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272화 (274/277)

#272화

“내 손 꽉 잡아!”

붉은 안개가 물씬 풍겨왔다. 저 안개는 놈의 상징이었다. 무턱대고 공격하다간 자칫 예원이를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었기에 일단 뒤로 물러나면서 범이에게 외쳤다.

“막아!”

크아아아앙-!

범이가 붉은 안개에 뛰어들 때 저쪽에서 도화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준아! 놈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어! 조심해!”

“네!”

건물 전체에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이미 몇 차례 도화지와 붙어봤는지 피의 군주는 그녀를 공격하는 걸 포기하고 나와 예원이를 노렸는데 예원이가 가장 취약하다는 걸 아는지 교묘하게 달려들었다. 특히 갑자기 튀어나오는 뱀파이어들을 보면서 예원이가 비명을 지를 때마다 붉은 안개에선 비웃음 가득한 음성이 들려왔다.

-큭큭! 언제까지 도망칠 수 있을 것 같나?

그걸 보며 도화지가 버럭 외쳤다.

“이 비겁한 자식아! 나랑 싸우라고! 왜 약한 애 괴롭혀!”

도화지의 말에 김우태가 말했다.

“단순히 그 이유만은 아닐 거야. 예원이가 놈들에게 잡혀 온 이유가 있을 거니까.”

놈이 왜 예원이를 노리는진 모르겠지만 나도 손가락만 빨며 내어줄 생각 따윈 없었기에 최선을 다해 반격했다.

‘놈이 강해진 만큼 우리 역시 마찬가지야. 셋이 함께라면 당하지 않아.’

이제 시간 싸움이었다. 건물 봉쇄가 풀리기 전에 놈을 잡아야 한다. 하지만 힘의 균형이 절묘해서 우리 역시 놈을 사냥하기가 어려웠는데 박쥐로 변해서 환풍구를 뚫고 들어가기도 하고 갑자기 천장에서 후드득, 떨어지며 기습을 시도하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더 짜증 나는 건 붉은 안개로 바뀌며 공격을 피하는데 전보다 더 교활해졌다는 것이다.

‘위로 올라가야겠어.’

차라리 탁 트인 곳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계단을 빠르게 질주했다. 이제 예원이는 거의 내게 안긴 상태였다.

‘놈이 몸을 숨길 수 없는 장소.’

뱀파이어가 매복할 수 없는 곳이 놈들을 상대하기 좋다. 그렇게 한달음에 계단을 올라가는데 예원이가 거세게 숨을 내쉬며 물었다.

“민준아….”

“잠깐만, 나중에 다 설명할게.”

“으응, 근데 아까 그 사람…. 아니, 사람이 맞긴 한 건가?”

“아니. 아니야….”

“그렇구나. 내가 아까 그 남자가 말하는 거 잠깐 들었었거든?”

“무슨 말?”

“이 건물엔 특별한 기운이 흐르고 있어서 마법진을 만들 수 있었대.”

특별한 기운? 재능마켓 때문인가?

“그걸 찾으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우리는 나가는 게 목적이 아니야. 그 괴물이 나가는 걸 막아야 하는 거야.”

“아…. 하지만 그렇게 무서운 걸 어떻게….”

“할 수 있어. 우리가 모든 힘을 다 쓸 수 있다면.”

“알았어.”

대화 도중에 어느새 옥상으로 돌아왔다. 밖으로 나가자마자 뒤에서 안개가 따라오며 웃어 재꼈다.

-결국 여긴가? 탁 트인 곳으로 나오면 달라질 게 있을 것 같았나 보지?

후르르륵!

안개들이 모이며 사람의 형체로 돌아갔다. 피의 군주는 차분하게 미소 지으며 나를 보고 걸었는데 뒤쪽에서 도화지와 김우태가 나타났다.

“민준아! 괜찮냐?”

김우태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눈짓했다. 지금 형국은 우리가 포위한 모습이었다. 어쩌면 이게 기회일 수도 있었다.

놈이 입을 열려 했기에 잠시 기다렸다.

“그 여자는 보기 드문 순결한 피를 지녔다. 매우 깨끗하고 순수해서 내가 그 피를 취할 수 있다면 너희를 쉽게 압도할 힘을 얻을 수 있지.”

“그걸 내게 알려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피를 취한다는 말에 예원이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그 손을 꽉 잡아주며 안심시켰다.

