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Good riddance - 속이 시원하다 (3)
6.
***
철컥.
문이 닫히자 한 녀석이 소리친다.
“뭐? 합평의 의미가 없다고? 대체 쟤 뭐야?”
동아리방에 모인 학생들은 분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쟤는 받아주면 안 된다고 했잖아. 있어봤자 도움 안 된다고.”
“다 지난 일을 이제 와서 따지면 뭐 해? 덕분에 심부름시키고 편했던 것도 사실이잖아.”
다투는 아이들 속에 한 명만큼은 차분함을 유지했다.
바로 송진호였다.
“다들 뭘 그렇게 흥분하고 그래?”
“그래도 너무 하잖아요. 진호 선배가 한가한 사람도 아니고, 이렇게 직접 합평해주는 기회가 얼마나 있다고.”
“고작 합평 멤버 하나 빠진 거잖아. 신경 쓰지 마.”
다독이는 듯한 말투.
그러나 송진호의 한 마디였기에 큰 힘을 발휘한다.
“하긴, 뭐 크게 신경 쓸 일도 아니지.”
“그래. 제 발로 복 차고 나간 놈을 뭐 하러 신경 써.”
“역시, 누구랑 다르게 진호 선배는 인성부터가 다르다니까.”
동기와 후배들이 송진호를 떠받들며 칭찬을 쏟아낸다.
그러나 송진호의 생각은 조금 다른 곳에 있었다.
‘권서준은 끝까지 나를 쳐다봤어.’
마치 이 모든 일의 원흉이 자신이라는 듯한 시선이었다.
‘알고 있는 건가? 모든 게 내가 짠 판이라는 걸?’
입 안 살을 지그시 물었다.
권서준과의 악연은 정확히 지난 학기 때부터 이어졌다.
지난 학기.
현대 소설 창작 수업 합평 때 일이었다.
모두가 칭찬 일색인 송진호의 작품에 유일하게 딴죽을 건 게 바로 권서준이었다.
‘누군가를 흉내 낸다고 그 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일평생 살아온 길이 다르니까요. 그런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 제 머릿속엔 계속해서 송영도 교수님의 작품이 떠올랐습니다. 아마, 이 글을 쓴 진호만이 알겠지만요.’
모기만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내뱉는데, 하나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과제를 제출하기 전까지 고민하던 문제가 바로 그 부분이었으니까.
맨부커상을 수상한 대한민국의 대표 지식인 송영도 교수.
그를 뛰어넘기 위해 그의 작품을 탐독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필체가 묻어나고 말았다.
‘어떻게든 숨기려고 했지만, 결국 녀석은 알아차려 버렸어.’
시간이 많았다면 분명 해결할 수 있었다.
자신에게 그 정도의 재능은 있었으니까.
그러나 시간이 부족했다.
‘고마워. 요즘 선생님의 작품을 많이 읽어서 필체가 묻어났나 봐.’
겉으로는 웃었지만 속으로는 이를 악물었다.
마치 치부책을 들킨 양반네처럼 온몸이 수치심으로 떨렸다.
그리고 그때의 수치심을 단 하루도 잊은 적이 없었다.
‘내가 또 당한 건 못 잊는 편이라.’
송진호는 가만히 강의 시간표를 확인했다.
거기엔 오후에 있을 3학년 필수전공 과목이 적혀 있었다.
[소설 창작의 이론과 실제]
학점을 얻기 힘든 송영도 교수의 강의.
더불어 권서준의 작품이 합평 받는 날이기도 했다.
‘찾지 못했다던 합평의 의미를, 제대로 알게 해주지.’
송진호는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머릿속엔 이미 찍소리 못한 채 당황하는 권서준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한 가지 이질감이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근데, 권서준 쟤가 저렇게 키가 컸던가?’
***
나는 여유롭게 동아리 동을 벗어나 강의실로 향했다.
‘내가 여태 저런 애들한테 휘둘렸다니.’
이미 지난 일이었지만 한심스러웠다.
그러나 그게 바로 이전의 나와 저 녀석들의 수준 차이였다. 그들 틈에 섞여 몇 마디라도 주워들어야 했던 게 바로 권서준이었다.
‘문창과에서 글을 못 쓰면 이런 취급 받는 건 너무 당연하니까.’
글 쓰는 능력이 권력이 되는 구조.
애초에 나이나 학번이 중요한 학과가 아니었다.
왜냐고?
