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monumental - 기념비적인, 엄청난 (1)
20.
***
일주일 뒤.
시상식이 거행되었다.
“귀빈 여러분 착석해 주십시오.”
문창과 학과장 박성규 교수의 사회로 제42회 이옥 백일장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내외귀빈, 그리고 심사위원들의 소개가 간략히 이어지고 축사를 맡은 총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내외 귀빈 여러분 반갑습니다. 총장 안흥기입니다. 본교에서 주관하는 제42회 이옥 백일장의 축사를 맡게 되어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먼저 오늘 수상하시는 학생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축하의 뜻을 전합니다.”
억양도 없이 이어지는 따분한 축사.
작년과 다를 바 없는 무료한 순서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시상식 분위기만큼은 작년과 달랐다.
바로 모두의 예상을 뒤엎은 수상자 명단 때문이었다.
“대박, 전과생이 2등이라고?”
“그렇다니까. 게다가 1등은 서준 선배래.”
“근데, 작품 보니까 그럴 만하던데?”
“그래? 송진호 선배 작품이 그렇게 별로였어?”
“그건 아닌데... 서준 선배 작품이 넘사로 좋았지. 소문엔 심사위원 만장일치였대.”
시상식에 참여한 아이들의 소란스러움이 더해질 때쯤, 박 교수의 사회가 이어진다.
“3등 상 시상이 있겠습니다. 문창과 3학년 송진호.”
박성규 교수가 호명했으나 장내는 조용했다. 아무도 반응이 없자 박 교수가 당황한 듯 주변을 훑는다.
“하, 학과장님...”
그때, 조교 한 명이 뒤늦게 사인을 보낸다. 수상자가 참석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제야 상황을 알아차린 박 교수가 미간을 한번 찌푸리고는 재빨리 순서지를 넘긴다.
“흠, 흠. 그럼 2등 상부터 수여하겠습니다. 2등, 문창과 3학년 장현웅.”
잔뜩 상기된 표정의 장현웅이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간다. 어찌나 긴장했는지 오른발과 오른손이 같이 나가는데 그 모습이 하도 우스꽝스러워서 하마터면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그리고 다음.
바로 내 차례였다.
“다음은 이번 백일장의 1등 상을 수여하겠습니다. 문창과 3학년 권서준.”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내 등 뒤로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들이 느껴진다.
질투, 부러움, 시기, 선망.
말 그대로 각양각색의 시선들이 따라붙는다.
“위 사람은 예술적 소질을 잘 계발하여 본교에서 주최하는 제42회 이옥 백일장에서 우수한 작품을 선보였기에 이에 시상함.”
상패와 함께 상금이 적힌 팻말이 수여된다.
금박으로 둘러진 상장엔 명조체로 적힌 이름 석 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다.
1등 상 : 권서준 (문창과 3)
내 인생에 첫 번째로 받은 상패였다.
‘이건 시작일 뿐이야.’
인생이란 대장정의 첫걸음.
내가 얻어갈 수많은 영광중 첫 단추일 뿐이었다.
그래도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잖아.
적당히 고양되는 기분에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짝짝짝.
장내엔 어느새 박수 소리가 가득하다.
누군가는 새로운 천재의 등장을 환영하고,
누군가는 낯선 이의 등장에 긴장했다.
그렇게 의심과 기대가 뒤섞인 박수.
물론 내 입장에선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이유야 간단했다.
‘둘 다 그다지 신경 쓸 일은 아니니까.’
나는 그저 내 길을 갈 뿐이었다.
***
시상식이 끝나고 나는 송영도 교수의 호출을 받아 교수 연구실을 찾았다.
“첫 수상으로 알고 있는데 표정이 담담하네. 마치 수상할 줄 알았다는 듯한 얼굴인데?”
“아닙니다. 충분히 즐기고 있습니다.”
내 표정을 살피던 송 교수가 고개를 젓는다.
“정말 많이 달라졌어. 예전엔 감정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나는 성격 같았는데 말이야.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영 모르겠다니까.”
“제자는 언제나 스승을 닮는 법이죠.”
아부라기보다는 겸손에 가까운 표현이었다. 그 의도를 알기에 송 교수도 피식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참, 이번 시상식 결과로 영국 학회에 함께 가게 된 건 알고 있지?”
