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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무한-68화 (68/250)

68화

무한은 지켜만 보기만 하면 됐다.

사내는 귀영의 위협에 벌벌 떨었다.

“이름!”

“조……양삼입니다.”

“가명 말고.”

“본명입니다.”

귀영이 씨익, 웃었다.

어둠 속에서…… 귀영도 이는 하얗구나.

하얀 이 사이로 비집고 나오는 말은…….

“새끼…… 제법 대가 굵구나.”

퍽, 퍼퍽!

귀영이 칼등으로 조양삼이라는 사내를 마구 후려쳤다.

빠각!

그 와중에 종아리가 부러졌다.

“크흑! 그만, 곽삼양입니다. 곽삼양.”

“으음. 곽삼양? 확인해보지.”

귀영이 곽삼양의 허리춤을 뒤지더니 신분패를 꺼내 확인했다.

“곽삼양이 맞군. 그러게 그냥 불지. 맞고 분다고 자존심이 지켜지나?”

귀영의 흉악함에 모두가 놀랐다.

처음부터 신분패를 뒤졌으면 될 일이다. 일부러 괴롭히는 게 분명했다.

귀영이 곽삼양을 향해 흉흉한 눈빛을 흘리며 물었다.

“누가 시켰어?”

곽삼양은 입을 열지 않았다. 절대 말할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귀영이 밤하늘을 보고 중얼거렸다.

“염왕님, 둘을 보냈는데, 셋을 더 보내야겠네요. 이 밤에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귀영의 말에 주풍호가 놀라서는 마비되어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주제에 버둥거리며 곽삼양을 발로 걷어찼다.

“이 새끼야! 똑바로 말해! 너 때문에 큰형님과 형님이 죽었다고! 넌 이제 살아도 산 게 아니야! 살고 싶으면 말해!”

퍽!

귀영이 칼 옆면으로 주풍호의 머리를 내리쳤다.

“누가 끼어들래? 너부터 죽을 래?”

흉악한 분위기였으나 곽삼양은 그래도 입을 열지 않았다.

보다 못해 무한이 끼어들었다.

“천종해가 직접 지시한 모양이군.”

그러자 곽삼양이 흠칫, 놀랐다.

“보아하니 천종해의 수족 중 한 사람인 듯한데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깊구나.”

무한이 돌아서며 귀영에게 일렀다.

“조용히 처리하세요.”

“깔끔하게 보내겠습니다.”

주풍호가 기겁을 하였으나 소용없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살려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귀영이 하얀 이를 드러냈다.

“내가 언제? 그건 너희가 늘 쓰는 말 아니야? 착각하지 말라고. 난 그런 말 한 적 없어.”

씨익, 웃으며 손을 들어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꽤 아플 거야. 기대해.”

사악한 귀영.

***

며칠 후.

무한이 다시 천하상단을 찾았다.

이번에는 방문첩을 보내지 않았으나 천하방 검천부 무복을 입은 호위가 넷이나 따르는 무한을 막을 사람은 없었다.

내원 정문으로 가는데 접객집사가 황급히 달려 나왔다.

“이리 오시지요.”

접객청 문턱을 넘는데 천종해가 객청에서 서성이다 황급히 다가오며 반가이 맞아주었다.

“지난번에는 몸이 좋지 않아 뵙지 못했습니다. 천하방 검천부주께서 이리 헌앙한 대장부이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뵙고자 했는데 정말 잘됐습니다.”

천종해는 마치 십년지기라도 만난 듯 살갑게 대했다.

아버지 천평산을 닮아 체구가 크고 살집이 두툼하였는데, 얼굴은 웃는 상이다.

‘음험한 자로구나.’

천목투심술이 아니었다면 무한도 깜박 넘어갈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무림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다.

상인들도 나름의 방법으로 싸우고 있고, 천종해는 상계의 고수였다.

“이리 앉으시지요.”

천평산이 포기하라 했지만 그는 사업권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검천부주는 이제 열여덟 살에 불과한 애송이다.

‘이런 애송이 하나 구워삶는 건 일도 아니지.’

자신 있었다.

천종해가 손님 자리를 안내하고는 맞은편 주인석에 앉았다.

시비들이 나와 차를 따랐다.

“너희는 나가 있거라.”

천종해가 주위를 물렸다.

