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흙집에 고벽후와 연추산, 오상, 홍염이 모여 있었다.
연추산의 눈빛이 흉흉하다.
“우리더러 마두 새끼를 호위하라는 게 말이 됩니까?”
고벽후가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마두 새끼도 전향하면 더 이상 마두 새끼가 아니지. 으음. 그럼 개과천선한 마두 새끼가 되는 건가?”
연추산이 발끈했다.
“형님! 지금 농담이 나옵니까? 마두가 개과천선을 한다고요? 차라리 지나던 개가 성불했다는 말을 믿겠소.”
“부대주 말이 맞아요. 한 번 마두는 영원한 마두라고요.”
홍염이 끼어들었다.
고벽후가 피식, 웃었다.
“홍염아. 마두도 알고 보면 사람이다.”
“사람이 변한다고요? 차라리 개가 똥을 안 먹겠다고 맹세하는 걸 믿지. 신랑, 안 그래?”
홍염이 묻자 장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장초가 맞장구쳤다.
“이건 단순히 멸마대 문제만이 아닙니다. 천무관 애들을 이런 작전에 내몰 수 없다고요.”
“그럼 집단항명이라도 하자는 거냐?”
외눈박이 오상이 끼어들었다.
“대형 입장도 생각해야지. 무턱대고 거부할 수는 없잖아?”
연추산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유곡선 그놈하고 승룡대가 왔어. 본방 새끼들이 수작을 부리는 게 분명해. 자칫하면 전쟁이라고!”
장초가 코를 후비며 말했다.
“난 죽는 건 겁 안 나. 추산 형은 겁나?”
“이 새끼가? 누가 겁난대? 남의 장단에 춤추기 싫다는 거지. 넌 왜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는 건데?”
“조용! 조용 좀 해봐! 생각 좀 하자고!”
오상이 모두를 진정시켰다.
“오! 생각! 그래 생각 좀 해봤어?”
연추산이 묻자 오상이 하나 남은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대주가 결정 내리겠지. 그럼 따르면 되는 거야.”
“이 자식이? 기껏 한다는 소리가?”
연추산이 눈을 부릅뜨자 오상이 슬그머니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연추산이 말했다.
“결정적으로! 유곡선, 그놈의 말은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돼. 예전 짝이 날 수도 있어.”
연추산의 말에 장초가 물었다.
“예전이라니? 유 장로와 무슨 일이 있었소?”
“너는 나중에 와서 모르겠구나. 저놈 때문에 하마터면 멸마대가 전멸할 뻔했다고.”
“예?”
“저놈이 감숙지부장으로 오자마자 깝죽대다가 마천에 포위되었거든. 그때 멸마대는 막 전투를 치르고 돌아와 부상자도 많았는데 당시 심 대주가 죽기를 각오하고 돌진하여 구해냈다고.”
“그냥 죽게 놔뒀어야 했는데.”
오상이 추임새를 넣었다.
“맞아!”
연추산이 오상을 보며 말했다.
“오상, 네 눈도 그때 다쳤잖아.”
“뭐? 근데 그놈을 가만뒀어?”
장초의 말에 오상이 피식, 웃었다.
오상은 겉보기에는 무척 냉혹한데 실제로는 심성이 무른 편이다.
“내 눈이야 내가 실력이 부족해 다친 거니 할 말 없지. 하지만 추산 형 말이 맞아. 믿을 수 없는 인간이야.”
오상이 이를 갈며 말했다.
“멸마대가 죽음을 무릅쓰고 구해줬더니 자기 공적으로 포장하여 보고했지. 그 덕에 바로 본방으로 갔지. 그게 외려 우리에게는 다행이었지만.”
“엥?”
“저놈이 계속 있었으면 멸마대는 물론이고 감숙지부를 다 말아먹었을 거야.”
연추산이 퉤, 하고 침을 뱉고는 말하는데 홍염이 인상을 썼다.
“그런 자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따르면…… 목숨이 열 개라도 모자랄 거야.”
“더러운 놈이었군. 카악.”
방내 정치라면 이를 가는 장초가 연추산을 따라 가래침을 뱉었다.
“더럽게! 누나가 그러지 말라 그랬지! 추산 오라버니. 제발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세요. 쟤가 갈수록 지저분해지잖아요.”
홍염이 연추산과 장초를 싸잡아 핀잔주었다.
