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난주는 여전했다.
마천도들이 버젓이 돌아다니고, 정파나 흑도 무림인들이 보이지 않는 것만 빼면 이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게 무한으로서는 의외였다.
삼십 년 전 정마대전, 그 이전의 정마대전 당시 마교도들은 교리를 따르지 않는 자는 이단이라며 서슴지 않고 척결했다.
무한의 의문은 그날 저녁 찾아간 객잔 반점에서 풀렸다.
“자네 정말 마교에 입문했는가?”
몇몇 상인의 대화가 무한의 관심을 끌었다.
“어허. 마교라니. 그런 불경한 소리 말게. 자네도 천주를 믿으면 구원을 받고 영생을 할 수 있네.”
“허허. 이 사람, 단단히 돌았구만. 천주를 믿으면 신선이라도 된다는 건가? 내 듣기로 마교는 오로지 천주만 있지, 부처도 태상노군도 없다고 하더군. 그게 말이 되냐고.”
“자네는 태상노군을 본 적이 있는가?”
“우리 집 제당에 잘 계시네.”
“그런 걸 우상이라 하는 거네. 어리석은 짓이지. 오로지 이 세상을 연 천주만이 고귀하고 경배 받아 마땅하지.”
아마도 상인 한 명이 마교의 신도가 된 듯했다. 다른 사람들이 말려도 듣지 않았다.
그때, 입구에 마천도 두 사람이 들어섰다. 마천도들은 가슴에 태양 문양을 새기고 다니기에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그러자 상인 무리가 입을 닫았다.
신도가 된 상인이 마천도를 향해 합장을 하고 예를 취했다. 마천도가 이를 알아보고 역시 합장을 하고 예를 취하며 말했다.
“형제가 계셨군요. 어디 부락의 형제이시오?”
“새로이 입문한 제자입니다. 아직 표식을 받지 못했지요. 상행을 가는 중입니다.”
“아, 그러셨구려. 천주께서 축복을 내리시기를.”
마천도들은 반점을 둘러보곤 나갔다.
그들이 나가자 상인들이 나직한 목소리로 다시 대화를 하였다.
마교도를 비난했던 상인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마도 마교라고 욕하는 걸 들었을까 염려했던 모양이다.
“큰일 날 뻔했어.”
그러자 마교로 전향한 자가 말했다.
“걱정할 것 없네. 교의 포교 방식은 이미 오래전에 바뀌었다네. 자네가 아는 마교는…… 이단척결의 시기였지. 이제는 교리 전파로 천주의 영토를 넓히고 있네.”
“그래도 이제 그만 이야기하세.”
맞은편 상인이 찜찜한지 화제를 돌렸다.
짧은 대화였지만 무한은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마교의 뿌리는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했지.’
세월이 지나며 교리나 방침도 바뀔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중원 사람들과는 맞지 않아.’
할아버지 심양조의 검천전 서재에는 마교의 교리에 대한 책자도 있었다.
세상을 창조한 유일한 신을 믿으면 죽어서 구원받고 영생할 수 있다는 게 골자다.
집마다 부처와 도가의 신, 관제상을 모시는 중원 사람들에게는 확실히 파격적인 교리였다.
‘마천으로 바뀌며 교리를 버린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군.’
애초에 신교였는데 나중에는 교도들조차 스스로를 마교라고 칭하다 마천이라고 명칭을 바꾼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여전히 같은 교리를 믿고 따른다면…….
‘만일 그렇다면 마천이 천산파로 명칭을 바꾸든 말든 결국 중원에서 배척될 게 분명해.’
무한은 중원과 마천의 대립을 해결할 단초를 얻은 듯했다.
그 후로 며칠간 난주에서 머물며 마교의 교리와 현재 상황에 대해 알아봤다.
그리고 몇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천마 또는 천주라는 존재는 아주 오래전에는 제사장으로 불렸다. 원래는 하늘의 천주와 소통하는 자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천주의 대리인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십이호교가문은 태초에 천주를 믿고 따르는 자들의 후손이다.
원래 서역에서 들어온 교리로 교의 경전은 하나인데, 이에 대한 해석이 달라 서로 간에도 대립하고, 심지어 전쟁까지 벌인 경우도 있었다.
