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뜬금없는 물음이다.
자기가 시켜놓고 합당하냐니.
하기주가 말했다.
“눈치챘겠지만 이건 네 할아버지의 심결이 담긴 검이다. 말만 삼재검이지 검법도 아니다.”
“……!”
“내려치고, 후려치고, 비껴치는 단순한 동작만을 몇 년 동안 반복하라면… 너는 하겠냐?”
“했는데요.”
무한이 대답했다.
하기주의 입술이 비틀렸다.
“네게는 선택권이 없었지. 이것만 시켰으니까. 다른 검법을 배울 기회가 없었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겠지.”
“…….”
“검을 익힌 검수에게 이런 수련법을 하라고 하면 할 것 같으냐?”
무한이 고개를 저었다.
이미 검법을 익힌 검수라면 이런 수련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무한 자신도 경천무궤를 받을 때까지 다른 무공을 익힐 수가 없어서 이러고 있는 것뿐이다.
할아버지는 경천무궤를 받을 때까지 다른 무공을 익히지 말라고 당부했다.
특히 경천심결 외에 내공 수련은 하지 말라고 했다.
하기주가 탄식을 하더니 말했다.
“일러준 대로 수련해라.”
돌아서 가는 하기주의 뒷모습에서 허탈해하는 기색이 역력하게 느껴졌다.
‘왜 저러지?’
***
따따따다닥!
전진하며 일수오검을 펼치고 바로 물러나며 역삼재검 일수오검을 펼쳤다.
이제 검을 내려치고 긋고 찌르는 건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그만!”
어느 순간부터 하기주는 자주 찾아와 무한의 수련을 지켜보았다.
처음에 내팽개치듯 할 때와 사뭇 달라진 태도였다.
“다음 단계로 간다.”
하기주가 철인형 주위 사방을 가리켰다.
“동서남북! 사방에서 친다!”
다음 말에 무한의 입이 딱 벌어졌다.
“한 호흡에!”
한 호흡에 사방에서 일수오검을 펼치라는 이야기다.
‘그게 가능해?’
그런데.
“그게 기본이다.”
하기주가 무한의 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한마디 덧붙이고 사라졌다.
무한이 목검을 불끈 쥐었다.
“그래, 해보지 뭐.”
심의삼재검을 통해 경천심결을 체득하고 있으니 손해 볼 건 없었다.
내공심법을 따로 익히지 않았지만, 호흡이 깊어지며 몸이 가벼워지고 온종일 수련해도 지치지 않았다.
그래도 한 호흡에 일수오검을 네 방향에서 펼치는 건 무리였다.
형식적으로 휘두르면야 가능했지만, 전신 근육을 써가며 제대로 치면 세 번째 방위까지밖에 할 수 없었다.
숨을 참으면 가능하지만, 그건 호흡이 아니다.
우선은 보법이 엉켰다.
‘한 호흡에 동서남북 사방에서 일수오검을 펼치라고? 그게 가능한 거야?’
한숨을 내쉬는데 하기주가 다가왔다.
“심의삼재검은 동작이 간단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무궁무진하게 변화를 부릴 수 있다.”
실제로 그렇다.
대개의 검초가 일정한 형식이 있으니 변초 역시 일정한 한계가 있다. 그러나 심의삼재검은 형식이랄 게 없으니… 마음대로 휘두를 수가 있다.
검수가 들으면 코웃음 칠 것이다.
그게 검이냐고.
하기주는 진지하게 설명했다.
“천의 도를 행함에도 나아갈 때가 있고 물러설 때가 있으며 좌우로 움직일 때가 있다.”
무한은 하기주의 설명이 왠지 체득에서 나온 것 같다는 심증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하기주의 전신에서 풍기는 기운의 느낌도 달라졌다.
“그러기 위해서는 삼재보법을 자유자재로 펼칠 수 있어야 한다. 삼재보법의 묘리를 익혀야 사방 일수오검을 펼칠 수 있지.”
사방일수오검이면 스무 가지 동작을 한 호흡에 끝내야 한다.
“사방에서 전진하고 물러나며 일수오검을 쳐라. 물론 그게 끝이 아니다. 사방에서 팔방으로 이어지며 전진 후퇴까지 한 호흡에 이룰 수 있을 때까지 익혀야 한다.”
삼재검 하나로 검의 끝을 보라는 말이다.
“팔방이 아니라 십육방위에서도 할 수 있죠. 한 호흡만 아니라면.”
무한이 참다못해 한마디 했다.
