때, 한 남자가 다가온다.
“안녕하세요, 혹시 권서준 작가님이신가요?”
까무잡잡한 얼굴에 거뭇거뭇한 수염이 인상적인 남자였다. 대략 30대 후반쯤 되었을까?
내가 의아한 듯 쳐다보자 눈치 빠른 정 피디가 얼른 끼어든다.
“아이고, 윤 기자님 언제 오셨어요? 작가님, 여기는 매일연예 윤석훈 기자님이세요.”
정 피디의 소개를 받은 윤 기자가 주머니를 뒤지더니 명함 한 장을 내민다.
“아, 인사가 늦었네요. 매일연예 윤석훈이라고 합니다.”
겉으로는 털털해 보였지만 예리한 눈빛만 봐도 무시 못 할 연륜이 느껴진다.
“안녕하세요. 권서준입니다.”
“안 그래도 웹드라마 때부터 잘 보고 있습니다. 혹시 가능하시면 이번 작품과 관련해서 짧게 인터뷰 좀 할 수 있을까요?”
윤 기자라면 나름 신념을 가지고 기사를 쓰는 몇 안 되는 연예부 기자였다. 작품에 대한 홍보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피할 이유가 없었다.
“네, 괜찮습니다.”
***
1시간 전.
윤석훈 기자는 세수 하는 것도 잊은 채 운전을 서둘렀다.
오늘 촬영을 시작하는 드라마 이옥 때문이었다.
‘이옥을 안다고?’
조선 시대 천재 문인.
그러나 정조에 의해 묻힌 안타까운 선비였다.
윤 기자가 이름도 없는 선비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어쩌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천재 문인이 될 수도 있으니까.’
생각해보면 나라마다 자국을 대표하는 천재 문인이 있었다.
영국은 셰익스피어.
러시아는 도스토옙스키.
프랑스는 빅토르 위고 등등.
근현대를 막론하고 문학사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수많은 천재들은 그 나라의 문학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아직까지 세계로 뻗어 나가는 한국 문인을 찾기는 어려웠다.
물론 한자 기반이라는 언어의 벽이 가장 큰 문제였지만 국내에서도 자신 있게 세계에 내밀 문인을 고르지 못하는 게 더 큰 문제였다.
‘인물의 업적이 아니라, 인물에 대한 스토리가 부족한 거야...’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이옥의 삶은 매력적인 스토리 그 자체였다.
베일에 싸인 천재 문인.
평생을 지킨 소신과 고집.
그의 모습과 작품은 윤 기자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궁금했다.
대체 어떻게 이옥의 모습을 그렸을지 기대와 걱정이 반반인 상황인 상황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작가는 어려 보였다.
많이 쳐줘야 20대 후반쯤 됐을까?
윤 기자는 첫 질문부터 묵직한 걸 던졌다.
“이옥은 기록도 많이 남지 않은 문인입니다. 조선 시대에 천재들이 많은데, 왜 이옥을 재조명하시는지, 그 이유가 뭘까요?”
시작부터 본론으로 들어가는 날카로운 질문.
그러나 권서준 작가는 편안하게 답했다.
“지식인이란 자고로 권력이 원하는 대로 따라가기 쉽습니다. 힘에 짓눌려 자신의 감정을 속인 채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관마저 속여 버리죠. 그러나 이옥은 달랐습니다. 그는 무소불위의 권력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왕이 신과 같이 군림하던 그 시대에 한 개인이 오롯이 자신의 소신대로 나아갔습니다. 여전히 유권무죄, 무권유죄가 팽배한 이 시대에 그의 외골수적인 모습이 오히려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순간 윤 기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재미를 위해 단순히 이옥이라는 소재를 가져다 쓴 수준이 아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옥 선생의 작품은 근대와 현대 문학의 연결고리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옥의 삶을 재조명함으로써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한 조선 시대 소품 문학 분야를 알리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하였습니다.”
“...”
겉으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윤석훈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문학사적 가치까지 고려한다고?’
단순히 드라마의 흥행을 넘어 보다 깊은 목표가 있다는 걸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때문일까? 권 작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이옥의 삶과 그의 작품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10분 정도 이어진 짧은 인터뷰.
그 안에서 단 한 번도 뜬구름 잡거나 추상적인 답변이 없었다.
마침내 윤 기자는 한 가지 결론에 이를 수 있었다.
‘권서준 작가, 이 사람은 진짜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인터뷰를 마친 윤 기자는 기분 좋게 악수를 건넸다.
“예정에도 없던 인터뷰였는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기사가 나올 것 같네요.”
