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269화 (271/277)

#269화

퀸을 따라간 나는 복도 끝에서 뒤엉킨 피의 군주와 도화지를 보았다.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퀸 때문에 도화지의 균형이 무너진 것이었다.

‘여전히 빠르지만, 확실히 아까 보단 둔해졌어.’

예원이가 있던 방에 들어갔다가 나온 퀸은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는데 로드가 옆에서 외쳤다.

“지금이 아니면 안 돼! 절대 도망치지 못하게 해!”

모두가 직감했다. 퀸은 약해졌고 우린 집중해야 했다.

‘도화지의 공격이 제대로 한 번만 들어가면 돼.’

그간 도화지는 몰라볼 정도로 강해졌다. 특히 최후의 필라테스를 하며 그녀의 타격력은 무시무시하게 올라갔는데 그것에 적중되면 멀쩡하게 걸어 다니는 것이 불가능할 거다. 퀸만 잡으면 이 모든 스트레스를 끝낼 수 있다. 이놈들 때문에 이따금 악몽을 꾸면서 깨어난 적이 있었다. 세상이 망하고 어머니가 죽고 예원이 마저 괴물로 변해버렸다. 기생충이 득실댔고 김우태는 펑펑 울고 있었다. 그게 현실이 되지 않게 하려면 오늘 모든 것을 끝내야 했다.

‘한 걸음.’

옆으로 돌아섰다. 무턱대고 활을 쏴 봤자 현 상황에선 별 도움이 안 된다. 복도는 여럿이 움직이기에 좁았고 퀸은 빨랐으며 도화지와 피의 군주가 시야를 계속 가렸다.

‘반드시 치명타를 줄 필욘 없지 않을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활을 들었다는 것만으로, 지금까지는 내가 일격필살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무의식적에 했었다. 활이란 무기가 그렇지 않나? 내가 죽이지 못하면 당하게 되는.

‘그저 밀어준다면?’

생각을 바꾸니 다른 지점들이 보였다. 활을 쏘려면 조준을 하는데 공격 포인트를 보자마자 당기거나 혹은 대상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미리 쏴야 한다. 이런 거리에선 보이는 대로 쏴도 맞지만, 퀸이 보통을 넘어서는 속도를 지녔다는 게 문제였다.

‘등….’

떠민다란 말이 있다. 사람의 몸에서 타인이 어느 부위를 밀어야 가장 쉽게 균형을 잃을까? 그냥 흔들리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한 발짝이라도 가게 하려면?

‘지금!’

내가 시위를 놓았다.

피이이이잉!

하나였다가 날아가며 다섯으로 변환된 화살은 멀리서 보면 팔뚝처럼 굵은 대를 지녔다. 촉 역시 그것들 사이에 공간이 있기에 5배보다 훨씬 커 보였다. 한마디로 무식하게 크다는 것이다. 그걸 등에 맞으면?

퍼억-!

‘됐다!’

퀸이니까 버틸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뽑아버릴 수도 있고 회복력 때문에 피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물리적인 힘만은 막을 수 없었다.

“…!?”

뒤를 돌아볼 새도 없이 퀸이 앞으로 고꾸라지며 두 걸음 급히 걸었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버틴 것인데 그게 오히려 퀸을 도화지의 앞에 끌어놓았다.

후우우웅-!

퀸도 위기를 느꼈는지 손을 휘둘렀다. 저 가녀린 손엔 엄청난 힘이 실려 있다. 맞으면 사람의 머리가 두부처럼 으깨진다. 도화지도 그걸 보았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지금까지 계속 따라만 다니며 한 번도 때리지 못해서 부아가 잔뜩 치민 상태였다. 그런데 이 순간에 기적처럼 무언가 퀸의 손을 막았다. 도화지의 어깨에 달라붙어 있던 인형이 퀸의 손을 막은 것이다.

팍!

파리 쫓듯 인형을 친 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

망치가 얼굴로 다가오고 있었다.

퍼어어어억---!

정통으로 얼굴을 맞은 퀸이 뒤로 쭉! 날아갔다. 하지만 그녀를 노리는 건 도화지 하나가 아니었다. 훅-! 허공에서 나타난 피의 군주가 퀸의 배를 찍어누르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쿠우웅!

