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가릉산도 목검을 뽑아 들고는 휙휙, 두어 번 휘저었다.
“조심해야 할 거야. 몇 년째 삼재검만 익혔으니 노화순청의 경지에 달했을 거 아냐?”
또 다른 놈이 말했다.
간사스럽게 생겼는데 장후진이라고 아버지가 장로전 장로다.
“오. 그런 거야? 조심해야겠네?”
가릉산이 엄살을 부리자 고영과 장후진이 배를 잡고 웃었다.
가릉산이 목검을 빙글빙글 돌리며 능글맞게 웃었다.
“진검을 쓰다 오랜만에 목검을 잡으니 기분이 새롭네. 마구 줘 패버리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고영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릉산아. 적당히 패라. 그래도 명색이 검천부의 후인 아니냐. 천하사패의 체면이 있으니 말야.”
말과 달리 어디 한 군데 뼈를 부숴버리라는 뜻으로 들렸다.
저놈들은 속을 감출 줄 모르는 놈들이니 천목투심술을 쓸 필요조차 없다.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여기며 거드름을 피우는 중이다.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네. 알다시피 목검에도 눈이 없거든.”
“비무대로 올라와라.”
하기주의 말에 무한과 가릉산이 비무대에 올라갔다.
“예를 취해라.”
하기주가 비무에 앞서 예를 취하라고 하자 가릉산이 말했다.
“그런 것까지 해야 해요? 애들 버릇 좀 고쳐주는 건데.”
“비무는 수련의 과정이다.”
하기주의 말에 무한이 검을 역수로 잡고 포권을 하였다.
가릉산도 마지못해 건성으로 예를 취하며 중얼거렸다.
“이거 참. 괜히 나서서 체면만 상하게 되는 거 아냐?”
올해 상방으로 올라갈 자신이 하방 삼재검수와 정식 비무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 자체가 창피한 일이다.
“시작하라.”
무한은 검을 세워 중단세를 취하며 생각했다.
일수사검.
나아가는 속도 그대로 네 번을 후려칠 수 있다.
이제껏 비무를 해본 적은 없지만 한 번의 공격은 할 수 있으리라.
“크크. 삼재검수, 들어와라.”
가릉산이 목검을 늘어뜨렸다.
“삼 초를 양보하지.”
“그래도 되겠어?”
“들어오기나 하라니까.”
가릉산이 멋들어진 자세로 서서 공격하라는 듯 손짓했다.
“조심해라!”
무한이 한마디하고 앞으로 튀어나갔다.
예상 밖으로 순식간에 들이닥치는 무한의 공격에 가릉산이 당황했다.
대개 검을 겨룰 때는 허초로 서로의 실상을 알아보는 게 보통이다. 자칫 한 번의 실수로 목숨을 잃을 수 있으니 조심하는 것이다.
그런데 무한은 무지막지하게 바로 밀고 들어왔다.
우직하게 내려치는 검.
‘흥!’
가릉산이 뒤로 물러나며 검을 흘리려는데 무한이 순식간에 따라붙었다.
“그렇다면!”
가릉산이 내공을 실어 검을 후려쳤다. 무한의 검을 옆면에서 밀어 흘리려는 수법이다.
퍽!
내려치는 무한의 검과 가릉산의 검이 부딪혔는데…….
‘헉!’
가릉산은 강한 충격과 함께 손아귀가 찢어질 뻔했다.
동시에 무한의 목검이 연달아 짓쳐들었다.
가릉산은 황급히 검을 회수하며 뒤로 빠지려 했으나, 무한이 앞으로 밀고 들어오며 오히려 간격을 좁혔다.
가릉산이 황급히 내공을 끌어올려 내려치기와 옆으로 그어치기는 쳐냈다.
따닥, 따닥.
그러나 비껴치기를 막는 순간 목검이 밀려났다.
퍽, 빠각!
“헉!”
목검이 부딪히는 소리와 가죽을 치는 격타음,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바람 빠지는 소리가 연달아 터졌다.
“크윽!”
가릉산이 뒤로 튕겨나가듯 쓰러졌다.
“릉산아!”
고영과 장후진이 동시에 비명처럼 가릉산을 불렀다.
“떨어져!”
하기주가 바로 끼어들어 무한을 막고 뒤로 물러나게 하였다.
고영과 장후진이 동시에 비무대로 튀어 올라왔다.
“으으…….”
가릉산이 신음성을 흘리며 상체를 일으키려다 비명을 질렀다.