“저야말로 재미있는 질문을 해주셔서 즐거웠습니다.”
끝까지 담담한 작가.
풍기는 기운이 입봉 작가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인사를 마치고 돌아온 차 안.
윤 기자는 시동 켜는 것도 잊은 채 노트북을 펼쳐 기사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첫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사극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작되었다.]
본인의 생각을 담은 가장 솔직한 표현이었다.
***
“우와...”
인터뷰가 끝나자 지켜보던 정 피디가 엄지를 치켜든다.
“아니, 작가님은 인터뷰도 왜 이렇게 잘하세요? 윤 기자님, 질문 날카롭기로 유명하신 분인데?”
“잘했다기보다는 그저 속엣 말을 했을 뿐이죠.”
특별히 어려운 건 없었다.
인터뷰는 처음이었지만 작품에 대한 대담(對談)은 한두 번 해본 게 아니니까.
그 당시 런던에선 공연을 무대에 올릴 때마다 술집에 모여 작품에 대해 논했다.
당시 질투심과 오만함으로 똘똘 뭉친 대학 재사들과의 작품에 대한 논쟁 경험.
그때 그 진흙탕 대화가 이렇게 도움 될 줄은 몰랐는데.
역시 경험해서 나쁜 건 없는 모양이었다.
그날 밤.
집에 오자마자 누나가 헐레벌떡 달려온다.
“서준아, 이것 좀 봐. 아주 난리가 났어!”
누나는 태블릿 PC를 내밀었다.
화면엔 그날 오후, 윤석훈 기자가 올린 기사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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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이옥을 아시오?]
조선의 역사에 능통한 사람이라고 해도 ‘이옥’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문인으로서 연암 박지원과 동시대를 살았지만 그리 큰 발자취를 남기지 못한 인물. 그러나 이 숨겨진 인물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 시작되고 있다.
-중략-
드라마 이옥의 극본을 맡은 작가 권서준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근현대 문화의 고리로서 이옥의 글은 중요한 가치를 가집니다. 그러나 여전히 유권무죄, 무권유죄가 팽배한 이 시대에 그의 외골수적인 모습이 오히려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 드라마의 목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은 작가의 발언 중에 찾을 수 있었다.
[유권무죄, 무권유죄]
과연 권력을 등진 선비의 모습으로 바라보는 조선의 모습은 어떠할까? 벌써부터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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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이지?”
누나가 오히려 들떠서 말한다.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기사.
연예 기사에서 보기 힘든 스탠스였다.
그리고 이런 인터뷰라면 언제든 환영이었다.
‘윤석훈 기자라고 했지? 앞으로 좋은 인연이 되겠어.’
그렇게 드라마 「이옥」의 시작은 순탄했다.
***
배우 캐스팅이 완료되자 작가 입장에서도 이미지를 떠올리기 수월했다. 대본 집필 속도도 탄력을 받아 한 달도 되지 않아 추가 대본 6개를 완성할 수 있었다.
전체 24부작 중 1/3이 넘는 분량의 대본이 완성되자 시간상으로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다.
보름 뒤.
나는 총 14개의 대본을 만들었다.
뒤로 갈수록 이야기의 탄력이 붙어서 술술 뽑힌다.
촬영장의 분위기 역시 좋았다.
반 사전 제작이라 1, 2화 편집본이 얼마 전 나온 상태였는데 직접 확인한 정 피디는 연이어 감탄을 터트렸다.
‘작가님, 기쁜 소식이에요. 1, 2화가 진짜 예술로 나왔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모든 것이 순탄했고, 대본도 많이 나온 상태라 여유도 있었다.
그러나,
가장 기쁜 소식은 그날 밤에 들려왔다.
-작가님! 저 서미연입니다.
늦은 밤에 걸려온 서 감독의 연락.
드라마 관련 기사를 볼 때마다 종종 연락하긴 했지만 이렇게 늦은 시간에 연락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내가 전화를 받자 서 감독은 한껏 업된 목소리가 외쳤다.
-작가님, 놀라지 마세요. 드디어 제 기록이 깨졌답니다!
나는 듣자마자 무슨 기록인지 알 수 있었다. 서 감독이 지난번 자신의 작품으로 세운 연속 매진 기록.
‘아마, 그때 기록이 42주 연속 매진이었었지?’
열 달 연속 매진되어야 세울 수 있는 대기록이 깨졌다는 소식.
그 말인즉슨,
내 통장에 꽂힐 돈이 얼마냐면...
무심코 시작한 암산.
계산할수록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건 숨길 수 없는 행복감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