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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무한-7화 (7/250)

7화

하기주는 검을 내려칠 때 내공을 쓰지 말라고 했다.

“전 내공을 익힌 적도 없는데요?”

경천심결이 평범한 심결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단전 축기가 되는 건 아니다.

“손을 내밀어봐라.”

하기주가 무한의 완맥을 낚아챘다.

잠시 후, 하기주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손목을 놓으며 물었다.

“……왜 내공을 익히지 않는 거지?”

문하생 대부분이 가전심법을 익히고 있다. 내공 특성이 제각각이라 무화전에서 따로 내공을 전수하지 않는다.

“모르니까요.”

하기주가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무한을 노려봤다.

그러더니 돌연 화를 버럭 냈다.

“한심한 놈! 무인이 완맥을 맡긴다는 건 목숨을 주겠다는 뜻이다. 앞으로 누구에게도 완맥을 잡히지 마라. 아니, 남이 네 몸에 손을 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

“알았나!”

어이가 없었다.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라도 있나?’

하기주가 잠시 뭔가 생각하더니 목검을 가지고 왔다.

“공격해봐라.”

무한이 자세를 취하고 검을 내리쳤다.

형식적인 동작이다.

“제대로!”

하기주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좋아! 제대로 해주지!’

이번에는 전력을 다해 내리쳤다.

빠각!

목검끼리 부딪혔는데 바로 부러졌다.

하기주의 표정이 단단히 굳었다.

눈알이 이리저리 오가는데 광망이 번뜩였다.

‘눈빛이 왜 저래?’

하기주의 눈빛이 왠지 섬뜩했다.

순간, 천목혈이 찌릿하며 상대가 무척 혼란스러워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

무한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한참 뭔가 생각하던 하기주가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 지의 도를 행한다.”

그러자 옆에 있던 형소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일 년 동안 천의 도를 행했던 형소다. 그런데 무한이 석 달 만에 천의 도를 통과하는 게 못마땅한 표정이다.

“형소, 지의 도를 일러주어라.”

하기주가 형소에게 이르고는 가버렸다.

형소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따라해.”

말이 거창하지 지의 도는 좌에서 우로 긋는 것이다.

보기에는 간단한데 역시 보법과 호흡에 맞춰 하려니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근육의 쓰임이 달랐다.

“지의 도는 쉽지 않을 거야.”

형소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런 거 같아. 너는 어떻게 이걸 일 년이나 했니?”

존경스럽다는 눈으로 보자 형소가 뿌듯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하더니 자기 자리로 갔다.

‘쟤는 확실히 칭찬에 약해.’

그동안 형소를 지켜본 바에 따르면 약간만 치켜세워주면 무척 좋아했다.

지의 도를 하려는데 하기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리로. 저기다 놔.”

하인들이 돌인형을 가져와 무한이 쪼갠 목인형과 교체했다.

“너는 이걸 친다. 하루에 천 번!”

천의 도를 행한 경험이 있다. 이제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기주의 다음 말에 무한은 입이 딱 벌어졌다.

“천의 도 천 번! 지의 도 천 번이다!”

이천 번이다.

***

가을이 깊어갔다.

바람이 제법 쌀쌀해졌다.

천지인의 도를 모두 마친 형소는 요즘은 찌르기를 하고 있다.

찌르기란 말 그대로 검을 내밀어 목인형을 찌르는 것이다.

“그냥 찌르는 게 아니란 말야. 검 끝에 힘을 모아 격중 시켜야 돼. 보법과 호흡이 일체가 된 상태에서 말야.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아?”

형소가 으스대곤 했지만 무한은 그냥 웃어주었다. 어딘가 모르게 귀여운 데가 있어서였다.

하방 아이들은 무한과 형소를 삼재검수라고 부른다. 애들이 보기에도 좀 우습게 보이나보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한은 묵묵히 목검을 휘둘렀다.

지의 도를 행한 지 여섯 달이 됐다. 그동안 바꾼 목검만 수십 자루다.

근육이 단련되며 체형도 바뀌었다. 무한은 한층 자라 어린 태를 벗고 완연한 소년이 되었다.

이제는 근육의 움직임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경지다.