그야 나이가 많다고 나보다 글을 잘 쓰는 건 아니니까.
자연스럽게 나이보다는 필력이 평가의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글을 못 쓰면 무시당하고, 글을 잘 쓰면 인정받는 게 이곳의 생존 법칙이었다.
그리고 그 생존 법칙은 여전히 이 강의실 안에도 존재했다.
삼삼오오 뭉쳐있는 애들 사이로 외딴 섬들이 보인다.
대부분은 편입생이거나 전과생, 혹은 글 못 쓰는 복학생들이 대부분.
그 섬 중 하나가 나를 보며 손을 든다.
“서준아!”
장현웅이었다.
이 녀석 역시 타과생으로 문창과 내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존재였다.
‘천민(賤民) 계급이라 할 수 있지.’
카스트 제도가 존재하는 인도도 아니고,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계급이라니 무슨 말인가 싶겠지.
그러나 그게 문창과라면 가능하다.
문학과 예술을 다룬다는 의미에서 문예창작학과.
그러나 그 속엔 보이지 않는 냉혹한 계급 체계가 존재한다.
그래.
내친김에 골품제(骨品制)에 빗대어보자면,
우선 성골.
엄청난 글발로 정점에 선 자들을 의미한다.
출판 또는 등단을 통해 이미 작가라는 타이틀을 받았고, 때문에 조별 과제를 하면 언제나 주변에 학우들이 바글거린다.
이미 대본, 소설, 시 등 뚜렷한 진로를 정한 애들이 대부분.
대표적인 인물로는 송진호와 고아름이 있었다.
다음은 진골.
아직 등단은 못 했으나 타고난 글발로 주변을 놀라게 하는 부류들이었다.
그러나 성골들의 천재성에 감탄하며 계속 꿈을 이어갈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계층이다.
그 아래는 육두품.
대다수의 문창과 학생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미 상위 포식자들에게 눌려 문예 쪽 진출은 어느 정도 포기한 자들.
좋은 학점을 통해 졸업과 동시에 취업 전선에 뛰어들 준비를 하는 사람이 대다수다.
끝으로 가장 밑바닥에 존재하는 천민.
글이라는 허황된 꿈을 찾아 모험을 떠난 자들.
그러나 현실은 물 한 모금 없는 사막임을 뒤늦게 깨닫는 자들.
조별 과제 때는 항상 끝까지 남아 있다가 끼리끼리 모이게 되는 자들.
문창과 정규루트를 밟지 않은 전과생, 글 못 쓰는 복학생이 여기에 속했다.
‘애초에 타과생이 무시당하는 건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야.’
‘차별’이 아닌 ‘차이’에서 나오는 어쩔 수 없는 구분이었다.
문창과의 수업은 기본적으로 중고등학교 때부터 문창과를 목표로 달려온 학생들의 수준에 맞춰져 있다. 어차피 국어 시간에 지겹게 배웠는데 뭐가 그리 차이 나겠냐 싶겠지만 그건 문창과의 특성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
맞춤법, 원고지 쓰기, 희곡 쓰기, 콩트 구성하기, 글 구성 형식 등등.
심상이 무엇이고, 그것을 통해 어떻게 시와 소설을 분석해야 하는지 타과생은 알지 못한다.
강의 과정 중에 쏟아지는 수많은 용어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말뿐이다.
그런데도 과제와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필요한 그 어떤 것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왜?
모두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당연히 전과생의 과제 퀄리티는 떨어질 수밖에 없고, 발표 역시 문창과 트리를 탄 사람들이 하지 않을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
거기에 편견과 배척, 묘한 선 가르기까지 더해지면 결국 외톨이라는 냉혹한 현실을 깨닫게 된다.
물론 이 모든 게 공식적인 계급은 아니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봤을 때 엄연히 존재하는 계급체계였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애석하게도 내가 저 중에 천민에 해당하기 때문이었다.
글을 못 쓰는 복학생, 그게 바로 나였다.
그리고 지금, 고귀한 윗분들께서 한 전과생의 작품을 낱낱이 파헤칠 준비를 한다.
이른바 합평이라 쓰고, 해부라 읽는 시간.
강의가 시작되고 송영도 교수가 자리를 잡고 앉는다.
차가운 눈매와 굳게 다문 입술.
그의 등장만으로 강의실 분위기가 무거워진다.
“자, 시작하지.”
그 한 마디에 수업이 진행된다.
