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존무한-187화 (187/250)

187화

무한은 귀영을 통해 스무 명의 신검무적대원들을 조장으로 하고, 그들에게 각기 열 명씩 대원을 선발하라고 전한 바 있다.

“아무래도 자신과 뜻이 맞는 대원을 고르려니 시간이 좀 걸리고 있네.”

“상황이 급박합니다. 서둘러 주셔야 합니다.”

무한의 말대로 마천의 침공은 예상 밖으로 순조롭게 진행되는 중이다.

“이번에는 마천이 단단히 준비한 것 같습니다. 과거 정마대전과는 양상이 다릅니다.”

담철조가 침중한 어조로 말했다.

“마천도들은 열한 갈래로 나뉘어 진군하며 주로 약소문파를 무력으로 복속시키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아예 멸문을 시켰는데 지금은 회유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대파와의 일전은 되도록 피하고 있습니다.”

담철조와 공곤이 그간 벌어진 상황에 대해 말했다.

무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랬군요.”

“부주께서 아시는 바가 있습니까?”

“이번 마천과의 싸움은 장기전이 될 것입니다.”

무한이 대청에 있는 이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난주에서 마천의 대군과 접전을 벌였습니다. 주력은 마천 십이가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게 장기전을 예상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눈빛으로 무한을 보았다.

“과거 정마대전은 마천의 정예들을 주력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십이가문의 마천도들을 앞세웠다는 것이지요.”

“그게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선뜻 이해를 못 한 공곤이 물었다.

“과거에는 더 많은 승리를 위해 싸웠다면, 지금은 십이가문의 세를 넓히고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겁니다.”

“아!”

“그렇기에 과거 마천 정예보다 무력은 떨어지는 면이 있지만, 진군하면서 세력은 계속 늘어날 것입니다.”

무한이 서안으로 오면서 탐문한 정황이 그랬다.

마천은 약소문파나 흑도를 병합하며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휘두르고 있었다.

심지어 무공비급까지 제시하며 정사지간에 있는 문파나 산채, 수채들을 끌어들이는 중이다.

그러면서 상인이나 양민들은 건드리지 않았다.

과거에는 자신들의 교리를 전도하며 믿지 않는 양민들을 마구 도륙하는 바람에 조정에서 대군을 움직였고, 그 때문에 마천이 물러난 측면도 있었다.

“허…… 이러다 정말 중원 무림이 마천의 손에 떨어질 수도 있겠군요.”

담철조가 탄식하였다.

“우리가 십이가문 모두를 상대할 수는 없습니다. 주시해야 할 것은 마천의 정예라고 할 수 있는 십이무력대와 마천주의 친위 무력대의 움직임입니다.”

“…….”

“그들의 행방이 묘연한데 아마도… 어디선가 숨어서 천하방이나 정천맹을 단숨에 깨뜨릴 준비를 하고 있을 겁니다.”

무한의 말에 모두들 굳은 얼굴로 침음을 흘렸다.

아무리 마천이 회유 전략으로 중원 무림을 끌어들이더라도 중원 무림의 핵심은 넘어가지 않는다.

결국, 마천의 정예와 구파일방, 천하방 등 정파 주축이 부딪히는 순간 대세가 판가름 날 것이다.

“천하방은 절반으로 쪼개졌으니 마천의 십이무력대를 감당할 수 없을 겁니다.”

담철조의 말에 공곤이 목소리를 높였다.

“제가 가서 권왕을 설득하겠습니다. 우선 외적부터 물리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한이 고개를 저었다.

“권왕의 의도는 모르겠지만, 총군사 손우자의 의도는 중원 무림과 마천의 공멸입니다. 그가 무슨 계획을 꾸미고 있는지를 알아내는 게 우선입니다.”

무한의 말에 남궁우가 끼어들었다.

“정천맹과 흑천의 동향도 중요해. 특히, 흑천은 사천에서 세력을 거둔 뒤 거의 봉문하다시피 하고 있는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무한도 궁금한 부분이다.

지금 마천은 정파보다 오히려 흑천의 세력을 야금야금 잡아먹으며 진군하고 있다. 아무래도 명분보다는 실리를 따지는 흑도 문파를 회유하는 게 쉽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흑천은 수수방관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흑천 본산 흑수애만 남을지도 모른다.

무한이 가볍게 탄식하였다.