하기주가 무한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한 호흡을 뭐라고 생각하느냐.”
“예?”
“아무래도 네가 오해를 하는 것 같구나. 내가 말한 한 호흡이란 끊이지 않는 호흡을 말하는 거다.”
“……!”
“면면부절(綿綿不絶)! 혹시 들숨 한 번 날숨 한 번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하마터면 욕을 내뱉을 뻔했다.
면면부절.
그건 이미 오래전부터 해왔던 것이다.
경천심결의 핵심이 면면부절이 아닌가.
하기주가 돌아서다 말고 덧붙였다.
“참. 기왕 십육방 말이 나왔으니 거기까지 해봐!”
석 달이 흘렀다.
무한은 경천심결을 운용하며 일수오검을 사방에서 팔방, 이어 십육방까지 이어갔다.
전진 후퇴와 방향 전환이 자유로웠다.
삼재보법과 연결 지어 삼재검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전신 근육을 골고루 단련했다.
경천심결을 통해 쌓인 기는 근육에 이어 골수까지 꽉 찬 느낌이 들었다.
밤에 지하 연공실을 찾아 경천도해 앞에서 경천심결을 외우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내공심법을 익힌다면 날개를 단 셈일 텐데.’
검천전이나 지하석실 서가 무서 가운데 내공을 익히는 심공이나 심법도 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약속한 바가 있으니 익히지 않았다.
오로지 경천심결을 대성하는 데 집중했다.
‘대체 언제 경천심결 십성에 달할 수 있는 걸까?’
할아버지는 경천심결 십성에 달하면 스스로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십육방 일수오검을 석 달 만에 연성하자 하기주가 흠칫 놀라더니 말했다.
“다음은 몇 방위인지 알지?”
삼십육 방위에서 치고 빠지라는 뜻이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군말 없이 목검을 들었다.
다시 석 달이 흘렀을 때 호흡이 끊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삼십육방 일수오검을 펼칠 수 있었다.
“으흠.”
하기주는 무한이 삼십육방 수련을 마치자 말했다.
“이제 변천(變天)이다.”
“변천이라뇨?”
“네가 펼치는 일수오검의 검로가 뭐지?”
“천지인의 도와 찌르기죠.”
“그대로 펼치면 상대가 어떻게 할 것 같으냐?”
검로가 일정하니 상대는 손쉽게 막을 것이다.
“역삼재검법도 마찬가지지. 검로가 정해져 있지.”
“…….”
“그건 상대방에게 길을 알려주고 치겠다는 말이나 같지.”
“변천이라면?”
“어려울 건 없어. 섞어서 치면 되는 거지.”
“그래도 검로가 있지 않아요?”
“상대의 움직임에 따라 대응하는 거야. 그러니 변초지.”
“철인형은 움직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변초를 펼치죠? 제 마음대로 섞어 치면 되나요?”
“따라와라.”
하기주가 연무장을 벗어나 교두들이 묵는 숙소 쪽으로 갔다.
“여기는?”
“무화전 교두들에게는 각기 연무장이 주어지지. 이건 내 개인 연무장이다.”
하기주가 말하며 연무장 한쪽을 가리켰다.
커다란 그물을 허공에 치고 그 아래 나무토막을 여기저기 매어 두었다.
“나무토막을 치면서 저쪽까지 가봐라.”
어려울 게 없어 보였다.
목검을 들고 앞으로 전진하며 나무토막을 쳤다.
딱!
힘차게 쳐내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다음 순간 숨을 들이켜야만 했다.
나무토막이 다른 나무토막을 쳤다. 동시에 허공에 친 그물이 출렁거리며 모든 나무토막이 흔들거렸다.
‘헉!’
하나를 치면 다른 나무토막까지 모두 흔들리며 무한을 향해 날아왔다.
그냥 달아놓은 게 아니라 일정한 진식에 따라 나무토막을 달아놓은 게 분명했다.
날아오는 나무토막을 쳤다.
그러자 나무토막의 움직임이 더욱 요란해졌다.
딱! 따닥!
무한은 그동안 삼재검과 경천심결을 통해 근육과 장부의 미세한 움직임을 의식으로 조절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사방에서 날아드는 나무토막을 피하려니 몸이 뒤틀리고 근육의 균형이 무너졌다.
퍽! 퍼퍽!
기어이 날아드는 나무토막에 복부와 등짝을 맞았다.
‘크윽! 이게 나무토막이라고?’