지난 학기에 전과한 한 여학생이 바들바들 떨며 앞으로 나온다.
원고를 꼭 쥔 얼굴은 마치 단두대 앞에 선 죄수처럼 어둡다.
강의실 안엔 학생들이 원고 넘기는 소리만이 가득하다.
“누가 먼저 말해볼래?”
송 교수의 질문에 성골 중 한 명인 송진호가 손을 든다.
“잘 읽었습니다.”
의례적인 인사와 함께 해부가 시작된다.
서늘한 눈빛은 마치 날이 잘 선 메스와 같았다.
“혹시 작품 쓰시기 전에 스토리 개요는 한 번 정리하셨나요?”
“네? 아, 그거야 당연히...”
여학생이 대답하려 했지만 송진호는 행간조차 기다려주지 않는다.
“근데 그런 것 치고는 이야기의 흐름이 난잡한 느낌이네요. 뭐 완전 이상하다는 뜻은 아니에요.”
조곤조곤.
목소리도 높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음소하나하나가 날카로운 칼질이 되어, 작품을, 그리고 그 작품을 쓴 학우의 마음을 난도질해 버린다.
“다만 겉치레가 심한 편이에요. 너무 과한 수식 때문에 말하고자 하는 게 뭔지도 그려지지 않고요.”
“...”
“모호한 표현 때문에 전체적으로 글이 산만한 느낌이었어요. 이곳저곳에서 따온 듯한 표현은 솔직히 좀 충격적이었고요.”
발가벗겨진 것처럼 수치심이 밀려온다.
아니 세포 단위로 쪼개진 것처럼 부족함이 낱낱이 드러난다.
“...”
분하지만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여학생의 뺨이 이내 사과보다 붉게 달아오른다.
“역시 살벌해. 어후.”
옆자리에 앉은 장현웅이 혀를 내두른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합평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그 뒤로도,
그 뒤로도,
성골에 이어 진골, 육두품의 날 선 합평이 이어진다.
붉게 오르던 여학생의 피부는 어느새 핏기마저 사라진다.
“...”
결국 여학생은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 만다.
맨탈이 강한 편이라 그나마 잘 버티던 친구였는데...
점잖은 난도질에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역시 문창과 애들의 갈굼은 차원이 달라.’
이들이 구사하는 구조적인 갈굼은 대상의 정신을 서서히 깎아낸다.
마치 게임 속 도트 딜처럼 맨탈과 자존심을 서서히 망가트린다.
해학과 패러디를 섞은 갈굼.
직유와 은유를 넘나드는 현란한 갈굼.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이용한 문맥적 갈굼까지.
오랜 시간 문학을 통해 갈고 닦은 문학적, 언어적 갈굼은 거의 예술의 경지였다.
기분이 상하고, 맨탈이 갈려서 친구에게 하소연해도 답답함은 풀리지 않는다.
아니, 한참 동안 듣고 있던 친구들은 오히려 되묻는다.
‘뭐가 문제인 거야? 별말 아닌 거 같은데?’
하긴, 일반 친구들이 이 복잡하고 심오한 갈굼의 내재적 의미를 이해 할 수 있을까?
결국 모든 아픔은 전과생 혼자서 오롯이 감내해야만 했다.
강의가 끝나고, 눈이 퉁퉁 부은 여학생이 서둘러 강의실을 빠져나간다.
괜찮냐고 한 번 물어 볼 법도 한데 아무도 붙잡지 않는다.
학과에서 몇 안 되는 전과생.
아니 천민 하나하나에 손을 내밀 정도로 이곳은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잠깐 쉬고, 서준이 작품부터 시작하자.”
송 교수의 말 한 마디에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송진호와 무리가 나를 보더니 씨익 웃는다.
전후 사정을 모르면 그저 살가운 미소처럼 보이지만 속내는 검었다.
또 다른 천민을 향한 그들의 잔인한 유희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너... 괜찮아?”
옆자리에 앉은 장현웅이 걱정스레 물었다.
“뭐가?”
“쟤들이 너 벼르고 있는 거 같은데? 뭔 일 있었던 거야?”
몇 주 전 이미 합평 홍역을 치른 장현웅의 표정은 심각했다. 그러나 나는 그리 신경 쓰이지 않았다.
“뭐 그래봤자 애들이잖아.”
내 말에 장현웅이 눈을 크게 뜬 채 쳐다본다.
10분 뒤.
드디어 강의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