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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무한-6화 (6/250)

6화

하기주가 시선을 아이들에게 돌리곤 말했다.

“올 한 해 열심히 하면 중방으로 승급할 수 있다. 승방하고 싶은 사람!”

“저요! 저요!”

아이들이 저마다 손을 들었다.

하기주가 웃으며 말했다.

“통과하고 싶으면 그에 맞는 실력을 보여라. 가서 수련하도록!”

“예!”

아이들이 연무장 곳곳으로 흩어졌다.

“이리 가까이 와라.”

무한이 다가가자 하기주가 물었다.

“무공을 배운 적이 없다고 들었다. 맞나?”

“예.”

머릿속에 수많은 무공이 있지만 익히지 않았으니 바로 대답했다.

“그렇다면…… 그것부터 익혀야겠지. 따라와.”

하기주가 돌아섰다.

‘그거?’

휙! 휙휙!

목인형을 세워둔 곳에서 형소가 목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무공을 배운 적 없는 무한이 봐도 이건 아니다 싶을 만큼 단순한 휘두르기일 뿐이었다.

“네가 익힐 건 저것이다.”

“저거라고…요?”

무한이 어이없어 하는데 하기주가 형소에게 일렀다.

“네가 심의삼재검의 묘리에 대해 일러줘라.”

“예?”

“천의 도만 일러주면 될 거다.”

하기주가 무한을 형소에게 넘기고 갔다.

형소가 뚱한 얼굴로 무한을 보더니 말했다.

“너 참 귀찮구나. 왜 날 따라다니는데?”

“내가 널 따라다녀?”

“오늘 하루 종일 내 앞에서 알짱거리잖아.”

“알짱?”

무한이 어이가 없어 똑바로 바라보자 형소가 시선을 내리며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맞잖아.”

무한은 내심 실소를 흘렸다.

마음이 여린 녀석이다. 악의가 없이 그저 자기 생각대로 내뱉는 걸 아니 뭐라 할 수도 없었다.

형소가 시선을 피한 채 한쪽을 가리켰다.

“목검은 저기 있어. 하나 가져 와.”

연무장 한쪽 병기 거치대에 목검과 목도, 봉이 꽂혀 있었다.

무한이 목검을 가져와 형소 앞에 섰다.

“심, 심의삼재검은 말야…….”

형소가 갑자기 떠듬거렸다.

“알아. 기수식이 이거지?”

무한은 할아버지 서재에서 온갖 무서를 봤다. 머리로만 치자면 이미 절대고수 반열에 이르지 않았을까?

무한의 머릿속에 삼재검법의 초식이 주르륵 흘러갔다.

삼재검은 검세와 투로가 단순하지만, 스물일곱 가지의 기본 초식에 변초까지 더하면 여든하나의 동작으로 이뤄진다.

무한이 삼재검 기수식을 취하자 형소가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게 아냐.”

“맞는데?”

“이건 그냥 삼재검법이 아냐. 심의삼재검(沈意三才劍)이라고!”

“심의삼재검?”

할아버지가 해석한 삼재검인가?

그런데 형소의 다음 행동을 보고, 절대 할아버지가 해석한 삼재검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게 삼재검 천의도야.”

형소는 목검을 들어 목인형을 내리쳤다.

무한이 황당한 얼굴로 형소를 쳐다봤다.

‘장난하나? 이게 무슨 삼재검이야. 그냥 내려친 거지.’

그런데 형소는 진지했다.

“심의삼재검에는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의 도가 담겨 있어. 방금 본 게 천의 도야.”

“하늘과 땅, 인간의 도?”

형소가 정색을 하고 구결을 풀었다.

“하늘은 비었으니 무한하고 땅은 만물을 기르는 굳건함이 있고 인간은……”

“인간은?”

“제각각이지만 그 모두가 하나라는 거지.”

형소가 진지한 얼굴로 심의삼재검의 바탕과 묘용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대체 뭐라는 거야?’

심의삼재검에 우주만물을 포용하는 어마어마한 이치가 있다는 데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무한하면서 비어 있고, 만물을 생성시키는 덕과 의지, 그리고 천변만화하는 가운데 변함이 없는 도(道)가 바로 심의삼재검이지.”

형소가 기나긴 설명을 마쳤다.

“어렵네.”

장황한 설명에 비해 동작은 간단했다.

내려치고, 횡으로 치고, 비껴 치는 세 동작뿐이다.

검법이라고 이름 붙이기가 민망하다.

“무슨 삼재검이 이래. 초식도 투로도 없잖아? 검법 맞아?”

혹시 입문자를 놀리기 위한 장난이 아닐까 싶어 물었다.

