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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무한-153화 (153/250)

153화

“그게 무슨 말인가? 천하방을 해산하겠다니.”

어쩌면 천하방에서 가장 큰 지분을 가지고 있다 할 수 있는 검천부의 수장이 천하방 해산을 거론하다니.

무한이 남궁무룡을 보며 말했다.

“천하방 이전의 중원 무림은 어떠했습니까?”

“…….”

무한이 묻는 의도를 알아챈 남궁무룡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무림은 늘 어지러웠지. 하지만 지금처럼 숨 막히지는 않았던 것 같군.”

그러면서 탄식하듯 말했다.

“인간사에 완전한 것은 없네. 어지러울 때는 질서를 원하지만, 질서가 굳어지면 기득권은 강화되고 소외층은 활기를 잃게 되지. 자네 말대로 천하방에 너무 많은 힘이 몰려 있긴 하네.”

“하지만 천하방이 없으면 마천이 다시 중원을 침공할 수도 있습니다. 흑천 또한 세력이 나날이 커지고 있는데 천하방이 사라지면 정파의 구심점이 사라집니다.”

남궁악이 조심스레 우려를 표하자 무한이 말했다.

“흑천이 생겨난 것은 천하방에 대응하기 위해 흑도가 결집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천이 다시 중원을 침공하면 그때처럼 중원이 결집하여 막아내면 됩니다.”

남궁무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문제는 누가 옳고 그른가를 따질 수 없는 일이네. 자네의 뜻이 그러하다면 나는 지지하겠네.”

남궁무룡이 지지를 표하자 남궁악도 더는 말을 못 했다.

“천하방 해산이 말처럼 쉬운 건 아닐 것이네. 이권이 걸려 있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테니… 어쩌면 자네가 위험해질 수 있네.”

남궁무룡의 말에 남궁우가 끼어들었다.

“그럼요. 천하방 해산보다 부주 한 사람 없애는 게 더 간단하다고 생각할 거야. 그리고 대체 무슨 수로 해산시킨다는 건데?”

무한이 담담히 말했다.

“이권을 누리는 사람은 소수일 뿐이야.”

두 사람의 말을 듣던 남궁무룡이 물었다.

“복안이 있나보군. 계획을 말해보게.”

“몇 가지 있습니다만, 일단 가서 부딪혀 볼 생각입니다.”

무한의 말에 남궁무룡이 흠칫 놀라며 물었다.

“설마? 지금 천하방으로 갈 생각인가?”

“식솔들의 안위 때문에 잠시 비웠을 뿐, 아직 검천부는 그 자리에 있습니다.”

무한은 담담했다.

남궁우가 반대하였다.

“위험을 왜 자초하는 건데?”

“천하방은 밖에서 무너뜨릴 수 없어. 스스로 해산해야만 해.”

무한이 짤막하게 답했다.

남궁무룡이 침음성을 흘렸다. 무한의 말이 맞긴 하다.

“내가 뭘 도와주면 되겠는가?”

“지금까지도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검천부 식솔들이 안전하게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됩니다.”

“모든 걸 혼자 하려 들지 말게. 자네 조부이자 천하제일인이라 불린 검신도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마천을 물리치고, 천하방을 세웠다네.”

“알고 있습니다. 다만, 지금은 힘을 간직하고 있는 게 중요합니다.”

힘이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하겠다는 뜻이다.

남궁무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겠네.”

무한이 남궁가를 나오는데 남궁우가 따라 나섰다.

“무슨 일을 하든 책사가 있어야 하는 거야.”

무한은 굳이 막지 않았다.

지금은 한 사람이라도 더 있어야 할 때이기도 했다.

***

남궁세가에서 돌아오는 길에 무한은 백가상단에 들러 백의영을 만났다.

백가상단은 검천부의 사업을 정상으로 돌렸으며, 나날이 확장하는 중이다.

“유 총관에게 모두 보고한 내용이니 알고 계시겠지만… 그러고 보니 오늘 유 총관이 오기로 했는데 왜 아직 당도하지 않은 거지?”

백의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한이 웃으며 말했다.

“유 총관이 좀 덜렁거리는 면이 있긴 합니다. 백 형께서 수고를 해주셔서 검천부의 숨통이 트였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무한이 감사 인사를 하고 검천부 장원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무슨 일이지?”

마침 달려 나온 강문평에게 물었다.

“유아 누나가 납치됐어요.”

백가상단에 일이 있어 가던 유아가 중간에 습격을 받아 어디론가 끌려갔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호위를 데리고 갔는데 한 사람은 죽고, 다른 한 사람은 중상이다.