“뭐, 그게 그리 중요한 게 아니라서 말이야. 따지고 보면 더 중요한 피가 있을 것 같단 말이지.”

놈이 나를 섬뜩하게 노려보았다.

“저 뒤의 두 놈의 몸뚱이는 기이해서 피를 뽑아낼 수 없더군. 하지만 너는 다르겠지? 퀸 이상의 힘을 내포하고 있을지도 몰라. 너희 둘의 피를 고르게 마실 수 있다면 내 모든 권능을 되살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걸 알려주면 내가 당할 것 같냐고.”

【민준아, 조심해. 뭔가 이상해!】

도화지의 속마음이 들렸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저놈이 이렇게 여율 부릴 때가 아니었다. 부하들은 우리에겐 상대조차 안 되고 옥상에 갇힌 건 저놈이다. 그런데 여유를 부린다?

놈이 말을 이었다.

“내가 참으로 오래 살아왔단 말이야. 그 긴 세월 동안 하나 깨달은 게 있지. 결국 시간은 내 편이었다는 거다. 너희에게는 하루하루가 소중하겠지만 나는 죽을 수 없는 몸, 이제 관도 타버렸으니 이 세계에서 나를 죽일 방법은 없겠지.”

놈이 스산하게 웃었다.

“봉인이 곧 해제되면 너희는 죽을 때까지 나를 두려워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설령 지금 내가 너희에게 목이 잘리고 불탄다고 해도 나는 다시 밤이오면 부활할 거고….”

놈이 예원이를 노려봤다.

“가장 먼저 너의 침대에 방문할 것을 약속하지. 아가씨. 그때까지 깨끗함을 잘 유지하라고.”

움찔! 예원이가 소름 끼친다는 듯 내 뒤로 숨었다.

아,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이놈은 우리와 싸우는 걸 포기한 것 같다. 여유 부리는 게 아니라 어차피 싸워도 자기가 못 이길 것을 알았다는 뜻인 것 같았다. 그러나 놈은 불멸자다. 녀석의 말처럼 다시 놈이 부활하면 우린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가기 힘들 것이다.

‘그렇게는 절대 안 돼.’

반드시 놈을 이 자리에서 잡아내야 했다. 김우태도 그걸 깨달았는지 속으로 말했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모르겠다. 내가 가진 모든 드링크를 떠올려도 이놈을 효과적으로 구속할….

‘아?’

【왜?】

‘세계수 가지요! 그거라면 이놈을 죽일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과거를 보게 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황제가 최초의 뱀파이어가 될 때 우린 똑똑히 목격했었다. 그걸 역순으로 생각한다면?

【일단은 그 방법밖에 없으니까 해보자! 우리가 잡을 테니까 네가 심장을 찔러!】

‘놈이 경계하지 않게 결정적일 때 꺼낼게요!’

【그래, 지금은 놈의 수작에 놀아주면서 대응하자!】

그런데 과연 그것만으로 될까? 묘하게 뭔가 빠진 기분이 강하게 들었지만, 지금으로선 더 나은 게 없었다.

놈의 주의를 끌기 위해 내가 물었다.

“그렇게 오래 살았으면서도 욕심이 끝이 없는 건가?”

“욕심은 내려놓을 수 있지. 하지만 욕망은 다르다. 이건 내 무료한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지. 너같이 짧은 인생을 사는 인간을 절대 이해하지 못할 거야.”

욕심이든 욕망이든 내가 알고 싶은 건 놈이 언제 움직이냐는 거다. 훌쩍 뛰어서 안개로 변해버린 뒤 어디 구석에 처박혀버리면 아침까지 계속 숨바꼭질이 이어질 것이다.

이때 하늘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타타타타타!

헬리콥터가 보였다. 그걸 잠시 올려본 피의 군주가 말했다.

“참으로 매력적인 세계야. 인간을 번성하게 놔두면 이렇게 눈부신 문명을 세운다는 걸 꿈에도 몰랐어.”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손으로 허공을 감싸 쥐는 놈의 표정엔 만족감이 물씬 포함되어 있었다.

스윽.

김우태가 놈에게 좀 더 접근하는 게 보였다. 도화지도 옆으로 걸으며 놈의 도주로를 차단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놈은 날아다닌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곤란했다.

“지금은 젊어서 의협심에 날뛰는 거 이해한다. 하지만 너도 마음만 먹으면 나와 함께 영원히 살 수 있다. 어때? 마지막 제안이야. 내 밑에 들어올 생각 없나?”