바닥이 깨져나갈 정도로 강력한 충격이었고 이어 날아든 불쾌하고 검은 창이 퀸을 다시 한번 때렸다. 연달아 이어진 세 번의 공격이 모두 성공했다. 내 활을 맞은 것까지 하면 퀸은 만신창이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퀸은 여전히 손가락을 꿈틀거렸고 그걸 본 피의 군주가 급히 날아오르려 했는데 휙! 날아든 퀸의 손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콰앙-!

오징어처럼 무력하게 벽에 처박힌 피의 군주가 벗어나 보려고 했지만, 퀸은 놓아주지 않았다. 일어선 그녀의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졌고 가슴은 까맣게 탔지만, 여전히 부리부리한 안광이 우릴 훑었다.

“물러서지 마!”

로드의 외침보다 먼저 도화지가 다시 뛰어들었다. 전투란 건 집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가 한 대 때렸다고 멍하니 있다간 반격을 당하거나 다음 타격을 이을 수 없다. 도화지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예전의 그녀였다고 좋다고 소리치며 팔짝 뛰었을 타이밍이었지만 지금은 상대가 완전히 무력해지기 전까진 긴장을 풀지 않았다.

후우웅!

그녀의 망치가 다시 호선을 그렸다. 퀸은 피의 군주를 완전히 죽일 생각으로 공격을 연달아 퍼붓다가 망치라 날아들자 피의 군주를 망치 쪽으로 휘둘렀다. 무기처럼 쓰는 피의 군주의 몸이 도화지의 망치에 정면으로 부딪쳤다.

“커억-!”

피의 군주도 우리 기준에서 보면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다. 도화지의 망치엔 저런 괴물에게 더욱 치명상을 줄 여러 효과가 걸려 있었는데 그걸 정통으로 맞았으니 피의 군주가 무사할 리 없었다.

탁! 그의 의식이 날아갔는지 눈동자가 풀렸다.

‘일부러?’

도화지는 피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피의 군주 역시 언젠간 싸워야 하는 상대임을 알고 그냥 쳐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도화지는 한 번 더 전진했다. 돌아간 망치를 끌어당기며 상체를 낮췄다. 그녀의 방어력은 성벽이나 마찬가지라서 이런 지근거리는 오히려 그녀에겐 절호의 기회였다.

“…이…!”

퀸은 고민해야 했다. 피의 군주를 계속 잡고 있으면 망치에 당할 거다. 놓아야 몸놀림이 더 가벼워진다. 하지만 피의 군주도 여간 성가셨던 것이 아니라서 어떻게든 죽이고 싶었다. 퀸의 이빨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미 망가진 얼굴이었고 회복할 틈도 없었지만 잡은 손을 놓긴 싫었다. 그러려면 망치를 또 맞아야 했다.

퍼어어어억-!

그녀의 이마에 도화지의 망치가 정확하게 떨어졌다. 훅-! 충격에 뒤로 날아간 퀸은 집요하게도 피의 군주의 발목을 잡고 있는데 잠깐이지만 둘 다 의식이 없는 것 같았다.

이때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열어!”

언제부터였을까? 로드의 옆엔 시녀가 서 있었고 그녀는 커다란 관을 들고 있었다. 여자가 저걸 혼자 든다는 게 다분히 이상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어차피 여긴 정상적인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벌컥!

관 뚜껑이 열렸다.

시녀가 관을 움직여 퀸의 몸을 받았는데 의식이 잠시 날아간 퀸은 자기가 어디에 처박혔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퀸이 잡고 있는 피의 군주다.

“…!?”

“…!!”

순간적으로 시녀와 로드의 눈이 마주쳤을 때 로드가 관 뚜껑을 닫아버렸다.

“….”

“….”

퀸만 잡아넣으려고 했는데 피의 군주까지 같이 들어가 버렸다.

“…로드, 이래도 괜찮은 것입니까?”

“뭐, 상관은 없겠지. 그렇다고 다시 열면 언제 퀸을 잡을 수 있을지 요원하니까.”

로드가 뒤를 스윽 돌아보았다. 뱀파이어들이 오기 전에 흔적을 지우려는 것이었다.

나는 그걸 보며 속으로 웃었다.

‘뭐야? 저놈들?’

한패였다면 아무리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해도 뚜껑을 닫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로드는 가차 없었다. 아니, 오히려 잘됐다는 표정이다.

‘역시 믿을 수 없는 것들이었어.’

언제 우리 뒤통수를 칠지 몰랐기에 긴장하며 로드에게 걸어가는데 그가 시녀에게 급히 말했다.