장초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부인, 말씀을 자중하시오. 여러 형님들 앞에서 무슨 망발이오.”
“그래, 자중하고 싶다. 이 인간아!”
홍염이 몸을 날리고.
와당탕.
의자가 넘어갔다.
고벽후가 눈을 뜨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좀 조용해봐!”
삽시간에 소란이 가라앉았다.
고벽후가 연추산에게 물었다.
“혈랑은 요즘 어디서 뭐하나?”
“그 미친놈 소식은 왜 묻는 거요?”
“찾아봐.”
“예?”
“못 들었어? 혈랑 그놈 소재지를 알아보라고. 뭘 하고 있는지 말야.”
“으음. 알았소.”
연추산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고벽후가 술을 들이켜곤 말했다.
“여기서 모여서 궁리해봐야 아무 소용없다. 작전 계획이 나오면 그때 가서 다시 상의하자.”
고벽후가 회의를 마쳤다.
***
하기주가 자신의 거처로 무한을 불렀다.
어두컴컴한 흙집에 작은 초 한 자루만 타오르고 있었다.
“마천의 땅에서 누군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
하기주가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우리는 그를 호위하여 본방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사람이 누굽니까?”
“마천 사람이 아닐까 싶다.”
무한은 서서히 드러나는 윤곽에 섬찟한 느낌이 들었다.
“쉽지 않은 임무가 될 것이다. 조만간 작전 지시가 나오면 자세한 상황을 알 수 있겠지. 지금은 너만 알고 있거라.”
“알겠습니다.”
하기주가 침중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나는…… 이 작전이 너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
“천하방 누군가가 너를 사지로 보냈다는 말이다.”
무한이 미간을 찌푸렸다.
“저 하나 죽이자고 천무관 문하생을 위험에 빠뜨린다고요?”
“너 하나 죽을지 모두 죽을지 그걸 누가 알겠냐? 하지만 이제까지 이런 천무행은 없었다.”
하기주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열여덟. 네가 천무관을 출관하면 검천부를 장악할 수 있다.”
“지금도 검천부주입니다.”
“성인이 되면 후견인의 그늘에서 벗어나 검천부 재정을 돌려받는다. 또한 공식적으로 맹의 요직에 오를 수도 있지. 진정한 검천부주가 된다는 말이다.”
“…….”
의외였다.
무한이 하기주를 주시했다.
할아버지의 죽음이나 아버지의 실종과 관련하여 하기주에게 말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하기주는 나름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듯했다.
“누군가가 네가 검천부를 장악하기를 원치 않는다면…… 이번 작전은 남의 칼을 빌려 너를 죽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지.”
하기주가 탄식을 하였다.
“내가 알아낸 건 여기까지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무한이 담담한 눈빛으로 말했다.
다음 날 오후가 되자 천무행을 나갔던 문하생들이 속속 귀환했다.
저녁이 되자 우문조가 조장과 부조장을 소집했다.
널따란 내성 대전에 모두 모이자 유곡선이 거드름을 피우며 들어와 상석에 앉았다.
이윽고 턱 끝을 쳐들고는 천무행 조장과 부조장 면면을 둘러보고 말했다.
“내가 누군지는 모두 알 것이다. 이번 천무행의 임무를 부여하겠다.”
모두 긴장했다.
오장로가 직접 감숙까지 와서 임무를 전하다니 의외였다.
“너희들이 맡을 임무는 한 사람을 본방까지 호송하는 것이다. 아주 특별한 사람이니 그가 누군지 알려고 하지 마라.”
“……?”
“그를 데리고 본방까지만 가면 된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너무 긴장할 건 없다.”
유곡선은 정말 어려울 게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이번 임무는 군사부에서 특급으로 분류한 작전이다. 완수하면 모두에게 공이 돌아갈 것이다.”
그때, 누군가 들어오며 말했다.
“죽을지도 모르는 작전에 내보내면서 사실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다니. 이런 식으로 사람을 부릴 것이오?”
갑자기 들이닥친 이는 고벽후였다.
유곡선이 인상을 썼다.
“멸마대주, 지금 이건 천무행 임무를 전하는 자리다. 외인이 끼어들 자리가 아니라고!”
“흥! 외인? 고원에서 일어나는 일은 멸마대 소관이오. 내 영역에 와서 허튼 짓을 하는데 보고만 있으란 말인가?”