“….”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놈이 씨익 웃었다.

“생각해보라고. 이 세상의 주인이 되는 거다. 원하는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이 도시도 모두 네게 주마.”

저 말이 달콤하게 들릴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흡혈귀가 되어가면서까지 그렇게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미 구차한 삶을 한번 살아봤었다. 다시 얻은 의미 있는 시간을 그렇게 보낼 거였다면 이미 재능마켓을 얻었을 때 다른 흑심을 품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그걸 알기에 재능마켓이 나를 부른 게 아니었을까?

저벅, 저벅.

놈이 더 가까이 다가오며 팔을 뻗었다.

“아프지 않을 거다. 아주 잠깐의 꿈을 꾸고 깨어나면 너도 나처럼 무한의 시간을 갖게 되는 거야.”

내가 흔들린다고 생각했는지 놈이 더 진한 미소를 띠며 다가올 때였다.

『로드를 사냥했습니다!』

‘헛?’

『10,000,000P를 얻었습니다!』

『모든 능력이 극한까지 올랐습니다.』

『특정 능력이 한계를 돌파했습니다.』

로드가 죽은 것 같았다. 이 절묘한 타이밍에 놈이 죽어서 우리에겐 막대한 보상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걸 전혀 모르는 피의 군주는 웃었다.

“어때?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보물 아닌가? 영생이라는 건 돈이 아무리 많아도 살 수 없는 거라고.”

『스킬: 수호자의 눈을 얻었습니다.』

『이제 수호자의 눈으로 적의 본질을 볼 수 있습니다. 수호자의 눈은 마력이 깃든 부분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수호자의 눈은 허상과 진실을 구분합니다.』

나만 이러한 축복을 받는 게 아니었다.

【아아앗? 이 스킬 대박!】

뭔진 몰라도 도화지 역시 놀라고 있었다.

『이제 모든 마법사는 당신을 두려워합니다.』

『타락한 엘프를 해방시켰습니다. 이제 모든 엘프는 당신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메시지가 계속 떠오르고 있었지만 나는 더 기다릴 수 없었다.

파팟!

활을 휘둘렀다. 놈이 내게 다가오다가 뒤로 훌쩍 물러섰다. 하지만 활 끝의 뾰족한 부분이 놈의 배를 할퀸 후였다.

“…멍청하군.”

놈의 상처가 금세 아무는 게 보였다.

“협상은 결렬인가?”

“보면 모르겠어?”

활을 세워 잡고 화살을 걸었다.

“그게 무의미하다는 걸 이미 알 텐데?”

그건 조금 전까지였고. 하지만 놈은 그걸 모른다.

“…민준아! 내가 처리할게!”

도화지가 일부러 크게 외치며 놈에게 달려들었다.

“버러지 같은 것이….”

놈이 피식 웃으며 돌아섰다. 도화지의 방어력을 뚫긴 어렵지만, 그 역시 그녀의 공격에 당하지 않는다. 이번에도 안개로 변하려는지 둥실 발이 떠오를 때였다.

‘수호자의 눈!’

이것이 새로운 스킬의 효과인가? 놈의 몸이 가루처럼 흩날리는데도 형체가 반투명하게 남았다. 그러고 보니 퀸 역시 놈이 안개로 변해도 놈을 정확하게 공격했었다.

쉬이이이이이이익!

화살이 날았다.

“…?”

놈도 이상함을 느꼈는지 허공에 떠서 이쪽을 바라보는데 이미 다섯 발의 화살은 하나로 뭉쳐 한곳을 노리며 다가들고 있었다.

퍼버버버벅!

“커허허허허헉!”

명치에 다섯 발이 화살이 정확하게 파고들자 놈도 놀랐는지 비명을 질렀는데 화살이야 뽑아 내버리면 그만이었고 상처도 마법처럼 아물겠지만, 물리적 충격 자체는 남았다. 무엇보다 화살이 선명하게 보인다는 것이 도화지나 김우태에겐 다시 없을 기회였다.

콰아아아앙-!

도화지의 망치가 놈을 때렸다. 처음 맞아본 도화지의 망치엔 새로운 스킬 효과가 깃들어 있었는데 이건 거의 재앙급이었다.

『3초간 마비되었습니다.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습니다.』

“…흐읍?!”

재능마켓

지은이 : HAKA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839-3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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