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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무한-20화 (20/250)

20화

풍운벽력수는 형형한 눈빛을 발하며 무한의 전신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순간 무한은 서북풍, 살을 에는 바람이 전신을 스쳐가는 느낌이 들었다.

“자세한 건 알 필요 없고…… 이리 와서 앉아라.”

풍운벽력수는 다짜고짜 무한을 데리고 연무장 옆 정자로 가서 앉혔다.

“내가 가르칠 것은 풍운의 조화에 대해서다. 내 별호가 풍운벽력수라는 건 알고 있지?”

“방금 그리 말씀하셨죠.”

무한이 속으로 웃었다.

방금 자신이 말해놓고 묻다니.

“그랬나?”

풍운벽력수가 산발한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벽력은 천지자연에서 가장 강한 기운이지. 한번 내리치면 모든 걸 새까맣게 태워버린다. 사실은 삿된 기운을 정화시키는 거지. 그 벽력의 기운은 바람과 구름의 조화에서 비롯된다.”

“제가 벽력수를 익혀야 하는 건가요?”

“아니.”

풍운벽력수가 고개를 저었다.

“너는 벽력수를 익힐 체질이 아니야.”

“그러면요?”

“내가 가르쳐줄 건 그저 바람과 구름이 어떻게 조화를 이뤄내는가 하는 것이야. 풍운조화공이라고 하지.”

풍운벽력수가 갑자기 손을 뻗어 옆에 나무를 쳤다.

퍼억!

두툼한 손바닥이 나무를 치자 번쩍, 뇌전이 터진 듯했다.

“오!”

나무에 새까만 장인이 남았다.

무한은 정말 놀랐다.

작은 벼락?

그런 느낌이다.

사람이 맞았으면 어찌 됐을까?

‘내공이라는 게 정말 신묘하구나.’

“괜찮지?”

“대단해요!”

진심을 담아 감탄하자 풍운벽력수가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이 일장을 제대로 막을 놈이 없지. 맞으면 내장이 통구이가 되거든. 사람들은 뇌전의 기운에 놀라지만…….”

풍운벽력수가 목소리를 낮추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치 누가 들으면 안 된다는 듯 속삭였다.

“실은 뇌전의 기운도 결국은 바람과 구름의 조화가 빚어낸 것일 뿐이야.”

그리 대단한 비밀도 아니건만 풍운벽력수는 비전을 털어놓는다는 듯 속삭였다.

“아! 그런 거구나.”

무한이 진심으로 감탄성을 터뜨렸다.

뇌기라니.

엄청난 장법이다.

풍운벽력수가 의기양양하여 말했다.

“이건 아무 것도 아니다. 풍운조화공을 극성으로 익히면 산 하나 날려버리는 건 일도 아니지. 크하하!”

풍운벽력수가 크게 웃다가 갑자기 뚝, 그치더니 정색을 하고 말했다.

“풍운조화공은 바람을 느끼고 구름이 오고 가는 걸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풍운벽력수가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저거 보이지? 저게 뭐지?”

풍운벽력수가 하늘을 가리켰다.

“구름이잖아요.”

“그렇지? 오늘부터 저걸 지켜보는 거다.”

“네?”

“자고로 사물의 이치를 알려면 관찰을 해야 하는 거야. 바람을 느끼고 구름을 알려면 일단 지켜봐야지.”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뭔가를 알려면 먼저 지켜봐야 한다.

“근데 구름을 보기만 하면 되는 건가요?”

“응? 일단 봐라.”

풍운벽력수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말했다.

“그런데 내가 묵을 거처는 어디냐?”

“거처요?”

“네가 하루 이틀 사이에 풍운조화공을 깨칠 건 아니잖아? 그럼 나도 묵을 곳이 있어야지.”

“염려 마세요. 검천부는 빈 전각이 엄청 많답니다.”

무한은 유아를 찾아 풍운벽력수가 묵을 거처를 마련해주었다.

풍운벽력수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나는 하루에 화주를 두 말 마셔야 한단다.”

풍운벽력수의 말에 유아가 인상을 썼다.

“화주 두 말? 그게 말이 돼요?”

유아의 험악한 표정을 본 풍운벽력수가 슬쩍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한 말도 괜찮아.”

***

무한은 풍운벽력수의 말을 착실히 따랐다.

아침에 심의삼재검 수련으로 몸을 푼 뒤 경천십이식을 익히고, 온종일 하늘의 구름을 쳐다봤다.

밤에는 지하 연공실에서 경천승운공을 읽었다. 여전히 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읽고 또 읽다 보면 어느 순간 통하는 때가 올 것이다.

