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존무한-128화 (128/250)

128화

두 사람의 객방은 이층이었고, 옆집은 단층이었다.

“뭐, 뭐야? 이거 놔!”

술이 덜 깬 남궁우가 버둥거렸다.

“조용해! 움직이지 말라구!”

귀영은 몸을 날리는 와중에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휘감은 남궁우의 옆구리가 너무 부드럽다.

‘왜 이리 가늘지? 헉, 여자?’

순간, 놀라서 손을 떼는 바람에 남궁우를 놓쳤다.

아직 술에서 덜 깬 남궁우는 그대로 뚝, 떨어졌고, 퍼뜩 정신을 차린 귀영이 다시 남궁우를 잡으려 할 때 두 사람은 지붕에 닿았다.

신법을 펼칠 새가 없었다.

나무판으로 이은 지붕이 귀영과 남궁우의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쿵!

두 사람은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크윽!”

엉덩이가 깨지는 아픔에 남궁우가 정신을 차렸다.

같이 나뒹군 귀영이 얼이 빠진 얼굴로 물었다.

“너, 여자였어?”

짜악!

남궁우가 뺨을 때렸다.

“정신 차려. 지금 그게 중요해?”

“아, 그렇지! 야, 정신은 네가 못 차리고…… 이크!”

삐익!

날카로운 호각 소리가 귀청을 때린다.

뚫린 천정으로 객방 이층 창문이 보였는데 흑천도가 이쪽을 가리키며 연신 호각을 불고 있었다.

귀영이 휙, 둘러보니 헛간이었고 뒷마당 쪽으로 문이 있었다.

“나가자!”

귀영이 칼을 앞세워 문을 박차고 나가자, 남궁우가 뒤따라 달려갔다.

“저기다! 쥐새끼 같은 사내놈과 검고 못생긴 년이 한패다.”

이층 창문에서 흑천도가 연신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저 새끼가!”

남궁우가 이를 빠드득 갈고는 뒷머리에서 비녀를 뽑아 던졌다.

쉭!

무려 십여 장 거리였는데 화살처럼 날아간 비녀가 흑천도의 볼을 뚫었다.

“크아악!”

흑천도가 얼굴을 감싸고 뒤로 나자빠지는 게 보였다.

“누구더러 못생겼대.”

남궁우가 씩씩, 거리며 귀영을 따라 도주했다.

두 사람은 골목을 따라 달리다 담을 넘고, 다시 골목을 따라 달렸다.

그러나 좀처럼 흑천도들을 따돌릴 수가 없었다.

흑천관은 흑천의 영역.

들어가는 집마다, 골목에서 마주친 사람들마다 도망자가 여기 있다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흑천도들도 만만치 않았다. 자신들의 영역인 만큼 귀영과 남궁우를 이리저리 몰아붙였다.

골목에 숨었다가 불쑥, 칼질을 하곤 이쪽에서 달려들면 도주하니 더 미칠 노릇이었다.

“저기 산으로 가자고!”

남궁우가 뒷산 쪽을 가리켰으나 귀영의 발길은 반대로 향했다.

“누가 몰라! 저놈들이 버티고 있잖아. 우회해야 해!”

귀영과 남궁우는 흑천관 마을을 벗어나려 했으나 오히려 부두쪽으로 내몰렸다.

***

비밀통로 입구는 돌비석 아래 석대에 있었다. 한 사람이 지날 만한 좁은 통로였다.

완전한 어둠을 가르고 지나간다는 건 보통 사람은 물론 고수들도 두려운 일이다.

무한은 천목투심술을 익히느라 어둠 속에서 생활한 바가 있다. 거침없이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축축한 통로를 따라 얼마나 갔을까.

어둠 속이지만 앞쪽이 막혔다는 걸 감지한 무한이 멈춰 서서 화섭자를 켰다.

돌로 된 문으로 막혀 있었는데 옆에 기관장치가 보였다.

크르르릉.

기관장치를 조작하자 희미한 빛이 들어왔다.

열린 공간은 작은 동굴이었다.

동굴을 나서니 절벽 아래 숨겨진 그리 넓지 않은 강변이었다. 우거진 수풀 사이로 작은 배가 보였다.

‘요인의 비상탈출로였나보군.’

무한은 배 위에 올라 바로 노를 저었다.

삐걱, 삐걱.

무한의 배가 강복판으로 나갔을 때 어디선가 고함소리가 들렸다.

“놈이 탈출했다!”

절벽 위쪽 하늘에 붉은색 폭죽이 터졌다.

그사이 무한은 흑천관 상류 쪽에 당도하였다.

강가로 향하던 무한이 요란스러운 호각소리에 시선을 주었다.

“……?”

두 사람이 부두 광장으로 쫓겨 오더니 뒤따라온 흑의인들과 격전을 벌였다.

