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존무한-135화 (135/250)

135화

독왕의 미간이 찌푸려 들었다.

“혹시… 적이 우리를 따라온 게 아닐까요?”

당전수가 벌떡 일어나려다 심장을 부여잡고 비틀거렸다.

사내가 황급히 다가가 당전수를 부축하였다.

“만독곡… 오늘을 노린 건가?”

독왕이 침음성을 흘렸다.

자신이 있는데도 대놓고 폭약을 터뜨렸다는 건 작정하고 왔다는 뜻이 아닌가.

적을 막으려면 당전수의 치료를 미뤄야 하는데, 그러면 목숨을 보장하기 어렵다.

무한이 말했다.

“제가 막아보겠습니다.”

독왕으로서도 다른 대안이 없었다.

“소가주를 치료하는 데 한 시진 정도 걸릴 것이네. 폭약을 쓴다면 독진을 무너뜨리는 건 반 시진이면 충분하지.”

반 시진을 무한이 막아줘야 한다는 뜻이다.

“알겠습니다.”

당가의 지원을 얻기 위해선 위험도 감수해야 했다.

무한이 검을 들고 일어섰다.

“제가 허락하지 않는 한, 아무도 곡으로 들어올 수는 없을 겁니다.”

***

귀영과 남궁우는 산중턱 바위 뒤에 숨어 만독곡 입구를 폭약으로 날리는 이들을 지켜봤다.

“무지막지한 놈들이야. 그 귀한 폭약을 저렇게 마구 써버리다니…….”

귀영은 폭약이 너무나 아까웠다.

한 다발만 해도 몇 년은 먹고살 정도로 비싼 게 폭약이다.

“폭약은 돈이 있다고 해도 구하기 어려워. 대체… 어떻게 구한 걸까?”

남궁우의 머리가 핑핑, 돌아갔다.

두 사람이 만독곡 독진에 막혀 고심할 때 나타난 이들의 분위기가 당가로 올 때 기습했던 자들과 비슷했다.

남궁우가 속으로 뇌까렸다.

‘이들도 손우자가 보냈다는 건가?’

손우자의 정체가 실로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 뒤로 남궁호가 나타났다.

“적의 수가 너무 많다.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워.”

만독곡 앞에 있는 괴인들은 백여 명에 이른다. 특히 괴인들을 지휘하는 두 명의 노인은 언뜻 보기에도 진경의 고수들이다.

남궁호는 남의 싸움에 굳이 끼어들 생각이 없었다.

“부주가 저기 있는 거 맞아?”

귀영이 남궁우에게 물었다.

그들이 당도했을 때에는 버려진 마차만 있었을 뿐이다.

“있을 거야. 소가주를 데려온 게 분명해.”

남궁우가 확신하면서도 만독곡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알지 못했다.

콰앙!

다시 한 번 폭음성이 터지고 바위와 나무들이 날아갔다. 그와 동시에 운무도 한층 걷혔다.

“진이 깨지는 건 시간문제야.”

남궁우가 중얼거리는 그때, 진 안쪽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부주다!”

귀영이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려는 걸 남궁우가 재빨리 머리를 눌러 제지했다.

“조용해!”

“부주잖아. 적이 저렇게 많은 데… 가서 도와줘야지! 이거 치워.”

손길을 뿌리치면서 귀영이 칼을 잡자 남궁우가 말했다.

“이럴 때는 숨어 있다 기습해야 해. 우리 몇 사람 합세해봐야 중과부적이기는 마찬가지야. 그러니 은신했다가 암습하자고.”

“으음. 암습? 그건 내 전문이야.”

귀영이 자신하였다.

“정말 심부주로군.”

무한을 확인한 남궁호의 미간이 좁혀졌다.

자신이 이끌고 온 무인은 모두 열 명인데 적은 열 배나 많다.

괴인들과 당가의 싸움이라면 굳이 나설 생각이 없었지만, 무한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아버지 남궁가주가 남궁우의 안전은 물론 무한을 도울 수 있으면 도우라고 했기 때문이다.

평소 과묵한 남궁호는 한번 받은 명은 군소리 없이 따랐다. 그가 뒤를 향해 수신호를 하였다.

열 명의 남궁세가 무인들이 기척을 숨기고 다가왔다.

***

무한은 백 명의 괴인을 앞에 두고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물러나라!”

시꺼먼 장포를 입은 노인이 외치자 괴인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났다.

흑의장포 노인이 앞으로 나섰다.

“네가 심무한인가?”

무한은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노인을 주시하였다.

약간 길쭉한 얼굴을 한 노인은 독특하게도 피부가 검었다. 마치 마른 고목을 보는 듯했다.