“아악!”
부러진 갈비뼈에서 이는 통증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움직이지 마.”
“정신 차려.”
고영과 장후진이 가릉산을 똑바로 눕혔다.
응급조치를 하려는 것이다.
비무대 한쪽에서 이를 보는 무한은 어리둥절해 하였다.
‘뭐야? 왜 이렇게 쉬워?’
예상치 못한 결과에 스스로도 놀랐다.
가릉산의 목검과 부딪히는 순간 이길 수 있다는 감이 들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여 전력을 다해 목검을 휘둘렀다. 그러니 가릉산이 온전할 리가 없었다.
철인형을 찌그러뜨리는 무한의 검이다. 가릉산이 순간적으로 회피하며 목검을 흘리지 않았다면 즉사했을지도 모른다.
“으. 으윽…….”
가릉산은 옆구리를 후벼 파는 고통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숨만 헐떡였다.
그나마 마지막 일검에서 힘을 뺀 것이 가릉산에게는 다행이었다.
“릉산아! 정신 차려!”
눈동자가 돌아가 허옇게 뜬 가릉산은 입에서 피를 게워냈다.
장후진이 가릉산을 상체를 부축하여 일으켜 세우려 하자 하기주가 막았다.
하기주가 몇 군데 점혈을 하고는 부러진 갈비뼈를 맞췄다.
그러고는 고영에게 말했다.
“상세가 가볍지 않다. 들것을 가져와서 누운 채로 의원에게 데려 가라.”
장후진이 들것을 가지런 간 사이 고영이 무한을 노려보았다.
“이 새끼! 무슨 짓을 한 거냐?”
“비무.”
무한이 짤막하게 대답했다.
“너…… 두고 보자.”
잠시 후 장후진이 들것을 가져왔다. 고영과 장후진이 가릉산을 싣고 갔다.
고영 등이 사라지자 무한은 긴장이 풀렸다.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
하기주가 그런 무한을 묘한 표정으로 보다 말없이 사라졌다.
무한은 손에 쥔 목검을 내려다봤다.
얼마나 꽉 쥐었는지 손이 하얗다.
무한 역시 첫 비무였으니 잔뜩 긴장했었던 것이다.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던 형소가 다가와 말했다.
“무, 무한아. 너 대단하다.”
“삼재검도 괜찮은데?”
무한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동안 내려친 보람이 있네.’
***
보름간의 신년 휴관이 끝나고 형소는 무화전 중방으로 올라갔다.
가릉산과의 비무 이후 형소와의 관계가 가까워졌다.
문향전 오전 강학 시간에 앞서 형소를 만난 무한이 말했다.
“축하해.”
“그래봐야 삼재검수지 뭐.”
형소는 짐짓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표정까지는 속일 수가 없다. 좋아서 콧구멍이 벌름거렸다.
“삼재검의 위력을 봤잖아.”
“그렇긴 해. 삼재검만으로 가릉산을 쓰러뜨리다니.”
형소가 말하다 말고 걱정했다.
“가릉산은 도천부 참마대주 가첨의 아들이야. 나중에 반드시 보복을 할 거야.”
가릉산과 비무 이후 이상하게도 잠잠했다.
가릉산은 도천부 셋째 고동후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참마대주의 아들이다.
기세등등한 도천부 사람의 갈비뼈를 부러뜨렸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무한에게 당한 걸 치욕으로 여기고 쉬쉬하는 걸지도 모른다.
“정당한 비무를 가지고 보복을 한다면 치사한 짓이지.”
“도천부는 그런 걸 따지는 놈들이 아냐.”
“조심할게. 근데 조심해야 하는 건 너도 마찬가지지.”
“내게는 해코지 못할 거야.”
“하긴.”
권천부의 이인자 형일천의 아들을 명분도 없이 함부로 건드릴 수는 없겠지.
“근데 너도 승방했어야 하는 거 아냐?”
무한은 승방 심사의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승방 심사 여부는 교두의 의견에 달려 있는데 하기주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너는 아직 멀었다.
형소는 일수사검을 이루고 승방했다. 그런데 똑같이 일수사검을 이룬 무한은 미진하다고 했다.
문향전 강학을 마친 무한은 점심을 먹고 하방 연무장으로 갔다.
여전히 어린아이들이 뛰어노는 연무장.
그런데 형소가 없으니 하방 연무장이 왠지 적적하게 느껴졌다.
“이리 와봐라.”
하기주였다.
