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존무한-42화 (42/250)

42화

하기주가 흠칫, 하며 무한과 시선을 마주치면서 대답했다.

“오조입니다.”

“으음. 하 조장이 조원들과 함께 승룡대가 주둔한 곳으로 가서 호송대상을 은밀히 데리고 오게.”

“거기는 마천과의 공유지 아닙니까?”

“그러니까 적은 인원으로 은밀히 움직여야지.”

우문조가 나섰다.

“차라리 조장들로 몇 사람 뽑아 보내겠습니다.”

“아니. 그게 더 위험할 것이야. 천무행을 다니는 것처럼 위장하여 몰래 빼오는 게 작전의 핵심이다. 나머지 조도 천무행으로 위장하여 사방으로 흩어져 이목을 흐려야 할 것이다.”

누군가 말했다.

“승룡대가 호송하는 게 차라리 낫지 않습니까?”

“승룡대는 미끼가 될 것이다. 호송 대상을 인계하고 곧바로 퇴각하여 적을 유인할 것이다.”

“역시!”

조장 하나가 무릎을 쳤다.

유곡선이 바라보자 조장이 간사스런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절묘한 계책이라 저도 모르게 감탄하고 말았습니다. 일종의 금선탈각지계로군요.”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유곡선이 누군가 맞장구쳐주자 흡족한 얼굴로 좌중을 돌아봤다. 그러면서 큰 비밀을 알려준다는 듯 말했다.

“호송 대상과 함께 감숙을 빠져 나갈 때 현무대가 뒤에서 호위할 것이다. 혹시라도 마천이 쫓아온다 해도 염려할 것 없다는 뜻이지.”

“아!”

“승룡대에 이어 현무대까지?”

현무대는 본방의 정예 무력대다.

모인 사람들은 현무대가 암중에서 호위한다니 긴장이 풀렸다.

“이 작전의 핵심은 호송대 역할을 하는 천무관 문하생들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행동하느냐에 달렸다. 사실 그래서 마천이 추격할지도 모른다는 사실도 알리지 않은 것이지.”

유곡선은 강변을 늘어놓았다.

“자세한 작전 내용은 여기 모인 자들만 숙지하고, 그 외 내용은 일체 입에 담지 말아야 할 것이야.”

유곡선이 말을 마치자 우문조가 좌중을 돌아보며 말했다.

“장로 말씀 잘 들었나? 질문 있는 사람.”

무한이 가만 손을 들었다.

“뭔가?”

“상황이 바뀌었으면 작전도 변경해야 하지 않을까요?”

좌중에 침묵이 흘렀다. 사람들의 표정에 복잡해졌다.

무한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갔다.

“장로께서 방금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이 작전의 핵심이 문하생들이 자연스럽게 그 인물을 호위하는 데 있다고요. 그런데 이미 여기 있는 모두가 알아버렸잖습니까.”

“으음. 누군가 했더니 검천부주셨군? 그래서 여기 있는 이들만 알고 있으라고 하지 않았나.”

유곡선이 마치 이제 무한을 알아봤다는 듯이 말했다.

“자네도 이 작전에 대해 불만인가?”

“불만이 아니라 작전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드리는 겁니다.”

유곡선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자네는 지금 검천부주가 아니라 천무행을 나온 문하생일 뿐이네. 문하생 주제에 본방 군사부의 작전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하다니 주제를 한참 넘었다고 생각지 않나?”

“천무행은 문하생들의 능력을 평가하는 과정입니다. 임무에 대해 언제든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권리가 있지요.”

무한이 우문조를 향해 물었다.

“행수, 그렇지 않습니까?”

“그건 심 부조장 말이 맞습니다.”

정말 천무행에 그런 규정이 있다.

무한은 떠나기 전에 천무행에 관한 걸 모두 숙지하고 있었기에 이를 알고 있었다.

우문조가 확인해주자 유곡선도 물러섰다.

“좋다, 자네 의견을 들어보지.”

무한이 좌중을 돌아보며 말했다.

“과연 마천이 이리 허술한 작전에 넘어갈까요?”

무한이 본방 오장로가 가져온 작전을 대놓고 허술하다고 하니 모두의 안색이 미묘하게 변했다.