머리에 흑관을 썼는데 음침한 얼굴과 어울려 죽음의 사신 같아 보였다.

일장 거리 떨어져 서 있는 다른 노인은 백발에 둥그런 인상이었으며, 몸집 또한 비대하였다.

“독왕은 안에 있나?”

무한은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물었다.

“만독곡의 후인들이로군.”

툭 내뱉은 한마디에 흑의장포 노인이 코웃음을 쳤다.

“독왕이 일러줬나? 그 늙은이가 아직도 살아 있나니. 명줄이 길기도 하군.”

“손우자가 만독곡 출신인가?”

흑의장포 노인은 대답하지 않았으나 비대한 노인이 대신하여 말했다.

“죽을 놈이 뭐가 그리 궁금한 게 많은가. 네놈이 환노를 죽였나?”

비대한 노인이 궁금한 눈빛으로 무한을 훑어보았다.

환노는 오노(五老) 중 무공이 가장 강하다. 게다가 그의 단혼사는 신병이기(神兵異器)로 꼽히는 무기다.

상대가 도왕이나 권왕만 아니라면 천하 그 누구도 감히 환사를 죽일 수 없을 거라 여겼는데…….

“당신들은 별호가 어찌 되나?”

무한은 계속 물음으로 대답했다.

흑의장포 노인, 독노(毒老)가 잔뜩 미간을 찌푸리곤 비대한 노인, 고노(蠱老)에게 말했다.

“말 섞을 필요 있나? 어서 해치우고 들어가자. 독왕이 무슨 짓을 꾸밀지 모른다.”

“흐흐. 그래도 저놈에게 알려줘야 할 말이 있지 않은가.”

고노가 무한을 향해 말했다.

“천하제일인이 어찌 죽었는지 아나?”

그 말을 듣는 순간 무한은 피가 거꾸로 치솟는 듯했다.

‘이놈이었어!’

무한의 얼굴에 치미는 분노를 보며 고노가 득의만면하여 말했다.

“바로 이 손으로 끝장냈다는 말이지. 심양조에게 천일고를 심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지 아나? 크하하. 천하제일인을 죽였으니 내가 천하제일수 아닌가?”

고노가 자신의 손을 들어 보이며 크게 웃었다.

마치 그동안 밝힐 수 없어 답답했다는 듯 무척이나 신난 표정이었다.

무한의 눈이 무섭게 빛났다. 동시에 가슴의 심단이 들끓으며 살의가 전신에서 피어올랐다.

고노는 자신의 격장지계가 제대로 먹히자 내심 쾌재를 불렀다.

환노까지 죽였다면 보통 놈이 아니다. 그래서 일부러 심양조에게 천일고를 심은 사실을 밝혔다.

하지만…….

심단이 터질 듯 요동치는 무한의 머릿속은 한없이 차가워졌다. 천심공의 요결이 무의식중에 발동하며 천목혈이 열렸다.

고노의 의도가 바로 읽혔고, 옆에 있는 독노가 불만스러워하는 것도 보였다.

또한 두 사람이 은근히 서로를 견제한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동시에 그들 뒤에 있는 백여 명의 괴인들까지 눈에 들어왔다.

이지를 상실한 듯 멍하니 앞만 보고 있는 괴인들의 눈은 피를 갈구하는 듯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었다.

무한의 시선이 괴인들 뒤에 있는 십여 명을 훑었다.

폭약을 터뜨리는 인부 복장을 하고 있으나 단단한 체구에서 무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특히, 인솔자로 보이는 이는 기운을 느낄 수가 없는 거로 봐서 고수임이 분명했다.

“너 혼자서 우리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무릎을 꿇으면 목숨은 살려줄 수 있다.”

고노가 빈정거렸다.

순간, 무한의 신형이 휙, 사라졌다.

동시에 강기로 이뤄진 소검이 독노를 향해 날아갔다.

‘세 놈만 잡으면 돼!’

완연한 진경에 오른 무한이다.

독노와 고노 그리고 무위를 알 수 없는 인부 인솔자.

이 세 사람이 합공하면 승산이 없다고 계산하고, 독노부터 해치우기로 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고노를 죽이고 싶지만, 독노의 무공 수위가 더 높아 보였기에 먼저 제거해야 했다.

“어림없다!”

독노는 코웃음을 치곤 양손을 교차하여 강기를 생성하였다.

콰앙!

강기와 강기가 부딪히며 폭음성이 터지는 순간.

무한은 독노와의 거리를 좁혔다.

스르릉.

검이 뽑혀 나오고.

파파팍!

무한의 검이 사라졌다.

허공 어딘가에 검이 있는데 보이지 않는다.

공공격!

경천십이식이 펼쳐진 것이다.