“귀영?”

모습은 생소했지만 도법이나 움직임이 익숙했다.

옆에서 장검을 휘두르는 검은 피부의 여인이 펼치는 검법도 알 것 같았다.

두 사람이 마구 날뛰었지만 흑의인들의 숫자가 워낙 많았다.

흑천관은 흑천의 관문이니만큼 흑천도들이 대부분이었다. 술집이나 객잔에 처박혀 있던 흑천도들도 칼을 들고 뛰어나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무한이 부두 쪽으로 작은 배를 저었다.

남궁우가 먼저 무한을 발견했다.

“특임감찰이다!”

귀영도 황급히 돌아보곤 크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너희는 다 죽었다!”

귀영과 남궁우를 포위한 흑의인들도 배를 발견하고 한 무리가 우르르 몰려갔다.

귀영이 소리쳤다.

“부주! 여깁니다! 여기!”

그러나 무한은 가까이 올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배 쪽으로 오라고 손짓을 하였다.

“엥? 우리더러 오라고?”

일엽편주.

세 명이 타면 꽉 차는 작은 나룻배다.

게다가 선착장에 있는 큰 배로 쫓아오면 금세 따라잡힐 텐데.

어쨌거나 무한이 오라고 하니 귀영이 폭풍처럼 도를 휘두르곤 선착장 쪽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남궁우는 여전히 흑천도들과 싸우기만 한다.

“뭐해? 안 따라오고.”

남궁우가 검을 휘두르며 말했다.

“부주가 우리를 잡기 위해서 온 거라면?”

“뭐래? 이 멍청한 놈… 아니, 여잔가?”

귀영이 되돌아와 남궁우의 뒷덜미를 잡아채고 선착장을 향해 달렸다.

흑천도들이 떼로 달려들며 포위하려 했으나 은신술의 대가 귀영을 가둘 수는 없었다.

“뛰어!”

선착장에 이른 귀영이 소리치며 몸을 날렸으나 배와는 이십여 장 거리였다.

풍덩!

귀영이 빠지고 뒤이어 몸을 날린 남궁우가 옆에 떨어졌다.

“푸아아!”

물속에 들어갔다 나온 두 사람은 열심히 헤엄쳐 배에 올랐다.

작은 배였으나 무한이 기운으로 누르고 있어 흔들림이 없는 게 다행이었다.

“으… 추워라. 흐아, 죽을 뻔했네.”

귀영이 갑갑한 인피면구를 벗어던지고는 선착장을 향해 소리쳤다.

“시간만 있었으면 네놈들은 죄다 죽었다!”

남궁우가 무한을 훑어보며 말했다.

“멋진 옷이네? 흑월주가 됐다더니 신수가 훤해졌어.”

무한은 남궁우의 말을 무시하고 귀영에게 말했다.

“당가 일행과 함께 움직이라고 했을 텐데요?”

“예? 언제 그러셨는데요?”

“서찰을 남겼는데…….”

“아, 이거?”

귀영이 물에 젖은 봉투를 꺼냈다.

“이름이 없으니 열어볼 수가 있었어야죠. 그러잖아도 누구에게 보내는 건지, 물어보려 했지요. 근데 다 젖어 버렸네?”

무한이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었다.

이상한 구석에서 고지식한 귀영이다.

남궁우가 콧김을 뿡뿡, 뿜으며 소리쳤다.

“지금 내 말을 무시하는 거냐? 흑천도가 됐냐고 묻잖아?”

무한이 남궁우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흑월령의 주인이 됐지.”

남궁우의 안색이 하얗게 굳었다.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입술이 덜덜, 떨렸다.

“정, 정말이야?”

귀영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소문이 사실이었군요… 그럼 저도 특임감찰 호위에서 해직되는 건가요? 흑월의 호위는 월봉이 얼마나 될까요?”

“바뀌는 건 없습니다. 나는 여전히 천하방 검천부주이자 당가장로살인사건 특임감찰이니…… 귀 호위는 계속 천하방 월봉을 받을 수 있지요.”

무한이 웃으며 대답했다.

귀영의 눈알이 빠르게 굴렀다.

‘그럼, 명목상 천하방 특임감찰로 활동하고, 암중에 흑월도? 월봉도 양쪽에서 다 받고?’

검천부에서 나오는 월봉까지 합하면 세 군데서 돈을 받는다.

“저는 부주께서 지옥에 가자 해도 따라갈 겁니다.”

귀영의 말에 남궁우가 소리쳤다.

“그게 말이 돼! 천하방도와 흑천도를 어떻게 겸할 수 있어! 나는 그럴 수 없다! 흑천도가 된 이상 나와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

“불구대천의 원수도 아닌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럼 저기 저 부두의 흑천도들은 뭐게? 저들 머리 위 하늘과 네 머리 위 하늘이 다 같은 하늘인데? 지금이라도 가서…….”