교도들도 천차만별이어서 교리에 충실한 자는 극히 소수이고 대부분이 그저 입으로만 믿었다.
오래전 정마대전에서 패한 뒤 마교로 바꾼 건 중원의 추격을 막기 위한 당시 천마의 위장술이었다고 한다.
마교라는 명칭이 주는 섬뜩함과 인신공양의 소문에 당시 중원인들은 듣기만 해도 위축되고 도주하였다.
그렇게 이어지다 보니 마교의 마(魔)자마저 중원과 달리 해석하여 신의 전사라는 의미로 변질되었다.
마교의 무공은 확실히 신랄하고 독했다. 상대를 가장 빠르게 처단하는 수법이 대부분이었다.
이는 칼로 포교를 하던 시기의 유산이었다. 더욱이 확실히 영적인 면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무한은 마교에 대해 파고들면서 황제가 왜 그리 마교를 거부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황제는 하늘에서 점지한 하늘의 자식인데 마교는 이를 부정한다.
‘이 교리라면 마교는 결코 중원에 들어올 수 없지.’
마천주가 왜 천산파로 개칭했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일단은 중원에 뿌리를 내리며 수 대를 이어가다보면 신도가 늘 것이다. 마천주는 확실히 영악한 자였다.
그리고 십이호교가문이 왜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는지도 이해가 됐다.
호교가문은 신심이 깊은 자들인데 교리를 감추면서까지 중원으로 가는 게 탐탁지 않은 것이다.
이미 천산에서 오래도록 자리 잡은 터에 익숙하다. 과거 중원에서 쫓겨났기에 돌아가야 한다는 숙명과도 같은 이상은 사라졌다. 사실 중원은 그들에게 낯선 땅이 됐다.
실제로 무한이 만난 몇몇 마천도들은 고향 천산을 그리워하였다.
무한은 이런저런 정황을 종합한 결과, 마천주와 중원진출 강경파만 제거하면 마천이 다시 천산으로 돌아가리라고 확신했다.
무한은 굳이 자신의 얼굴을 감추지 않았다.
마천주는 난주에 없었다. 있더라도 무한은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이윽고 몇몇 마천도들이 알아보곤 이후로 끈질기게 감시가 붙었으나 감히 무한을 공격하지는 못했다.
감시인들은 처음에는 무척 은밀하게 행동했으나 무한이 모를 리 없었다.
무한은 일부러 그들과 마주치기도 하는 등 의식하지 않고 지냈다.
무한이 자신들을 적대하지 않자 마천도들은 점점 더 대담하게 나왔다.
그날은 점심을 먹으러 반점으로 내려갔는데 구석에 마천도 셋이 앉아 있었다.
‘드디어 왔군.’
무한이 손짓하여 마천도를 불렀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합시다.”
무한이 자신들을 부르자 마천도들이 당황하였다.
“그렇게 쫓아다니는데 어찌 모를 수 있겠소. 전장에서 만나면 적이지만 여기는 반점이잖소?”
마천도들도 흥미가 생겼는지, 아니면 그냥 물러나기에는 자존심이 걸렸는지 다가왔다.
무한이 점소이에게 말했다.
“여기 천산의 호걸들과 술을 한잔할 터이니 안주를 푸짐하게 내오게.”
그러면서 은자 두 냥을 건넸다. 점소이가 바람처럼 사라졌다.
사내들은 이십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가 말했다.
“천하방주께서 본 파의 사정을 알아볼 생각이면 미리 말하시오. 우리는 자결하겠소.”
“그럴 필요 없소. 나에게도 눈과 귀가 있는데 굳이 마천, 아니 천산파의 속사정을 물어 무엇 하겠소.”
마침 점소이가 술부터 가져왔다.
무한이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난주에서 지내기가 어떻소?”
“…….”
무한이 술잔을 들어 보이고 먼저 마셨다.
사내들의 시선이 서로 오가더니 이내 술잔을 들어 벌컥, 마셨다.
이어 음식이 나왔다. 제법 비싼 음식이었기에 사내들은 사양치 않고 먹고 마셨다.
술은 사람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린다. 몇 순배 술이 돌자 사내들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드디어 입이 열렸다.
“천하방주가 난주에 머무는 이유가 무엇이오?”
“천마를 기다리고 있소.”
