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존무한-180화 (180/250)

180화

운객은 소마가 떨어뜨린 쇠꼬챙이 같은 자신의 검을 챙겼다.

지금 마천주를 공격한다면 강력한 반탄력에 의해 내장이 박살날 것이다.

그 기운으로 무한의 대추혈을 깨뜨릴 수 있다.

다만, 엄청난 기운의 여파를 감당해야 하니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운객은 애초에 생사에 미련 없이 세월을 희롱하며 되는 대로 살았지만, 지금은 무한과 마천주의 무공을 접하면서 생에 대한 의지가 강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무한도 자신도 살 수 있는 방법은 중간에 한 사람을 더 끼워 넣는 수밖에 없다.

운객의 눈에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혈랑이 들어왔다.

마천주의 묵빛 장영과 대치했을 때 혈랑은 빠져나가기 위해 힘을 쓰고 있었기에 가장 타격이 적었다. 그래도 내상은 어찌할 수 없었던지 입가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혈랑이 입가의 피를 슥 닦고, 부러진 혈랑아를 쥐고 다가왔다.

사부가 건네준 도가 부러졌으니 화가 머리끝까지 솟은 상태였다. 눈이 반쯤 뒤집힌 채 마천주를 향해 직진하였다.

“혈랑!”

운객이 마천주에게 달려드는 걸 제지하자 혈랑이 으르렁거리며 외쳤다.

“비켜라!”

“지금 마천주를 공격하면 죽을 수도 있다.”

혈랑이 정신을 차렸다.

그가 보기에도 마천주의 전신에 감도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지금 공격하면 반탄강기에 죽을 수도 있다고.”

“흥!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 저놈을 반드시 죽이고 말 테다!”

“내가 도와주지.”

“……?”

“저자를 치면 반탄강기가 밀려들 거야. 그걸 내가 흡수해주지.”

혈랑이 의심스런 눈빛으로 운객을 보았다.

“너를 어찌 믿고 내 등을 맡긴다는 말이냐?”

“시간이 없어. 마천주가 심득을 깨친다면 어차피 다 죽어!”

혈랑도 그걸 알고 있다. 그래서 마천주를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심득을 얻지 못하게 선정을 깨려는 것이다.

그때, 으스스한 기운이 두 사람을 훑었다.

“……!”

멀리서 마룡이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사대수신호위는 들이닥치는 광풍대를 막으면서도 마천주의 안위를 챙기고 있었다. 죽은 줄 알았던 운객과 혈랑이 움직이자 바로 알아챘다.

“혈조!”

마룡이 혈조를 향해 외쳤다.

운객이 있는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호위가 혈조였다. 광포 등을 경계하고 있던 혈조가 뒤를 돌아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혈조가 창을 돌려 운객과 혈랑을 향해 몸을 날리려는데 광포가 막아섰다.

“어디를 가려는 게냐?”

가슴이 피투성이인 광포가 이를 바드득, 갈며 달려들었다.

동시에 사추선이 앞을 가로막았다.

혈조의 창이 허공을 그으며 광포의 도를 튕겨냈다.

마룡이 이쪽의 움직임을 눈치채자 운객은 마음이 급했다.

“어서, 움직여!”

혈랑이 크읍, 하고 입 안의 선혈을 토하고 운기를 하였다. 혈랑의 전신에 붉은 기운이 일렁거렸다.

“죽여주마!”

혈랑이 크게 외치고 부러진 혈랑아로 마천주의 정수리를 찍었다.

콰앙!

마천주를 단단히 에워싸고 있던 호신강기가 맹렬하게 반발하며 혈랑을 덮쳤다.

운객이 재빨리 혈랑의 등에 왼손을 대어 반탄강기를 끌어들인 후 오른손에 든 쇠꼬챙이 검으로 무한의 대추혈을 찍었다.

“크흡!”

혈랑이 선혈을 줄줄 흘리며 비틀거렸다.

마천주의 반탄강기는 과연 광폭했다. 운객이 기운을 끌어가지 않았다면 혈랑은 내장이 터져 죽었을 것이다.

혈랑은 물론 운객까지 반탄강기의 여파로 피를 토했다.

쩌적!

무한의 전신에서 이른 봄 강 얼음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쩌저적!

연달아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무한의 전신 경혈 곳곳에서 폭음성이 터졌다.

이어 강렬한 기운이 무한의 전신을 휩쓸고 푸르스름한 뇌전의 기운이 터졌다.

파파팟!

동시에 마천주의 전신에서도 흑암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고오오!

심상치 않은 마천주의 기운에 혈랑과 운객이 뒤로 물러섰다.

마천주가 먼저 눈을 떴다. 그의 눈에는 차가운 분노가 일렁거렸다.

