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험준한 산 사이로 강이 흘렀다.
마차가 한적한 부두에 이르러 멈췄다.
“다 왔소. 저 강을 건너면 공동파의 영역이오.”
마부석에서 내려온 사추선이 마차 문을 열고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소마를 살리기 위해 오긴 했지만 구파일방의 일원인 공동파가 어찌 나올지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말을 타고 따라온 사천대원 둘이 들것을 가지고 와서 소마를 눕혔다.
“휘유…….”
마차 밖으로 나온 남궁우가 높은 공동산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멀리 기암절벽 위에 세워진 전각들이 보였다.
“도는 왜 저리 높은 곳에서 닦아야 하는 거냐고.”
남궁우가 투덜거렸다.
일행은 사추선과 소마를 옮기는 사천대원 둘, 그리고 무한과 남궁우까지 다섯이었다.
사추선이 배를 구하러 간 사이 무한은 소마의 상세를 살폈다.
소마는 의식은 없었으나 숨은 붙어 있었다.
잠시 후, 사추선이 돌아왔는데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날을 잘못 잡은 것 같소.”
“무슨 소리요?”
“공동파에서 구파일방 회합이 열린다고 하오.”
공동파를 설득할 자신도 없는데 구파일방이 모여 있다면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여기까지 힘들게 왔는데 부딪혀 봐야지.”
남궁우가 앞장섰다.
일행이 강을 건너 공동산으로 향했다.
공동산 아래 산문.
젊은 도사 네 사람이 산문을 지키고 있었다.
무한 일행을 본 젊은 도사 하나가 길 복판으로 나와서 포권을 하고 말했다.
“무슨 일로 공동산을 찾으시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산에 오를 수 없습니다.”
“공동산이 공동파 것도 아닌데 왜 오를 수 없다는 거요?”
남궁우가 대뜸 항의하였다.
젊은 도사의 얼굴이 벌게졌다.
“지금 공동파를 모욕하는 거요?”
“공동산이 공동파 것이 아니라는 걸 지적했을 뿐인데 모욕이라니…… 이거야말로 터무니없는 모함이오.”
남궁우가 삿대질까지 해대자 무한이 말리며 앞으로 나섰다.
“천하방 검천부, 심무한이라고 하오.”
무한의 이름을 듣고서 젊은 도사가 크게 놀랐다.
“검천부?”
“공동파가 아니면 치료할 수 없는 사람이 있어 왔습니다. 안에 기별을 넣어주시겠소?”
“지금 본산에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것과도 연관이 있는 일이오.”
“……?”
“마천을 상대하기 위해 구파일방이 회합을 갖고 있는 것 아니오?”
젊은 도사가 굳은 얼굴로 무한을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천하방 검천부라는 명성은 가벼이 볼 수 없었다. 젊은 도사가 뒤를 돌아보고 눈짓을 하자 도사 하나가 산문을 넘어 달려갔다.
산문 너머는 험준한 절벽이었다.
절벽을 타고 오르는 도사를 보며 남궁우가 답답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하아… 언제 저 꼭대기까지 다녀오나?”
젊은 도사는 들은 척 만 척 무한 일행을 살피다 눈살을 찌푸렸다. 사추선과 사천대원에게서 흐르는 마기를 느낀 것이다.
무한은 젊은 도사가 범상치 않은 자임을 알았다.
“도사께서는 도호가 어찌 되시오?”
“공동 상청관 광진이라 하오.”
“광진? 도사가 공동일수(??一秀) 광진이란 말이요?”
공동일수는 공동파의 기재로 알려진 인물. 그런 이가 아랫산문을 지키고 있으니 남궁우가 놀란 것도 당연했다.
공동파에서 구파일방 회합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달려갔던 젊은 도사가 중년 도사 한 사람과 함께 나는 듯이 달려와 섰다.
중년 도사가 형형한 눈빛을 뿌리며 일행을 훑어보고는 무한을 향해 말했다.
“지객당을 맡고 있는 상경이라고 하오. 귀하가 검천부주시오?”
무한이 포권을 하였다.
“도의 본산 공동파의 명숙을 뵙습니다.”
“신성한 도관에 어찌 마천도를 데리고 온 게요?”
상경이 소마에게 시선을 주며 말했다.
‘이미 알고 있었구나.’