유곡선의 얼굴이 다시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래서? 두렵다는 건가? 천하제일인의 후손이 죽음을 두려워할 줄은 몰랐군.”

“죽음이야 모두가 두려워하는 것 아닙니까? 설마 유 장로께서는 죽음이 두렵지 않단 말씀이신지요?”

“하!”

유곡선이 어이없다는 듯 탄식을 하였다.

“대놓고 죽음이 두렵다는 무인은 이제까지 본 적이 없는데 오늘 여기서 보는구나.”

“그렇군요. 아직 제가 많이 모자란 모양입니다.”

“천하방이 오늘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무인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명을 지켰던 덕분이다. 이를 거역한다면 천하방도의 자격이 없다.”

유곡선이 싸늘한 목소리로 소리쳤으나 무한은 대꾸하지 않고 모두를 보며 말했다.

“고 대주께서 누구를 호위하는 지 알려달라고 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가 있다고?”

“호위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마천의 추격 규모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만일 마천에서 그다지 중요시 여기지 않는다면 일개 조만 보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아주 중요시 하는 자라면 무력대를 두셋 이상 보낼 수도 있지요. 거기에 절정고수가 따라붙을 수도 있고요.”

“그렇군.”

“일리가 있는데?”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무한이 유곡선을 바라보았다.

“물론 호송 대상이 극비라서 일러주지 못하시겠지요?”

유곡선은 입을 떡 벌렸다.

고벽후는 그렇다 쳐도 이 새파란 애송이가 대놓고 비아냥거리니.

유곡선이 탁자를 탁,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작전은 천하방 군사부에서 나온 것이다. 호송 대상에 대한 검토를 거쳐 나온 작전이라는 말이다. 애송이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무한이 냉랭한 어조로 분명하게 말했다.

“정식 명령서를 보고 싶습니다.”

“뭐라?”

“천하방의 작전은 명령서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애초에 천무행을 감숙으로 보낸 것이 작전의 일환이라면, 이에 대한 명령서가 있을 게 아닙니까?”

유곡선이 움찔했다.

“이 작전은 극비로 추진되는 것이라 가져오지 않았다. 내가 왜 이런 대답까지 해야 하는지 몹시 불쾌하군.”

“명령서가 존재하긴 합니까?”

유곡선이 무한을 노려보았다.

“그래서 천하령을 가져온 게 아니냐? 천하령이 내린 명은 천하방도라면 누구나 따라야 한다.”

무한은 유곡선이 당황하고 있음을 알아챘다. .

‘정식명령서가 없구나.’

무한이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명령서가 없다는 건 이 작전에 대한 책임선이 불분명하다는 뜻 이죠. 실패해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작전이군요.”

“천하령을 다시 한 번 꺼내야겠느냐?”

유곡선이 천하령을 빌미로 찍어 누르자 우문조가 끼어들었다.

“심무한. 장로께 무례를 범하지 마라.”

문하생이 임무에 대해 물을 권리가 있긴 하지만, 본방 장로와 논박을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 이상의 논박은 불협화음만 야기한다는 판단에 행수 우문조가 나서자 무한은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천무행 전권은 우문조에게 있었으니까.

고벽후가 직위 해제되자 멸마대원들이 격분했다.

마흔 명의 멸마대원들은 자기들도 해직시켜달라며 모두 병기를 놓았다.

부대주 연추산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다 잡아 가라 그래. 그간 목숨을 걸고 여기를 지킨 게 누군데 이제 와서 내쫓아? 나도 더러워서 그만 둔다.”

집단항명이었다.

유곡선은 당황했으나 어찌 됐든 천하방 장로에 오른 인물이다. 일개 무력대의 반발에 물러날 위인이 아니었다.

천하령을 흔들며 길길이 날뛰었다.

“모두 항명으로 직위 해제하고 집법당에 회부할 것이다. 인신 구속까지는 않을 테니 지부에서 대기하라!”

본방 장로와 멸마대가 대치하니 감숙지부의 분위기는 흉흉했다.

천무관 문하생 대다수는 유곡선 장로를 지지했다.

“천하방의 규율을 무시하다니. 멸마대는 천하방도가 아니란 말인가?”

애초에 멸마대가 마적떼처럼 아무렇게나 입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에 눈살을 찌푸리던 문하생들이었다.