최후의 심득에 다가갔을 때 혈랑이 방해한 것이다. 혈랑을 찢어죽이고 싶다는 강렬한 살의에 기운이 폭주하였다.

그와 동시에 무한의 숨이 돌아왔다.

운객이 반색을 하며 무한의 어깨를 흔들었다.

“이봐, 정신 차려!”

무한은 자신의 어깨를 흔드는 운객을 멍하니 보았다.

혈랑이 그런 무한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백치가 된 건가?”

순간, 무한의 입이 열렸다.

“조심해!”

동시에 무한이 혈랑과 운객을 잡아끌며 삼 장이나 뒤로 물러났다.

콰앙!

그들이 있던 자리에 벼락같은 장력이 떨어졌다.

본능이 시키는 대로 피한 무한은 정신을 완전히 차렸다. 전신에 기운이 폭주하고 있었다.

마천주가 하늘로 날아오르며 연달아 장을 후려쳤다.

무한의 의식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였다.

수없이 반복한 경천십이식.

운정격과 파천격, 뇌연격 삼초가 연달아 펼쳐지며 막대한 검강이 장력을 갈랐다.

쿠쿠쿠쿵!

천지를 진동하는 기음에 사대수신호위는 물론이고 돌진하던 마천도들이 크게 놀라 주춤하였다.

최후의 심득을 놓친 마천주는 폭주하였다. 전신 내력을 있는 대로 끌어 연달아 장력을 후려치자 주위가 초토화되었다.

퍼엉!

마천주의 장력이 기어이 무한과 혈랑, 운객을 휩쓸었다.

“크으윽!”

세 사람이 일제히 뒤로 나뒹굴었다.

“죽어라!”

마천주의 음침한 목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지더니, 재차 묵빛 장영이 무한과 혈랑, 운객을 덮쳤다.

무한은 정신을 차리기는 했으나 미친 듯이 날뛰는 내부 기운을 다스리느라 제대로 기운을 쓸 수가 없었다.

경천신검을 세워 막으려 하였으나 마천주의 내공에 눌려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때, 어두운 하늘에 괴소가 울려 퍼졌다.

“마천주, 죽고 싶으냐?”

이어서 시뻘건 기운 덩어리가 날아와 마천주를 덮쳤다.

마천주의 묵빛 장영이 혈기와 부딪혀 폭발하였다.

혈기는 한 쌍의 도였는데 혈랑아와 똑같은 모양으로, 시뻘건 도신만 달랐다.

그야말로 피를 머금은 늑대의 이빨과도 같은 도였다.

마천주의 묵빛 장영을 깨뜨린 혈랑아가 허공을 돌아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한 사람이 뚝, 떨어져 내렸다.

쿠웅!

엄청난 기파와 함께 땅에 내려선 이는 놀랍게도 등이 구부정한 노인이었다.

“사부!”

혈랑이 노인을 보자마자 외쳤다.

노인, 대막혈사는 혈랑의 상태부터 살폈다. 눈빛이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를 보는 듯했다.

실제로 갓난아기인 혈랑을 키워냈으니 할아버지나 마찬가지이기도 하다.

“다친 데는 없느냐?”

“죽을 것 같지는 않아. 근데 사부가 여긴 어쩐 일이야?”

혈랑도 대막혈사를 마치 친할아버지 대하듯 하였다. 새외를 울린 대막혈사의 흉성(兇性)을 생각하면 놀라울 따름이다.

이어서 허공에서 세찬 기파가 터지더니 갈색 장삼을 입은 사내가 뚝, 떨어졌다.

‘고 대형?’

내려선 이는 신강으로 떠났던 고벽후였다.

그는 불망객의 고향을 찾아 그의 유언을 전하고 돌아오는 길에 대막혈사를 찾아갔다.

고벽후로부터 혈랑이 난주 흑도를 장악하여 마천과 싸울 것이란 말을 들은 대막혈사는 오랜 칩거를 깨고 은거지를 나왔다.

두 사람은 난주로 향하다 마천의 대군을 만나고, 안에서 무한과 혈랑 등이 혈전을 벌이는 걸 알자 황급히 끼어든 것이다.

“대막혈사… 그렇지. 당신이 아직 살아 있었지.”

마천주가 서서히 허공에서 내려와 섰다.

대막혈사는 마천주, 불망객과 더불어 세외삼신으로 불리기도 한 인물.

마천주로서도 경시할 수 없는 기인이다.

“크흐흐… 천주. 실망이 크군. 애송이들과 실랑이를 벌이다니. 역시 전대 천주에 비해 그릇이 작아.”

“흐흐. 그러지 않아도 당신을 찾고 있었지.”