“이동한다!”

“네!”

쿵쿵쿵쿵쿵!

관 안쪽에서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보통의 관이었다면 퀸의 손에 벌써 헌신짝처럼 되어버렸겠지만, 이 관은 안에서 열 수 없는 특별한 것이었다. 우리가 이 건물에 갇혀 나가지 못하는 것처럼 퀸도 저 관을 자력으로 탈출할 수 없었다.

탁탁탁!

예원이가 있는 장소로 빠르게 뛰어가는 시녀가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귀찮은 뱀파이어가 와서 자기 주인 살리겠다고 덤벼들면 곤란했다.

우리가 촛불 있는 방으로 들어서자 예원이가 벌떡 일어났다.

“좋아! 마무리를 준비할 테니까 절대 관을 열지 마!”

로드가 썽급히 방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이제 최종 의식만 남았다. 지옥의 불길을 불러오면 퀸은 저 관과 함께 타죽을 것이다. 덩달아 박쥐까지 동시에 처리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황홀한 결말인가?

‘박쥐가 웬만해선 쉽게 죽지 않는다고 들어왔지만, 퀸도 태울 수 있는 지옥불이라면 놈도 소멸할 거야.’

그가 아는 모든 마법 중에서 가장 강한 것이 지옥불이었고 너무도 강하기에 그냥 끌어 쓸 수도 없는 힘이나 이런 의식까지 필요한 거다. 일반적인 상대라면 오히려 이러한 과정이 더 귀찮다. 그냥 칼로 목을 자르거나 마법으로 처리하는 것이 수월하다. 그러나 이놈의 불멸자들을 죽이려면 일반적인 상식으론 안된다.

예원이가 슬쩍 내게 걸어왔다. 말을 걸어도 되나 고민하는 것 같았는데 나는 일부러 얼굴을 흔들었다. 그녀가 나와 친분이 있는 걸 알면 그걸 이용해서 로드가 나중에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조금만 기다려줘.’

내 눈빛을 읽었는지 예원이가 멈칫거렸다. 하지만 그녀를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로드는 부리나케 뛰었고 시녀는 보조했다.

쿵쿵쿵쿵쿵!

섬뜩한 소리가 관에서 계속 들려왔다. 당장에라도 관이 터지면서 퀸이 튀어나올 것 같은 마음에 가슴이 조마조마할 지경이었다.

김우태가 로드를 보면서 물었다.

“이다음엔 뭘 하는 거지?”

“관을 태울 거다!”

“허얼…. 그런 거였냐?”

아무리 서롤 죽이려고 싸웠지만 저렇게 관 속에서 산채로 불타다니 어려 감정이 뒤섞여 정신이 아찔했다.

하지만 도화지의 생각은 달랐나 보다.

“하려면 빨리 해! 뛰쳐나오겠어!”

퀸이 얼마나 무섭다는 걸 잘 알았는지 불안한 눈으로 흔들리는 관을 바라보았다. 여럿이 도왔기에 몇 번 때릴 수 있었지만, 혼자였다면 엄두를 내지 못했을 거다.

“거의 다 됐어! 기다려라!”

로드가 몇 개의 마법을 쓰며 외쳤다. 마법들이 촛불과 마법진에 스며드는 게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게 끝일까?’

물론 우리는 퀸과 치열하게 싸웠다. 다시 이렇게 하라고 해도 못 할 만큼 최선을 다했으며 여기서 빠져나가면 퀸도 경계할 것이기에 두 번의 기회는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개운하지 않았다. 이제 로드의 마법만 완성하면 끝나는데도 무언가 잘 못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내가 물었다.

“이봐, 확실한 거 맞아?”

“지옥불을 버텨낼 생명체는 없어. 현존하는 마법 중에서 가장 강한 거다.”

저 녀석이 그렇게 말한다면 속임수는 없을 것이다. 놈도 어떻게든 퀸을 제거하려는 것 같으니 자신만만한 것을 준비했을 거다.

‘묘하게 찝찝한데….’

내 기우일 수도 있다. 그렇게 강한 퀸이 무력하게 저 안에 갇혀 있는 게 실감 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두려움에서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만큼 퀸은 강했다.

‘괜찮겠지.’

흔들리는 촛불을 보고 있을 때 로드가 우리 앞으로 뛰어왔다.

“됐다.”

재능마켓

지은이 : HAKA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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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839-3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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