일상이 그렇게 흘러갔다.

구름을 보는 일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풍운벽력수가 보여준 장법에 대한 인상이 강렬해서 참을 수가 있었다.

몇 날 며칠을 구름만 쳐다보았다.

‘끊임없이 변하는구나. 예전에는 왜 몰랐지?’

늘 있는 구름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온종일 보다보니 정말 쉼 없이 변화했다.

날마다 색과 형태가 달랐다. 심지어 느낌도 제각각이었다.

점차 구름의 변화에 빠져들었다.

“고놈, 착실하군.”

풍운벽력수는 가끔 찾아와 구름을 관찰하는 무한을 보고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다 갔다.

‘지겨운 거 참는 건 일도 아니지.’

삼 년을 무릎 꿇고 사당을 지켰던 무한이다.

구름을 본 지 보름 정도 지나자 풍운벽력수가 물었다.

“느낀 게 있냐?”

“전에는 몰랐는데 구름은 정말 다양하네요. 천변만화한다는 말이 딱 맞아요.”

“그렇지? 더 봐라.”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삼 년 동안 심의삼재검만 익힌 추억이 떠오르는 건 왜 그런 거지?

다시 며칠이 지났다.

풍운벽력수가 와서 물었다.

“또 느낀 건 없냐?”

“구름에도 감정이 있는 거 같아요.”

“감정? 너는 참 희한하구나. 감정이라니.”

“잘못된 건가요?”

“아니.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 사람마다 얻는 심득이 다양하니까. 하지만 그 모든 건 결국 하나로 귀결된단다. 그게 풍운조화공의 마력이지.”

풍운벽력수는 자신의 무공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아무튼, 더 봐라.”

풍운벽력수는 이번에도 같은 말을 남기고 가버렸다.

구름이 없는 날도 있었다.

또 어느 날은 온종일 두터운 구름이 깔려 있기도 했다.

‘구름은 어떻게 생기는 걸까? 구름을 밀고 가는 바람은 어디서 오는 걸까? 구름은 실체가 있는 것일까?’

구름을 지켜보다 어느 순간 경천승운공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무릇 기란 본디 하나에서 나왔는데 그 형태는 그때마다 다르니 이를 체(體)와 용(用)이라 한다.」

문득 깨달았다.

‘구름은 본질에서 비롯된 하나의 형상인 거야. 그렇다면 바람도 마찬가지지. 아니 세상 모든 게 본질에서 비롯된 그때그때의 형상일 거야.’

그런 생각을 하니 구름이 손에 잡힐 듯했다. 마치 구름 속에 있는 듯했다.

‘본질은 무얼까?’

구름을 보면서 경천승운공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석 달이 지났을 때 문득 바람이 옆에 있음을 느꼈다.

천지간에 바람이 가득했다.

‘그런 거야. 본질을 보면 본질이 보이고, 형상을 보면 형상이 보이는 것일 뿐!’

허공에 손가락을 뻗어 휘젓자 손끝에 바람이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휘잉.

그때 뒤에서 풍운벽력수가 놀란 듯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호? 벌써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것이냐?”

“바람을 느끼다니요?”

바람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나?

“느끼면 다룰 수 있는 거지. 나는 참 대단한 사람이야. 그 어려운 풍운조화공을 이리 쉽게 전하다니.”

풍운벽력수는 매우 뿌듯해하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교만하지 말라고. 풍운의 조화는 끝이 없어서 나도 여전히 연구하는 중이거든. 바람의 기운을 느낄 수 있으니 구름 역시 느낄 수 있겠지?”

무한은 구름을 올려다보고 손을 뻗었다.

구름이 만져지는 듯했다.

“무척 차가운 느낌이네요?”

“흐음. 정말 빠른데?”

풍운벽력수가 놀란 듯했다.

“으흠. 그럼 이제 구결을 전할 때가 된 것 같구나.”

풍운벽력수가 바로 구결을 빠르게 읊었다.

“어때? 외웠느냐?”

어이가 없었다.

“엉? 보기보다 똑똑한 건 아니구나. 다시 한 번 불러주마.”

풍운벽력수가 다시 풍운조화공의 구결을 불러주었다.

이번에는 정신 바짝 차리고 들었다.

이해는 나중에 하면 된다.

“한 번 만 더 불러주세요.”

“세 번씩이나? 이건 반칙인데.”

“오늘은 화주 두 말 드릴게요.”

그 말에 풍운벽력수가 흐뭇해하며 다시 불러주었다.