둘만 남자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랫동안 검천부 사업을 맡다보니 손님이 아니라 형제를 만난 듯싶군요. 번거로운 예는 걷고 흉허물 없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형제라…… 낯간지럽군요. 상인들은 이런 상황에서 그렇게 말합니까? 그나저나 우리 사이에 남은 이야기가 있습니까?”

무한의 물음에 당황한 천종해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갑자기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하. 역시 무인은 솔직하여 좋군요.”

천종해는 아예 무한의 시선을 피하며 차를 따랐다.

표정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잠시 후 냉정을 찾은 천종해가 말했다.

“갑자기 사업권을 회수한다기에 무슨 까닭인지 찾아뵙고자 했는데 마침 잘 오셨습니다.”

“육총관에게 분명히 문서를 전해드렸는데 전달되지 않은 겁니까?”

천종해가 정색을 하였다.

“심 부주께서 상계를 잘 모르실 듯하여 자세하게 말씀드리지는 못하오만, 오랜 세월 위탁운영하며 얽힌 이해관계가 여간 복잡한 게 아니지요. 하루 이틀 사이에 정리하기 어렵지요.”

무한이 천종해를 주시했다.

“천하상단에서 어려워하는 일이 있다니 뜻밖이군요.”

“부주께서 몰라서 그렇지 상계의 일은 무척 복잡하답니다. 여러 사람의 이익을 조정하는 일은 쉽지 않지요.”

“그렇다면 백가상단에 요청하여 사람을 보내 도와드리도록 하지요.”

“예?”

“백가상단에 부탁을 하겠다는 말입니다.”

“그건 아니 될 말입니다.”

천종해가 손사래를 치고 뭐라 말하려는데 무한이 먼저 말했다.

“천하상단의 능력이 모자란다고 하여 말씀드리는 겁니다. 저는 한시라도 빨리 마무리 짓고 싶군요.”

천종해의 미간이 우그러들었다.

‘이 자식이?’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아쉬운 건 자신이었다. 울화를 누르며 말했다.

“사실 검천부 명의의 광산이나 염전, 점포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지금으로선 빈껍데기나 마찬가지입니다.”

천종해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끓어오르는 분을 누르며 말을 이었다.

“철광산은 대부분 광맥이 끊겨 생산량이 많지 않고, 염전은 수적들 때문에 나날이 수지가 악화되고 있지요. 그동안 갖은 애를 써서 그나마 약간의 수익을 거뒀는데 이대로 넘기면 바로 문 닫을 곳이 한둘이 아닐 겁니다.”

천종해는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 말을 이었다.

“막상 반환하려고 들여다보니 상황이 이 지경이라 참으로 난감합니다. 이대로 끝내면 천하상단의 위신이 뭐가 되겠습니까.”

무한이 천종해를 주시했다.

눈빛이 서늘하다.

천종해는 다음 말을 하려다 그 눈과 마주치는 바람에 그만 말문이 막혔다.

“…….”

잠시 침묵이 흐르고.

무한이 입을 열었다.

“아까 형제라고 하셨지요?”

“검천부와 천하상단은 수십 년 간…….”

“그런데 반환하려고 들여다보니 이 지경이라. 형제의 사업이 이리 되는 동안 뭘 하고 있었던 겁니까?”

“…….”

무한이 서늘한 어조로 말했다.

“천하상단 위신? 그게 남아 있는 모양이군요. 내가 왜 그걸 돌봐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어디 들어봅시다. 무슨 복안이 있는지.”

천종해는 뼈를 때리는 무한의 말에 당황했다.

‘뭐야, 이 새끼.’

하지만 그 또한 악착같이 살아온 인간이다. 이를 악물고 낯빛을 가다듬어 말했다.

“이미 대책을 강구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말씀드리고자 했습니다.”

천종해는 무한의 시선을 마주할 수 없어 찻잔으로 내리며 말을 이어갔다.

“두 가지 방안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천하상단이 자금을 투입하는 겁니다.”

그 한마디에 무한은 무슨 꿍꿍이속인지 알아차렸다.

이놈, 아예 사업권을 양도 받을 생각이다.

“천하상단이 중원 오대상단이라는 건 잘 아실 겁니다. 광산은 자금을 투입하여 새로운 광맥을 찾고, 염전은 지키는 무사를 더 고용하여 수적을 방비하면 수익이 개선될 겁니다.”