부두 쪽을 보던 귀영의 눈이 커졌다.

“부주! 저, 저기…….”

흑수애 쪽에서 날렵한 배들이 빠르게 내려오고 있었다.

“꽉 잡아!”

무한이 귀영과 남궁우에게 이르곤 배 뒤쪽에 서서 강물을 향해 장력을 쳐냈다.

퍼엉!

물기둥 소리와 함께 배가 좌우로 흔들거리며 빠르게 앞으로 나갔다.

“으어어어.”

귀영과 남궁우가 뱃전을 잡고 소리를 질렀다.

두어 번 장력을 후려치니 요령이 생겼다.

배는 흔들림 없이 빠르게 앞으로 쑥, 쑥 나아갔다.

“아! 부주, 경지가 더 높아진 것 같군요. 감축드립니다.”

귀영이 그 와중에도 아부를 하면서 쫓아오는 배들을 살폈다.

“저놈들 다 허접해 보이는데 싹, 쓸어버리고 가는 게 어떨까요?”

“무의미한 살생은 피합시다.”

“흥! 같은 흑천도이니 죽일 수 없는 거겠지. 저놈들이 쫓아오는 건지, 호위하는 건지 알게 뭐야.”

남궁우가 구시렁대자 귀영이 눈알을 부라렸다.

“언제는 부주의 책사가 되겠다고 달라붙더니? 한번 주군은 영원한 주군이라고! 역시, 계집애의 좁은 속은 어쩔 수 없어,”

무한이 장력을 날리며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속으로 웃었다.

완연한 진경에 들며 무한의 마음에 변화가 있었다.

세상이 구분 지은 흑백과 선악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스스로의 기준이 서는 중이다.

무한이 보기에 흑천도들 역시 어떻게든 살고자 발버둥치는 존재들이다.

자신이 더 강하다고 하여 무작정 쳐죽일 수는 없다.

사사천이 끝까지 자신을 몰아친다면 피전격과 단판승부를 지을 생각이었다.

배는 빠르게 하류로 흘러갔다.

쫓아오는 배들이 멀어졌다.

멀리 강가 쪽을 살펴보며 오를 곳을 찾던 무한이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가 귀영에게 말했다.

“귀 호위는 이 배로 가다 적당한 곳에서 내려요. 성도에서 만나기로 하지요.”

무한이 말을 마치자마자 배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십여 장 거리를 날아간 무한이 강에 튀어나온 암초를 디딤돌로 삼아 다시 십여 장을 날아 강가에 내려섰다.

“오!”

귀영이 감탄하였다.

남궁우는 그런 무한의 뒷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귀영이 물었다.

“정말 부주가 흑천에 넘어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모르지. 하지만 소문이 천하방에 들어가면 어찌될까?”

“으음. 곤란해지겠지.”

“곤란 정도가 아닐걸. 분명 검천부를 축출하려 들 거야.”

“너는 부주의 일에 왜 그리 관심이 많은 건데? 혹시…….”

“혹시?”

남궁우가 묻자 귀영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부주를 신랑감으로 점찍어 놓기라도 한 거야?”

“뭐?”

남궁우가 귀영을 걷어차려 하자 귀영이 뱃전에 기댔다.

나룻배가 엎어질 듯 옆으로 기울었다.

“어, 어….”

이미 한 차례 차가운 강물에 빠진 바 있는 두 사람은 착, 배에 달라붙었다.

“헛소리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

남궁우가 노려보자 귀영이 뱃머리 쪽으로 기어가며 중얼거렸다.

“헛소리인지 아닌지…… 두고 봐야 알지.”

***

강가에 올라선 무한은 숲으로 들어갔다.

숲 한가운데 공터에 이르렀을 때 우렁찬 음성이 울려 퍼졌다.

“제 발로 오다니! 애송이가 배짱이 좋구나.”

“피전격이 보냈나?”

“흑수애가 그리 간단히 빠져나올 수 있는 곳인 줄 알았더냐?”

숲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장대한 체구에 한 쌍의 도끼를 등에 맨 사내였다.

짧은 턱수염에 부리부리한 눈을 지닌 사내가 삼 장 거리에 서서는 무한을 살펴봤다.

“생각했던 것보다 어린 애송이로군. 피 천주가 왜 너 같은 놈에게 집착하는 거지?”

“그건 피 천주에게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군. 나도 모르니까.”

“흐흐…… 주둥이부터 만져줘야겠군.”

사내는 등 뒤의 도끼를 뽑을 생각도 않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네놈이 진경이라고?”

사내가 주먹을 불끈 쥐고는 소리쳤다.

“나는 믿을 수 없다!”

부웅!

오른 주먹을 후려치는데 마치 통나무를 휘두르는 굉음성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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