“검법이 아니라 심의삼재검이라니까! 삼재검법이 아니라 심의삼재검!”

“그게 다른 거야?”

“당연히 다르지.”

형소가 대꾸하고 싶지도 않다는 듯 돌아서며 말했다.

“나는 다 설명했다. 익히든 말든 네가 알아서 해!”

무한은 어이가 없었다.

‘천의 도라고? 그냥 내려치는 거잖아.’

무한은 묵묵히 목인형을 내리쳤다.

얼마나 쳤을까.

단조로운 동작을 반복하다보니 어느 순간 생각이 사라졌다. 그저 무의식적으로 반복하여 검을 내리칠 뿐이다.

내관반청.

습관처럼 단전을 관조하며 목검을 내리쳤다.

무한이 무아지경에서 목인형을 치는데, 느닷없이 허벅지에 화끈한 통증이 일었다.

퍽!

“윽!”

돌아보니 하기주가 목검을 들고서 노려보고 있었다.

“자세가 그게 뭐냐? 한 번을 내리치더라도 제대로 쳐야지.”

하기주가 목검을 흔들며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

“무릎을 구부리고, 앞으로 나가며, 앞발에 삼, 뒷발에 칠. 뒷발은 곧게 펴서 받치고!”

퍽! 퍽퍽퍽!

하기주는 들고 있던 목검으로 무한의 팔다리를 사정없이 치며 자세를 잡았다.

눈물이 쏙 날 정도로 아팠다.

“앞으로 나갈 때 발이 땅에서 떨어지잖아! 지면을 밀듯이 나가라고!”

무한은 하기주가 시키는 대로 했다.

고작 대여섯 번을 내리쳤는데도 온몸이 뻐근하게 굳었다.

“대체 지금까지 뭘 한 거야! 검 하나 제대로 내리치지 못하고!”

“…….”

“오늘, 천 번을 내리친다!”

그날, 무한은 하기주가 싸늘하게 노려보는 가운데 한밤중까지 목인형을 내리쳐야 했다.

다음 날.

“으윽!”

아침에 일어나는데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특히 허리가 부러질 것만 같았다.

하기주가 일러준 대로 자세를 취하는 건 쉽지 않았다.

팔이 아니라 온몸으로 내리쳐야 하니까.

‘내려치는 것도 우습게 볼 게 아니었어.’

간단한 내려치기지만 확실히 지도를 받으니 뭔가 달랐다. 책만으로 무공을 익힐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간신히 일어나서 천무관으로 향했다.

오전 문향전 강학을 마치고 무화전 하방 연무장으로 가니 하기주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쳐봐.”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추스르고 검을 내리쳤다.

한 번, 두 번, 세 번.

퍽!

갑자기 눈앞에 불이 번쩍했다.

“크아!”

하기주가 목검으로 머리통을 내리친 것이다.

“호흡이 왜 그따위야! 검이 끝을 다할 때까지 호흡이 이어져야지!”

“…….”

“호흡 제대로 할 때까지! 천 번을 내리친다!”

무한은 맥이 탁 풀렸다.

어젯밤 늦게까지 천 번을 휘두르고는 돌아가자마자 그대로 쓰러졌다.

그런데 오늘 또다시 천 번이라니.

“왜? 못 하겠나?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둬라. 대신 천무관을 떠나야 한다.”

하기주의 표정에서 왠지 모를 적대감이 느껴진다.

‘왜지?’

굳이 천목투심술을 운용하지 않더라도 하기주가 자신에게 좋은 감정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잠시 무한을 보던 하기주가 돌아섰다.

“할 거면 제대로 해라!”

***

“대체 뭐하다 이제 오시는 거죠?”

천번을 내리치느라 밤늦게 돌아오니 유아가 걱정했다.

“수련도 좋지만 몸도 생각해야죠. 이 시간까지 식사도 안 하다니! 한창 자랄 때잖아요. 잘 먹어야 한다고요.”

밥이고 뭐고 그냥 쓰러져 자고 싶었다.

유아가 펄쩍 뛰었다.

“한 끼를 건너뛰면 인생에서 그 끼니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 먹어야 해요!”

늦은 저녁을 먹고 난 뒤.

무한은 감시하는 그림자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비밀통로를 통해 지하 비밀연공실로 갔다.

무한만의 비밀 수련.

어제는 너무 지쳐 거르고 말았지만 오늘까지 그럴 수는 없었다.

경천십이식 도해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자꾸만 감기는 눈꺼풀을 까뒤집으며 경천심결을 운용했다.

심결을 외우며 내관반청의 호흡을 하는데 온몸의 근육이 부들부들 떨렸다.