무한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부상 입은 사람은 어디 있어?”

“의방에 있어요.”

무한이 부상자에게 갔다.

염량이 옆을 지키고 있다가 무한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식솔의 안위를 잘 챙겨달라는 부탁을 얼마 전에 받았는데 이런 일이 발생하니 면목이 없었다.

무한이 의원에게 물었다.

“상태는 어떻습니까?”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잠시 나가 계세요.”

무한이 의원과 염량을 내보내고 부상자의 단전에 손을 대어 기운을 불어넣었다.

“으음.”

잠시 후 부상자가 깨어났다.

“정신이 듭니까?”

부상자가 무한을 알아보고 일어나 앉으려 하였으나 무한이 말렸다.

“어찌된 일입니까?”

부상자가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놈들은 길목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유 총관이 백가상단으로 갈 때 숲으로 난 소로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던 듯합니다.”

부상자가 혼자 살아 돌아온 게 면목이 없었던지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세 사람이었는데 손을 쓴 자는 한 명이었습니다. 유 총관을 데려가며 찾으려면 부주께서 직접 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러준 게 서현 밖 외곽 공동묘지였다.

“오늘 밤 자시에 기다리고 있겠다고, 오지 않으면 유 총관이 죽는다고 했습니다.”

말을 마친 부상자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면목 없습니다.”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마세요.”

무한이 이르고는 의원을 불렀다.

“경맥은 손을 봤으니 내상을 다스릴 약을 처방해주시오.”

그러고는 돌아서서 부상자를 위로했다.

“한 분이라도 살아 돌아와 다행입니다.”

“크읍.”

부상자는 죽은 동료가 생각났는지 눈물을 글썽였다.

무한이 일어나 집무실로 들어갔다.

남궁우가 뒤따라 들어가려는 강문평을 막아섰다.

“애들은 빠져라.”

“뭐? 이 멀대같은 녀석이 뭐래는 거야?”

강하보 흑도 사이에서 거칠게 자란 강문평이다. 처음 보는 남궁우가 백면서생처럼 보였다.

남궁우가 번개같이 주먹을 뻗어 강문평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이 꼬맹이가!”

강문평은 그제야 남궁우가 고수라는 걸 알아챘다.

“이 몸이 바로 중원 제일의 책사 남궁지낭이시다. 다시 한 번 상스런 말을 하면 입을 찢어주마.”

“둘 다 나가 있어.”

무한의 말이 들려왔다.

낮은 목소리가 무척이나 서늘하였기에 두 사람 모두 움찔하고는 방을 나갔다.

홀로 남은 무한의 두 눈에 한기가 흐른다.

검천부주에 오른 뒤 처음으로 식솔이 죽었다. 게다가 혈육처럼 가까운 유아가 납치되어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콱, 움켜진 무한의 두 주먹이 하얗게 질렸다.

전쟁이 나면 더 많은 이들이 죽을 것이다.

피할 수 없는 희생이라는 걸 알면서도 분노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어떤 놈들일까?’

사전에 준비를 철저히 했다는 건 유아가 검천부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검천부가 서현에 자리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천하방을 은밀히 빠져 나왔기에 아직 추적자가 붙을 시간이 아니다.

더구나 자신이 온 지는 며칠 되지도 않는다.

‘이 지방에 있는 놈이다.’

서현 주위의 정보를 수시로 받아보는 이일 가능성이 높았다.

무한의 두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그날 밤.

무한은 홀로 공동묘지로 향했다.

달빛 아래 썰렁한 공동묘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복면을 쓴 세 명이 서 있는 게 보였다.

“혼자 올 줄 몰랐군.”

무한은 공동묘지로 오르는 길 주위에 여러 사람이 은신하고 있다는 걸 알았으나 개의치 않았다.

기운으로 봐서 자신의 상대가 되는 이들이 아니었다.

다만, 눈앞의 세 사람은 만만히 볼 자들이 아니었다. 복면 사이로 드러난 두 눈에서 흘러나오는 정광이 형형하였다.

의외로 정순한 기운을 지닌 자들이었다. 정파의 무공을 익힌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무한이 세 사람을 주시하다 입을 열었다.

“도천부 삼봉공이 아녀자를 납치할 줄은 몰랐군.”

어둠마저 얼릴 듯한 싸늘한 목소리에 세 명의 복면인이 흠칫 놀라며 서로를 보았다.