몸에 있는 수백 가닥의 근육이 서로 엮이며 크게 세 가닥을 이루다 결국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았다.

근육과 장부가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도 깨달았다. 근육이 움직이면 장부도 영향을 받는다.

호흡을 통해 들어온 기운은 경천심결의 구결에 따라 근육과 장부로 배어들었다.

근육과 장부가 호흡과 일체를 이루는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근육과 장부에 쌓인 기운은 순간적으로 단단한 힘을 발휘했다.

가볍게 휘두른 목검이었지만 파괴력은 쇠몽둥이 못지않았다.

“응?”

단조롭게 내려치는데 갑자기 천목혈이 찌릿하며 돌인형이 다르게 보였다.

돌인형 표면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퍽!

목검을 그어 치자 돌인형 옆 부분이 부서지며 돌조각이 떨어져 나갔다.

쩌적!

이어서 금이 갈라졌다.

한 번만 더 치면 돌인형은 박살날 것이다.

옆에서 찌르기를 하고 있던 형소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형소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 어…….”

목인형이 쪼개질 수는 있다.

하지만 목검으로 돌인형을 부수다니.

“너 정말 내공 없는 거 맞아?”

“응.”

무한이 머리를 긁적였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더니. 이런 일도 생기네?”

연무장에 단상에 서서 아이들이 수련하는 걸 지켜보던 하기주가 이쪽을 바라봤다.

잠시 이쪽을 살펴보다 어디론가 사라졌다.

잠시 후, 하기주가 돌아왔다. 그 뒤로 무화전 하인들이 철인형을 수레에 싣고 왔다.

속까지 철로 꽉 찬 인형.

팔은 여덟 개나 되고 다리도 넷인데, 그중 두 다리는 발차기를 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쇠 값이 얼마나 비싼데.’

무쇠로 철인형을 만들다니.

하기주가 나름 수련 지도에 정성을 쏟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괴롭히기 위해 무리를 한다거나.

하기주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오늘부터 인의 도를 한다! 천의도 천 번, 지의 도 천 번, 인의 도 천 번!”

어쩐지 그럴 것 같았다.

“인의 도에는 음양이 있다는 건 알고 있지?”

안다.

형소가 하는 걸 봤으니까.

인의 도는 사선으로 내리치는데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두 번 긋는다.

그러니까 목검을 도합 사천 번 휘둘러야 한다는 뜻이다.

그동안 치는 속도가 빨라졌지만 사천 번을 한나절 만에 끝내라니…….

천무관 그 누구도 이런 무식한 수련은 하지 않는다.

오로지 천무관 삼재검수인 무한과 형소뿐이다.

“그럼 바로 시작해라. 저녁밥 먹기 전에 끝내야지?”

하기주가 사천 번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하곤 갔다.

딱!

철인형을 치니 손아귀가 찌르르 울린다.

‘하지 뭐.’

초식도 없는 무지막지한 심의삼재검에도 검으로 가는 길이 있다.

‘길이 있다면, 가야지.’

***

따다다다다.

아이들이 폭죽을 들고 신나게 뛰어다녔다.

새해가 열렸다.

오늘만큼은 천하방도 잔치 분위기였다.

오로지 검천부만 조용했다.

천무관은 보름간 휴관이다.

무한은 우천각 뒤에 연무장을 만들고 하루 종일 삼재검을 내리쳤다.

남들은 쉬는 명절이지만 무한은 수련을 멈출 수가 없었다.

퍽!

무아지경에서 통나무를 치고 있는데 유아가 달려왔다.

“만현각주께서 오셨어요.”

강유가 검천부를 찾아오기는 처음이다.

강유는 검천전 빈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검천부이건만 강유의 호위가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무한이 빈청으로 들어가 고개 숙여 예를 올렸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수련하느라 땀이 범벅이었던지라 씻고 오다보니 좀 늦었다.

강유가 괜찮다는 듯 손을 저었다.

유아가 차와 찻물, 다기를 가져와서 내리려는데 강유가 말했다.

“주위를 물려라.”

무한이 유아를 내보내고 직접 차를 우렸다.

그 모습을 보면서 강유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름에 천하사패의 회합이 있다. 천하방에서는 천하사패지연이라 부르지.”