“목검 천 번 내리쳤다고 이렇게 쑤시다니.”

많은 무서에서 근육의 힘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이유를 절실하게 깨달았다.

‘하 교두의 수련법이 나쁜 것만은 아냐. 이렇게 근육을 단련하는 거겠지?’

적의가 담긴 하기주의 눈빛이 떠올랐다.

‘내가 못마땅한 걸까?’

왕선유가 무한을 타박하는 데는 파격적으로 상방에 들어갔다는 이유라도 있지, 하기주는 왜 그럴까?

알 수가 없다.

무한이 곰곰 생각하다 피식, 웃었다.

천하방에서 자신을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걸 새삼 깨달은 것이다.

‘정신 차리자.’

무한은 잡념을 떨치고 경천심결 구결을 외웠다.

몸이 피곤하니 오히려 무아지경에 쉽게 들었다.

평소보다 시간이 훌쩍 흘렀다.

비밀연공실을 나오니 어느새 날이 밝았다.

‘아!’

몸이 한결 가벼워진 것을 느꼈다. 멀쩡한 몸으로 구결을 외울 때와 뭔가 달랐다.

마치 날아갈 것만 같았다.

‘이상하네? 다른 때와 달라.’

어제까지 뻐근했던 근육이 모두 풀어지고 힘이 솟았다.

‘하루 만에 근육이 풀리다니. 경천심결 덕분일까?’

경천심결에 할아버지가 평생에 걸쳐 얻은 무의를 담았다고 했다.

그러니 보통 심결은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뛰어난 효과를 보여줄 줄 몰랐다.

뭔가 실마리를 얻은 것 같아서 무한은 내심 흥분했다.

지난 삼 년간 매일 밤마다 경천심결을 외웠으나 별다른 변화가 없어 막막해하던 차였다.

그런데 처음으로 뭔가 다름을 느꼈다.

아침을 먹자마자 천무관으로 달려갔다.

***

하루하루 날이 흘러갔다.

천의 도에 익숙해져서 이제는 저녁밥 먹기 전에 천 번을 내리칠 수 있게 됐다.

정확한 호흡과 자세로 천 번을 내려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끝나고 나면 온몸의 근육이 너덜너덜해지는 것만 같았다.

손바닥은 벌써 수없이 벗겨지고 새살이 돋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밤새 경천심결을 외우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몸이 가벼워진다.

마치 흩어졌던 몸이 다시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경천심결을 운용하면 온몸의 미세한 근육까지 느낄 수 있었다.

- 사람의 몸은 수백 가닥의 근육 줄기로 이어져 있다. 몸의 근육이 검로와 일체가 되었을 때 비로소 일검을 휘둘렀다고 할 수 있다.

경천십이식 주해의 한 구절이었다.

일검을 내려치며 발가락부터 다리와 등, 머리끝까지 근육이 움직이는 데 집중했다.

생각보다 근육의 움직임을 잡기가 어려웠다.

‘내관반청!’

눈을 내리깔고 호흡을 하며 무심하게 목검을 내리쳤다.

그러면서 동작을 할 때 어떤 근육이 움직이는지 의식을 세워 지켜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먼저 팔다리의 큰 근육이 느껴지고, 그 다음 그와 연결된 작은 근육들이 당겨지고 늘어나고 조이는 느낌이 다가왔다.

좀 더 집중하자 내부 장기 근육의 움직임까지 느껴진다.

근육을 느끼자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마치 알아주니 고맙다는 것처럼 근육에 쾌감이 번지기까지 한다.

자신의 몸을 이루는 수백 가지 근육 줄기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단순히 내려치는 동작이었지만 팔다리는 물론 복부의 미세한 근육까지 움직이는 걸 감지할 수 있었다.

검을 잡는 손가락 한 마디만 달라도 전체 근육의 움직임이 달랐다.

심지어 새끼발가락의 근육까지 내려치는 데 일조했다.

‘일검의 의미가 크구나!’

일검을 내리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무한은 일검, 일검에 집중했다.

나중에는 굳이 집중하지 않아도 근육의 움직임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

목검으로 천의 도를 행한 지 석 달이 되던 날.

무아지경에서 목검을 내리쳤는데 뭔가 갈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딱! 쩌적!

‘어?’

목인형이 정확히 반쪽이 났다.

“허거걱?”

옆에 있던 형소가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무한도 어리둥절했다.

“너무 오래돼서 금 갔나봐.”

“뭐가 오래 돼. 이렇게 단단한데.”

형소가 갈라진 목인형을 보며 말했다.

하기주가 다가왔다.

“내공 쓰지 말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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