“…….”

“뭐, 약간의 지분 조정이야 있겠지만 여전히 검천부의 사업이지요.”

무한은 듣기만 하였다.

천종해는 무한이 자신의 대안에 관심이 있다고 오해하고 두 번째 안, 무한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방안을 들이댔다.

“두 번째 방안은 통째로 좋은 값을 받고 넘기는 겁니다. 매각대금이 들어오면 제가 직접 이윤이 좋은 사업에 투자하여 불려드리겠습니다.”

무한이 피식, 웃었다.

듣고 있자니 가관이었다.

받아들일 수 없는 두 번째 안을 내밀어, 사업을 양도 받을 생각이다.

무한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둘 다 내키지 않는군요. 한시바삐 양도 절차를 밟기 바랍니다.”

애초에 천종해 따위와 옥신각신할 생각이 없었다.

‘이놈은 천평산을 끌어낼 미끼일 뿐이지.’

그런 속도 모르고 천종해의 눈빛이 험악해졌다. 거의 협박조로 말했다.

“아무래도 부주께서 천하상단에 단단히 실망하신 모양이군요. 하지만 천하상단의 면도 생각하셔야 할 겁니다. 서로 얼굴을 붉히면…… 끝이 어찌 되겠습니까?”

나가려던 무한이 그 말에 멈춰 섰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천종해를 바라봤다.

기가 막힌다는 눈빛.

“천하상단의 면? 내가 그런 것까지 생각해야 하나?”

대뜸 날아오는 하대에 천종해가 당황했다.

무한의 얼굴에는 서릿발 같은 싸늘함이 흘렀다.

“나보고 상계를 모른다고 했나? 그런데 이소단주는 무림을 아나 모르겠군.”

천종해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무한의 눈이 서늘하다. 당장이라도 손을 쓸 것 같은 분위기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천하상단 이소단주다. 죽을 고비도 무수하게 넘겼다.

“지금 천하상단 안에서 이소단주인 나를 협박하는 건가?”

여기는 천하상단. 게다가 암중에서 그를 호위하는 고수들만 서른 명이다.

무한이 자신을 해치려 든다면 이를 빌미삼아 아예 끝장을 내버리는 것도 괜찮다.

그러나.

“그럴 리가.”

무한이 피식 웃었다.

“오늘까지는 말로 해야지. 보름 안으로 계약을 정리하여 건네야 할 것이다.”

무한은 말을 마치곤 뒤도 안돌아보고 나가버렸다.

“건방진 놈!”

천종해가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곽삼양은 어찌된 거지?’

조용히 무한을 처치하라고 했는데 소식이 없다.

그때 바깥에서 하인이 고했다.

“도천부에서 장 총관이 왔습니다.”

“장 총관이 직접 왔단 말이냐?”

천종해가 벌떡 일어났다.

“어서 모셔라.”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마흔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사내가 들어왔다.

도천부 총관 장일양이다.

“어서 오시지요. 기별도 없이 갑작스레 뵈니 더욱 반갑습니다.”

“하하. 이소단주는 나날이 헌앙해지시는구려.”

겉치레 인사가 오가고 차가 나왔다.

장일양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천하상단에 맡긴 도천부 사업 일부를 떼서 다른 곳에 맡길까 하네.”

“예?”

천종해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검천부에 이어 도천부까지 사업권을 회수하다니.

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다.

“제가 뭘 잘못한 게 있습니까? 갑자기 사업을 회수하신다니 이유가 뭡니까?”

천종해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진정하시게. 도천부주께서 그러시더군. 자네가 그간 아주 잘해주어 감사하다고.”

“그런데 왜 거래를 끊는다는 말입니까?”

“부주께서 그러고 싶겠는가? 다만 자네가 도천부와 검천부 사업을 총괄하지 않는가? 부주께서는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으신 걸세.”

“오해라니요?”

장일양이 짐짓 정색을 하며 말했다.

“자네가 맡은 뒤 도천부의 사업이 날로 확장하고 있는데 검천부의 사업은 오히려 줄어들었지. 그걸 두고 말이 많네.”

천종해가 속으로 욕을 했다.

‘사실이잖아. 그동안 검천부의 사업을 도천부로 넘겨주었건만 이렇게 배신을 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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