마천도들이 마천주를 천마라 부르기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그에 맞춰 불러주었다.
“천마께서 오시면 당신은 죽은 목숨이오.”
“하하. 그 말은 지금이라도 도주하란 뜻이오?”
“…….”
“나는 천하를 유랑하기 좋아하니 언젠가는 천산에도 가볼 생각이오. 천산은 어떤 곳이오?”
그러자 사내들의 눈에 아련함 같은 것이 스쳤다.
벌써 몇 달째 떠나와 타지에서 머물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들도 천산을 그리워하는군.’
우두머리 사내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방주가 천산에 온다면 기필코 살아 돌아가지 못할 것이오.”
“그 이유가 무엇이오?”
“천산에는 십만 마인이 살고 있소. 방주가 아무리 절대고수라 하더라도 천산의 고수들을 모두 죽일 수는 없소.”
사내가 결연히 말했지만 무한은 거짓말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십만 마인이 아니라 민간인 십만 명이 살고 있겠지.
십만 마인의 전설은 중원 사람들을 주눅 들게 하는 효과가 있겠지만 무한에게는 어림도 없는 수작이었다.
무한이 고개를 갸웃하였다.
“이상하군. 나는 천산파 사람들을 죽일 생각이 없는데 왜 자꾸 귀하는 본 방주를 죽일 생각만 하오?”
“당신의 손에 수많은 형제들이 죽었소.”
“나를 죽이려는데 목을 늘이고 있을 수는 없잖소.”
“흥!”
사내가 말을 끊고는 술을 벌컥, 마셨다. 뭐라 말하고 싶은데 감히 함부로 말하지 못하겠으니 술을 마신 것이다.
무한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오는 적도 막지 않고, 가는 적도 막지 않을 것이오.”
“…….”
사내가 다시 술을 따라 한잔 마시고 말했다.
“정천맹 대패 소식은 들었을 것이오. 이제 중원에서 우리를 막을 데는 천하방뿐이오. 이미 대세가 기울었다는 말이오.”
“그렇다면 귀하와 본 방주는 전장에서 또 보겠구려.”
무한의 말에 사내가 움찔하였다.
우두머리 사내가 죽을 각오로 자리에 앉은 건 자신이 천하방주와 대작했다는 명성을 얻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자신의 실력과 지위로 감히 무한의 앞에까지 갈 수 있을까.
그저 고만고만한 놈들과 싸우다 죽겠지. 술은 대작할 수 있어도 검을 맞댈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무한이 그를 존중하여 말했다.
“귀하도 무인이잖소. 무인이 칼을 들었으면 적을 베거나 아니면 패하여 죽는 건 당연한 일이오. 설령 본 방주의 검에 유명을 달리하더라도 너무 서운해 하지 말길 바라오.”
정말 기묘한 대화였다. 마치 대등한 무인들 간에 결전을 앞두고 대작을 하는 듯했다.
사내는 호기가 뻗쳤다.
“방주 역시 천하제일인은 아니니…… 누군가의 칼에 스러지더라도 후회하지 마시오.”
“천하제일인…….”
무한이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
“천하제일인도 죽소.”
“천마는 신이오. 결코 죽지 않소.”
무한은 천마라는 존재에 대한 마천도들의 경외심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사내는 진정으로 천마는 죽지 않는다고 여기는 듯했다.
“천마가 죽지 않는다면 예전의 천마는 어딨소?”
사내가 하늘을 가리켰다.
“저 하늘에서 천주의 옆을 보좌하고 계시오.”
이건 무한이 알아본 마교 경전에는 없는 말이다. 결국 마교 또한 중원의 신선사상과 동화된 것이다.
무한이 웃으며 말했다.
“당대 천마를 천주 옆으로 보내드리겠소.”
사내의 안색이 확, 변했다.
탕!
그가 식탁을 치고 일어섰다.
천마를 조롱하는데 같이 앉아 술을 마신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잘 먹었소. 이만 가겠소. 몸조심하시오.”
“가서 마천주에게 전하시오. 천하방 감숙지부에서 기다리겠다고.”
사내가 인상을 쓰더니 굳은 얼굴로 반점을 나갔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나?’
자신이 마천주를 죽이러 왔다는 의도를 전했다.
마천주가 어디 있든 보고를 받으면 달려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