강유는 매년 정월 보름에 천하사패가 회합을 가진다고 말했다.

보름이면 새해 연휴 마지막 날이다.

무한이 찻잔을 건네며 물었다.

“그런 게 있는 줄 몰랐습니다. 그동안은 왜 부르지 않았을까요?”

“너는 사당을 지키고 있었잖느냐?”

“…….”

사당을 지킨다는 이유로 천하사패지연에서 배제를 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사당을 지키는 것 때문에?

무한의 눈빛이 깊어졌다.

강유가 그런 무한을 보며 천천히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이번에는 직접 전하러 오셨군요. 하실 말씀이 따로 있으십니까?”

바쁜 만현각주가 고작 천하사패지연이 있음을 알리기 위해 온 것은 아닐 것이다.

찻잔을 내려 놓은 강유가 말했다.

“천하사패지연은 단순한 연회가 아니다. 천하방의 이목이 집중되기 마련이지.”

천하방의 주축이 천하사패임을 알리고 결속력을 과시하는 회합인 모양이다.

“너도 알다시피 천하방은 백여 문파가 모인 곳이다. 공식적으로는 모두가 형제로 평등하다.”

무한도 안다.

그런데 자칭 천하방 소식통 유아 말에 따르면, 각 문파 간에도 힘에 따라 보이지 않는 서열이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천하방 여러 문파들이 천하사패를 중심으로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지.”

강유가 이런 말을 해주는 건 처음이다.

“모두 권력 때문이다.”

무한은 듣기만 했다.

“핏줄로 이어지는 세가도 가주의 자리를 놓고 온갖 암투가 벌어진다. 하물며 천하방과 같은 방파는 말할 것도 없다.”

갑자기 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무한이 강유를 주시했다.

여전히 무심한 표정.

강유의 무표정은 보통 사람과 좀 다르다. 천목투심술로도 내심을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네 할아버지께서 갑작스레 떠나신 후 천하방은 혼란에 빠졌다.”

“…….”

“혼란이 확산되지 않고 바로 수습된 건 도왕이 있었기 때문이었지.”

검신에 이어 천하제이인자로 꼽혔던 도왕.

천하제일인이 죽고 나자 도왕이 자연스레 천하방주에 오르며 천하방은 바로 안정을 찾았다.

도왕이 없었다면?

천하방은 내분으로 피가 튀는 혈전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도왕 어르신이 나이가 들었으니 자연히 후계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갑작스런 방주의 유고로 인한 혼란을 막자는 명분이지.”

‘후계자?’

무한은 강유가 갑작스레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색은 않고 차만 마셨다.

“지금 천하방은 크게 보아 셋으로 나뉘어 있지.”

천하방은 도왕의 직계가 뒤를 이어야 한다는 파와 권천부 권왕이 방주의 위를 맡아야 한다는 파, 그리고 관망하는 세력으로 나뉘어 있다.

“말을 돌리지 않겠다.”

강유가 무표정한 얼굴로 식은 차를 홀짝이더니 말을 이었다.

“무인의 길을 포기해라.”

뜬금없는 말에 무한은 손을 내밀어 찻잔을 집고는 천천히 차를 마셨다.

할아버지가 물었다.

“네 앞에 두 가지 길이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네 마음이다.”

“…….”

“평범한 삶의 길이다. 원한다면 그럴 수 있도록 해주마.”

평범한 삶의 길.

무한이 이미 천하방의 주인이 되겠다고 했으나 할아버지는 마지막으로 확인하려는 듯 선택의 기회를 주었다.

“다른 길은 무인의 길이다.”

“제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

할아버지가 잠시 침묵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리 하거라. 그게 네 운명이라면…….”

그때 무한이 물었다.

“무인의 길은 어떤 길일까요?”

“무인의 길은…….”

할아버지가 잠시 말을 끊었다가 나직하지만 분명하게 말했다.

“불인(不仁)의 길이다.”

불인의 길?

“생사의 경계에는 인간사 옳고 그름이 존재하지 않는다.”

어렵다.

할아버지도 열 살짜리 아이가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말이라 생각했는지 더는 말하지 않았다.

다만 손자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 시선은 따스하기도 했고 애잔하기도 했으며 안타깝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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