하기는 공동파가 난주에서 벌어진 혈전에 대해 모른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마천의 소천주가 중상을 입어 공동파에 도움을 청하러 온 겁니다.”
상경은 불쾌한 기색이었으나 더 묻지 않고 광진에게 말했다.
“장문인께서 들이라 하였으니 길을 열어라.”
광진을 비롯한 젊은 도사들이 길을 비켜주었다.
무한은 상경과 함께 산을 올랐다.
사추선과 사천대원들은 행여 책잡힐까 묵묵히 무한의 뒤를 따랐다.
높은 봉우리에 있는 도관에 이르자 상경이 말했다.
“장문인께서 검천부주를 단독으로 청하셨소. 나머지 분들은 객사에서 기다리시오.”
무한이 상경을 따라 나서자 남궁우가 뒤따랐다.
상경이 제지하려 하자 남궁우가 말했다.
“나는 검천부 책사입니다. 부주가 가는 길에 제가 빠질 수 없지요.”
상경이 무한과 남궁우를 번갈아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우선 밖에서 기다렸다가 허락이 나면 들어오시오.”
상경이 수많은 전각을 돌아 절벽 끝에 걸치듯 지은 건물로 들어갔다.
무한이 건물로 들어서자 작은 마당이 나왔다. 마당 너머로 커다란 대청이 있었다.
안에 있던 이들이 일제히 들어서는 무한을 봤다.
‘구파일방!’
대청에 있는 이들은 구파일방의 명숙들이었다.
“검천부주를 데리고 왔습니다.”
상경이 대청 아래 마당에서 고했다.
‘저 자가 공동 장문 상청이구나.’
무한의 시선이 대청 상석에 앉아 있는 중년 도사를 향했다.
반백의 머리에 도관을 단정히 썼는데 알 수 없는 현기가 흘러나오는 인물이었다.
상청이 천천히 일어나 대청 앞까지 마중 나왔다.
“먼 길을 오셨구려.”
“상청진인을 뵙습니다.”
무한이 계단을 올라 대청으로 들어서서 상청과 수인사를 나눴다.
상청이 대청에 있는 이들을 소개하였다.
“소림의 방각대사, 무당의 청운진인, 아미의 경화선사…….”
하나같이 문파에서 내로라하는 고수들이자 장문인을 대신할 자격이 있는 중진들이었다.
“앉으시게.”
무한의 자리는 상청의 맞은편이었다.
상청이 먼저 입을 열었다.
“천하방이 난주에서 마천과 일전을 벌였다는 이야기는 들었소. 부주가 직접 마천주와 겨뤘다는데 정말이오?”
좌중의 시선이 일제히 무한에게 꽂혔다.
마천주와 겨루기에는 무한의 나이가 너무 어려 보였다. 무한을 보는 눈빛에는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혼자 싸운 것은 아닙니다. 마천 소천주와 대막혈사의 제자 혈랑, 그리고 또 한 사람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대막혈사가 직접 상대했고요.”
공동파에 소마를 부탁해야 하는 처지이기에 무한은 비교적 소상하게 일러주었다.
무한의 말이 끝나자마자 좌측에 있던 개방의 호법 풍개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마천주가 천마지경에 올랐다는데 정말이오?”
“천마지경이 어떤 경지인지 알지 못하나, 소천주가 그렇다고 했습니다.”
“아!”
“정말 천마가 출현했구나! 이를 어찌할꼬.”
여기저기서 탄식성이 흘러나왔다.
상청의 낯빛도 침중하게 굳었다.
무한이 좌중을 향해 말했다.
“천마는 단지 경지일 뿐입니다. 그 또한 사람이지 마천이 주장하는 대로 신이 아닙니다.”
“그자의 무공을 정파에서 논하는 경지와 비교하면 어떻소?”
무한이 잠시 생각하곤 말했다.
“화경에서 한 단계 올라서면 현경이지요. 마천주는 현경의 끝자락이거나 막 넘어선 듯했습니다.”
“믿을 수가 없군. 현경 이후가 정말 존재한다는 말인가?”
누군가 중얼거렸다.
평생을 수련해도 진경조차 이르지 못하는 이들이 허다하다.
그런데 현경 이후라니……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고수라 그 경지가 얼마나 아득한지 느낄 수 있었다.
