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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무한-134화 (134/250)

134화

남궁세가 가주 남궁무룡은 남궁우가 당가로 가는 길에 피습 당했다는 소식을 듣자 둘째 아들 남궁호와 열 명의 무인을 급파했다.

남궁우가 흑수애로 가고자 위장을 하는 바람에 남궁호는 행적을 놓치고 말았다.

남궁호는 무인들은 사방으로 보내 남궁우 행적을 탐문하라 이르고, 자신은 상인을 가장하여 당가타에 있었다.

남궁호가 남궁우를 뚫어져라 보다 소매를 잡아 안으로 끌어들였다.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냐?”

남궁우임을 알아본 남궁호가 화부터 냈다.

“뭔 짓을 하다니. 아무 짓도 안했거든요?”

남궁우가 억울해하였다.

무한을 찾아 흑수애로, 흑수애에서 다시 당가타로 왔을 뿐이다.

“지금 당가타는 초비상이다. 심무한이 당가주를 죽였단 말이다.”

“에엥?”

귀영이 놀라 얼이 빠졌다.

“부주가 당가주를? 왜요?”

“그건 모르지. 워낙 갑작스러운 일이라서.”

남궁호가 어젯밤 벌어진 일을 들려주었다.

다 듣고 난 남궁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제 도착한 부주가 그 밤에 바로 가주를 살해했다고?”

“우리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당가타에 대한 수색이 강화되고 있어서 일단 떠나려던 참이다.”

“근데 여긴 왜?”

왜 왔냐고 묻자 남궁호가 화를 내며 말했다.

“지금 검천부주가 흑천과 손을 잡았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그런 와중에 네가 호위를 하고 다닌다니… 가주께서 걱정이 돼서 보낸 것 아니냐?”

평소 과묵하여 말수가 적은 남궁호지만 천방지축인 남궁우를 보니 말이 길어졌다.

“에헤이. 가주도 나이가 드시더니 걱정이 많아지셨네. 내가 누구야. 내가 바로…….”

“알아, 남궁지낭인 거. 그러니 설명 좀 해봐라. 이게 어찌된 일이냐?”

“누명이야.”

남궁우가 단언했다.

“누명이라고? 현고 장로가 직접 봤다더라고.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이 한둘이 아니야.”

“그렇게 보이도록 연출했을 거야.”

“뭘 보고 확신하는 건데?”

오히려 귀영이 물었다. 자기조차 부주가 미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남궁우가 누명이라니 궁금했다.

“생각해봐. 당가의 장로가 천하방에서 죽었을 때 흑천 소행이라고 알려졌지. 게다가 당가로 오는 길에 괴인들이 공격하여 고우가 죽었어.”

“그랬지.”

“그것도 흑천 소행으로 알려지고 도천부가 날뛰고 있지. 그런데 부주가 자취를 감추자마자 흑천에 전향했다는 소문이 나고, 다시 당가에 오자마자 가주가 죽었어.”

남궁우가 확신에 차서 말했다.

“이건 정말 잘 짜여진 그림이야. 정말 놀라워. 우연까지도 변수로 삼아서 부주를 완전히 함정으로 몰아넣었어.”

“누가? 누가 그런 짓을 한다는 거야?”

귀영이 눈이 동그래서 묻자 남궁우가 돌아보며 말했다.

“모르겠어? 난 알겠는데?”

“잘났다. 잘난 거 인정할 테니 말해줘.”

“이 정도 귀계를 꾸밀 수 있는 자는…….”

남궁호와 귀영이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말해줄 수 없지.”

“뭐야!”

귀영이 펄쩍, 뛰었으나 남궁우는 손우자라고 말할 수 없었다. 혹시라도 말이 퍼지면 곧바로 손우자의 표적이 될 테니까.

“죽을래?”

남궁우가 요지부동 입을 열지 않자 귀영이 협박했다.

그러자 남궁호가 험악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귀영인가? 말조심하지?”

남궁호의 매서운 눈빛에 귀영이 움찔했다.

상대는 남궁세가 둘째 공자다.

새삼 남궁우의 신분이 떠오르고 자신과의 차이를 절감했다.

“모르는 게 약이야.”

남궁우가 다정하게 귀영을 위로했다.

귀영이 먼 하늘을 보며 탄식을 하였다.

“대체… 부주는 어디로 가셨을까?”