그간 무한은 경천십이식을 되도록 쓰지 않았다.

최후의 절초 경천격까지 완성하기를 기다려왔다.

그러다 천심공을 익히고 완연한 진경을 이루며 끝내 경천격까지 완성하였다.

그리고 오늘.

천하제일인의 죽음과 함께 사라졌던 경천십이식이 무한의 손에서 펼쳐졌다.

검이 보이지 않는데 사방에서 찔러오자 독노는 크게 당황했다.

“경천십이식!”

말로만 듣던 천하제일인의 검법이라는 걸 알아봤다. 동시에 자신은 물론이고 손우자도 무한을 과소평가했음을 깨달았다.

독노가 연신 뒷걸음질 치며 독강을 퍼부었다.

비릿한 냄새와 함께 독강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러나 무한의 검은 독노를 놓아주지 않았다.

파파팟!

뇌전의 기운까지 담은 뇌전격이 벼락처럼 떨어져 독강을 날려 보내고, 독노의 가슴을 관통하였다.

“크아악!”

독노가 비틀거리는데 무한의 검은 여세를 몰아 전신을 쓸었다.

구주팔황을 휩쓰는 검세, 팔황격!

서거걱!

팔황격이 맹렬하게 몰아치며 독노는 순식간에 팔다리가 잘려나갔다.

“으헉!”

갑작스럽고 놀라운 무한의 공격에 그만 고노가 숨을 들이켰다.

독공은 물론 무공 또한 화경을 넘본다는 독노가 순식간에 육편이 되다니.

고노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당황하였다.

스걱!

최후의 일격에 독노의 머리까지 잘려나갔다.

쿵!

독노의 머리가 땅바닥에 떨어지고, 이어서 남은 육신이 쓰러지는 걸 본 고노가 화들짝, 정신 차렸다.

무한이 휙, 고개를 돌려 고노를 보았다.

‘허억! 죽을지도 모른다.’

압도적인 상황에 자기도 모르게 질린 고노가 벌벌 떨리는 손으로 혁낭을 헤집었다.

무한이 피가 뚝뚝, 흐르는 검을 들고 고노를 향해 걸어왔다.

고노는 사신이 다가오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죽어랏!”

깨알 같은 흑갑충(黑甲蟲)이 검형을 이루며 무한을 향해 날아갔다.

흑갑충은 사람의 살에 닿으면 곧바로 파고들어 순식간에 해골로 만드는 무서운 독충이다.

워낙 작아 검이나 도로 상대할 수 있는 벌레가 아니다. 강기를 터뜨린다 해도 수많은 흑갑충을 모두 죽일 수는 없다.

다만 한번 대기에 노출되면 다시 회수하기가 까다롭기에 고노는 이제껏 흑갑충을 써본 일이 없다. 그런데 상황이 심상치 않자 곧바로 자신의 최후 비기를 꺼냈다.

무한이 날아오는 흑갑충 무리를 향해 검을 찔렀다.

고오오오!

으스스한 기운이 검신에 어리더니 한순간, 파악!

기운이 터져 나오며 한 마리 용의 형상을 이뤘다.

용연격!

완성을 하지 못했을 때는 그저 용처럼 신묘한 움직임을 보이는 초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검기가 거대한 용의 형상을 이루며 거치적거리는 건 닥치는 대로 물어뜯을 듯, 아가리를 벌리며 달려들었다.

검형을 이루며 날아오는 흑갑충 무리와 용연격 검세가 부딪히는 순간.

쿠쿠쿠쿠!

무한의 눈빛이 한층 서늘해지며 검기로 이뤄진 용이 다시 한 번 탈태(奪胎)하였다.

완연한 청룡의 허공에 드러났다.

시퍼런 청룡의 몸체는 무한이 쏟아낸 강기였다.

청룡은 분노하고 있었다. 맹렬한 기세로 흑갑충을 향해 돌진하였다.

크아아앙!

거대한 용음(龍吟)과 함께 청룡이 흑갑충 떼를 삼켰다.

파아아아!

청룡의 뱃속으로 들어간 흑갑충 떼는 순식간에 검은 먼지가 되어 흩날렸다.

청룡은 흑갑충들을 삼키고도 분노가 풀리지 않은 듯 고노를 향해 날아갔다.

“아, 아!”

고노가 화들짝 놀라 몸을 돌려 도주하려 하였다.

고노는 원래 고술을 다루며 어둠 속에서 상대를 해치는 게 전문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압도적인 무위에 짓눌리기는 처음이다.

자기도 모르게 도주를 선택했으나.

쐐애액!

무한의 소매에서 비수가 날아가 고노의 허벅지에 박혔다.

“크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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