그는 연무장 한쪽으로 가더니 목검을 들고는 무한에게도 목검을 들라고 하였다.
그가 중단세를 취했다.
비무라도 하는 건가?
무한이 본능적으로 목검을 세웠다.
그러자 하기주가 목검을 앞세워 벼락같이 찔러왔다.
“헉!”
너무나 순간적이라 온몸이 굳었다.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았다.
어느새 하기주의 목검이 무한의 천돌혈에 닿아 있었다.
“이제 찌르기다.”
하기주가 목검을 내리며 말했다.
“오늘부터 찌르기 수련이다. 찌르기의 요체는 정확한 지점을 타격하는 데 있다.”
무한이 하기주의 목검이 닿았던 천돌혈을 문지르며 식은땀을 흘렸다.
하기주가 찌를 때 은연중 살기를 느꼈다.
‘착각이었을까?’
확실치는 않다.
너무 갑작스러웠기에 느낌만 받았을 뿐이다.
하기주가 자신을 죽이려 마음먹는다면 일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자신이 얼마나 약한지도 깨달았다.
천하방 그 누구라도 자신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가릉산과의 비무는 상대가 방심한 덕을 본 것뿐이다.
하기주가 심의삼재검 찌르기의 도를 설파하고 하방 어린애들에게 갔다.
“이놈들아! 모두 공격해봐라!”
“와아!”
아이들이 목검을 들고 하기주를 향해 떼 지어 달려들었다.
“…….”
무한은 잠시 하기주와 아이들을 보다가 자신의 철인형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날부터 온종일, 심지어 우천각으로 돌아가서도 한밤중까지 수련했다.
제대로 된 검수가 봤다면 어이없어 했을 것이다.
단순한 찌르기에 이렇듯 몰두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하루라도 빨리 심의삼재검을 끝내야 한다!’
무한은 이제 온몸의 근육을 제대로 쓸 수 있었다.
게다가 그 근육에는 경천심결을 통해 배인 기운이 쌓여 있다.
근육과 장부까지 단련된 무한에게 찌르기는 어렵지 않았다.
퍽!
온몸의 근육이 움직이며 집중하였기에 내공이 없어도 강력한 파괴력을 보였다.
처음이 어렵지 한번 길에 들어서니 성취가 나날이 빨라졌다.
한 달 만에 찌르기를 연성할 수 있었다.
그러자 하기주가 고개를 흔들었다.
“무식하게 찔러대는 건 삼류나 하는 짓이다.”
하기주는 헝겊으로 만든 허수아비를 가져왔다.
허수아비에는 전신요혈이 빼곡하게 그려져 있었다.
“요혈을 정확한 깊이로 찌를 수 있어야 비로소 검의 길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
“강약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어야 비로소 찌르기를 익혔다고 할 수 있지. 허수아비의 요혈 안에는 물감이 들어 있다. 요혈을 찌르되 목검에 물감이 묻어선 안 된다.”
무한은 허수아비를 상대로 찌르기를 수련했다.
‘힘을 조절한다는 건 결국 근육을 조절한다는 뜻이구나.’
강약을 조절하기 위해 미묘하게 움직이는 근육을 느낄 수 있었다.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헝겊인형의 요혈을 찌르면서도 안에 있는 물감을 묻히지 않는데 두 달이나 걸렸다.
그런 뒤 하기주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한 번에 상중하 삼검을 찌르는 수련을 했다.
무한이 한 과정을 끝낼 때마다 이상하게도 하기주의 인상은 나날이 차가워졌다.
“드디어 끝났구나.”
무한은 상중하 삼검 찌르기까지 마치고는 다른 과정을 기대했다.
“누가 끝이라더냐?”
돌아보니 하기주가 서 있었다.
“천지인 삼도를 치고, 이어서 찌르기다!”
일수오검(一手五劍)을 펼치라는 이야기다.
무한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경천심결을 통해 근육과 뼈의 힘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무한에게 일수사검이나 일수오검이나 매한가지였다.
이번에도 한 달 만에 일수오검을 펼칠 수 있었다.
이제 눈을 감고도 검을 펼칠 수 있었다.
무한이 일수오검을 이루자 하기주는 묵묵히 철인형을 가리켰다.
“전진하며 삼재검으로 일수오검! 물러나며 역삼재검 일수오검!”
‘아직도 남았네? 정말 이걸로 끝을 보려고 하는 건가?’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하기주가 노려보더니 말했다.
“너는 이 수련이 합당하다고 생각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