“물론입니다.”
“여권은 있나?”
“네, 예전에 하나 만들어둔 게 있습니다.”
“다행이군. 조교한테 얘기해놓을 테니까 제출하도록 해. 항공권, 비자 때문에 준비할 게 있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용건을 마친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자 송 교수가 말을 잇는다.
“이번 작품, 좋았어. 쉽지 않은 시제였을 텐데 말이야.”
송 교수의 성격을 봤을 때 최고의 칭찬이었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제 생각엔 반대였다고 생각합니다. 시제가 난해했기에 제 글이 조금도 돋보일 수 있었죠. 그 부분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 대답에 송 교수가 미소를 짓는다.
좀처럼 보기 드문 미소였기에 의미가 있었다.
“하긴 그 말도 맞지. 평범한 시제였다면 오히려 묻힐 수도 있었으니까.”
송 교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긴 송 교수를 향해 마지막으로 질문을 했다.
“혹시 학회를 위해 제가 준비할 게 있을까요?”
그러자 송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지금 같은 자신감이면 충분해.”
***
나는 상장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침 저녁 준비를 하던 엄마와 누나가 놀란 듯 쳐다본다.
“이게... 뭐야?”
“뭐긴, 보면 알잖아.”
나는 상장을 엄마에게 내밀었다.
맨 위엔 내 이름 석 자가 적혀 있었다.
“이게 지금... 1등 상인 거야?”
“그렇다니까, 여기 내 이름 있잖아.”
“엄마, 엄마. 맞아. 이거 서준이 이름이잖아.”
누나의 말에 엄마가 눈을 깜빡이며 몇 번이나 상장을 살펴본다. 이제야 실감이 나는지 뒤늦게 나를 타박한다.
“아니, 이런 일이 있으면 미리 말을 해야지.”
“왜? 일 쉬고 찾아오게? 참아줘. 그랬다가 마마보이라는 소리 들으면 학교 다니기 힘들어지니까.”
“그래도...”
엄마는 여전히 그 순간을 함께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아쉬워했다. 그 마음을 알기에 나는 가만히 엄마를 안았다.
“나중에 더 큰 거 받으면 그때 말할게. 고작해야 교내 백일장 대회라고.”
“인석아, 크고 작은 게 뭐가 중요해. 이렇게 결과를 낸 게 중요하지.”
엄마의 눈빛이 촉촉해진다.
“아무튼 장하다 우리 아들. 그동안 그렇게 고생만 하더니, 이제야 빛을 보네... 정말 고생했어.”
엄마는 딱한 아들의 등을 토닥인다.
“왜 울어? 좋은 일인데? 누가 보면 또 떨어진 줄 알겠네.”
“인석아, 자식이 잘되면 잘 되는대로, 못되면 못 되는대로 부모는 마음이 아픈 법이야.”
말로도, 글로도 다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
이게 부모의 사랑인가.
그런데 엄마는 그 복잡한 마음을 눈빛 한 번, 등을 토닥이는 손길 한 번으로 내게 전달했다.
아무리 글을 잘 쓴다 한들 이 감정을 이렇게 고스란히 전할 수 있을까.
나라고 해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걱정하지 마. 더 잘할 테니까.”
“그래, 그래...”
나는 엄마의 어깨를 안은 채 토닥였다.
이제 괜찮다고.
앞으로도 괜찮을 거라고.
그렇게 우리 가족은 늦은 밤 수상의 기쁨을 함께했다.
파티라고 해봐야 치킨 두 마리에, 맥주 세 캔이 전부.
그러나 그 어느 고급 파티보다 훨씬 더 기쁘고, 안락한 시간이었다.
***
늦은 밤.
송진호는 집으로 들어왔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부잣집.
그러나 엄마는 사업하느라 바빴다.
“오셨어요? 식사는요?”
엄마 대신 상주하는 도우미 아주머니가 송진호를 맞이한다. 친절하지만 가까워질 수 없는 사이. 그 거리감을 어색하게 밀어내며 신발을 벗는다.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술에 취한 몸이 순간 휘청거린다.
벌써 며칠째 이어진 과음.
그러나 마시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후우.”
거친 숨을 내쉬며 침대에 드러누웠다.