“그건 말해줄 수 있지.”

남궁우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어딘데?”

남궁호와 귀영이 동시에 물었다.

“만독곡!”

***

중원과 운남의 경계.

기암절벽을 두른 산들의 세상에 마차 한 대가 나타났다.

마부석에는 무한이 앉아 있었다.

운무가 가득한 계곡 앞에 마차가 멈췄다.

무한이 내려 마차 문을 열며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마차가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아.”

마차에서 당전수가 나왔다.

쌍인고에 당한 그의 안색은 파리하였고, 입술은 꺼멓게 죽어갔다.

당전수가 손에 든 지도와 주위 지세를 살피곤 운무에 쌓인 계곡을 바라보았다.

“저기가 만독곡 맞아. 저 운무는 독진 때문에 생겨난 걸 거야.”

“걸을 수 있겠어.”

“아직은 괜찮아.”

기암괴석 사이를 걸어 들어가니 비스듬한 오르막길이 이어졌다.

운무가 자욱한 곳에 이르자 당전수가 멈춰 섰다.

“할아버지! 손자 전수가 왔습니다!”

세 차례 외쳤을 때 쯤 창노한 음성이 들려왔다.

“전수? 소가주가 무슨 일인가?”

“크윽! 아버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당전수가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오열을 터뜨렸다.

“뭐라?”

천지를 울릴 듯한 고함이 터졌다.

잠시 후, 운무 사이로 길이 열렸다.

“올라와서 자세히 말하거라.”

창노한 음성에 약간의 떨림이 섞였다.

무한은 당전수를 부축하여 운무 사이로 올랐다.

한 식경 정도 오르자 어느 순간 운무가 걷히고 광대한 계곡이 눈에 들어왔다.

절벽 사이에 펼쳐진 너른 분지였다. 가운데 호수가 있어 경치가 무척 아름다웠다.

‘만독곡이 아니라 선계라고 해도 믿겠군.’

호숫가 옆에 커다란 목옥이 있었다.

당전수가 목옥으로 가서 부복하였다.

“어리석은 손자가 조부님을 뵙습니다.”

당전수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당현모가 전장에서 싸우다 죽었다면 이리 원통하지 않을 것이다. 무인이 적과 싸우다 죽는 건 비통하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과도 같다.

허나 당현모는 일족의 손에 죽었다.

더욱이 오면서 생각하니 당현고는 오랫동안 반역을 준비했던 게 분명했다.

당가주 정도의 인물을 쌍인고로 죽이려면 적어도 일 년여 시간 동안 심장에 심어놓아야 하니까.

“들어오거라.”

목옥 문이 열리며 침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외인은 거기 서게.”

독왕의 말에 무한은 마당 평상에 앉았다.

목옥 안에 있는 이가 독왕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었다.

‘가주를 암살할 계획을 세우면서 독왕을 그대로 두었을까?’

당전수가 들어간 뒤 안의 기척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는 기운으로 소리를 차단했다는 뜻이다.

‘독왕이 맞겠군.’

이만한 기운을 쓸 수 있는 자라면 화경의 끝, 현경을 바라보는 경지여야 가능하다.

잠시 후 독왕의 목소리가 들렸다.

“외인은 들게.”

무한이 목옥으로 들어가자 한 가운데 실내정원이 있고 사방으로 방과 마루, 대청이 있었다.

독왕은 대청 상석에 정좌하고 있었다. 그의 뒤 열린 공간으로 호수가 보였다.

독왕은 백발을 풀어 산발하였고, 얼굴에 주름이 가득했다. 다만 눈빛이 현현하여 깊고도 깊었다.

독왕의 현현한 시선이 무한을 훑었다.

무한은 독왕의 왼쪽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있는 당전수를 흘깃, 보고는 포권을 하였다.

“천하방 검천부 심무한이 무림의 존장을 뵙습니다.”

독왕이 말없이 손을 들어 자리를 가리켰다. 당전수와 마주보는 자리다.

무한이 자리에 앉자 독왕이 물었다.

“소가주를 구해준 은혜는 잊지 않겠네.”

독왕의 목소리는 침중하였다.

“가문에서 부끄러운 일이 벌어졌더군.”

“세상에는 제가 한 짓으로 알려졌을 겁니다.”

무한이 담담하게 받았다.

“…….”