목소리까지 바꿔 말했는데 무한이 대번 자신들을 알아볼 줄은 예상 못 했다.

무한은 천하방 문파들을 예방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기운을 감지하고 기억에 새겨두었다.

특히, 도천부를 비롯한 천하사패의 주요 인사들이 풍기는 기도나 기운은 잊지 않았다.

지금 눈앞의 세 사람은 도천부에 머무는 봉공들이다.

복면인 중 하나가 복면을 벗어던지며 말했다.

“기왕에 신분이 드러났으니 갑갑한 복면을 쓸 필요는 없겠지.”

그러면서 무한을 향해 말했다.

“나는 무량산이다. 미안하게 됐다. 너를 척살하라는 명인데, 애꿎은 검천부 사람들까지 죽일 수는 없지 않냐?”

“그래서 한 사람을 죽였소?”

그러자 아직 복면을 쓴 가운데 있는 이가 말했다.

“본보기를 보여야 했지. 그러지 않았다면 네가 오지 않았을 것 아니냐?”

“천종해의 부탁이오?”

도천부 삼봉공이라는 걸 알자마자 자연스레 천종해가 떠올랐다.

이 근방에서 그에게 앙심을 품을 자는 천종해밖에 없다.

천하상단에서 축출된 후 동이현으로 가서 천해상단을 만들었다고 들은 게 마지막이다.

“유아는 천종해가 잡고 있겠군.”

“크흐흐…….”

무한의 뒤쪽에서 득의에 찬 웃음소리와 함께 한 인영이 나타났다.

천종해가 무한을 보며 비웃듯 말했다.

“그년, 투실하긴 해도 나름 미모가 있더군. 그래서 아끼는 건가?”

천종해의 상스러운 말에 무량산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천종해, 여자는 해치지 마라. 죽는 이는 검천부주 하나로 족하다.”

이어 시선을 돌려 무한을 향해 말했다.

“검을 뽑아라.”

말을 하고 난 후 무량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검을 가져오지 않았나?”

“이것이면 족하니까.”

무한이 허리춤에서 세 자루의 비도를 꺼내들었다.

“비도?”

무량산의 얼굴에 노기가 어렸다.

“싸울 생각이 없나보군. 차라리 자결을 하는 게 어떻겠나?”

무한이 비도 두 자루를 왼손으로 옮겨 쥐고, 남은 한 자루를 던졌다.

비도는 본보기로 검천부 식솔을 죽였다고 한, 가운데 복면인에게 날아갔다.

“흥!”

복면인은 허리춤에서 도를 뽑는 기세 그대로 비도를 쳐냈다.

아니, 쳐내려 했으나 허공만 베었다.

쉬익, 날아오던 비도가 갑자기 주춤하며 멈춰선 듯하였기에 도가 먼저 허공을 그은 것이다.

“……!”

이어 파앙, 하고 기파가 터지더니 비도가 화살처럼 날아와 복면인의 목에 박혔다.

“컥!”

“헉!”

남은 복면인과 무량산이 헛숨을 들이켜며 곧바로 뒤로 일 장여 물러났다.

“끄륵.”

복면인은 두 눈을 부릅뜨고 왼손으로 자신의 목을 쥔 채 무한을 바라보았다.

지옥곡의 고수들이 그랬듯이 자신의 죽음을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이다.

불신의 눈빛이 절망으로 바뀌는 순간, 복면인이 뒤로 넘어갔다.

기운을 이용해 시간차를 두고 상대를 공략하는 당가의 비도술이 무한의 손에서 절정을 이뤘다.

당가를 떠나 난주로, 난주에서 서현으로 오는 동안 수없이 비도를 던지며 기운을 조절한 결과로, 이를 전수한 당전수가 보면 경악을 할 것이다.

“…….”

“…….”

도천부의 봉공이 비도 한 자루에 쓰러지자 장내에는 침묵이 돌았다.

복면인과 무량산은 어느새 도를 꺼내들어 앞을 보호하고 있었다.

이윽고 무량산이 탄식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적을 경시하지 말라는 말을 그렇게 들었는데, 우를 범하고 말았군.”

복면인이 그런 무량산을 향해 눈짓을 하였다. 함께 공격하자는 뜻이다.

무량산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보법을 펼쳤다.

그의 신형이 좌우로 교대로 나타나며 순식간에 무한 앞으로 들이닥쳤다.

복면인은 도를 늘어뜨려 땅바닥을 질질 끌며 서서히 다가왔다.

무한은 당장 들이닥친 무량산보다 복면인이 더 노련한 강적이라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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