무당파 청운이 침중한 표정으로 상청에게 말했다.
“마천주의 무공이 그렇다면… 각파의 원로들이 나서야 하지 않겠소?”
상청은 고개를 끄덕이곤 무한에게 말했다.
“천하방에서 마천을 공략하자는 격문을 돌렸소. 이 자리는 구파일방의 중지를 모으는 자리인데 마침 검천부주가 왔으니 물어보겠소.”
“…….”
“천하방이 각파에 요청한 무력이 일천이오. 합하면 일만이나 되는 대군인데, 천하방 군사부에서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소.”
“천하방 군사부에서 원하는 건 마천과 흑천 그리고 중원 정파가 공멸하는 것입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요?”
무한의 목소리는 담담하였으나 내용이 너무나 뜻밖이었기에 여기저기서 되물었다.
심지어 무한이 검천부주가 맞는지 의심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기까지 했다.
무한이 담담하게 말했다.
“제 조부 사후 천하방은 권력과 이권을 추구하는 방파로 변했습니다. 게다가 총군사 손우자는 무림에 대한 환멸을 가지고 있지요.”
무한은 자신이 알아낸 손우자의 정체와 흑천, 마천을 자극하여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유를 말했다.
무한이 말을 마치자 상청이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소마는 왜 살리려는 것이오?”
“마천 십이가주 가운데 전쟁을 원치 않는 이들도 있습니다. 소마는 이들을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지요. 마천에 내분이 일어나면 상대적으로 중원이 안전해지는 게 아니겠습니까?”
무한이 답을 하면서 상청의 뒤편을 주시하였다.
상청 뒤에는 삼천존이 그려진 가벽이 세워져 있었는데 무한의 시선은 마치 벽 뒤를 보는 듯했다.
무한은 대청에 들어온 뒤 가벽 뒤에서 낯익은 기운을 느꼈다. 바로 천심공을 운용했고, 상청과 구파일방의 명숙들이 뭔가를 감추고 있음을 알아챘다.
그리고 말을 하며 그 기운이 누구인지 알아채곤 시선을 준 것이다.
상청이 흠칫 놀라며 탄식하듯 말했다.
“과연 기재로고…… 공손 군사, 나오시오. 검천부주는 이미 당신의 존재를 눈치챘소.”
그러자 가벽 뒤에서 천하방 군사부 일군사 공손승이 걸어 나왔다.
공손승이 상기된 얼굴로 좌중을 돌아보며 말했다.
“과연 총군사의 추측대로 말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사실을 몰랐다면 깜빡 속아 넘어갔을 겁니다.”
그러고는 무한을 향해 말했다.
“검천부주! 참으로 가증스럽소. 천하를 위해 불철주야 고뇌하는 총군사를 음해하다니! 흑천에 이어 마천과 내통한 건 당신 아니오!”
공손승이 핏대를 올리자 상청과 구파일방의 명숙들은 무한과 공손승을 번갈아 보았다.
그 어느 편도 들지 못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중이다.
“방금 자신의 입으로 마천주가 천마지경에 올랐다고 했소. 그런데 그와 맞붙어서 살아왔다고?”
“…….”
“왜 마천주가 막판에 손을 거두고 대군을 물렸겠소? 지금 대체 어떤 암계를 꾸미고 있는 것이오?”
무한은 담담히 공손승을 보다 시선을 상청에게 주었다.
“이 자가 무슨 말을 했습니까?”
“방금 그가 한 말 그대로네. 부주가 소마를 데리고 찾아올 것이라 하더군. 그리고 총군사와 천하방을 음해하고, 마천을 옹호할 것이라고 했네.”
상청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무한보다는 공손승의 말을 신뢰하는 듯했다.
무한의 친모가 흑천의 흑월주라는 건 이미 세상에 퍼졌다.
게다가 부상당한 마천 소천주를 살리겠다니, 명문정파의 명숙들이 의심할 만했다.
그러자 한쪽에서 탄식성이 흘러나왔다.
“마천이 대군을 몰고 오는데 천하방에 내분이 일다니…….”
개방의 풍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구파는 정마대전 이후 봉문하다시피 하여 강호의 사정에 어두울 것이오. 하지만 개방은 다르지.”
그러면서 무한을 노려보았다.
“검천부주의 수상한 행적을 본방은 이미 주시하고 있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