그렇게 해서 풍운조화공의 구결을 익혔다.

풍운조화공은 내공심법이 아니었다. 경천심결처럼 풍운벽력수의 깨달음 비슷했다.

“바람과 구름을 보며 구결의 의미를 이해해봐라. 어째서 바람이 불고, 구름은 어디서 비롯되는 건지 깨닫는 게 요체다.”

풍운벽력수가 입맛을 다시며 돌아갔다.

화주 두 말을 마실 생각에 기분이 좋은 듯했다.

며칠 후 풍운조화공의 구결에 담긴 이치를 깨달을 수 있었다.

먼저 몸으로 체득하고 구결로 이치를 깨달으니 훨씬 쉽게 익힐 수 있었다.

“오! 너 대단하구나.”

풍운벽력수는 진심으로 감탄하더니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눈빛을 반짝였다.

“이것도 배워볼래? 원래는 풍운조화공만 가르쳐 주기로 했는데 네가 열심히 하니 뇌전의 기운을 일으키는 법도 가르쳐주마.”

“감사합니다.”

사양할 이유가 없지.

풍운벽력수는 성격이 급했다. 바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구름이 부딪히면 기운이 충돌하며 뇌전이 인다.”

무한이 두 손을 내밀어 구름을 부딪치려 했다.

“크하하하.”

풍운벽력수가 크게 웃었다.

“저 하늘의 구름을 네가 어찌 충돌시킨다는 말이냐? 내 말은 구름의 기운을 만든 다음 이를 부딪쳐 뇌전을 생성하라는 뜻이다.”

“아. 그런 거였군요.”

“구름의 기운을 생성하려면 십 년 이상 축기를 해야 한다.”

“십 년이요?”

무한이 놀라자 풍운벽력수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 다음이 더 중요하지. 구름의 기운을 뇌전으로 바꾸려면 뭐가 필요하지?”

무한이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바람이요.”

풍운벽력수가 잘 맞췄다는 듯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때 보면 제법 똑똑해 보이고…….”

풍운벽력수의 주위로 바람의 기운이 휩쓸었다. 그러자 전신에서 뇌전이 번뜩이는 듯했다.

“바람과 구름의 기운을 동시에 쓸 수 있어야 한다.”

풍운벽력수가 바람과 구름의 기운을 다루는 법을 알려주고 돌아갔다.

“이거 정말 재밌는데?”

아직 단전에 내공을 쌓은 것도 아닌데 기의 운용부터 배운 셈이다.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무한은 밤낮으로 풍운조화공을 연성하는데 몰두했다. 밤마다 경천승운공을 익히러 가는 것도 미뤘다.

풍운조화공을 익히는 게 경천승운공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석 달 정도 지나자 미약하나마 뇌전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퍼퍼퍽!

무한의 전신에서 튀는 뇌전의 기운을 보고 풍운벽력수는 말을 잃었다.

미약한 기운이기는 하지만 분명 뇌전의 기운이었다.

“이건 좀 심한데? 너 이전에 무슨 내공을 익혔냐?”

“아직 익힌 바가 없는데요. 이제 경천승운공에 입문하는 중이에요.”

“그럴 리가. 바람과 구름의 기운을 느끼는 것과 뇌전의 기운을 일으키는 건 차원이 다른 거라고.”

풍운벽력수는 연신 믿을 수 없다는 말을 하다 돌아갔다.

‘경천심결 덕분이다.’

무한은 곰곰 생각하다 결론을 내렸다.

경천심결로 전신에 쌓인 기가 풍운의 기운과 동화되며 뇌전의 기운을 쉽게 생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한 달이 지나자 뇌전의 기운이 제법 강해졌다.

“으으음. 너는 정말 이상한 놈이로구나.”

풍운벽력수가 침음을 흘렸다.

“뇌전을 일으킨다면 풍운조화공에 들어선 셈이지. 이제부터 내가 알아서 수련하면 된다.”

풍운벽력수가 자신의 할 바는 다했다는 투로 말했다.

“원래 네 할아버지는 풍운조화공을 전수해달라고 했거든? 그런데 뇌전의 기운까지 줬으니 여기서 좀 머물러야겠다.”

풍운벽력수가 큰 눈알을 뒤룩 뒤룩 굴렸다.

“머물고 싶으실 때까지 계세요.”

유아는 매일 화주 한 말을 내는 게 불만이었지만, 그걸로 이만한 고수를 모시는 건 싼값이다.

그렇게 풍운벽력수는 후원 전각 하나를 차지하고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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