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274화 (276/277)

#274화

“예원이는 어때?”

오랜만에 재능마켓에 모였다. 아직도 밖엔 경찰이 있어서 여길 오는 것도 조심해야 했다. 이럴 땐 변신 드링크와 은신 드링크가 한몫했다.

“일부러 모른 척하는 것 같아요.”

내 말에 김우태가 웃었다.

“힘들어하는 것 같진 않고?”

“네.”

“다행이네.”

그가 내 어깨를 손으로 두드렸다.

“잘 보살펴줘.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트라우마로 남았을 수도 있어.”

우리야 이제 일상처럼 겪는 일이었지만 예원이는 다를 것이다. 김우태가 옆으로 고갤 돌렸다. 도화지가 열심히 운동 중이다. 모든 위험을 제거했으니 이제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몸이 근질근질해서 못 견디겠단다.

김우태가 다시 나를 보며 물었다.

“포인트로 뭐 할 거야?”

우린 부자가 되었다. 1인당 3천만 포인트면 생수만 팔아도 갑부 되시겠다. 하지만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서 언제 또 이렇게 많은 포인트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기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저는….”

한곳으로 시선이 갔다. 재능마켓에 들어와서 얼마 안 됐을 때 본 가장 비싼 물건.

“더 모아보려고요.”

“설마 저 1억 포인트짜리 반지 보는 거냐? 야, 몇십 년이 걸릴 수도 있어! 게다가 저 반지가 뭔지도 모르잖아? 설명도 없고 불친절하다고!”

“알아요. 근데 1억이잖아요.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딱히 다른 게 필요한 것도 아니니까….”

“으음….”

하긴 우린 권태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무료함마저 느끼고 있었다. 세상을 지키고자 하는 일념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적이 사라지니까 목표가 사라진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넘어갔다 올까?”

“그럴까요?”

“화지야! 하층 갈래?”

“아니! 나는 더 운동할래!”

“아, 그래.”

도화지는 운동으로 극복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 셋 다 전설급 필라테스에 도전할 엄두는 내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강해질 필요도 없었고.

“그러면 우리끼리 다녀오자. 범아, 아리야! 너희들도 갈 거지?”

김우태의 목소리에 세 녀석이 저쪽에서 놀고 있다가 허겁지겁 다가왔다. 아무래도 여긴 답답했을 거다. 드넓은 초원에서 마음껏 뛰어놀고 본체로 변해서 하늘을 훨훨 날며 자유를 만끽하는 건 대체할 순 없을 것이다.

“잠깐만. 어르신 드릴 물건 좀 챙기고.”

김우태가 일어나자 나는 붙박이장에 갔다.

벌컥.

문이 열렸는데 안엔 넘쳐흐를 것처럼 많은 돌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몇 개는 아이템으로 바꿨지만, 대부분은 확인도 하지 않고 그냥 뒀다. 계속 미루게 된달까? 분명 시간도 많고 딱히 할 일도 없는데…. 이것들이 그리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아서 그럴지도.

“가자!”

김우태가 큰 가방을 들고 나를 불렀다. 2층으로 올라가서 균열을 지나 어르신이 있는 용암지역으로 진입했다. 이제 여긴 그냥 드워프 집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여자 드워프와 꼬마 드워프는 완전히 정착해버렸고 어르신은 전처럼 외롭지 않았다.

“오! 자네들! 왔는가? 한동안 보이지 않아서 걱정하고 있었다네!”

“와! 형이다! 형!”

꼬마는 김우태에게 매달렸고 어르신은 내게 와서 손을 덥석 붙잡았다.

“소식 들었어. 자네들이 오크들을 완전히 몰아냈다지? 얼마 전에 여기까지 사람이 왔었다네. 오크의 제국을 모두의 나라로 바꾸고 있다고 하더군. 일손이 모자라서 흩어진 이종족을 다 모으고 있다고 했었어.”

“그랬군요. 어르신도 가시게요?”

“평생 여기에서 산 내가 가서 무슨 도움이 되겠냐마는 저 아이를 생각하면 가야 할 것 같기도 하고….”

그의 말에 옆에서 여자 드워프가 말했다.

“저는 여기가 좋아요. 괜히 도시에 살다가 전처럼 또 그런 일이 벌어지면….”

황제의 실험체로 쓰일뻔했던 경험을 했으니 저런 마음이 드는 것도 이해가 간다.

