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 fair play - 정정당당한 승부 (6)
19.
***
‘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나 교수가 저렇게 놀라는 걸까?’
분명 자신이 마지막까지 본 권서준의 모습은 백일장을 거의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뒤로 10분도 안 돼서 나갔는데, 설마 그 10분 안에 쓴 작품이라는 걸까?’
송영도 교수는 자신의 손에 들린 작품을 가만히 바라봤다.
<친애하는 외계인에게>
제목부터가 독특했다.
도입부는 그보다 더 독특했다.
외계인이 보고 싶다.
추운 바람이 불면 외계인이 보고 싶다.
팔 하나로 나를 번쩍 들던 외계인이 보고 싶다.
온 우주를 앞마당처럼 여기고,
매서운 벼락조차 이겨내는 외계인.
칠흑 같은 밤길에도,
콧노래로 두려움을 다루는 당신.
따스한 가슴으로 나를 안아주던
외계인이 보고 싶다.
‘이건...’
외계인이라 칭했지만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존재가 떠오른다. 쉬운 표현, 간결한 심상을 통해 자연스럽게 화자의 나이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어린아이야.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떠올리는 거야.’
송 교수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아래로 흐른다.
밤이 오면
나는 어김없이 당신을 찾는다.
수많은 별 속에서
당신을 기다린다.
문학 작품에서 밤은 죽음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야.’
어린 화자는 아버지의 죽음을 멀리 떠난 외계인으로 형상화시켰다. 어린 시절의 아픔을 상상력으로 이겨내려는 의지가 돋보였다.
아이의 순진한 상상력이 만들어낸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송 교수는 뿔테를 고쳐 쓰며 다시금 시의 세계로 들어간다.
들리나 오버.
이 환상이 끝나기 전에,
외계인은 돌아와야 한다.
내가 너무 크기 전에,
외계인은 돌아와야만 한다.
들리나 오버.
내 목소리가 들리는가.
송 교수는 턱을 짚은 채 생각에 잠긴다.
자기 생각이 틀렸기 때문이었다.
‘화자는 어린아이가 아니었어...’
그 뒤에 길게 이어진 시의 흐름.
화자는 오히려 성숙한 어른이었다.
아버지가 외계인이 아니라는 것도,
아버지가 죽었다는 것도,
그 모든 것이 말도 안 되는 자신의 상상이라는 것도 모두 알고 있는 성인이었다.
‘그런데... 그래서 더 아픈 느낌이야.’
곱씹을수록 먹먹한 아픔이 다가온다.
송 교수뿐만이 아니었다.
권서준의 시를 읽은 대부분의 교수들 반응도 그랬다.
“얘 누구예요?”
“권서준? 아, 얘가 걘데, 맨날 주눅 들어서 발표도 잘 못 하던...”
말을 하던 박 교수가 조용히 입을 다문다.
자신의 평가와는 너무 다른 글의 퀄리티 때문이었다.
“담담한데, 그래서 더 울컥해지네요.”
“맞아요. 제 생각엔 이 시제로 나올 수 있는 가장 괜찮은 작품 같은데요?”
“그러게요. 원래 쉽게 쓰는 게 더 어려운 법인데 쉬운 표현만으로 이런 심상을 전달하다니... 더 높은 점수를 주는 게 맞아 보여요.”
나 교수의 말에 나머지 교수들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송 교수의 생각 역시 같았다.
성향과 취향을 떠나, 모든 교수가 처음으로 한마음이 되는 순간이었다.
잠시 뒤,
각자의 의견을 담아 수상자 명단을 제출한다.
의견을 종합해 평가를 마치고, 모두가 다시 한번 확인한다.
“이대로 발표하죠?”
박 교수의 말에 나머지 교수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수상자들이 최종 선정되었다.
2등, 3등에 대한 의견은 분분했지만 1등만큼은 만장일치였다.
***
우리는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술이 나오기 전까지, 장현웅은 연신 감탄사를 터트렸다.
“완전 튀는 시제가 나올 경우 당연한 걸 당연하게 쓰지 마라... 어떻게 네가 말해준 대로 나오냐?”
장형웅은 기가 막힌다는 듯 고개를 젓는다.
사실 숱한 스터디를 통해 내가 미리 언질해준 내용이었다.
“애초에 추가 시제가 있을 수 있다는 공지 자체가 그런 기운을 풍겼잖아. 만일 평범한 시제가 주어질 거라면 굳이 따로 공지까지 할 필요가 없지.”