독왕이 가만 눈을 감았다.

무한의 말에 질문이 담겨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자신이 여기서 무한을 죽이고, 당가로 가서 소가주를 가주로 세운 다음, 반역도들을 은밀히 처리하면…….

당가에서 일어난 반역은 세간에 알려지지 않을 것이다.

그에겐 그럴 능력이 충분하다.

‘어린놈이 심계가 깊구나.’

당전수보다 고작해야 두어 살 위로 보이는데……. 새삼 이 어린놈이 천하방 검천부주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독왕이 눈을 떴다.

“청천백일 대도무문(靑天白日 大道無門)”

그 한마디로 자신의 뜻을 밝혔다.

당전수는 두 사람 간의 대화에 숨은 맥락까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독왕이 무한에게 물었다.

“원하는 게 뭔가?”

“천하방을 얻고자 합니다.”

광오한 말에 당전수는 물론 독왕도 흠칫하였다.

“조부의 뒤를 이을 생각인가?”

그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천하제일인 심양조의 손자이니만큼 천하방을 노리는 게 당연하다는 뜻이었다.

“노부가 외진 산골에 은거하여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어둡긴 하지만… 심 방주와 아들의 소식은 들었지.”

그러면서 지긋한 시선으로 무한을 보았다.

“많은 일이 있었나보군.”

무한이 말했다.

“어르신의 수행을 깨뜨릴 생각은 없습니다.”

독왕은 무한이 당전수를 살리고 가주의 자리에 오르는 걸 돕는 대신, 당가 차원의 지원을 요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아니라 당가의 지원이라…….’

무림 세력이 격돌할 때 어느 한 편에 서는 것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사안이다. 일가의 가주라면 더욱 그렇다.

당금 천하방은 방주 도왕이나 차기 후계자를 자처하는 권왕이 멀쩡하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무림의 일은 실로 알 수 없으니 어떤 고수가 나타나 패권을 가져갈지 모른다.

당가가 무한과 손을 잡으면 지금으로선 가장 미약한 세력의 편에 서는 것이다. 그 결과는 당가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독왕은 이미 실리보다는 정도(正道)가 길이라는 걸 깨달은 경지다.

“당가의 일은 전수가 결정할 것일세.”

두 사람이 서로의 의중을 짚어 하는 말이니 맥락이 중간 중간 끊겨 당전수는 알아듣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심장에서 끊임없이 통증을 보내오는 쌍인고 때문에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다.

독왕도 당전수의 고통을 알고 있는 듯 말을 끊었다.

“지금은 전수의 몸에 있는 쌍인고부터 해결해야 할 듯하군.”

그러잖아도 무한은 당전수가 쌍인고로 인해 고통을 겪는 걸 의아해하였다.

쌍인고는 워낙 몸에 동화하여 기생하기에 감지하기 어렵다. 그러니 독의 종주라는 당가의 가주조차 당하고 말았다.

그런데 당전수 몸에 숨은 쌍인고는 마비침에 찔렸으면서도 고통을 유발하고 있다.

무한의 궁금증을 알기라도 하듯 독왕이 말했다.

“현모가 마비침으로 눌러놓았기 망정이지 아니면 소가주도 죽을 뻔했네.”

“쌍인고 수놈이 죽어서 그런 겁니까?”

독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쌍인고로 사람을 죽일 때는 일 장 거리 이내에서 수놈을 죽이지. 하지만 다른 방법도 있네.”

독왕이 당전수를 보며 말했다.

“쌍인고는 서로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불안증세를 보이지. 적어도 열흘에 한 번은 일 장 거리에 있어야 하네.”

“그러면 굳이 일 장 거리까지 좁힐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불안증세를 느낀다고 바로 죽는 건 아니네. 다만 이상행동을 하기에 고에 당한 자가 알아챌 수 있지.”

“아!”

심장에 고가 있다는 걸 알아채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암살에 실패할 가능성도 있다.

“이놈이 이미 불안증세를 느끼고 있네. 며칠 늦게 왔다면 나도 살리기 어려웠을 거야.”

그때 바깥에서 폭음성이 들려왔다.

이어 마흔 가량의 사내가 들어와 고했다. 독왕의 수발을 드는 하인 같아 보였다.

“바깥에 한 무리의 무림인들이 몰려왔는데, 폭약으로 독진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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