그냥 나무토막이 아니었다. 무슨 나무인지 몰라도 묵직하여 쇳덩이 같았다.
배에 부딪혔는데 내장이 다 터지는 줄 알았다.
“조심해야 할 게다. 이 나무토막은 철목으로 만든 거니까.”
하기주가 말했다.
그날 무한은 나무토막에 수도 없이 격중 되어 온몸이 멍투성이가 되고 이마까지 깨졌다.
“고작 나무토막인데…….”
분했다.
“어머? 이게 뭔 일이래요?”
상처투성이가 되어 돌아오자 유아가 보고 펄쩍 뛰었다.
“괜찮아.”
“괜찮기는요!”
유아가 나가더니 한참 있다 돌아왔다. 그런데 얼굴에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다.
“치사하게.”
“왜?”
“내의방 의원 놈들은 순 날도둑이에요.”
“무슨 일인데?”
“약 좀 달라고 했더니 바가지를 씌우려고 들잖아요.”
유아가 목합을 내밀었다.
“이걸 은자 열 냥 달라니. 미친 거 아니에요?”
“비싸긴 하네.”
약값이 비싸긴 했지만 효과는 좋았다. 바르자마자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다음 날 다시 멍투성이가 되니 약을 바르나마나였다.
며칠이 지나자 온몸이 시퍼렇게 물들었다.
나무토막의 움직임은 예측이 어려워 도무지 막을 수가 없었다.
근육과 뼈가 상하지 않은 건 그동안 경천심결에 의해 배인 기운 덕분이다.
“끄응!”
수련을 마치고 오면 온몸이 후들거렸지만 지하 연공실에서의 수련도 빼먹지 않았다.
‘으윽!’
좌정을 하고 눈을 감으니 나무토막이 날아오는 것만 같아 절로 몸이 꿈틀거렸다.
“후우.”
깊이 숨을 내쉬고 경천심결을 운용했다.
근육과 뼈에 스며들었던 기운이 일어나 맞은 곳을 어루만지는 걸 느끼며 생각에 잠겼다.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사방에서 날아드는 나무토막.
심지어 동시에 여러 군데서 들이닥쳤다.
그러다 보니 자세나 검로를 잡을 새도 없이 목검으로 밀어내기 급급했다.
“그렇지!”
좋은 생각이 났다.
다음 날.
퍽!
날아오는 나무토막을 피하지 않고 맞았다.
나무토막이 날아오든 말든 우직하게 가로막는 나무토막만 쳐내며 앞으로 전진했다.
그렇게 하여 그물 끝까지 가는 동안 수십 차례 나무토막에 맞았다.
모두를 피할 수 없으니 맞을 건 맞자는 생각이었다.
대신 하나를 치더라도 자세를 정확히 잡고 쳐냈다.
나무토막은 무겁기가 쇳덩이 같다는 철목이다.
처음 복부를 맞았을 때는 토할 것만 같았는데 하도 맞다보니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무한은 다시 한 번 그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덜 맞은 것 같았다. 그래도 십여 차례가 넘었다.
만일 검이었다면 벌써 십여 차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기분이 좋았다.
“그래, 이거였어. 크하하.”
방법을 찾은 것 같았다.
눈앞에 나무토막이 너무나 현란하게 다가오니 허겁지겁 막기 바빴다.
그런데 맞을 건 맞자는 심정으로 목검을 휘두르니 검로가 살아나며 쳐내는 나무토막의 수도 늘어났다.
‘삼십육방 일수오검의 삼재검수잖아. 이까짓 나무토막을 못 쳐낸다는 게 말이 돼?’
나무토막 그물진에서의 수련도 익숙해졌다. 하도 맞다보니 몸도 변화했다.
나무토막이 치는 순간 저절로 기운이 흘러나와 반탄력을 발휘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맞을 때마다 시원한 느낌마저 들었다.
한 달이 지나자 한 번도 맞지 않고 나무토막 그물진을 통과할 수 있었다.
그러자 하기주가 그물에 나무토막을 더 달았다.
빽빽한 나무토막이 마치 벽 같았다.
그래도 한번 익힌 바 있으니 어려울 게 없었다. 목검을 더 빠르게 그리고 보법을 좀 더 빨리 밟으면 그만이다.
곧바로 그물진으로 뛰어들어 나무토막을 쳐냈다.
이번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도 맞지 않고 통과할 수 있었다.
그러자 하기주가 진검을 가져왔다.
무한은 감격스러웠다.
드디어 진검 수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