“허리도 시원찮은 노인에게 무슨 볼일이 있었나?”

대막혈사가 눈을 게슴츠레 뜨며 굽은 허리를 툭툭, 쳤다.

“요즘 약간의 성취를 본 바가 있어 시험을 해보고 싶은데 마땅한 상대가 별로 없더군.”

대막혈사와 고벽후가 나타났으나 주위의 소란은 그치지 않았다.

사대수신호위가 친 결계를 뚫으려는 광풍대와 사천대, 그리고 이제야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알게 된 마천도들이 난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아무 것도 모르는 뒤쪽의 마천도들이 꾸역꾸역 가운데로 진입하는 중이다.

십이호교가문의 마천도들은 완전히 뒤섞였다.

어느새 달도 사라진 어두운 고원에 횃불만 일렁거리니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알 수 없는 흉험한 상황에서 가까이 다가오는 이는 무조건 경계하고 칼을 휘두르는 상황이었다.

“마천도는 모두 칼을 내려라!”

돌연 마천주가 허공을 향해 일갈하였다.

마천주의 명에 마천도들이 무심코 칼을 내리려다 광풍대와 사천대원들의 칼에 맞아 거꾸러졌다.

“크아악!”

비명이 고원을 가르고 다시 난전이 펼쳐졌다.

사방에서 혼란이 일자 마천주가 눈꼬리를 치켜뜨고는 십이가주를 향해 호통을 쳤다.

“가솔들을 단속하지 않고 뭐하고 있나!”

십이가주들이 일제히 갈라지며 외쳤다.

“천가 일족은 이쪽으로 오라!”

“마천오가! 가주를 호위하라!”

십이가주들이 일족을 규합하고 나섰다.

마천주는 이어 사대수신호위에게 명을 내렸다.

“마천대를 소집하여 소천주의 잔당을 죽여라!”

마룡이 길게 휘파람을 불자 천주의 뒤쪽에 흩어져 있던 마천대가 일제히 달려왔다.

마룡이 난전장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십이가문 일족은 뒤로 빠져라!”

그러나 바로 옆에서 칼이 날아오는데 귀담아들을 자는 많지 않았다. 여전히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마룡이 굳은 얼굴로 전장을 훑어보다 혈조와 격전을 치르고 있는 광포와 사추선을 향해 외쳤다.

“저기 좌선우포가 있다! 저놈들부터 죽여라!”

이어 자신이 앞장서서 광포와 사추선을 향해 날아갔다.

그 뒤를 교주의 친위대라고 할 수 있는 마천대가 따랐다.

마천주는 십이가주와 사대수신호위에게 명을 내리면서도 대막혈사를 경계하였다.

대막혈사는 혈랑에게 다가가 맥문을 짚고는 인상을 팍, 썼다.

죽지는 않을 거라 했지만 적어도 서너 달은 요양해야 할 중상이었다.

“이놈아, 몸을 함부로 굴리지 말라고 했지?”

“마천주를 상대로 살아 있는 게 용한 거라고.”

“에잉, 얌전히 마적질이나 하고 있지…… 저 괴물 같은 놈하고 왜 싸운다는 말이냐?”

“크크. 그렇게 됐어.”

퍼억!

대막혈사의 혈랑의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여자에게 넘어가 뻘짓을 하고 있는 걸 내가 모를 줄 아느냐?”

두 사람은 마천주는 안중에도 없는 듯 주고받았다.

무한은 체내에 폭주하는 기운을 다스리느라 전력을 다하는 중이었다.

고벽후가 다가와 무한의 상태를 보고는 말했다.

“일단, 운기조식을 해라.”

자신이 마천주를 상대하겠다는 뜻이다.

“저자는 천마신장을 익혀 천마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천마…… 한번 붙어보고 싶었던 경지다.”

고벽후가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듯 말하고는 돌아서서 마천주를 노려보았다.

무한이 돌아보니 운객은 이미 운기조식을 하는 중이었다.

살수인 그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 노출된 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상세가 워낙 심해 움직일 기력조차 없었다.

무한은 주저하지 않고 바로 자리에 정좌하고 경천신검을 무릎에 놓았다.

난전의 한복판이었지만 마천주와 격전을 치르며 얻은 심득과 날뛰는 기운부터 다스려야 했다.

전신을 휘도는 기운은 내상으로 인한 것과 달랐다.

마치 잠들었던 용이 깨어나 기지개를 켜고 한바탕 하늘을 구르는 듯, 전신을 헤집고 다녔다.

무한은 내상을 다스리면서 단전을 비웠다.

그러자 사방으로 폭주하던 기운이 하나둘 단전으로 기어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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