그러잖아도 비호감이었는데 작전을 앞두고 항명 사태까지 벌어지자 비난을 하였다.

“너무 오랫동안 변방에서 지내다보니 천하방이 어떤 곳인지 정체성을 잃어버린 거야.”

“유 장로께서 이제라도 천하방의 규율을 세웠으니 다행이지.”

한편으로는 불안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조장과 부조장들에게 단단히 일러두었지만 마천도를 호위한다는 소문이 퍼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마천이 쳐들어오면 어쩌지?”

“그러진 않을 거야. 그렇다면 전면전이야. 제아무리 마천이라도 감히 천하방과 전쟁을 벌일 수는 없지.”

“정말 전면전이 벌어지면 어쩌지?”

“걱정 마라. 그전에 우리는 다 죽고 없을 걸?”

“너는 그걸 농담이라고 하는 거냐?”

문하생들은 극도로 예민해졌다.

우문조가 재차 문하생들을 소집하였다.

“천무행 조를 재편한다.”

“예?”

“지휘부를 구성해야 하니 일개 조만큼 인원을 차출할 것이다.”

우문조는 일조장 안희평을 지휘조장으로 임명하고 모우극을 비롯한두 명을 배정했다.

지휘조의 임무는 유곡선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일조가 사라지며 형소가 무한의 조에 들어왔다.

“어서 와.”

무한이 형소를 반겼다.

귀왕갑을 입은 형소는 같은 조에서 은근 놀림을 받다 무한의 조로 넘어오니 기분이 좋았다.

강소소는 같은 문향전 상방이라 익숙했고 백상인은 성격이 원만했다.

“나 알지? 백상인이다.”

“그, 그럼 알지.”

“잘해보자.”

형소가 강소소를 흘깃거리며 말했다.

“너희 조는 무슨 임무를 맡았어?”

“이제는 우리 조라고 해야지.”

“아, 그렇구나.”

“하 조장이 설명해줄 거야.”

이번 천무행에서 가장 위험한 임무를 맡은 셈이다. 사실대로 말하면 겁이 많은 형소가 어찌 나올지 몰랐다.

형소가 만족스러워 하는데 미리 찬물을 끼얹을 필요는 없었다.

정문 쪽에서 누군가 외쳤다.

“누군가 오고 있다!”

멸마대를 대신하여 성벽 외곽에서 경계하던 천무관 문하생이 앞을 가리켰다.

전령 한 사람이 깃발을 들고 달려왔다.

“현무대다!”

누군가 다가오는 알아보고 소리쳤다.

“오! 정말 현무대가 왔구나! 이제 염려할 거 없어.”

현무대 전령을 본 문하생들이 환호했다.

현무대는 천하방 최고 전력 중 하나다.

마천과 교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해하던 문하생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기충천하였다.

“현무대가 있다면 마천 따위는 겁날 게 없지.”

현무대의 전령이 당도함과 동시에 공유지역에 나가 있는 승룡대로부터 전령이 왔다.

전령들이 왔다 가자 유곡선이 다시 조장과 부조장을 불러 작전회의를 소집했다.

“승룡대로부터 접선지역을 확보했다고 연락이 왔다. 현무대는 지부 인근에 잠복중이니 준비는 끝났다. 작전을 개시한다.”

유곡선은 천무관 문하생들이 마천의 전향자를 호위하여 가는 당초의 계획을 고수했다.

그러자 천무행 행수 우문조가 건의했다.

“문하생들은 아직 경험이 부족합니다. 마천의 전향자를 호위한다는 게 알려진 이상 현무대와 함께 행동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유곡선이 정색을 하였다.

“열여덟이면 한 사람의 무인으로 홀로 서야 하오. 천무행 자체가 무인으로서의 자질을 확인하기 위함이 아니오?”

“하지만…….”

“현무대는 공식적으로 여기에 존재하면 안 된다는 것 알지 않소? 고원의 맹약이 깨지면 마천은 옳다구나 하고 밀고 들어올 것이오.”

유곡선이 이제 와서 고원의 맹약을 들먹였다.

승룡대와 현무대가 와 있는 것 자체가 맹약을 깬 행위임에도 들키지 않으면 된다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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