눕자마자 오늘 아침 확인한 백일장 수상 관련 공지가 떠오른다.
<제42회 이옥 백일장 수상 결과>
1등 : 권서준 (문창과 3)
2등 : 장현웅 (문창과 3)
3등 : 송진호 (문창과 3)
보고도 믿기 힘들었다.
1등도, 2등도 하지 못한 채 3등이라니.
제일 먼저 권서준의 당선작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의를 가질 수 없었다.
‘너무 완벽했으니까...’
자연스럽게 권서준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그저 심상을 정리하기 위한 과정이었어. 떠오른 이미지를 선명하게 다듬기 위한 기초. 굳이 그림까지 그릴 필요는 없지만, 그렇게 하면 좀 더 선명하니까.’
송진호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심상을 구체적으로 떠올리는 게 중요하다는 건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저런 식으로 접근한 적은 없다고.’
송진호의 해결 방법은 대문호가 심어준 심상을 이용하는 거였다.
이미 검증되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고귀한 표현들과 심상, 그것들을 이용해 멋진 글을 뽑아내는 게 가장 효율적인 해결책이었다.
‘그런데... 권서준은 달랐어.’
녀석의 글엔 다른 사람의 필체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채에 거르고 걸러도 결국 남는 건 권서준 뿐이었다.
‘마치 새로운 필체를 스스로 창조해내는 느낌이었지.’
그러나 자신의 글은...
늘 그렇듯 세계 대문호들의 흔적이 남는다. 그 어디에도 자신의 색깔은 없었다.
언뜻 보면 잘 쓴 글처럼 보이나,
자신은 알고 있었다.
‘아니, 아버지도 이미 알고 있었어.’
속일 수 없었다.
이게 진짜와 가짜의 차이일까 싶을 정도의 격차.
자괴감이 밀려온다.
한참 아래라 생각했던 한 동기생의 선전이 불안하게 쌓아 올린 자존감을 박살 내고 있었다.
‘젠장...’
모차르트를 바라보는 살리에르의 심정이 이랬을까. 누군가 심장을 쥐어짜는 것처럼 고통스럽다.
고작 시 한 편이었다.
그러나 권서준이 쌓아 올린 22행짜리 시는 마치 거대한 벽처럼 자신과 권서준의 사이를 가르고 있었다.
눈물이 흐른다.
광야처럼 넓디넓은 저택.
넘을 수 없는 벽을 마주한 나약한 외톨이는 사무치는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몸을 뒤척인다.
그러나 그럴수록 젖어 드는 건 그저 베갯잇뿐이었다.
***
일주일 뒤.
과제도 없고, 어려운 발표 준비도 없었다.
나는 모처럼 주어진 꿀맛 같은 시간을 온통 콘텐츠를 보는데 확인했다.
‘이제 슬슬 다음 스텝을 준비해야 하니까.’
최신 영화, 드라마, 소설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탐닉했다.
그리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이야기가 풍성한 시대라니.’
그 옛날엔 책 한 권을 구하기 위해 몇 주를 기다려야 했는데...
작품의 질을 논하기 전에 양적 풍요함만 따져도 가슴이 설렐 정도였다.
‘천국이 따로 없군.’
인터넷에 접속하면,
손만 뻗으면 이야깃거리가 넘쳐났다.
극본을 중심으로 웹드라마, 드라마, 영화 장르가 매력적이었고, 그 외에 다양한 장르 소설들도 눈에 들어왔다.
‘특히 웹소설 분야는 이전에 본 적도 없을 만큼 자유로운 기조를 띄고 있어.’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흥미로운 분야가 많았다.
물론 지금 당장은 웹드라마 촬영을 잘 마치는 게 중요했다. 나는 몇 가지 콘셉트를 떠올리며 혹시 모를 대본 수정 연락을 기다렸다.
그러고 보니, 정은미 피디에게선 일주일째 연락이 없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던데, 대본 관련 연락이 없는 걸 보면 촬영이 잘되고 있는 거겠지?
지이잉.
그런데 그 순간,
귀신같이 휴대폰이 울린다.
발신자는 정은미 피디였다.
양반은 못 되는 사람.
전해 들은 소식은 뜻밖이었다.
-작가님, 혹시 급히 좀 만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