나는 자연스럽게 그 상황을 대비했을 뿐이었다.
튀는 시제가 주어질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하나였다.
‘절대 시제에 휘둘리지 말 것.’
대부분의 백일장 참가 학생들은 출제자의 의도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왜냐?
백일장은 수상을 목표로 하는 대회니까.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은 커다란 함정이었다.
‘어차피 외계인이라는 시제를 던져준 상황에서 완벽한 예술 작품을 원하는 게 아니야. 어떤 의도가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우리의 반응을 지켜보려는 심산이지.’
그런데 낯선 시제에 당황한 사람들은 더 완벽한 내용을 만들어내기 위해 억지로 시제를 엮어 버리는 우를 범하고 만다.
그런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렌즈였다.
‘그저 시제를 활용해서 그럴듯하게 자기 심상을 펼쳐내면 그뿐이야.’
나는 튀는 시제를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무난한 틀 안으로 끌어왔다. 덕분에 뻔해 보이는 가족의 상처가 오히려 독창적으로 보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물론 장현웅에게도 이 부분에 대해서 끊임없이 설명했다. 그림을 통해 설명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고.
“네 말대로 설명은 최소한으로 줄였고, 과한 수식도 하지 않았어. 말도 안 되는 비유는 최대한 생략했고. 그저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대로 담담하게 적었어. 그랬더니 외계인도 시 안에 녹여지더라. 대박...”
장현웅은 좌절의 시기를 다뤘다.
이전 학과에서 절망을 맛보고 전과를 결심하기까지의 힘들었던 과정.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는 그 힘든 시기에, 외계인이라도 만났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시에 녹였다.
20행이 넘는 시를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걸 보니 그만큼 이미지를 선명하게 떠올렸다는 증거였다.
‘나쁘지 않아. 잘만하면 내 예상대로 될지도.’
벌써부터 재미있는 결과가 기대됐다.
그때,
장현웅이 들뜬 얼굴로 잔을 들었다.
“야, 오늘은 진짜 제대로 마시자!”
백일장도 끝났고, 급한 과제도 모든 끝낸 상태. 모처럼의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우리는 맥주잔을 들었다.
“그동안 스터디 아니, 과외비라 생각하고 내가 쏠 테니까 마음껏 적셔!”
“정말?”
“그럼. 먹고 싶은 안주 있으면 더 시키고.”
창작의 기쁨을 맛봐서일까.
장현웅의 표정은 한껏 들 떠 있었다.
저 기분,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지.
당연히 한잔 얻어먹을 정도의 은혜를 베풀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오늘은 내가 쏠게.”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이 손사래를 친다.
“됐어. 너 편의점 알바 잘려서 돈도 없잖아. 형님이 사준다고 할 때 감사합니다, 하고 먹기나 해.”
아, 맞다.
아직 장현우은 내가 웹드라마 계약한 걸 모르고 있었다.
지이잉.
때마침 정은미 피디에게 전화가 왔다.
“네, 피디님.”
나는 일부러 호칭을 들리게 말했다.
자연스럽게 장현웅의 시선이 휴대폰으로 쏠린다.
-중간에 배우가 교체돼서요. 촬영이 조금 늦어졌어요. 소진이라고 순수소녀 막내 멤버인데 혹시 아세요?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걸 그룹이었다.
관심이 없어서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멤버들의 이미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소진이라면 당찬 이미지라 어울릴 것 같네요. 괜찮습니다. 특별히 대본 수정할 건 없는 거죠?”
-물론입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기다려주세요. 조만간 편집본 나오는 대로 연락드릴게요.
“알겠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장현웅이 고개를 들이민다.
“너 뭐야? 방금 누구야? 피디, 대본 얘긴 또 뭐고?”
“다 들었으면서 뭘 물어.”
장현웅은 소처럼 눈을 껌뻑이다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너 설마... 대본도 써?”
“얼마 전에 웹드라마 하나 계약했어.”
“뭐, 뭐?”
순간 녀석의 입이 떡 벌어진다.
“야, 야... 계약이 무슨 애들 소꿉놀이냐? 아니, 그보다 대체 시간이 언제 나서 웹드라마까지 써?”
“뭐 시간 날 때 틈틈이 썼어.”