“결국 수뇌부 동향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군요.”

각 세력의 수뇌부들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내야 한다.

“일단 이렇게 대응하겠습니다.”

무한은 먼저 남궁우와 소소를 보며 말했다.

“신검대와 무적대를 내줄 테니 두 사람이 정천맹과 천하방의 동향을 파악해줘.”

남궁우와 소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한은 남궁우에게 따로 일렀다.

“지금 대파와 세가 중에 가장 확실한 아군은 남궁세가와 당가뿐이야. 당전수에게 돌아가는 정황을 일러주고 수시로 협조할 수 있도록 체계를 잡아줘.”

“그러지.”

남궁우가 당연한 걸 말해 무엇하랴는 듯 말했다.

무한의 시선이 허공을 향했다.

그 어딘가에 무흔이 있다.

“무흔 대협, 흑천에 다녀와주시겠습니까?”

흑천에는 연이설이 있다. 무흔과 각별한 사이이니 어렵지 않게 흑천의 동향을 알아낼 수 있으리라.

“알겠습니다.”

어디선가 대답이 들려왔다. 그새 출발했는지 마지막 소리는 멀리서 들려왔다.

이어 무한이 귀영에게 말했다.

“오산사걸과 함께 하남과 하북, 산동과 강소 일대의 마천 동향을 파악해 남궁우에게 전하세요.”

오산사걸은 이미 귀영의 수족이나 다름없다. 흑도의 행태를 버리고 검천부에 머문 지 꽤 되었기에 정말 오산사걸이라는 별호가 딱 들어맞았다.

“걱정 마시지요. 싹 훑어 오겠습니다. 정보 수집이야말로 제 특기 아닙니까?”

귀영이 자신의 가슴을 탕탕, 치며 자신했다.

이어 형소를 향해 무한이 말했다.

“형소는 여기 서안에 머물면서 서현에 있는 유아, 백가상단과 협조하여 자금과 물자를 지원해줬으면 해.”

“그거야 내가 만재당에서 늘 하던 일이야. 어려울 것 없지.”

“그리고 이 집은 협소하니 서안 외곽에 장원부터 하나 구해. 일단 그곳을 본거지로 삼을 생각이니까.”

천하방이 갈라졌으니 굳이 돌아갈 필요가 없었다. 지금 천하방에 남은 세력은 도천부와 밀접한 문파들이 대부분이다.

무한의 시선이 검천사위에게 향했다.

“후방지원이 무너지면 모두가 힘들어집니다. 검천사위께서 형소의 일을 거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염량과 방옥헌, 조공하, 문역기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무슨 일을 하나?”

하기주가 무한에게 물었다.

다들 하나씩 임무를 맡는데 자신만 빼놓은 게 혹시 사숙이라고 예우하는 게 아닌가 싶었나보다.

“하 사숙께서는 천무관 교관이셨잖습니까? 천무관 문하생을 비롯한 과거 천하방 산하 문파에서 인재를 끌어오시는 일을 맡아 주셨으면 합니다. 신검무적대 충원 또한 계속 맡아주시고요.”

“알았네.”

“그럼 우리는 뭘 하지요?”

이번에는 담철조와 공곤이 물었다.

“남궁우와 소소가 정보를 수집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을 겁니다. 두 분은 과거 천하방 산하였던 각파의 수뇌부들과 접촉하여 동향을 알아보고, 회유할 수 있는 문파를 끌어들여 주셨으면 합니다.”

담철조와 공곤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한이 마지막으로 당부하듯 말했다.

“말씀드렸다시피, 이 전쟁은 장기전이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기 계신 분들을 비롯해 모두의 안위입니다.”

무한이 모두를 돌아보며 일일이 시선을 맞췄다.

“지금은 무리하게 적과 싸울 이유가 없습니다. 세력을 키우는 게 관건이지요. 그러니 각자 안위를 우선으로 움직이셔야 합니다.”

무한이 쾌도난마처럼 지시를 하자 대청 안에 활기가 돌았다.

특히, 담철조는 감개무량한 눈빛으로 무한을 보았다. 그가 믿고 따랐던 검신 심양조의 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무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회포를 풀 시간이 없군요.”

“부주께서는 어디로 가십니까?”

“일단 난주로 갈 생각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흑천으로 가서 부모의 안위부터 알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촉박했다.