나는 어르신과 몇 마디 더 말을 나눈 뒤 밖으로 나왔다.

“아….”

부글부글 끓는 용암과 물씬 풍기는 유황 냄새를 맡고 있자니 다시 현실감이 들었다. 그래, 현실감! 참으로 이상했다. 나는 살아있고 학교도 다녔는데 이곳에 와서야 심장이 뛰는 기분이었다.

김우태가 뒤에서 말했다.

“좀 살 것 같냐?”

“어떻게 아셨어요?”

“나도 그렇거든.”

김우태가 웃으며 범이의 머릴 쓰다듬었다. 어느새 범이는 본신으로 돌아왔고 아리도 날아오를 준비를 하려는 것 같았다.

“우리는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린 거야.”

나도 인정한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가보자.”

“어딜요?”

“어디든! 이 넓은 땅에 나쁜 놈 하나 없겠냐?”

그의 눈빛도 다시 살아나 있었다.

.

.

.

강나은 경위는 결린 어깨를 손으로 풀며 의자를 뒤로 뺐다.

“후…. 다 했다.”

무려 10일이나 걸린 보고서다. 윤일권과 말을 맞춰야 했고 ‘이상한’ 것을 모두 도려낸 뒤 가장 그럴듯한 보고서로 위장했다. 보고 또 봤는데 그 이상한 것이 더 매력적이란 걸 부인할 수 없는 그녀였다.

‘이제 다 끝난 걸까?’

과학수사대는 아직도 흔적들을 조사하고 있었지만 히트맨에게 연락이 없는 걸 보면 사건은 마무리된 것 같았다. 프로파일러로서 후대를 위한 자료로도 남길 수 없는 기이했던 케이스.

타악.

그녀는 서류를 덮었다. 이제 내일 상부에 올리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계속된 야근이었지만 그녀는 듬성듬성 빠졌던 모든 퍼즐을 맞출 수 있었다.

뱀파이어, 마법사, 여자.

이 셋이 모든 사건의 연결고리였다. 중간중간 한강 괴물처럼 별개의 케이스도 있었지만, 그 모든 것들이 히트맨과 관련이 있었다.

“마법사라니….”

사무실을 나서며 그녀가 웃어버렸다. 아직도 믿기질 않았다.

지이이이이잉.

전화가 왔다. 윤일권이다.

“네, 대장님.”

-설마 했는데 아직도네요.

“어머? 어디신데요?”

-주차장입니다.

“금방 내려갈게요.”

그녀가 웃으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유부남인 윤일권에게 남자로서의 매력을 느껴서 이렇게 반가운 게 아니다. 비밀을 공유한 몇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것이 좋은 거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퇴근하는 길에 혹시나 해서요.”

윤일권이 캔 커피를 내밀었다. 그러면서 물었다.

“팀장님은요?”

“빠르게 회복 중이세요.”

“잘됐군요. 금방 복귀하실 수 있겠습니다.”

“…그렇게 심하게 다치셨는데 복귀하실까요?”

“하하! 현장 일을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그날 보고도 그러십니까? 괴물보단 사람하고 티격태격하는 게 훨씬 편하죠!”

“아….”

두 사람이 엉덩이를 차에 기댔다. 경찰서를 바라보며 윤일권이 웃었다.

“결국 감옥에 잡아넣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네요.”

저격수들은 아이돌을 구하기 위해 총을 쐈다고 보고했다. 그날 강남역 일대가 온통 대혼돈이었기에 아직도 그날 발생한 사건과 민원으로 경찰서는 마비 직전이었다.

“모두 죽어버렸잖아요.”

뱀파이어로 의심되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발견되었지만, 그들 모두 딱히 외상은 없는 것 같은데 잠든 것처럼 쓰러져 죽어 있었다. 아마도 히트맨이 뭔갈 한 것 같은데 실 끊어진 인형들 같았다.

“그래도 그들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또 이상한 것들과 싸우고 있겠죠?”

윤일권의 말에 강나은 경위가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태창바이오와 국회의원은 어떻게 되었나요? 그때 제가 드린 명단….”

“전부 실종되었습니다. 차차… 발견되겠죠.”

“아….”

짐작할 수도 없는 어떤 카르텔이 단 하루 만에 증발해버린 거다.

“태창바이오 중역들 상당수도 자취를 감췄고 검찰 쪽에서 압수수색을 준비한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강나은 경위는 커피를 홀짝 마셨다. 이 시간에 마시는 캔 커피는 달아서 좋다. 그녀를 보며 그가 말했다.