“뭐라? 네가 지금 본방 장로를 능멸하는 것이냐?”
유곡선의 두툼한 볼살이 부들부들 떨렸다.
고벽후의 눈이 유곡선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도대체 머리는 왜 달고 다니는 건지 모르겠군. 당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고나 있는 건가?”
분위기가 대번 험악해졌다.
“호위할 놈이 마천도이고, 쫓는 놈들도 마천이라며? 게다가 고원의 맹약까지 깼지. 마천이 어찌 나올지 생각은 해봤나?”
고벽후의 말에 모인 자들의 안색이 바뀌었다.
마천(魔天).
지난날 마천과의 대전에서 수많은 중원 무림인들이 죽었다.
마천은 정사를 가리지 않고 모두를 적으로 삼았다.
검신과 천하방이 나서지 않았다면 중원 무림은 마천이 차지했을 것이다.
모두 유곡선을 쳐다봤다.
사실인지 확인하고자 하는 시선이 집중되자 유곡선이 벌컥, 화를 냈다.
“분명히 극비 임무라고 했다! 멸마대주는 무슨 의도로 혼란을 일으키는 거냐? 작전을 망칠 셈이냐!”
유곡선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소리소리 질렀다.
“일개 대주 주제에 본방 장로에게 대들다니! 하극상이라도 벌일 참이냐?”
“하하하. 하극상? 감숙지부장은 나다. 지부를 움직일 전권은 내게 있단 말이지. 당신이 본방 장로라서 이만큼 대우해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고벽후가 으름장을 놨다.
“내가 있는 한 그 누구도 여기서 허튼 짓을 할 수 없다.”
“더는 묵과할 수가 없구나!”
유곡선이 품에서 영패를 꺼냈다.
“감숙지부장이자 멸마대주 고벽후의 직위를 해제하고 권한을 해제한다. 고벽후는 본방으로 돌아가 대기하라.”
“천하령!”
영패를 알아본 누군가 중얼거렸다.
유곡선이 천하령까지 꺼내들자 침묵이 흘렀다.
천하령은 이 자리에 방주가 와 있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고벽후가 발끈하려는데 우문조가 나섰다.
“고 대주! 천무관 문하생들이 있는 자리네!”
그 말에 고벽후가 잠시 그들을 보았다.
모두 어찌할지 지켜보자 고벽후는 잠시 유곡선을 노려보고는 휙, 몸을 돌려 대전을 나갔다.
“저, 저자가? 당장 잡아라!”
천하령이 내렸는데 고벽후가 아무런 대꾸도 없이 나가버리자 유곡선이 생난리를 쳤다.
“유 장로, 고정하시오.”
우문조가 나서서 상황을 수습했다.
대청 상석에 앉아 있는 유곡선은 연신 의자 팔걸이를 주먹으로 내리치며 치를 떨었다.
천무관 문하생들 앞에서 모욕을 당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저놈이 대체 뭘 믿고 저러는 거냐? 감히 천하령을 무시하다니. 본때를 보여줄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었다. 유곡선이 헛기침을 몇 번 하고 목청을 가다듬고는 말했다.
“멸마대주가 변방에 오래 있다 보니 천하방의 규율을 망각했다. 본방으로 압송하여 엄중히 처벌할 것이다.”
유곡선이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이번 임무는 말했다시피 한 사람을 본방까지 호송하는 것이다.”
“그자가 누굽니까?”
누군가 묻자 유곡선이 인상을 썼다.
“알려고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모인 사람들은 사실 그가 누군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고벽후가 마천이 쫓고 있는 인물이라고 밝혔으니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아는 것이다.
“마천 추격대 규모는 얼마나 됩니까?”
하기주가 물었다.
유곡선이 미간이 더욱 깊게 패였다.
“마천이 두려운가?”
“대비를 해야 할 게 아닙니까.”
“추격대에 대한 대비는 이미 해뒀다. 너희들은 그저 그자를 데리고 감숙을 빠져나가면 된다.”
대비책이 있다는 말에 모인 사람들의 안색이 조금 풀렸다.
“작전은 복잡하지 않다. 승룡대가 호송 대상과 접선하러 갔다.”
유곡선이 하기주에게 물었다.
“하 조장이 몇 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