“말도 안 돼. 그 과제에, 그 스터디를 하면서, 대본까지 썼다고?”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게 사실이니까. 나한테 뭐 시간의 방 같은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가, 가만 그래서 얼마에 계약했는데?”
“한 편당 200만, 총 6회 계약했어.”
“그럼 육이 십이... 처, 천이백만 원?”
이제는 거의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하아. 너 진짜...”
놀란 녀석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아니, 어느새 눈시울까지 촉촉해져 있었다.
“정말, 잘 됐다. 네가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는지 내가 다 아는데... 정말 잘 됐다.”
녀석은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있었다.
순간 기분이 묘했다.
성공이라는 거, 이전 삶에서도 많이 경험했다. 그러나 내 주변엔 그 성공의 기쁨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었다.
‘너무 앞만 보고 달린 탓이지.’
친구도, 동료도, 가족조차 없었다.
그나마 왓슨이 나의 유일한 벗이었다.
‘그런데... 이번 생은 좀 다를 것 같군.’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나는 기분 좋게 잔을 들었다.
“그러니까 마음껏 마셔. 오늘은 내가 쏠 테니까.”
잠시 고민하던 녀석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뭐, 그 정도 벌었으면 사양 안 하고 제일 비싼 거로 시킨다. 사장님! 여기 모둠 소시지 세트 추가요!”
자식.
기껏해야 모둠 소시지라니.
연어 샐러드가 좀 더 비싼데.
띵!
경쾌한 술잔 소리를 내며 우리는 생맥주를 들이켰다.
꿀꺽꿀꺽.
부드러운 목 넘김 뒤로,
싸한 느낌과 함께 고소함이 올라온다.
자연스럽게 미간을 향해서 모이는 표정들.
최고의 맛을 느꼈을 때만 나오는 진실의 표정이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청량감.
이러니 내가 맥주를 좋아할 수밖에 없지.
친구와 함께라서 더 기분 좋은 밤.
우리는 다시 한번 시원하게 술잔을 기울였다.
***
늦은 밤.
술자리는 생각보다 싱겁게 끝이 났다.
기분에 취한 장현웅이 생각보다 빨리 뻗은 덕분이었다.
나는 장현웅을 택시에 태워 보내고 밤길을 걸었다. 봄기운은 어느새 넘실거려 가벼운 외투만으로도 온기를 머금었다.
“후우.”
나는 강변에 앉아 가만히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밤.
그래, 밤이었다.
내가 오늘 시에 담았던 심상.
모든 것이 잠드는 시간대며,
자연스럽게 죽음과 이어지는 순간.
텅 비어 있으나 가득 차 있고,
불투명하나 한없이 투명한 기묘한 공간.
나는 그곳을 바라보며 한 사람을 떠올린다.
‘아버지...’
십수 년 전 우리 곁을 떠난 아버지.
그때도 어김없이 밤이었다.
나는 그때를 떠올리며 시를 적었다.
초등학교 무렵,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짧은 추억.
사실 아버지의 죽음은 당사자의 고통과 달리 그리 독특한 주제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유의미한 작품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전생의 기억 덕분이었다.
셰익스피어의 대표작으로 유명한 4대 비극.
그래.
나는 작품 곳곳에서 죽음을 다뤘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 불가항력적인 순간을 직접 겪기도 했다.
그 덕에 아버지의 죽음은 완벽히 다른 의미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저 원망으로 가득했던 어린 시절,
아버지의 부재로 생기는 모든 일들이 그저 고통으로 다가왔던 기억.
그러나 아니었다.
파편처럼 남은 기억 속에서
아버지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그게, 이제야 보인 거지.’
나는 다시금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아버지와의 추억은 여전히 밤하늘 곳곳에서 반짝였다.
어린 시절.
간절했던 내 질문에 대답하듯,
한결같은 밝기로 당신의 사랑을 고백하고 있었다.
너무 늦게 깨달은 아버지의 사랑.
나는 촉촉해지는 마음을 억누른 채 나직이 외쳤다.
‘잘 들린다, 오버...’
너무 늦은 대답이 아니길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제42회 이옥 백일장 공모전 당선자들이 발표되었다.
3등, 2등, 1등까지.
당선자를 확인한 문창과 학생들은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모두의 예상을 엎은 충격적인 결과였다.
<제42회 이옥 백일장 수상 결과>
1등 : 권서준 (문창과 3)
2등 : 장현웅 (문창과 3)
3등 : 송진호 (문창과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