마천을 상대할 전략을 세우려면 소마와 고벽후를 만나야 한다.

‘두 분 또한 스스로를 건사할 수 있는 분들이니까.’

이번에는 홀로 감숙으로 향했다.

언제부터인가 곁에 붙어 있던 남궁우가 없으니 어딘가 모르게 허전했다.

‘잘하고 있겠지.’

남궁우는 신검대를 이끌고 담철조와 함께 정천맹으로 향했다.

기천부가 아직 건재한 천하방은 소소가 맡았다.

무한은 쉼 없이 말을 달리면서도 큰 현이나 도시는 일부러 찾아 머물렀다.

역시 예상대로 마천은 스며들듯 중소문파를 끌어들였다. 과거 마천이 일으킨 혈사를 기억하고 있는 이들은 오히려 이를 다행으로 여기는 듯했다.

양민들은 아예 마천의 침공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많았다.

대파와 세가, 명문 정파가 문을 걸어닫는 바람에 흑도와 사파가 날뛰고 있었고, 마천이 이를 제압하니 환영하는 곳도 생겨났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무조건 마천을 배척하던 과거와는 사뭇 달랐다.

‘마천주… 효웅이었구나.’

정마대전의 틈을 이용해 마천주의 자리를 차지하고, 오랫동안 실력을 기르면서 준비한 중원 공략일 것이다.

무한은 그렇게 섬서와 감숙의 무림 동향을 살피며 난주로 향했다.

***

난주에서 백여 리 떨어진 현에 당도한 무한이 객잔에 들었다.

마침 저녁시간이어서 사람들로 붐볐다. 상단이라도 왔는지 상인들이 많았다.

무한이 자리에 앉는데 한 상인 무리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천산파가 들어오고 나서 마적들이 사라졌다고. 과거의 마천이 아니야.”

한 상인이 걸걸한 목소리로 말하자 객잔 반점에 있는 모두가 흘깃거렸다.

“이름부터 바꿨잖아. 이제 천산파라고 불러야 해.”

무한이 내심 다시 한 번 마천주의 영악함에 감탄하였다.

마천의 전신은 마교였다. 원래는 신교라 부르다 중원의 풍속과 상이한 교리 때문에 오래도록 마교라는 이름으로 배척되어 왔다.

백여 년 전 마교주가 교리를 우선하는 정책을 버리고 스스로를 무천(武天)이라 개칭했는데 중원에서는 여전히 마천이라 불렀다.

그런데 이번에 감숙에 오니 아예 천산파라고 호칭을 바꿔 버린 것이다.

명칭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이는 대단히 의미가 있는 변화였다.

천산파라는 명칭을 쓰는 순간 구파일방과 다를 바 없는 무림문파라는 느낌을 주었다.

마천주는 천산파라고 개명한 뒤 십이호교가문의 명칭도 바꿨다.

호교라는 그나마 남아 있던 종교색을 빼버리고 십이가문으로 낮춰버린 것이다.

상인의 말에 다른 상인이 맞장구쳤다.

“하기는 요즘 마적들이 출몰하지 않아서 장사하기가 훨씬 수월해졌어. 서역과 오가는 물량도 예전보다 훨씬 늘어났고.”

대화는 두 사람이 이끌어 가고 있었고, 다른 상인들이 맞장구치는 식이었다.

‘저들을 포섭했군.’

무한은 천심공을 끌어올리지 않아도 대화를 주도하는 두 상인이 천산파의 사주를 받았음을 알았다.

이렇게 민심을 장악하고 천산파로 거듭남으로써 과거 마천에 대한 적대감을 희석시키려는 게 분명했다.

무한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렇게 교묘하게 사람의 마음에 파고들수록 상대하기가 까다로워진다.

아마도 이런 천산파의 동향에 손우자나 흑천도 당황하고 있을 것이다.

동정호 군산에 집결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빠르게 정천맹을 결성하고도 중원에 들어온 마천의 세력에 대응하지 못하고 주춤하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그러나 무한은 마천주와 겨루며 느낀 바가 있다.

천마지경에 이른 마천주의 본색은… 마(魔), 그 자체였다.

패도적인 마가 사람의 마음을 홀리는 혼마(混魔)로 바뀐 것뿐이다.

‘언젠가는 본색을 드러낼 것이다!’

무한의 직감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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