“다 해결하셨는데 왜 그런 표정이십니까?”

“네?”

“후련하지 않으세요?”

“후련해요.”

“아닌 것 같은데요?”

윤일권이 웃자 그녀도 웃었다.

“놀리지 마세요.”

“시원섭섭하시죠?”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원래 그렇습니다. 저도 몇 년씩 추적한 사건이 끝나면 며칠은 이런 기분이거든요. 차차 적응하시는 방법밖엔 답이 없어요.”

책에서 본 적이 있다. 10여 년을 추적한 연쇄살인범을 잡은 형사가 그 후로 알콜 중독에 빠져버렸다는 것을.

“으으음?”

강나은 경위의 표정이 살짝 바뀌었다.

“왜요?”

그걸 본 윤일권이 묻자 강나은 경위가 말했다.

“그 히트맨요. 말도 안 되는 힘을 가졌잖아요? 사람 정신까지 조종하는 마법사까지 물리쳤다면요.”

“그렇겠죠. 당장 올림픽에 나가도 금메달을 딸만큼 활을 잘 쏘고요.”

“혹시 히트맨은 강력 범죄는 다루지 않는 걸까요?”

“네?”

“그렇잖아요. 너무 덩치가 커서 경찰도 어쩔 수 없는 깡패들이나 아직도 미결로 남은 사건들 같은 거, 아니면….”

“그들이 도와주길 바라시는 겁니까?”

“…저희는 어렵지만 그들은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렇겠지만 언제까지 의지할 순 없지 않습니까? 결국엔 저희가 다시 바통을 넘겨받아야 하는 날이 올 테고 그렇게 되면 어차피 지금과 다르지 않을 겁니다.”

“아….”

윤일권의 말이 맞았다. 범죄자는 경찰이 잡아야 한다. 경찰로 안 되는 일들을 그들이 나섰던 것이고.

“제 생각이 짧았어요.”

“하하! 이런 밤엔 누구에게라도 기대고 싶어지니까요. 어서 들어가세요. 쉬셔야 머리도 맑아질 겁니다.”

그렇게 말하고 윤일권이 운전석으로 가려는데 그의 전화기가 울었다.

“…어?”

이 시간에 웬? 고갤 갸웃한 그가 말했다.

“대장이다.”

-큰일났습니다!

“뭐? 뭔데? 무슨 큰일?”

-사진 전송하겠습니다!

강나은이 급히 윤일권의 옆으로 바짝 붙었다. 오싹오싹 소름이 돋고 심장이 벌렁거렸다. 이건 예감이었다.

“…?”

“…!”

두 사람이 핸드폰을 보며 이마를 구겼다.

“이게 뭐야….”

남자로 보이는 사람의 상체가 통째로 없었다. 하체는 그대로인데 배부터 뭔가에 잡아 뜯겨나간 것처럼….

“이빨 자국 같지 않아요?”

강나은의 말에 윤일권이 스피커폰으로 돌리곤 외쳤다.

“상어라도 나타났어?”

-아닙니다! 오전 2시 11분경 한강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상체는 아직 찾지 못했는데 사체의 부패 정도로 볼 때 사망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고요!

“어떤 미친 새끼가 사람을 이 지경으로….”

-저도 현장으로 가는 중입니다. 대장님도 오실 수 있으십니까?

“이 일이 왜 광수대로 바로 넘어왔어?”

-목격자가 있었습니다.

“피해자를 처음 발견한 목격자?”

-아닙니다. 피해자로 추정되는 남자가 오전 1시 57분에 무언가로부터 물리는 걸 봤다는 목격자입니다!

“무언가라고?”

-술에 취해서 신빙성이 떨어지지만, 목격자 진술에 따르면 아주 큰 곰 같았다고 합니다. 세부 진술을 보면 곰은 아닌 것 같고요. 털이 없었답니다. 서울, 경기권에서 맹수가 탈출한 신고도 없었고요.

“그러면 뭔데?”

-모르겠습니다. 계속 괴물이라고만 횡설수설하고 있답니다. 사람을 한입에 먹어 치우고 강으로 들어갔답니다.

“…괴물….”

그가 신음했다. 강나은이 이미 조수석 쪽으로 뛰고 있었다.

“빨리요!”

이미 오늘 밤도 잠들긴 힘들 것 같았다.

재능마켓

지은이 : HAKA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839-322-6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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